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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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써진 추리소설을 만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데, 작가의 전작 장편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펼쳐보게 되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작가 이름과 책 제목만으로 선택했는데, 각 단편의 내용은 부부가 등장하여 둘 중 한 사람이 죽는다는 거다. 물론 죽음의 순간이나 방식, 죽이고 싶은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완전 범죄를 꿈꾸며 죽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바람난 남편을 벌주고 싶었다. 기억이 자꾸 왔다 갔다 하는 여자는 자신의 계획을 잊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메모까지 해가면서 완벽한 살인을 꿈꿨다. 물론 그 완벽에는 들키지 않은 완전 범죄도 포함이다. 그리고 해냈다.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나이 좀 있는 오래된 부부의 말년을 살인으로 끝내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그 반전까지 듣고 나면 가슴이 서늘해져서 살 수가 없다. 인간의 외로움은, 특히 노년의 외로움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테다. 얼마 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느 남자 배우가 휴대폰의 AI와 연인처럼 대화하는 걸 보고 놀랐었는데, 그게 남의 일이 아니었더라는... 인생의 무게의 부부가 서로 소원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던 건 우연 같은 느낌이었는데,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자 마음먹고 그 내용을 소설로 쓰면서 서로의 계산에 빠져 산다. 아내는 남편의 계획을 알고 자신이 먼저 남편을 죽이고자 했지만, 또 다른 우연은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범죄 없는 마을 살인사건은 작가의 전작 장편소설의 배경과 같다. 이 단편은 배경이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고, 한 사람의 허황된 거짓말과 또 다른 사람의 지독한 폭력이 합해진 결과가 다른 가족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고,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주먹을 휘두르는 인간 같지 않은 짓도 하지 말자는 교훈이다. 진정한 복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진정한 복수이다. 왜 이런 거 종종 보지 않았던가. 한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그 사람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 괴로운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하는 것. 정말 잔인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잔인한 방식으로 아내를 죽이려 했건만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분명한 깨달음은 이거다. 지독하게 복수하고 싶다면, 복수의 대상이 무엇을 아끼고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웃기는 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명언(?)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에도 적용된다는 거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흥청망청 쓰다가, 결국 자기 뒤통수를 치는 격이 되고 말았다. 비리가 너무 많다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비리를 미처 보지 못한 게 함정이 되어,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과욕을 보여준다. 보물찾기의 결말이 아쉬워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조금만 참지, 더 살면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데, 가장 중요한 걸 찾지 못했으니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겠구나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어차피 다 잃었는데 더 잃을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계산기를 빨리 두드렸을까.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싶었던 남자는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죽인 남자의 죽은 남자는 아내의 바람보다 자신이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 아내가 바람피우던 모텔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바람난 아내의 남편이라는 게 이상했는데, 걸어온 발자국 되짚어보니 이보다 더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다.


, 이 작품 개티즌은 요즘 세상의 필독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말하고 다니는지 그대로 증명하는 듯하다. 내가 오만가지 참견의 오지랖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워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알지도 못 하면서,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자기가 목격자인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이들의 경솔함이 무슨 일을 만드는지 직접 눈으로 지켜보라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작품마다 자살 혹은 살인이 등장하는데, 그 죽음의 배경에는 배우자를 향한 지독한 미움이나, 현실의 고달픔이 있다. 이 죽음에 관계된 부부들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그들이 계획한 살인을 실행에 옮긴다. 정말로 살인이 들키지 않아서 완전 범죄가 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른 척하면서 완전 범죄의 완성을 돕기도 한다. 글쎄, 뭐가 잘못된 거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 애매하고 혼란스러운 감정도 만드는 작품들인데, 모든 작품이 보여주는 반전에 종종 소리가 난다. 자기 욕심에 끌어안고 있던 게 죽음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에, 소설이 한층 더 재미있었다. 특히 인생의 무게의 마지막은 정말 기가 막힌다. 죽음의 순간이 슬퍼야 하는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상대를 먼저 죽이려고, 내가 죽기 전에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 앞에서 누가 더 천재적인 두뇌를 휘두르느냐 하는 차이일까. 아니면 그저 타이밍이 그렇게 되어 누군가 먼저 죽은 걸까.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부부는 촌수가 없는 사이인데, 부부 중 한 사람이 타살로 죽게 된다면 가장 먼저 남은 배우자가 용의자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이면서, 어느 순간에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남이 되고야 만다는 의미일까 싶기도 하고. 부부 사이의 갈등은 없을 수가 없고, 그 때문에 감정싸움에서부터 신체적 폭력, 살인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부부 갈등의 원인도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이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 폭력, 감정이 식어버린 권태, 외도 등 범죄 동기가 색다른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되나 보다. 우리 생활에서, 주변에서 쉽게 보는 이런 일들이 폭력을 넘어서서 살인까지도 만들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일상 미스터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주인공이 부부이다 보니, 부부란 뭘까 싶다.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품고 사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아직은 이 책 속의 부부들이 보여준 미움보다, 애정을 갖고 사는 부부들이 더 많을 거로 믿으며 살아가야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완전부부범죄 #황세연 #교보문고 #소설 #한국소설 #추리소설 #단편집

