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비공개로 ‘절망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보는 거다.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는 슬쩍 책 제목을 언급하며 주변 이웃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아, 진짜. 그 책 나랑 안 맞더라.' 하면서 말이다. 육두문자 섞인 욕을 대놓고 쓰지는 못하겠어서, 그 책이 왜 그렇게 별로였는지 혼자 적고 혼자 누르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그동안은 게을러서 아예 그런 목록 작성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작성하고 싶더라. 누구에게 대놓고 전달할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 제목, 이런 표지, 이 작가의 글은 피해야겠다.’는 나만의 기억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기껏 골라서 읽은 책이 ‘절망’의 기분을 안겨준다는 게 슬퍼서 자꾸 곱씹게 된다. 가만 안두겠어! (이미 읽고 나서 기분 나쁜데 가만 안 두면 뭐 어쩌려고? 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려고?)

 

곰곰 생각해보니, 사실 그런 느낌(별로였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책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 취향인가 하는 고민, 그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살펴보려고 하는 노력, 무슨 목적으로 그 책을 선택하려고 하는지 하는 확신이나 이유 같은 거를 확인하지 않은 채로, 특히 외형만 보고 골랐던 책에서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던 것 같다. 책이 목적이 되지 않고 다른 이유가 책을 고르는 목적이 되어버리니, 그 책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 특히 책의 디자인, 책의 제목 때문에 골랐던 경우 후회할 때가 많았다. ‘어머, 이 표지 너무 예뻐!’라던가, ‘무슨 책의 제목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라는 듯한 호기심과 호들갑에 맞이했던 책들. 말하고 보니 모두 예쁘다는 이유로 골랐던 게 되어버렸네. 쩝~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외형을 무시할 수는 없는데, 어느 날 가슴을 파고 들어온 제목에 설렐 수밖에 없는데, 역시 사람이나 책이나 외형보다는 내면의 것이 중요하다는 것일까? 줌파 라히리의 두 번째 산문집 <책이 입은 옷>을 읽으면서, 책의 외형을 대하는 마음이 더 오락가락해졌다. 독자가 아닌 작가가 보는 책의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를 듣고 보니 책의 외형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 거다.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또 이렇게 다른 느낌을 받는 건가 보다. 그동안 줌파 라히리의 작품을 펼친 적은 많았으나 완독한 적이 없어서 그녀의 작품이 어떤 느낌이라고 한마디로 말하는 건 어려웠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작품 분위기가 어떤 느낌일 것이다.’ 라는 추측은 가능하게 됐다. 시니컬하고, 담백하다. 뭔가 할 말 다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지나고 나서,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라고 머리 콩콩 찧어가며 후회하거나, 끝까지 말해도 관철될 수 없는 일에 양보하면서 속상해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의 말을 옆에서 듣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책의 표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녀가 그랬다. ^^

 

완벽한 표지는 뭘까?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대부분은 우리의 옷처럼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표지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날짜가 새겨지고 난 뒤 특정한 시간 동안에만 사랑을 받는다. 시간이 흐르면 옛날 번역을 다시 번역해야 하듯 표지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바꿀 필요학 있다. 책에 활력을 주기 위해, 책을 좀 더 현실감 나게 하기 위해 새 표지를 입어야 한다. 새로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는 것은 바로 원래 언어로 적혀진 오리지널 텍스트다. (책이 입은 옷 79페이지)

 

'책이 입은 옷'이라는 제목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책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특히 그녀가 자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작가로서 그녀가 책의 표지에 많은 관심과 애착을 두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그녀가 자라면서 겪었을 많은 혼란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통의 미국 소녀처럼 입기 원했던 그녀에게 엄마는 인도 전통 의상을 강요했다. 엄마의 사고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미국에서 사는 인도 사람, 이방인으로 보였을 그녀가 학교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왔을지 저절로 그려진다. 때와 장소에 맞게 적당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일은 일상인데, 그녀에게는 그 '옷을 고른다.'는 고민이 계속됐다. 차라리 교복 같은 유니폼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 옷으로 남들이 보는 나를 생각한다. 옷과 책표지. 다르지만 닮은 두 가지를 작가는 참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잘못된 표지는 거추장스럽고 숨 막히는 옷이다. 아니면 너무 작아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다.

