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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윙크
김지운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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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작은 책방 잠'... 『악어의 윙크』
도서 기증 때문에 단체의 담당자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기증하던 곳이기에 기존에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었다. 그러다 몇 달 전 택배 예약 문제로 한 번 통화했는데, 세상에나... 분명 내가 알고 있던 바로 그 이름의 담당자였는데, 그분과 통화를 하고 두 번 놀랐다. 그동안 담당자가 여자인 줄 알았고, (나는 왜 그 이름이 당연히 여자일 거로 생각했을까?) 남자였던 그 담당자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놀랐다. (남자 목소리 좋은 게 그리 놀랄 일이냐고?) 아,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조금 더 선할 것 같고, (좋은 일이니까) 괜히 더 친절할 것은 이상한 선입견? ^^ (그게 직업의식이라고 해도!) 담당자의 목소리가 좋았다는 별것 아닌 이유로, 그다음부터는 조금 더 챙겨 보낼 책이 없나 찾아보기도 한다.
사람에게 있어 장점으로 작용하는 게 참 많을 텐데, 그중 하나가 목소리다. 다을의 이상형은 목소리 좋은 남자라고 하던데, 굳이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고 해도, 나도 목소리 좋은 사람이 좋다. 좋은 목소리가 주는 편안함이나 즐거움이 있다. 사람은 얼굴 보고 눈 마주치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데 그에 못지않게 어감은 중요한 거니까. 응?! ^^
'작은 책방 잠'에 손님이 두고 간 휴대폰이 발견된다. 손님은 밤새 머무르고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여자. 손님의 휴대폰을 열고 마땅한 연락처를 검색하던 중, 특이한 단축번호 연락처 세 개가 뜬다. 1번 악어, 2번 늑대, 3번 들개. 누구에게 연락할지 몰라 고민하던 세 사람, 다을의 친구 명지, 다을의 동생 소을, 그리고 다을. 가위바위보로 정해진 순서로 세 명의 동물남(?)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기로 한다. 그 첫 번째 주자로 선택된 다을. 다을은 1번 악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악어 권석주는 '작은 책방 잠'으로 휴대폰을 찾으러 온다.
아, 정말... 이런 우연으로 인연이 시작되는 건가? (나에게 잘못 걸린 전화가 오는 건, 말 그대로 잘못 걸린 전화로 끝나기만 하던데, 쩝~) 목소리가 좋은 남자와 여자. 여자는 목소리 좋은 남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호감(분명 인간적인 호감을 넘어선 호감일 테지)이 생기고, 남자는 귀찮은 걸음을 했던 그곳에서 마주한 다을에게 마침 준비하려던 기획에 딱 맞는 목소리를 발견한다. 대형 출판사의 임프린트 '다름'의 출간작을 좋아했던 다을은 석주가 '다름'의 대표인 것을 알고 더 호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 책을 좋아하는 여자의 게으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북카페 '작은 책방 잠'이란 이름에서도 풍기듯이,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조용하고 편한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여자가 다을이다. '잠'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그렇게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먹고 쉬어가는 걸 뿌듯하게 보는 여자에게서 석주는 자신의 출판사 기획에 딱 맞는 적임자인 다을에게 팟캐스트를 하자고 유혹(?)한다. 왜 유혹이냐고? 일을 빙자한 연애 걸기잖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결과를 낼 거잖아!! 하긴, 그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인다. 후훗~
반달곰이란 별명을 가진 다을의 이미지가 딱 맞다. 책 좋아하고, 조용한 곳에서 늘어지기 쉬운 그녀의 캐릭터가 별명 그대로 부르면 입에 착 달라붙어 어감이 좋다. 오직 귀로만 듣는 팟캐스트에서 중요한 건 역시 목소리겠지만, 다을과 석주가 주고받는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녹음실에서 느껴지는 건 설렘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그 책을 매개로 한 흐름을 잊지는 않는다. 연인 사이에 같은 취향의 취미와 호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하는데, 너는 어때?'라는 눈빛의 물음 같은. 굳이 권하지 않아도 상대가 관심 있어 하는 책을 한번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거, 그런 게 있어서 이 연인은 더 돈독해질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끈끈함 더 생길 것 같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 역시 연인 사이의 관계를 끌어가는 데 중요하니까.
이 소설은 책이 중심이 되어 꾸려가는 이야기인 듯하다. 책카페 여자와 출판사 대표, 요즘 흐름에 맞는 팟캐스트를 통해 전달하는 책 소개와 느낌들. 거기에 얹어지는 책과 관련된 사람들, 다을의 가족과 석주의 형제들까지. 진지함과 발랄함이 적당히 섞여 읽는 재미를 준다. 특히 내가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3번 동물남 들개의 캐릭터가 생각 외로 재밌어서 흥미로웠다. 또명지와 권철주의 숨은 이야기도 즐거웠고. 팔을 부러지게 했던 기억이라면, 나라도 잊지 못할 듯. ^^
밀당이나 썸이 아닌, 마음 그대로 드러내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상대에게 예의 있게 표현하면서 진행되는, 진짜 연인이 되어가는 이들에게서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사람, 남자와 여자의 연애가 흘러가는 그 감정의 일렁임이 묻어나서 설렌다. 아, 우리 연애를 할 때는 이랬지, 싶은 설렘 같은 거... 기분 좋은 떨림이다. 작은 책방, 커피, 맛있는 음식, 쉼, 사람, 사랑, 책. 팟캐스트가 누군가의 책 선택과 공감에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지 독자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책과 어울리는 편한 공간인 ‘잠’의 분위기도 잊지 않고 떠올려본다. 그런 곳,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가고 싶겠지? 거기에서 늘어지는 자세로 책에 파묻혀 있을 다을을 상상해본다. 나도 딱 그러고 싶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