#문학 #미스터리소설 #완전범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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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것들의 기록 - 유품정리사가 써내려간 떠난 이들의 뒷모습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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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두 번째 만난다. 앞서 출간된 책을 읽으면서, 어느 매체에서 봤던 죽은 지 한참 지난 후에 발견된 백골 시신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일이 쉬울 거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마음까지 어려워질 거란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남겨진 사람이 당연히 하는 거로 여겼던 마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종종 나의 마지막 순간을 걱정하는 걸 보면, 나를 보내주는 이가 있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나 혼자 지내다가 나 혼자 떠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마저도 누군가 확인해 주지 못한다면 죽음 이후의 모습마저 고독하고 쓸쓸함으로 각인될 것 같아서, 혼자 있다가 혼자 떠났다는 것 자체가 죽기 전까지 외로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여서 우울해진다.


정말 많이 바쁜 상황이 아니라면, 하루에 한 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곤 한다. 장난처럼, 엄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는 전화라고 말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혼자 계신 엄마가 넘어져서 움직이지 못 하는 상황에라도 처했을까 봐, 저자가 방문하는 작업 현장처럼 엄마가 돌아가시고 며칠이나 지나서 발견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특히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지는 요즘에 엄마를 걱정하는 시간은 배가 된다.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손을 다쳐서 입원했고 퇴원하고서도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해 불편한 것뿐인데, 곧 다른 부분을 치료받으러 다시 입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별일 없는지 묻는 안부는 끝이 나지 않겠지. 나이를 먹고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몸은 어쩔 수 없지만, 육체의 질병보다 아픈 상황에서의 마음마저 불안해진다면 몸의 회복은 더디거나 아예 낫지 않을 거다.


25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는 저자는, 매번 유품을 정리할 때마다 전해지는 고인의 외로웠을 시간에 안타까워하고 먹먹함을 느낀다. 누군가의 관심이 한 사람의 죽음을 막는다거나 외롭지 않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덜 외롭게 떠나보낼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떠난 이들이 남겨놓은 것들, 남겨진 공간의 흔적들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온 집안에 쓰레기와 물건으로 가득 차 집 앞 도로에서 잠을 잤다는 노인의 외로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자기 인생 책임지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었으나, 번번이 좌절하는 날들에 세상을 놓아버린 청년. 자기 인생 찾겠다며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했던 아내가 스스로 놓아버린 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남편은 알지 못했다. 매일 짐을 싸서 이삿짐 트럭을 부르고, 그때마다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출발하지 못하는 이삿짐 차를 붙잡고 있는 치매 노인의 안타까운 사연은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진다.


희로애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우는 작업은 참으로 공허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고독사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고독사는 다른 말로 절망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망과 좌절 때문에 조금씩 생활이 무너지고 관계도 끊겨 홀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 (144)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고독사의 여러 현장과 그들의 사연은 이 시대의 어둠인 듯하다. 그들이 삶의 애착을 가지는 동안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애쓰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내일을 기다릴 수 없고, 더는 붙잡고 있을 여력도 없을 때 놓아버리는 생의 쓸쓸함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그래서 어떤 의미로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건가 보다.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남편이 있을 때는 시간이 걸려도 식사준비를 하는 편인데, 나 역시도 혼자 있을 때는 매 끼니를 챙기는 게 아니라 그저 배가 고프다는 걸 느낄 때 밥을 먹는다. 그마저도 제대로 차려놓고 먹지는 않는다. 귀찮으니까. 간절한 허기를 채울 정도면,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입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는다. 그러니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거다. 누군가를 챙겨야 하거나 꼭 시간 맞춰 식사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먹는 일조차 번거로울 뿐이다. 혼자서 먹는 밥이 맛있기도 어려울 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저 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는 표현을 종종 하시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외로움의 자리가 커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거다. 바빠도 일주일에 한두 번 시간 내서 엄마를 보러 가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매일 전화하는 걸 챙기는 것도 잊을 때가 있는데, 직접 가서 보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수시로 찾아드는 외로움과 서글픔을 조금 덜어낼 수만 있다면, 외로움에 치여 혼자 떠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의 이 번거롭고 귀찮음을 이기는 듯하다.