아름다운 표지는 기쁨을 준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주는 느낌이다.

보기 흉한 표지는 날 싫어하는 적 같다. (책이 입은 옷 25페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책표지와 그녀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책표지의 의미는 닮았으나, 독자와 작가의 차이만큼 다른 점도 있더라. 예쁘고 책의 내용과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 표지를 보면 만족스럽고, 책표지와 내용이 다른 느낌이어서 와 닿지 않는다는 마음에 서운하기도 한 건 독자의 마음이다. 내가 쓴 글의 많은 것을 표현해주는 이미지를 표지로 삼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내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지 못해서 포기해야 하거나,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만족스러운 표지를 만나는 건 작가의 기쁨인 것 정도의 차이. 둘을 모두 만족하게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다. 어떨 때는 책표지가 충동구매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글과 책표지가 하나의 길로 독자에게 가는 길은 꽤 어려운 듯하다.

 

<책이 입은 옷>은 작가의 글과 책표지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작가와 표지 디자이너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책표지와 예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글 쓰는 과정이 꿈이라면 표지는 꿈에서 깨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글과 표지의 만족도가 같아지는 게 어렵다고 생각된다. 동시에 작가는 글과 책표지를 자신의 성장 과정의 옷 입기와 연결하면서,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보게 되는 인식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나로 보이는 유니폼이어서 좋은 점, 또 그렇게 일률적이어서 찾기 어려운 차이점들을 생각한다. 특이한 것은 작가는 어렸을 적 도서관에서 봤던 '발가벗은 책'을 그리워하기도 하는데, 도서관 이용자들이 많이 공감할 듯하다. ^^ 내가 찾던 책이 비치 중인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사서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착각한 거였다. 책표지가 있던 상태의 책 색깔만 생각하고 찾다가, 책표지가 벗겨진 채로 서가에 꽂힌 책을 못 본 거였다. 작가는, 자유롭게 책을 읽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꺼낸 말이겠지만, 나는 나의 실수담으로 더 와 닿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의 모든 책을 책표지를 입은 채로 비치해달라고 하면, 책의 비닐커버를 씌우는 또 한 번의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서 강력하게 요구하지는 못하겠던데, 그건 도서관만의 차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 도서관은 본관 포함해서 5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같은 책도 어느 도서관에서는 커버를 벗기고 비치해놓고, 어느 도서관은 책표지 그대로 비닐커버 씌워서 비치해놨더라는. 각 도서관의 입고 담당자가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많은 도서관의 책은 줌파 라히리가 말한 것처럼 옷을 벗은 책 상태로 비치되어 있을 거다.

 

표지의 역할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할 감정을 떠올려본다. 작가가 말하는 책표지의 상업적인 역할도 충분히 공감한다. 표지가 책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지만, 아름다운 표지의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것. 책과 표지가 말하는 게 달라 진실과 거짓이 대립할 수도 있기에 작가는 바란다. 표지가 자신의 책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해주기를.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보는 책과 표지의 관계로 작가가 평생 겪어왔던 갈등을 연결하며 하는 이야기에 불편함은 없다. 다만, 앞으로도 그 갈등을 계속 확인하고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표지가 단순히 책의 의미나 내용을 반영하는 세상에 살지 않는다. 오늘날 표지는 책에서 또 다른 비중을 차지한다. 표지는 미적인 목적보다 상업적 목적이 더 크다. 표지가 책의 성공 혹은 실패를 결정한다. (책이 입은 옷 41페이지)

 

 

 

 

 

 

 

 

 

 

 

