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두 구의 시체, 두 명의 살인자
정해연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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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살인사건을 분명히 보여주고 시작하는 이야기하는 걸 보니, 범인을 찾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살인 그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독자가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사건을 버젓이 드러내놓고 범인까지 알려주었다. 살인의 이유도 분명했다. 현도진은 질척거리는 여자를 이제 떼어내고 싶었고, 그에게 살인은 본능처럼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가 잡힐까? 완전범죄를 만들까? 우연히 일어난 살인이라고 하기에는 즐기는 것으로 보였던 그의 본성은 무엇일까 싶으면서도, 이런 호기심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바삭 깨져버렸다. 또 다른 시체의 등장은 그를 살인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었고, 그의 가까운 곳에 그와 결이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강력 1팀 형사 현도진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출근한다. 강심장이다. 아니, 그에게는 처음부터 심장이 없던 건지도 모른다. 동료가 힘들어하는 현장의 메스꺼움조차 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세상의 잔인함을 보고도 공감하지 못하는 그를,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직장생활의 불편함이 없던 그에게 어느 날부터 출근하기 싫어지는 대상이 생긴다. 강력 1팀 반장 장주호. 현도진을 보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장주호가 현도진을 싫어하는 이유도 분명 존재할 테다. 현도진은 그 이유도 모른 채로 장주호의 시선을 받아내기 바쁘지만, 노련한 그는 그 눈빛조차 연연하지 않는다. 그에게 세상은 어려울 게 없었고, 그의 즐거운 놀이(?)는 완벽했으며, 그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 대한민국 거물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고 강력 1팀이 담당한다. 실종자를 찾아야 했지만, 현도진은 알고 있다. 실종자가 이미 살해되었음을. 우연처럼 그의 눈에 들어온 시신은 그의 본능을 피해 가지 못했다. 끝까지 사건을 추적하는 장주호 반장과 그의 팀원들, 그 중심에서 이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보던 현도진까지. 두 건의 살인사건과 두 명의 사이코패스의 대결은 이제 시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도진과 장주호의 대결 같은 심리전으로 가득하다. 거물의 실종은 곧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이 사건에 연루된 누구라도 범인을 찾는 일이 시급했다. 사건을 추적하는 팀원들과 이 살인을 알지만, 범인을 모르는 현도진 사이의 추적이 얼마나 다를까 기대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장주호가 현도진을 나는 너를 아주 잘 알아.’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궁금했다. 둘 사이에 예전에 나쁜 인연이 있었던가? 아니면 현장 감각이 뛰어난 형사와 엘리트의 모습으로 형사를 표현하는 비주얼의 대결이었나? 외모로 보나 사건 해결 방식으로 보나 두 사람의 결은 너무 달랐다. 그런데도 너무 닮은 듯한 이 느낌은 뭔가 싶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태연한 현도진, 눈앞에 주어진 살인사건 해결에 목숨을 건 듯한 장주호, 두 사람 사이에서 형사의 길을 차분히 밟고 싶었던 새내기 형사 선우신까지.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을 수가, 누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두 명의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것인지 환경에 의해 학습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더 공포가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알고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다 알 수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닐까?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으면서도, 막상 알고 다면 더 큰 두려움에 빠질 것 같기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아는 많은 이가 선하고 인심 좋은 이웃 같은데, 그 내면까지 속속들이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무섭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는 내 앞의 당신이, 혹시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코패스 살인자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한 작가의 작품이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출간되는 이유는 많겠지만, 정해연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이 작품을 이제야 만나게 된 게 아쉬우면서도 다행이구나 싶다. 다른 작품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범인 한 사람을 악인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누구도 악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남겼다. 나는 안 그럴 거라고 누가 감히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하나씩, 차근차근, 자기만의 이익과 본성을 채우느라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은 많아지고 그걸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함께 사는 사회의 기본이겠지만, 그 기본을 깨트리는 것 역시 인간이라는 것을.


그 후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았는데,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말에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문장으로 채운 스릴러의 긴장감을 마무리하듯 영상으로 더해준다고 하니 기다려야겠지. 무엇보다 장주호와 현도진의 캐릭터를 소설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낼 배우로 누가 캐스팅될지 기대된다. 살인을 완성하고 즐기듯 바라보는 그 눈빛, 궁금해 미치겠다.


#더블 #정해연 #해피북스투유 #소설 #한국소설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

##책추천 #책리뷰 #K스릴러 #드라마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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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2-06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해연 작가님 좋아요!! 데뷔작이 다시 나왔더라구요. 저도 보러 갑니다^^

구단씨 2023-02-06 22:23   좋아요 1 | URL
데뷔작이라는 걸 이 책 소개 보고 알았어요. ^^
재밌네요.
 
