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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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이웃의 목소리는 흥이 나고 커지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로이 하려 하네

심지어 여러 갈래 진 나뭇가지도

양옥집 마당의 묵은 화분도

 

 

아까 낮에 몸을 좀 많이 움직였더니 너무 더워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아, 지금은 봄이잖아?!'

그렇잖아. 아직은 4월이고, 아직은 봄이고, 아직 반팔 보다는 긴팔이 자기 역할을 할 때잖아.

그런데도 한낮의 더위가 움직임을 불편하게 하기 시작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기 싫은 거다. 이 기온이 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아무리 좋아하는 계절이 없어도, 마치 제자리인 것처럼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사계절의 확실한 구분이 좋아서 견딜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구분은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이제는 자기 지분을 넓히는 계절들, 내가 싫어하는 계절들 때문에 우울해진다.

 

문태준 시인의 시 구절처럼,

봄이 오는 소리는 제법 향긋하고 살랑거리고 괜한 흥이 날 것만 같은데.

현실에서 마주하는 봄은 너무 짧아서 아쉬우니 이 짧은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얇은 아우터를 걸어놓고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걸 세탁해서 넣어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한낮에는 제법 흘리는 땀 때문에 샤워까지 할 정도였지만,

답답해서 나가본 이 시간의 바깥 공기는 아직도 겨울과 봄 사이에 걸쳐 있는 것만 같다.

별것도 아닌데,

계절 하나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서 우울해지기도 하고,

다시 내년에 봄이라는 계절은 찾아오겠지만 올해 같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서글퍼지기도 하고,

내년에는 또 이 봄이 얼마나 짧아질까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마음에 서운해지기도 하는, 그런 밤이다.

 

지금 이 봄이, 또 언제 있었냐는 듯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리겠지만,

다시 돌아온 봄은 아직 진행중이어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지만,

그 위로가 언제까지 힘을 발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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