나는 이은규의 시집 <다정한 호칭>을 읽었으나 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마리몬드 콜라보 버전으로 나온 책표지가 예뻐서 사고 말았다.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가면서 말이다. '이미 읽었지만 굳이 사고 싶기도 했어, 가끔 생각나기도 했거든, 그런데 굳이 살 필요까지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지 않았는데, 이번 표지는 너무 예쁘잖아, 그러니 이번에 사야 해, 원래 다시 읽고 싶었던 거잖아?!' 이런 마음으로 그 책을 사는 것에 후회나 충동구매보다는 기쁨과 만족을 끼워 넣었다. 절망의 리스트를 열심히 작성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표지의 상업적 목적에 충분히 빠져든 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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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Z의 비극 올블랙 한정판이 나왔다.

나 이거 읽고 싶었는데, 한 편도 못 읽어서 그냥 계속 궁금하기만 했는데,

이번 기회에 사서 읽어볼까 싶은...

예쁘게 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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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7-09-2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왜 최후의비극이 빠진거죠 결말때문에 비극시리즈를종결짓는 권인데

2017-09-20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df657 2017-09-20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xyz만 유명한가.........최후의 비극은 시그마북스에서 한번 나오고 절판된후 다른곳에서 내내 xyz 만 나오다가 검은숲 출판사에서 엘러리퀸 전집에서 간신히 비극시리즈 마지막 드루리레인의 마지막 사건 최후의 비극편이 나왔는데 이번 합본편에서도 제외되었네요 페이지 문제로 제외한것인가.헐.......이번 합본판 최후의 비극편이 없어서 구매안합니다.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브로드웨이 42번가> R석 2매권 양도합니다.

http://www.d3art.co.kr/

디큐브아트센터 홈페이지

 

관람일자 : 9월 27일 오후 8시

 

만 7세 이상 관람 가능.

실물 관람권을 가지고 현장에서 좌석권과 교환해야 합니다.

관람 전, 최소 30분 전에 티켓 교환 완료해야 합니다.

(공영시간 1시간 30분 전부터 좌석권 교환 가능)

원하시는 분 계시면 제가 관람권 등기로 발송해드립니다. (등기 비용 제가 부담합니다.)

다음주 공연이라 시간이 별로 없어서

빠른 처리 위해 오늘 오후 3시까지만 댓글 및 배송정보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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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15: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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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1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2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의 공부지능 - 3세부터 13세 부모가 꼭 알아야 할 공부 잘하는 머리의 비밀
민성원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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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것, 이왕이면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것, 그 공부로 인해 내 아이의 미래가 좀 더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것. 그래서 이런 책을 더욱 집중해서 선택하는 듯하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조카들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아이와 아이들의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언제가 화두에 오르는 공통적인 주제다. 아이의 지능과 관련하여 많은 책이 나오고 옳다고 여기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만 늘 부족하다. 믿음을 두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알면서도 잘 행해지지 않은 습관 탓도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꾸 이런 부류의 책에 관심을 보낸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받아들이고, 또 시도하여 내 아이의 공부가 삶을 평온하게 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공부지능'이라는 말이 낯설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것은 잘 몰랐다. IQ, EQ, 지능에 관련한 단어가 많지만, 공부지능이라는 단어는 저자가 적당한 의미로 고른 단어이다. 분위기로 보자면 EQ 쪽에 가깝다. IQ가 지능의 바탕이 되긴 하겠지만, 그 이외의 요인들이 아이의 공부에 미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전한다. IQ뿐만 아니라 창의력과 집중력, EQ까지 망라한 지능이다. 특히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부분은, 선천적인 부분보다는 후천적으로 개발하면 가능해지는 부분이 있더라는 말씀. 그러니 무심코 흘려듣거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이의 행동에 좀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관심을 조금만 더 둔다면 내 아이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길이 충분하다는 것을 저자가 전한다.