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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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보안관 피터스 씨가 헤일 씨와 함께 사건의 장소 라이트 씨 집으로 간다. 남편 라이트 씨가 침대에서 죽어 있었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가족인 아내 미니는 남편의 죽음을 몰랐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아내는 당연하게(?) 용의자가 된다. 그럴 수밖에. 밖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고, 그 집에는 부부만이 살고 있었으니까.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와 헤일 씨는 사건 현장에서 단 하나의 단서라도 놓칠까 봐 구석구석 파헤친다. 보안관 피터스가 혹시라도 그 현장에서 뭐라도 발견할까 싶어 아내까지 동반하고, 혼자서 그 집을 둘러볼 용기가 없던 피터스 부인을 위해 이 사건의 신고자인 헤일의 아내 마사까지 함께 현장에 모이게 된 상황이다.


라이트 씨 집은 평소에 봐도 음침해 보였는데, 이곳에서 살인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하니 더 어둡고 음산한 곳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라이트 씨가 자던 침대에서 밧줄에 목이 감긴 채로 죽었다고 하니, 이 기괴한 장면을 그리는 집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시신 발견자가 봤을 때도, 담당 검사가 봤을 때도 아내가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데, 아직 완벽한 범인이 될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답답하기도 할 테다. 그런데도 그 집에 모인 남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살인의 증거를 쫓으며 용의자인 미니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여자들을 비웃는다.


발견 당시의 모습을 설명하던 헤일 씨의 말을 끝으로 남자들은 사건의 단서를 찾아다니고, 마사와 피터스 부인은 사건 용의자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 주방을 서성인다. 병에 담기다 말고 쏟아져 내린 설탕 가루, 선반에 놓여있다가 추위에 깨져버린 잼 병. 뭔가 다급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란 예상이 되는 주방의 장면에 여자들은 생각한다.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에 잼을 만드느라 애썼을 텐데 이렇게 깨져버려서 속이 상했을 미니의 마음을, 정리하다 말고 쏟아버린 설탕을 허무하게 바라봤을 미니의 눈빛을. 또 한 번 남자들은 비웃는다. 이 상황에서 잼이 담긴 병이 깨져버린 거나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글쎄, 같은 공간에 같은 이유로 모인 사람들인데, 무엇이 이들의 생각을 이렇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일까.


수건이 더럽네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주부는 아니었던가 봐요. 부인들이 봐도 그렇지 않나요?” (55페이지)


보안관은 식탁 앞으로 다가와 헨더슨 검사에게 물었다.

자네 우리 안사람이 뭘 챙겼는지 확인해 보겠나?”

헨더슨 검사는 피터스 부인이 챙겨놓은 앞치마를 집어 들고는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부인들께서 뭐 크게 중요한 물건을 고르셨을 것 같지는 않군요.” (131페이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집에서 마음을 누르며 살아왔을 미니의 시간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 남편의 무심함은 하늘을 찔렀고,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녀의 시선을 붙잡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정말 남편을 죽였을까? 만약 그녀가 정말 범인이라면 왜 그랬을까? 사실은 그 이유가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살인사건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을 테다. 다만, 어떤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남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생각할 필요가 없던 마음이 여기에 있다. 두 여자는 미니의 주방을 살펴보면서, 남편의 사망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던 의자를 보면서 미니의 삶을 반추한다. 마사는 알고 있었다. 결혼 전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얼마나 빛나고 밝았는지를. 그녀의 주방 한쪽에서 문이 부서진 새장을 보고 미니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새장의 부서진 문은 지금 미니가 뚫고 나갔던 거라고. 그렇게밖에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던 그녀의 삶이 이제야 비로소 보였다고 말이다. 평소 그 집을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현관문을 두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마사. 노래하는 새처럼 맑을 목소리를 뽐냈던 미니의 지난날을 이제야 기억해낸다. 맞아,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녀의 지난날은 그렇게 빛이 났었지.


한 남자가 죽었고, 남자의 아내가 용의자로 몰린 실제 일어난 사건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시 기자였는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저자가 이 사건에서 보고 싶었던 건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범인으로 몰린 아내가 어쩌다가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여자의 인생이 남자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대 안에서도 인간의 삶이 있고, 한 개인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렇기에 두 여자가 미니의 주방에서 주고받았던 눈빛, 섣부른 손놀림을 이해하게 된다. 엉망이 되었던 조각의 마감 처리, 바구니 아래에 깊게 숨겨놓았던 작은 상자의 존재를 그녀들이 다시 감출 수밖에 없던 마음을 이렇게 읽는다. 미니는 남자들이 찾아낸 어떤 증거 하나로 살인자로 낙인찍힐지 몰라도, 그녀에게 마음을 보내는 어떤 여자들의 연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저자가 실제 사건으로 이렇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도 비슷하리라 믿는다.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이 있을 테고, 그들에게도 전해지는 이 공감은 구원이 되리라고.


