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수신지 지음 / 귤프레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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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의 평균 결혼생활이 15년 이상이다 보니, 아직 미혼이면서도 200% 공감되는 책이다. 마치 내가 사린이 된 것만 같았다. 며느리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그 ‘며느라기‘라는 시기를 나는 겪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먼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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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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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로 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책의 느낌을 읽은 그대로의 느낌대로 표현한다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공감한다는 말은 너무 과장된 것 같고, 이해한다는 말도 거짓말 같고... 그 어떤 말로도 위로나 이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어쩌면 나 역시 남의 일로 치부하며 지나갔을, 혹여 내 자식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 하는 방관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말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아왔을 고통의 시간을 이렇게라도 듣게 된 건, 이제는 방관자(방관자 역시 가해자일지도 모를)로만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적극성을 가지게 된 계기로 남을 듯하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고하는 린이한의 유서였다.

 

빨간 글씨 : 왜 할 줄 모른다고 했을까? 왜 싫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안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야 이 모든 일이 그 첫 순간에 결정되었다는 걸 알았다. 억지로 욱여넣은 건 그인데 내가 죄송하다고 말한 그 순간에. (43~44페이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친해지고, 영혼의 단짝이라고까지 불러도 좋을 두 아이, 팡쓰치와 류이팅.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시간으로 쌓은 게 있다. '나'와 '너'를 동일시해도 괜찮을 만큼 하나의 존재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이 둘의 관계나 마음이 여린 시절 뭘 모르고 가지는 절친의 과장된 의미인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이 아이들의 관계 이상의 성장 모습이 보이면서 더 큰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낯선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이팅은 쓰치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쓰치의 이야기가 비밀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쓰치의 일기장으로 드러나면서, 이팅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지 생각한다.

 

이 소설은 쓰치의 이야기지만 이팅의 시선으로 읽어가게 되러데, 그게 독자의 시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듯하다. 쓰치의 일기를 발견한 이팅이 쓰치가 겪은 지난 5년의 세월을 재구성한다. 문학을 배우겠다며 찾아간 리궈화의 집. 쓰치와 이팅은 오직 여학을 배우려는 목적이었다. 문학 강사 리궈화를 믿고 학업을 목적으로 찾아간 곳에서 쓰치는 되돌릴 수 없는 성폭력의 시작을 경험한다. 리궈화는 처음부터 쓰치를 강간할 목적으로 손을 내민 거였다. 선생이란 이름을 더럽히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어린 소녀들의 순진한 마음을 세뇌하듯 문학의 문장들로 사랑을 착각하게 하는 위선자였다. 리궈화가 쓰치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면서 길들이는 동안, 쓰치는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선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생을 사랑하면서 이 모든 행위가 사랑이라고 여겨야만 했던 거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 관계의 비정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했다. 리궈화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쓰치 자신이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아듣겠니? (중략) 넌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도 널 좋아해. 우린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았어. 이건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야. (중략) 넌 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니? 너무 많이 와버렸다고 나를 나무라도 좋아. 하지만 내 사랑을 원망할 수 있어? 너 자신의 아름다움을 원망할 수 있어? 게다가 며칠 있으면 스승의 날이잖아. 넌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의 날 선물이야." (90~91페이지)

 

미처 몰랐던 마음을 이제야 듣는 기분에 답답했다. 뭔가 잔뜩 오해해서 서먹해지고 더없이 친했던 사이가 낯설어지는 느낌이 드는 채로 멀어지는 관계가 되는 듯했는데,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면서 생기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일. 쓰치가 겪은 일을 그렇게밖에 바라볼 수 없었다. 내가 다 들어주지 못해서,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죄스러운 마음. 그건 이원 언니가 느끼는 마음과 닮기도 했다. 쓰치의 전화가 그냥 안부 전화만은 아닐 터였는데, 쓰치가 망설이면서도 결국 꺼내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좀 더 파헤쳐볼 생각을 못 했다는 게 아쉽고 안타깝고 미안해진다.