 

EBS <육아 학교> 공식 멘토 민성원이 전하는 우리 아이 지능개발 실전서다. 사실 나는 저자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는데,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니 이미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라면 저자의 이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이의 공부 잘하는 머리가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지 알려준다고 하니 어느 부모인들 이 말을 흘려듣겠는가. (부모는 다 똑같다) 공부지능은 타고난 머리를 뛰어넘는다. IQ가 낮은데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궁금해하는 부모라면 이 책을 정독하면 귀한 정보를 얻게 된다. 특히 3세부터 13세의 아이들에게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듯하다. 공부하는 모든 시간에 적용할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기간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그 효과가 발휘되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분명 있는 듯하다.

 

'IQ가 낮아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포문을 연 이 책은, 저자가 명명한 '공부지능'의 정의와 방법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증명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타고난 머리가 부족해도 괜찮으니 후천적인 과정을 습득하게 해주는 것, 영재나 천재는 더는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것도 공감한다. 아이의 양육과정이나 성장 환경이 아이의 공부지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굳이 저자의 말이 아니어도 주변에서 자주 확인하곤 한다. 유전과 환경이 아이 성장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지만, 후천적으로 작용하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이뤄진 공부지능은 부모와 아이가 같이 하는 그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미처 보지 못한 아이의 성향이나 잠재적인 가능치를 발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방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이어지는데, 공부지능은 무조건 그 힘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공부지능을 결정하는 '적기'와 '조기 교육'이 있다. 그 타이밍이 맞춰졌을 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 영유아시기를 시작으로, 신체 능력이 골고루 발달하고, 언어, 모든 영역의 집중력, 추리와 논리력이 발달하는 시기로 진행한다. 그때마다 생활습관이 공부지능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게 공부지능은 발견, 반복, 강화, 실현의 순서로 진행하여 올바른 교육법으로 자리 잡는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발견, 반복과정으로 아이는 공부의 자신감을 키우고, 인내심으로 계속 도전하는 아이를 응원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만나는 그 결과의 실현을 마주하는 일. 그런 기대감으로, 긍정적인 바람으로 이 시도와 노력을 계속하는 듯하다.

 

특히 챕터4와 챕터5를 눈여겨보게 되는데, IQ(인지능력)와 EQ(정서지능)가 공부지능과 어떤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러한 협력으로 어떤 효과를 이뤄내는지 설명한다. 암기는 노력으로 강화할 수 있으며, 어휘력은 모든 공부의 바탕이 되므로 국어 교과서를 어휘력의 강력한 교재로 활용하라는 것. (이 부분을 듣고 굳이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도 국어 교과서는 필요할 듯하다. 나부터도 짧은 어휘력에 절망할 때가 많으니...) 연산력과 공간지각력 등 학습 수준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에 이어지는 정서 지능은 아이의 성적과 사회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EQ를 높여주기 위해서라도 부모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의 성장 시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게 가정, 부모일 것이니까 말이다. 긍정적 자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의 지인을 통해 증명했다. 특히 아이들의 EQ를 높여주는 습관 3가지를 듣고 놀랐다. 흔하게 들어왔고 어려울 것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인데, 살면서 생각해보니 그게 절대 쉽지 않았던 거다.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겼던 요소들을 저자는 공부지능의 협력자로 언급했던 거다. 기다리고, 감사하고, 경청하는 습관으로 아이의 EQ를 높여주라는 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집중력, 창의력이 공부지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설명하면서 마침표를 찍는 이 책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지침과 저자의 경험을 함께 언급하면서 신뢰도를 높인다. 문제를 찾고 답을 구해야 하는 것에 저자의 설명이 믿음을 준다. 뭐로 보나,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게 하는 것,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잘하게 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 비결을 저자가 드러냈다. 차근차근, 저자의 설명을 밟고 따라가다 보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공부지능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중요한 것은 이 공부지능의 큰 영향력을 받거나 노력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우리의 아이겠지만, 그 아이에게 이러한 방법들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늘 함께한다고 생각하면, 같이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낼 거라는 것이다. '적기에 발달만 잘 시켜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적기가 3세부터 13세까지다. 나이의 지능을 개발해주는 기초체력을 길러주는 일, 그 기초체력으로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인생을 만들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며 기쁨이다.