희망은 자가발전이 잘 안된다. 혼자서 아무리 기를 써봐야 쳇바퀴 위를 구르는 것 같아 지치기 십상이다.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꿈꿀 때 희망이 생겨난다. (178)


저자가 떠난 이들의 사연으로 전하고 싶은 것도 비슷하다.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여력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이지만, 그 사이에 생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이들이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분명히 있다고. 그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을 지우는 일이지만,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고독사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많아지고 국가의 정책도 마련되어 있다는데, 이상하게 고독사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쉽게 낙관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가 정리하려고 방문한 현장의 상황과 다르게, 단정하게 이별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의 바람일 테다. 그러려면 자기 삶을 스스로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으로 안전망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더 다정해지고,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길 바랄 수 있지 않을까.



#남겨진것들의기록 #김새별 #전애원 #유품정리사가써내려간떠난이들의뒷모습

##문학 #에세이 #책추천 #관심 #돌봄 #고독사 #절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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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할로 베리티_M
Ethiopia Halo Beriti


하리오 드립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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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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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늘 두 가지 선택의 순간이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후회할 가능성 역시 늘 존재한다. 첫 번째 순간은 뷰파인더에서 우리를 노리는 사건이 벌어질 때다. 두 번째 순간은 촬영한 필름을 모두 현상 인화하고 효과가 떨어지는 것들을 버려야 할 때다. 그 두 번째 순간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이미 때늦은 순간이다.’ (본문 중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지만, 결국 해야만 하는 것을 선택하고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도 마음 한편에 남은 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도 불안하거나 무책임하게 여기지 않을 시간이 올 거로 믿는다. 어쩌면 그 믿음이 지금을 살게 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벤의 현실도 그러하다. 월가의 잘나가는 변호사이고, 아내와 두 아이도 있는, 다른 이가 보기에는 충분히 행복한 삶인 것 같다. 중산층의 여유로움이 그의 일상을 더 풍족하게 해주는 듯하면서도 사회적 지위도 놓치지 않을 날들을 지내고 있다. 그렇게 만족하면서 살면 좋을 것을, 사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에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사진가로 살아가고 싶은 오랜 염원을 이루지 못 했기에, 변호사의 삶이 그의 현실을 풍요롭게 했을지 몰라도 그의 꿈까지 채워주지는 못 했다. 그의 빈 마음은 돈이 채워주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지만, 언제라도 최상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사진 장비 마련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최신의, 최고급 장비로 그의 암실을 채웠다. 그의 마음을 채워주는 건 그것뿐이었다. 아내와의 불화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살아갔을 것 같은데, 아내와 마음을 나눈 지도 오래다. 아내 역시 작가가 꿈이었지만, 결혼과 육아, 부족한 자기 시간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불만족이 가득하다. 그래서 자기 마음 읽어주지도 못하는 남편 말고, 앞집 남자 게리와 불륜을 저지른다.


렇다면 게리는 어떤 인물인가. 부모가 남겨준 신탁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하는 정도의 경제력인데, 그의 태도는 거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설상가상, 벤이 놓친 사진가의 꿈을 이뤄가는 걸 자랑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가, 벤은 참 꼴도 보기 싫었다. 안 그래도 자랑질에 미쳐 있는 게리가 미웠는데, 불화를 겪는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상태가 게리라니. 어느 날 게리와의 말다툼 끝에 살인을 저지른 벤은,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완전범죄를 기도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바로 앞에서 벌어진 살인을 수습하는 게, 완전 범죄로 만들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가는 게, 가능한 일인가? 도망을 친다고 해도 언제 잡히느냐 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그가 겁도 없이 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수습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듯했다. 그런데 점점 그가 게리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그 자신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보여주는 치밀함은 놀라웠다. 고객의 마음을 돌리고 최선을 선택(변호사가 일을 더욱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선택)하게 만드는 그의 영업 기술이 발휘된 걸까. 의외의 행운까지 그의 편이 되어 주었다. 이제는 그는 게리를 죽인 살인자 벤이 아니라, 그가 혐오했던,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능력 없는 사진가 게리 서머스가 되었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외모까지 바꾸기를 어려울 테다. 벤이 게리가 되어 살아가기 위해 첫 번째로 지켜야 할 원칙은 얼굴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적당한 돈과 머물 곳이 있다면, 배가 고플 때 허기를 채울 정도만 된다는 게리로 살아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렇게 바라던 사진을 찍으면서 지내는 일상, 누구의 눈에 띄지도 않게 그저 조심히, 조용히 살아가면 죽을 때까지 살인자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갈 수도 있다. 나 역시 벤의 남은 삶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게리를 죽인 건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완전 범죄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 그 완전범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될 일이 아닌가. 정처 없이 떠돌면서, 발길 머무는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가면서 살아가는, 게리의 이름을 쓰는 벤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늘 그렇듯, 인생이 어디 내가 바라는 대로만,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미 오래전 출간된 책이라 입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쉽게 읽게 되지 않아서 미뤄두었던 책이다. 페이지 수가 상당한 소설인데, 의외로 잘 읽힌다. 벤의 시선에서 보이는 여러 상황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아내와의 불화에 불편한 집안 공기, 아내가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육아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때 목격한 아내의 불륜, 모른 척하면서 한방 먹이고 싶어서 대면한 아내의 불륜 상대를 죽이게 된 일 등, 어느 것 하나 벤의 마음처럼 되는 게 없어서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가 기어코 벌어지고야 만 살인에, 벤이 앞으로의 항로를 어떻게 설정할지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게 된다. 한동안 숨어 살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살인자로 붙잡힐지도 모르지. 벤이 붙잡히는 게 맞는 건지, 그래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살아가게 내버려둬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겠더라. 내가 심판할 것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와 닿는 벤의 간절함이 읽혔다고 해야 하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은 시간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