 

그 후 20여 년 동안 리궈화는 자신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걸 알았다.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123페이지)

 

이런 일들은 왜 가능한 것일까.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유교적 환경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점점 더 개인주의로 변하는 세상도 한몫하는 듯하다. 게다가 입시 위주의 교육이 치열한 학습의 장으로 만들면서 리궈화 같이 선생이라는 이름의 대상에게 내 딸을 믿고 맡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기도 했을 테지. 리권화에게 여학생을 조달하던 그 관리자 역시 여자였는데, 나와 직접 관계없는, 나에게 피해가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걸까? 특히 이런 폭력은 쓰치의 이웃 첸이웨이와 결혼한 이원에게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이원은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한여름에도 목이 올라오는 긴 소매 옷을 입고 생활한다. 쓰치와 이원은 서로의 상황을 알아보지만 직접 얘기해본 적은 없다. 쓰치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 하면서도 캐묻지 못하는 이원, 이원이 맞고 사는 걸 알면서도 묻지 못하고 주변에 알리지도 못했던 쓰치. 무엇보다 궁금한 건 쓰치의 부모가 왜 나서지 못했나 하는 거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 딸에게 왜 성교육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고 차단했으며, 딸의 변화와 심리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 우등생, 학업이 최우선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싶었겠지.

 

사실을 말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합의된 성관계가 아니며, 사랑도 아니며,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이팅이 처음 쓰치와 리궈화의 만남을 듣고 불륜이라고 여기면서 더는 듣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열세 살의 어린여자 아이가 무엇이든 터놓고 말할 유일한 상대라고 여긴 절친에게 들은 말은, 더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나를 가장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거로 믿은 대상에게 들려온 말이 부정의 대답이었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 내 딸에게 성교육이 웬 말이냐고 여기는 쓰치의 엄마 역시 쓰치가 인생을 의논할 대상은 되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쓰치는 자기가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게 폭행의 대상을 사랑으로 만드는 거였다. 리궈화와의 시간이, 쓰치가 성폭행을 당하던 상황을 낙원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결국, 낙원으로 만드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쓰치에게는 제일 나은 방법이었으리라.

 

월요일에는 이름이 '희(喜)'자로 시작하는 모텔에 그녀를 데려가고 화요일에는 이름이 '만(滿)'자로 시작하는 모텔에, 수요일에는 '금(金)'자로 시작하는 모텔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희, 만, 금 모두 길한 글자였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녀를 송두리째 사로잡을 수 있었다. 문학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197~198페이지)

 

문학의 생명력은 가장 참담한 상황에서도 언어로 유머를 캐내는 데 있다. 그건 남들에게 떠벌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혼자 느끼는 즐거움이다. 문학은 쉰 살 아내와 열다섯 살 연인에게 똑같은 사랑시를 읊어줄 수 있는 것이다. (289페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에서 쓰치에게 고통을 더하게 해준 것도 문학이고, 쓰치에게 고통을 덜어주던 것도 문학이다. 이원 언니와 같이 문학 작품들을 접하면서 문학의 즐거움이나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을 배우는 게 성장하는 모습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문학에서 발견하는 삶의 아이러니나 지혜 같은 것들. 아마 지금 문학을 읽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문학을 먹이로 리궈화는 손을 뻗었다. 이 어린 소녀에게 달콤한 쿠키를 입에 물려주듯이, 문학으로 미끼를 던지고 문학 작품 속 문장들로 그의 폭력을 사랑이라고 감싸며 들려주었다. 이원 언니 역시 문학 작품을 꾸준히 접했지만, 그 문학이 그녀의 인생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문학 작품은 그녀 옆에서 그냥 존재하고만 있었을 뿐이다. 쓰치와 이원에게 문학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리궈화의 입에서 나오는 포장된 문장들로 쓰치는 무너져갔지만, 한편으로 쓰치는 문학으로 그 위기를 간신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기록. 쓰치는 일기를 썼다. 하루하루, 리궈화의 폭력을 기록했으며 그녀가 겪는 마음을 적었다. 문학이 가지는 힘의 양면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여성들이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경험. 말하기 어려워서 더 쌓이는 비극들. 그 마음들이 문학으로 드러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세상에 문학이 있어서 다행이다. 쓰치에게는 그 문학이 달콤한 사탕발림이 되어 판단 오류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저자에게 문학은 세상의 폭력을 알리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독자에게는 여성들이 겪는 비극을 마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여전히 강단에 서 있는 리궈화 같은 사람에게, 형태가 없는 사회가 하나가 되어 협조하는 가해를 마주함으로써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일을 남겼다. 편 가르기가 아니라, 어느 편에 서는 게 정의를 찾는 방법인지 계속 묻게 할 작품이다. 그 질문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잠재적 쓰치, 이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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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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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끝이 있다. 그게 사랑이라도 말이다. 사랑의 끝에 이별이 있거나, 사랑으로 함께하는 시간 계속되어 영원한 헤어짐으로 끝이 나거나. 사랑의 끝이 힘든 것은 전자이리라. 그것도 헤어짐을 통보 받은 처지에서는 더더욱. 내가 하는 사랑은 최선을 다했어도 이런 결말일 수밖에 없는 건가 하면서, 이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거나. 무엇보다 이별이 이별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일상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로 거듭나기도 한다는 것. 인생의 커다란 한 부분을 실패한 것만 같고, 무엇을 해도 안 될 것 같은 좌절감에 앞으로의 시간을 내다보지 못하고 현재의 절망만을 보는 상태로 계속되기도 하는 일이 무서운 거다. 이별은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포기해도 좋은, 나 자신의 행복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안 될 일이다. 그냥, 또 한 번의 사랑이 끝났을 뿐이다.