 

무엇보다, 아이를 향한 관심과 긍정의 시선은 그 '공부지능'의 발견과 발달을 위한 기본적이고도 훌륭한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행동과 생각에 올바른 판단을 했을 때, 공부지능의 최대 효과의 시작일 것이다. 내 아이의 지능 향상과 그 끝에서 마주할 행복의 시간을 이뤄내는 기적을 모든 부모가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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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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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을, 꼭 해야 해?' 나이를 먹으니 자꾸 편한 것만 찾으러 다닌다. 텐트? 오~노~! 허리 아파서 안 돼! 음식을 싸가서 먹자? 오~ 노~노~노~노~! 짐 보따리 바리바리 싸서 이동하는 것도 싫어. 그냥 무조건 편한 곳으로! 잠은 꼭 실내에서 자야 하고, 먹는 것은 어디 식당에서 먹거나 아주 간단하게. 오케이? 여행이란 무릇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다. 편하게 다녀온다고 하는데도 어딘가를 한번 다녀오면 온몸이 혹사당한 것처럼 피곤한데, 힘들게 다니는 건 안 되는 말씀! 암만! 재충전을 위한 힐링이라고 하는데, 다녀오고 나면 꼭 피로가 오래가더라, 하는 후유증에 무조건 편한 여행을 외치곤 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한다는 교훈을 다시 깨닫고 오기는 싫다는 거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다. 무조건 편한 여행을 외치는 나에게 박상은 반박한다. 그냥 가는 거야~!(무슨 노홍철 말투처럼?) 반지하 방의 눅눅함이 싫어서 떠나고, 글이 잘 안 써져서 떠나고, 싼 항공권을 득템해서 떠나고. 말하고 보니 그렇다? 그가 떠나는 데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떠나는 이유를 고르기가 더 어려운 거 아닌가! 그의 방랑은 글과 한 몸이 되어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보인다. (여자가 아니라 방랑이 동반자여서 싫은가, 그대?) 그런 방식의 그의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이지만, 막상 읽기 전에는 그 뻔함을 느낄 수 없다. 뻔함에, 뻔함에, 또 뻔함에 웃김까지 얹어진 그의 여행기, 음악 방랑기, 들을수록 짠내가 풀풀 난다. 아, 이 아저씨를 어쩌면 좋지?

 

그만의 여행법에 음악이 슬리퍼 뒤꽁무니처럼 따라붙는다. 아니면 그의 찌질한 일상에 음악이 술안주가 되어 주거나. 럭셔리한 여행도 아니요, 그럴싸한 식당에서 한 끼 해결하는 맛집 투어도 아니다. 의사소통에 혼란이 생겨서 그의 여행은 당연하게 문제로 시작하거나, 이탈리아의 험악한 남자들에게 데어버린 기억이나. 여행자가 한 번 겪을 만한 모든 일은 그에게다 모여서 다가온 듯하다. 박상 특유의 말투와 재치가 이 글을 더 신나게 한다. 그가 겪은 시간이 결코 신나게 보이지 않음에도 그렇게 만드는 게 그의 재주다. 우울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 같은 순간에도 그의 익살은 빛을 발한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건 우리가 언젠가 꼭 한 번은 저질러 보고 싶은 일탈 같은 거 아닌가? 그런 일탈을 그는 일상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으니, 아~ 정말 그의 일상에 뛰어들어보고 싶더라는 간절함이,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퐁퐁 샘솟는다. (그의 전작들 제목에서부터 알아보긴 했다. 역시, 범상치 않아.)

