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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평점 :
무엇이든 끝이 있다. 그게 사랑이라도 말이다. 사랑의 끝에 이별이 있거나, 사랑으로 함께하는 시간 계속되어 영원한 헤어짐으로 끝이 나거나. 사랑의 끝이 힘든 것은 전자이리라. 그것도 헤어짐을 통보 받은 처지에서는 더더욱. 내가 하는 사랑은 최선을 다했어도 이런 결말일 수밖에 없는 건가 하면서, 이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거나. 무엇보다 이별이 이별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일상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로 거듭나기도 한다는 것. 인생의 커다란 한 부분을 실패한 것만 같고, 무엇을 해도 안 될 것 같은 좌절감에 앞으로의 시간을 내다보지 못하고 현재의 절망만을 보는 상태로 계속되기도 하는 일이 무서운 거다. 이별은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포기해도 좋은, 나 자신의 행복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안 될 일이다. 그냥, 또 한 번의 사랑이 끝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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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으로 돌아가는 게 이별이에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과거의 자신과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습니다. (57페이지)
이별은 일방적이어도 괜찮습니다. 상대를 설득시킬 필요가 없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만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남아 있는 정을 싹둑 잘라버리고 비정해질 것. 그게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119페이지)
사랑이 끝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의 위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 같은 따뜻한 말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지금의 이별이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말들. 정말 주문처럼 다 잘 될 거라고 믿게 되는 말들. 그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주 많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별 후에 정작 필요한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이별 후 정말 들어야 할 말은 냉정하고 따끔한 말들, 착각 속에 허우적대다가 시간 낭비하지 못하게 현재의 모습을 보게 하는 말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찾게 하는 말들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저자는 이별 후의 다양한 사례들을 들려주면서, 더욱 정확하고 분명한 말로 위로를 전한다.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면서 희망 고문에 시달리는 일, 상대가 건넨 달콤한 이별의 말에 또다시 허무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일, 전 애인의 흔적을 따라다니며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을 그만두어야 함을 경고한다. 동시에 이별의 후유증으로 다음 연애가 두려워 연애 세포를 죽이는 사람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어도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람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일상의 곳곳에서 전 애인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보듬는다. 울고 싶은데 참지 말라고, 좀 외로우면 어떠냐고,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 연애에 그만 끌려다니고 이별을 선택한 건 아주 많이 잘한 일이라고. 당신은 너무 강한 사람이기에 이 모든 일을 건너왔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이별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더욱 현명하게 이별을 대했다면, 우리는 이별을 인생에서 통과하는 하나의 문으로만 여겨도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일어나는 판단과 감정을 다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경험했겠지만(곧 경험하겠지만) 사랑을 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이별은 찾아온다. 그때마다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사랑으로 인한 불행과 이별을 반복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끝난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그건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설픈 배려의 말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상대의 표정에서 읽히는 무관심을 못 본 척하고, 이미 변해버린 사람을 붙잡고 있으려고 애쓰며, 아직은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순간들을 놓기 싫어서. 의미 없는 희망 고문은 상대가 쳐놓은 그물일 때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 만들기도 하는 거 아닐까? 그럴 때마다 매번 자기 자신을 볼 타이밍을 놓친다. 끝난 마음에 미련 두지 않고 이별을 인정해야만 하는 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상대를 사랑하느라 나를 보지 못한 시간을 이제라도 되찾아야 한다는 걸 저자의 따끔한 충고로 알게 된다.
아무리 듣기 좋게 늘어놓은들 밑바탕에 깔려 있는 뜻은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입니다. 그럴듯한 포자에 마음을 뺏겨 진실을 보지 못해서는 안 돼요.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이별을 택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별이란 가슴 시릴 정도로 냉정한 거예요. 이별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건 훨씬 더 나중의 일입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마음껏 우세요. 그래도 돼요. (73페이지)
이별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별을 감당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았는데 판단 오류였던 듯하다. 오히려 '무엇을 하지 않는' 시간이, 지나간 시간과 나의 감정들을 되돌려볼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한다. 그런 시간이 가져야만 이별은 깔끔하게 소화되고,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주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만든다. 그 시작이 또 다른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뻔한 이별의 위로, 흔한 사랑에 관한 조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주제의 글을 처음 접한 것도 아니었고, 생소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사랑에 관한 많은 지침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문장 곳곳에서 발견하는 이성적인 한 마디가 마음에 들어온다. 따끔하게 가슴을 찌르기도 하고, 후회했던 순간을 떠올리게도 한다. 저자가 이야기에 비슷한 경험을 기억해내면서, 그때 미처 대처하지 못한 바보 같은 모습을 저장했다. 온갖 이유로 꺼냈던 말들, 들었던 말들이 결국은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하나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지지부진 끌고 가려고 애썼던 어리석음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품게 한다. 나는, 우리는 행복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 물린 말이지만,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사랑의 가장 중요한 스킬은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아닌 이별하는 법입니다. 이별을 통해 살아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우고 더 나은 사랑을 위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을 제대로 한 사람은 같은 눈물을 두 번 흘리지 않아요. 한번 이별을 결심했다면 확실히 혼자로 돌아오세요. (205페이지)
그러니까, 제목 그대로다.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라고 말할 수 있게, 사랑할 때의 나보다 (때로는 불안하게 보이는) 사랑이 끝난 후의 내가 더 성장해 있는, 사랑을 제대로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사랑을 똑바로 보는 눈을 가졌다면, 이별 역시 현명하게 배우고 감당할 수 있다. 나답게 살아가는 법, 슬퍼할 가치도 없는 일에 혼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서툴렀던 사랑과 이별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누군가 이별을 하고 있다면, 사랑이 힘들어서 고민하고 있다면, 다시 시작할 사랑에 두려워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펼쳐 봐도 좋겠다. 사랑과 이별을 넘어서서, 인생 사는 법을 한 수 배우게 하는 책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