 

 

남남으로 돌아가는 게 이별이에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과거의 자신과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습니다. (57페이지)

 

이별은 일방적이어도 괜찮습니다. 상대를 설득시킬 필요가 없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만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남아 있는 정을 싹둑 잘라버리고 비정해질 것. 그게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119페이지)

 

사랑이 끝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의 위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 같은 따뜻한 말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지금의 이별이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말들. 정말 주문처럼 다 잘 될 거라고 믿게 되는 말들. 그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주 많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별 후에 정작 필요한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이별 후 정말 들어야 할 말은 냉정하고 따끔한 말들, 착각 속에 허우적대다가 시간 낭비하지 못하게 현재의 모습을 보게 하는 말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찾게 하는 말들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저자는 이별 후의 다양한 사례들을 들려주면서, 더욱 정확하고 분명한 말로 위로를 전한다.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면서 희망 고문에 시달리는 일, 상대가 건넨 달콤한 이별의 말에 또다시 허무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일, 전 애인의 흔적을 따라다니며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을 그만두어야 함을 경고한다. 동시에 이별의 후유증으로 다음 연애가 두려워 연애 세포를 죽이는 사람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어도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람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일상의 곳곳에서 전 애인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보듬는다. 울고 싶은데 참지 말라고, 좀 외로우면 어떠냐고,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 연애에 그만 끌려다니고 이별을 선택한 건 아주 많이 잘한 일이라고. 당신은 너무 강한 사람이기에 이 모든 일을 건너왔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이별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더욱 현명하게 이별을 대했다면, 우리는 이별을 인생에서 통과하는 하나의 문으로만 여겨도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일어나는 판단과 감정을 다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경험했겠지만(곧 경험하겠지만) 사랑을 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이별은 찾아온다. 그때마다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사랑으로 인한 불행과 이별을 반복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끝난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그건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설픈 배려의 말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상대의 표정에서 읽히는 무관심을 못 본 척하고, 이미 변해버린 사람을 붙잡고 있으려고 애쓰며, 아직은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순간들을 놓기 싫어서. 의미 없는 희망 고문은 상대가 쳐놓은 그물일 때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는 거 아닐까? 그럴 때마다 매번 자기 자신을 볼 타이밍을 놓친다. 끝난 마음에 미련 두지 않고 이별을 인정해야만 하는 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상대를 사랑하느라 나를 보지 못한 시간을 이제라도 되찾아야 한다는 걸 저자의 따끔한 충고로 알게 된다.