 

우리 눈으로 보면, '저건 제대로 된 게 아니여.' 하는 모든 순간 그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그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나는 막 웃고 싶다. 깔깔깔. 솔직히 음악이 없었다고 해도, 그는 '혼자서도 잘 놀아요' 하는 자세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순간을 막 건너갔을 것만 같다. (이상하게 그의 인생이 아무 걱정이 안 되는 건 나만 그런 거야?) 그의 말투와 외모가 눈앞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아서 그가 풀어내는 이 문장들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간신히 오줌을 참고 있는데 <She>가 흘러나올 것은 무엇이냐. (그는 이때 노라조의 <니 팔자야>를 들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왜 <She>가 더 강렬하게 남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서 봤던, 아기들 기저귀 떼고 소변 가리는 거 가르칠 때 생각난다. (상상 금지!) 어찌 되든 흘러가는 세상살이. 맞다, 걱정해서 뭐하냐, 아무 소용없지, 전인권이 긁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걱정 말아요, 그대>를 귀에 장착하며 잠시 눈앞의 문제들을 잊어도 좋은 거지 뭐. 장염을 앓으며 위로를 받았던 음악이 하필이면 <Patience>일 건 또 뭐란 말인지. 인내하라, 그러면 장염도 날아갈 것이니라, 아멘. 뭐 그런 기도문을 외우기 좋은 분위기였을까?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복음성가처럼 부르면서 대책 없는 인생들의 파이팅을 외치거나. 고만고만한 인생들에 '건배'를 불러주니 살아갈 만하더라는 통증 완화제 같은 거였거나. 봄날의 어느 날, 식당에서 메밀국수를 먹으며 <봄바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벚꽃과 떠나간 그녀와 속초는 장범준의 목소리를 그의 귀에 콕 박아놓은 것이다.

 

 

페이션스(Patience, 인내심)는 페이션트(Patient, 환자)와 한 끗 차이의 단어다. 술 마시고 이 곡의 제목을 떠올릴 때 종종 헷갈린다. 사는 일이 뭔가 안 풀리고, 할 일도 많은데 몸이 아프고, 좌절감과 통증과 외로움이 태풍처럼 밀려올 때 이 음악이라도 없었음 어쩔 뻔했나 싶다. 음악이 있는 한 인간은 절대 혼자가 아님을 다시 깨닫는다. (175페이지)

 

나는 우울한 기분을 고조시키기도 싫고 차분하게 가라앉히기도 싫어서 블론드 레드헤드의 <Misery Is A Butterfly>를 골랐다. 블론드 레드헤드의 음악들은 기본적으로 암울한 마이너 톤인데 리듬감은 뛰어나다.

그런데 리듬이 빠른 곡도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거나 축축 처지게 한다. 이들의 음악은 여행을 출발할 때 듣거나, 막 시작된 연인과 스테이크를 썰면서 들으면 곤란하고, 우울이 집적거려 귀찮아 죽겠을 때 들어야 그저 그만인 것이다. (142페이지)

 

 

음악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그가 소음을 견디기 어렵다는 게 의외였다는 말씀. 음악도 어디 보통 음악이더냐. 헤비메탈을 즐긴다는데, 소음(고음, 찢어지는 음?)에 익숙할 것 같은 그가 새소리를 못 견뎌 새하고 맞짱이라도 뜰까 궁금했는데, 영웅 베토벤의 이름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한발 물러서다니! (아니, 박상, 나는 당신이 정말로 소음으로 귀를 고통스럽게 하는 새에게 한판 뜨자고 할 줄 알았단 말이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가 선한 사람일 것이라는 걸. 진짜 나쁜 사람이었다면 새소리를 신고하거나, 새를 사냥했을지도 모른다. (이러면 너무 심하게 나쁜 사람인가?)