공감이나 이해 같은 말이 얼마나 힘이 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며칠 전에 봤던 어느 방송에서, 심한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방송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어서 살아갈 힘을 냈다는 그의 모습에, 누군가는 정말 힘이 된다면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단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용기를 얻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얼마만큼의 위로로 다가오는지 안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그 마음만큼은 크기를 따질 수 없는 연대의 힘을 가진다. 이 소설을 읽고, 미니의 삶과 두 여자의 공감을 우리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의연대 #수전글래스펠 #내로라 #연대하는마음 #여성의연대 #공감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문학 #책리뷰 #해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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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룡소의 그림동화 314
리타 시네이루 지음, 라이아 도메네크 그림, 김현균 옮김 / 비룡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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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힘들 때 읽어서 그런가. 아빠가 아이에게 전하는 작은 희망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게 들려온다. 그래, 괜찮겠지. 좋아질 거야. 어떤 주문은 희망이 되기도 하면서, 살아갈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꿈을 꾼다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그 꿈이 만드는 희망이 우리를 어떻게 살아가게 하는지 보고 있노라면, 정말 나를 부르는 한줄기 마법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것 같다. 저자는 2015년 시리아 내전 중 튀르키예 해변에 떠밀려 온 아이 알란의 기사를 보고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4년을 걸쳐 우리 앞에 나타난 이 책은 지금도 계속되는 난민의 상처와 아픔을 들려주면서,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이 기막힌 일에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의 이야기로 남겨두기 위한 저자의 노력에 독자의 눈길은 깊어진다. 우리는 인간이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 남겨져 있고, 꿈을 꾸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끝나지 않는 전쟁은 총성 소리를 불러온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아빠를 아이와 집을 떠나기로 하는데, 이 탈출이 쉽지가 않다. 폭설에 몸이 빠져들어도,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린 날에도 이 여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 길 끝에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경계와 장벽이 없는 곳. 괜찮겠지? 이제 그들은 여기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겠지? 하지만 난민이라는 이름의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들을 맞이하는 건 천막이 즐비한 난민수용소였다. 거기에 머물면서 그들을 받아줄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었는데, 아빠는 아이에게 희망을 놓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지금 절망의 순간을 걷고 있는데도, 이 비극의 순간을 재미있게 느끼게 해주려고 애쓴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 그림책 속의 아빠처럼 말할 수 있을까? 이 탈출을 숨바꼭질이라고 말하며 가방 안에 잘 숨어있으면 된다고, 그들을 막아선 군인이 두려울 만도 한데 이 완벽한 나라에 초대장을 두고 와서 들어갈 수 없었다고, 아무도 그들을 맞아주지 않아서 절망한 순간에도 그들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아빠. 읽으면서 혹시 이 아이가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이 아니라 정말 몰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품어본다. 아직은, 이 아이에게 이 지독한 세상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겁이 난다. 아니라고, 아이 아빠의 말처럼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라고 말하고만 싶다. 기다리는 일이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 현실을 모르고 있다면 꿈과 희망을 품으며 이 순간을 견딜 수는 있을 테니까.



난민 생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머무는 곳이니, 무얼 하나 하려고 해도 긴 줄에 서야 했다. 이를 한번 닦는데도 긴 줄을 서야 했고, 한번 씻으러 갔다가 오는데 발에 진흙을 다시 묻혀야 했다. 다시 또 긴 줄을 서서 밥을 먹어야 했고, 혹시나 딱딱한 빵 한 조각이라도 떨어트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학교도 너무 작아 번갈아 가면서 가야 했다. 이런 일상이 정말 우리의 삶이란 말인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이탈리안 피자와 파스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가 있다는 핀란드를 꿈꾼다. 날마다 학교에 가서 진짜 공부를 하고, 최고의 멋진 장난감이 있는 덴마크 장난감 공장을 상상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은 그곳에 있단다.