남은 건 단 하나, 벤이 그의 살인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알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살인자가 조용히 살아가게 만들지 않는다. 꿈을 이루지 못해서 갈증을 안고 살아가던 삶, 부유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 살인자가 되어 비로소 그 꿈을 이루게 되었던 남자. 하지만 결코 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또다시 불안한 날들을 감당해야 했던 그의 인생이었다. 이제 또 어디로 흘러가려나.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혹시 코미디는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매 순간 이 남자가 잡히지는 않을지 걱정하면서 읽게 되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그때마다 우연처럼 행운(?)이 따른다. 누군가 그의 정체를 알고 신고할 것 같은데, 그의 살인을 혐오하면서 다시는 안 볼 것 같은데,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어떤 손이라도 잡을 수 있다는 듯이 보이는 설정에 웃음이 나는 건 왜인지. 아마도 작가가 벤을 통해 많은 사람의 간절함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벤의 잃어버린 꿈, 가족이 있지만 여전히 느끼는 고독, 현실에 안주하면 편안하긴 하겠지만 가슴 속 간절함까지 놓고 살지 못하고 망설이는 나날들. 어느 곳에서도 완전한 나로 살아갈 수 없고, 내가 바라는 만족을 포기한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에게 소설로 전하는 일탈이라고 해야 하나. 언제나 우리 삶은 현실과 로망 사이에서 왔다가 갔다가, 간절히 바랐다가 포기했다가. 결국 를 잃어버리고 나니 이 실현되는 아이러니를 어쩌면 좋을까.


꿈을 꾸는 삶도 좋지만, 잃어버리고 나서야 아는 주어진 삶의 소중함도 잊지 말기를.


#빅픽처 #더글라스케네디 #도서출판밝은세상 #소설 #외국소설 #문학

##책추천 #소설추천 #완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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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건 아닌 거....지?


이상하게 오탈자는 내 눈에 잘 안 보인다.

몇 번을 확인하고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고 해도, 항상 나중에서야 말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모든 것이 다 끝난 후에... ㅠㅠ


간단하게 리뷰 작성할 때도 그렇지만,


얼마 전에 수업 받는 거 마무리 서류 제출하려고 검토하는데,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하고, 빠진 거 없나 살피고 하면서 빨리 제출하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제출하자마자 퇴짜 맞았다. ㅎㅎㅎ

일단 실습 일지 양식에 어긋나는 게 있어서 퇴짜. 날짜와 내용 안 맞아서 퇴짜.

몇 번을 확인했던 문장들에도 오탈자.


그때는 마지막 제출까지 거의 한 달의 시간이 있어서 차분하게 처음부터 다시 쓰고 고쳤다.

내용 확인, 날짜 확인, 또 확인 또 확인, 오탈자 확인.

최종본 제출하기까지 몇 번을 반복해서 확인했는데, 제출하려니 손이 벌벌 떨린다.

다시 퇴짜 맞을까 봐.


근데 정말, 오탈자는 왜 자기 눈에는 잘 안 보여?











그 유명한 작품, <빅 픽처>를 아직 못 읽어서,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으로, 새로운 표지로 만나보려고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구판으로 입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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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04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

구단씨 2024-04-04 20:14   좋아요 2 | URL
ㅠㅠ
정말 나중에 오탈자 발견하고 나면 당황스러워요.
그리고,
이놈의 맞춤법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