 

아무리 듣기 좋게 늘어놓은들 밑바탕에 깔려 있는 뜻은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입니다. 그럴듯한 포자에 마음을 뺏겨 진실을 보지 못해서는 안 돼요.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이별을 택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별이란 가슴 시릴 정도로 냉정한 거예요. 이별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건 훨씬 더 나중의 일입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마음껏 우세요. 그래도 돼요. (73페이지)

 

이별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별을 감당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았는데 판단 오류였던 듯하다. 오히려 '무엇을 하지 않는' 시간이, 지나간 시간과 나의 감정들을 되돌려볼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한다. 그런 시간이 가져야만 이별은 깔끔하게 소화되고,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주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만든다. 그 시작이 또 다른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뻔한 이별의 위로, 흔한 사랑에 관한 조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주제의 글을 처음 접한 것도 아니었고, 생소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사랑에 관한 많은 지침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문장 곳곳에서 발견하는 이성적인 한 마디가 마음에 들어온다. 따끔하게 가슴을 찌르기도 하고, 후회했던 순간을 떠올리게도 한다. 저자가 이야기에 비슷한 경험을 기억해내면서, 그때 미처 대처하지 못한 바보 같은 모습을 저장했다. 온갖 이유로 꺼냈던 말들, 들었던 말들이 결국은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하나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지지부진 끌고 가려고 애썼던 어리석음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품게 한다. 나는, 우리는 행복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 물린 말이지만,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사랑의 가장 중요한 스킬은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아닌 이별하는 법입니다. 이별을 통해 살아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우고 더 나은 사랑을 위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을 제대로 한 사람은 같은 눈물을 두 번 흘리지 않아요. 한번 이별을 결심했다면 확실히 혼자로 돌아오세요. (205페이지)

 

그러니까, 제목 그대로다.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라고 말할 수 있게, 사랑할 때의 나보다 (때로는 불안하게 보이는) 사랑이 끝난 후의 내가 더 성장해 있는, 사랑을 제대로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사랑을 똑바로 보는 눈을 가졌다면, 이별 역시 현명하게 배우고 감당할 수 있다. 나답게 살아가는 법, 슬퍼할 가치도 없는 일에 혼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서툴렀던 사랑과 이별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누군가 이별을 하고 있다면, 사랑이 힘들어서 고민하고 있다면, 다시 시작할 사랑에 두려워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펼쳐 봐도 좋겠다. 사랑과 이별을 넘어서서, 인생 사는 법을 한 수 배우게 하는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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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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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이웃의 목소리는 흥이 나고 커지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로이 하려 하네

심지어 여러 갈래 진 나뭇가지도

양옥집 마당의 묵은 화분도

 

 

아까 낮에 몸을 좀 많이 움직였더니 너무 더워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아, 지금은 봄이잖아?!'

그렇잖아. 아직은 4월이고, 아직은 봄이고, 아직 반팔 보다는 긴팔이 자기 역할을 할 때잖아.

그런데도 한낮의 더위가 움직임을 불편하게 하기 시작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기 싫은 거다. 이 기온이 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아무리 좋아하는 계절이 없어도, 마치 제자리인 것처럼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사계절의 확실한 구분이 좋아서 견딜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구분은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이제는 자기 지분을 넓히는 계절들, 내가 싫어하는 계절들 때문에 우울해진다.

 

문태준 시인의 시 구절처럼,

봄이 오는 소리는 제법 향긋하고 살랑거리고 괜한 흥이 날 것만 같은데.

현실에서 마주하는 봄은 너무 짧아서 아쉬우니 이 짧은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얇은 아우터를 걸어놓고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걸 세탁해서 넣어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한낮에는 제법 흘리는 땀 때문에 샤워까지 할 정도였지만,

답답해서 나가본 이 시간의 바깥 공기는 아직도 겨울과 봄 사이에 걸쳐 있는 것만 같다.

별것도 아닌데,

계절 하나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서 우울해지기도 하고,

다시 내년에 봄이라는 계절은 찾아오겠지만 올해 같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서글퍼지기도 하고,

내년에는 또 이 봄이 얼마나 짧아질까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마음에 서운해지기도 하는, 그런 밤이다.

 

지금 이 봄이, 또 언제 있었냐는 듯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리겠지만,

다시 돌아온 봄은 아직 진행중이어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지만,

그 위로가 언제까지 힘을 발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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