 

이게 여행 에세이인가, 음악 에세이인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또 무슨 문제가 될까? 그냥 헷갈려버려! 여행지에서 떠오른 음악이나, 음악을 듣다가 찾아오는 깨달음이나, '엄마 손은 약손~' 하면서 들려오는 멜로디에 아픔이 나아졌거나, 여행자의 꼬질꼬질함에도 주눅 들지 않게 귀를 감아주는 '퐈이야~'이거나, 혹시 '비포 선 라이즈'를 찍어볼까 작업용으로 내밀어 보는 노래이거나... 그게 어떤 이유로든 음악이 함께하는 삶에 방점을 찍은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온다. (사실, 그의 찌질하고 짠내 나는 순간에 포착된 음악이 더 많긴 하더라만. ㅋㅋㅋ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이 더 웃음이 나긴 하더라만. ㅋㅋㅋ 왜인지 그의 여행법을 한번은 따라하고 싶기도 하더라만. ㅋㅋㅋ 그의 인생 메들리를 저장하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된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더라만. ㅋㅋㅋ) 1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볐다는 그의 여행과 음악이 뭉쳐 쏟아낸 이야기가, 그의 방식대로 삶을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시도를 품게 한다.

 

그의 웃김과 잘생김은 비례한다. 그가 안 웃길 때마다 그의 못생김은 전염병 번지듯 온 얼굴을 덮을 것이다. (이게 말이여, 방구여?) 본인 스스로 잘생겼다고 우기는(?)데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그는 정말 대단하다. 그 자신의 잘생김(?)을 십분 활용할 줄 안다. 상상 그 이상의 니글거림을 이탈리아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광고도 그의 행보 앞에서는 달콤함이 죽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에서 과감히 뱉은 그 말, "저 내일 베로나를 떠나요." 아아아악~~~ 이러지 마, 제발.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어지잖아. 숨이 막힌다고! 저런 작업 멘트 옳지 않아.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한번은 따라 하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뭐란 말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를 우째. 이런 달달한 멘트를 날렸는데도 그에게 돌아오는 건 콧방귀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 '뭐, 어쩌라고?' 아마도 술집의 그 여자는 딱 그런 표정으로 그를 보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내민 감자칩 한 접시는 이별 선물도 뭣도 아니었다. 이 감자칩이나 먹고 떨어져!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작가정신 '슬로북' 시리즈의 의미에 맞게 흘러간다. 병맛 나는 일상에서, 죽을 것처럼 괴로운 문제들에서 잠시 벗어나도 좋을, 눈과 귀로 하는 여행으로 작가에게서 시간을 얻게 한다. 이렇게 오늘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고, 지갑에 달랑 만원 한 장 남은 돈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한두 시간쯤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별것 없이 맥주로 차린 밥상에 친구들을 초대해도 즐거울 것 같다. (아, 좋아. 편안해. 눈물 날 것처럼 슬픈데도 즐거워. 이거 뭥미?) 그는 너무 옛날 노래 얘기만 할 때도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원래 어느 순간 '그때 그 노래'가 떠오르는 때는, 다 옛날의 시간을 부르는 거다. 오늘을 기준으로... 응? 응답하라 시리즈나, 시그널의 음악이나 그때를 연상하는 장면들에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들이 삽입된 건 다 그런 이유 아닌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요. 귀에 찰싹 달라붙는 멜로디는 다 그런 세월을 통과한 것들이라오...

 

추억은 과거 한때 아름다움의 순간 포착이고,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회한의 부작용이 있어서 아픈 것 같다. 잠시 흐뭇해하다 한숨이 나올 만큼 아픈 걸 알면서도 우리들은 또 아름다운 순간들을 수집하고, 추억을 저장할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싶다. (282~283페이지)

 

음악이야말로 삭막함의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음악의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72페이지)

 

지금의 속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속도로 오늘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은 편안함을 건네는 그에게, 꼭 한마디를 하고 싶다.

배우 이정재는 얼굴에 잘생김이 묻었지만, 당신의 얼굴(글)에는 웃김이 묻은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안 웃길 때마다 못생겨질 거라는 걱정은 넣어둬요. 지금 웃긴 거로도 당신의 잘생김이 당분간은 유지될 테니. 그러니! 계속 똥꼬발랄해줘요. 젭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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