아이가 몰랐으면 했지만, 알고 있다. 서야 할 줄이 많으니 제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점심때가 되어야 아침을 먹고, 아파서 기다리는 사이에 병은 낫는 일을 경험하면서, 이곳에서 벗어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는 사이 알게 되는 건 더 많아진다. 그들이 받아야 할 도장의 색깔이 바뀌기를 바라면서 그 공간의 삶을 버틴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있다. 떨어진 빵을 재빠르게 주우면서도 그곳에 함께 있는 쥐를 위한 빵조각을 살짝 내려놓는다. 이 마음은 뭘까 싶을 때 아빠가 아이에게 건네던 말들이 생각났다. 전쟁으로 그들이 떠나오던 순간부터 난민촌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힘들고 불편했던 모든 장면에서 아빠는 아이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말만 들려준다. 어떻게 그 순간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읽는 내내 맴돌았는데, 그러지 않고서는 이 아이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실은 난민촌에서 언제 벗어날지 모를 절망의 순간뿐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난민이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난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오랜 시간 자료를 찾고 기록했다는 저자의 노력이 그대로 묻어나는 책이다. 그림 분위기는 물론이고, 문장 하나하나가 이들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때로는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들려준다. 언젠가 우리는 경계가 없고 장벽이 없는 곳에서, 마음껏 배우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읽는 우리도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들이 바라는 그곳으로 갈 수 있기를, 상상하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말이다. 전쟁과 아름을 우리 사는 동안에 더는 느끼지 않는 세상을 보고 싶다.


#집으로돌아가는길 #리타시네이루 #비룡소 #그림책 #난민 #어른이함께읽는책

#자유 #상상 #희망 ###책추천 #책리뷰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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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은 아내가 겁이 나는지 같은 여자 한 명이 함께해주기를바라고 있다며 서글서글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마사헤일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당장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게 된것이다.
"마사! 서둘러!"
루이스 헤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추운 데서 기다리시잖아!"
서둘러 현관을 열고 나가니, 앞자리에 남자 셋과 뒷자리에여자 하나를 태운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뒷자리에 올라탄 마사 헤일은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옷깃을 여민 뒤 옆자리의 피터스 부인을 바라보았다. 일년전 지역사회의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보안관의 아내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말고는 생각나는 특징이 없었다. 피터스 부인은 키가작고 왜소하며 목소리도 흐릿했다. 피터스 보안관 이전에 근무하던 고먼 보안관의 부인은 목소리부터 우렁차고 힘이 있어서그 말이 곧 법이고 규칙인 것처럼 느껴졌었기에 더욱 비교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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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가만 보이 걱정이라. 이래서,

며느라, 니가 와 얼굴이 와 철색(鐵色)이 지노?” 이러카이,

, 아버지예 제가 방구를 몬 뀌서 그랬읍니더.” 카더란다.

, , 방구로 뀌라. () 방구로 안 뀌고 살 수가 있나? 방구로 뀌라.”


새이(올케)는 저 모퉁이 기둥 잡고, 아범은 앞 기둥 잡으소.” 이래 카거든. 이놈우 방구가 얼매나 크게 낄란지 그러 카이께네, 그 시아버지 앞 기둥 잡고, 신랑캉 모퉁이 기둥 잡고 있으니께, 방구를 한 대 펑 터자 놓이께, 집이 꺼떡하게 넘어가 뿌거든.


또 이쪽으로 끼 노이까 이쪽으로 집이 꺼떡한다 말이지. 집을 이리 자빠치다가 저리 자빠치다가 그마 집이 다 찌그저 가거든. 어떻기(어찌나) 보골이 나는지 에레이 빌어무을 거 이년을 데려주야 되겠다.” 인자 데리다 주러 간다.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중 방귀쟁이 며느리 27~28페이지)

 

시집온 며느리가 처음과 다르게 얼굴색이 썩어가고 있더라. 이를 이상하게 본 시아버지가 이유를 물었다. 며느리가 방귀를 뀌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에, 시아버지 너그럽게 방귀를 뀌라고 한다. 방귀, 그게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얼굴색까지 변하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며느리 방귀 뀔 준비를 하며, 시집 식구들 모두 모아 집안의 기둥 하나씩 잡고 있으라고 하니, 며느리 방귀 우습게 알고 이게 무슨 준비인가 싶었겠지. , 이제 카운트다운~ 빵빠라바라빵! 며느리의 방귀 한방에 집이 이쪽으로 쓰러지고, 다시 또 한방에 저쪽으로 쓰러지고. 오메, 세상 이런 방귀는 또 처음 보네. 뭔 놈의 방귀가 집을 무너뜨릴 정도의 폭탄급이란 말이냐. 안 되겠다. 이 며느리 방귀 한 번만 더 뀌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네. 같이 못 살겠으니 친정으로 데려야 주야 쓰겠네.


속이 다 시원해서 박장대소하며 읽었다. 방귀, 이게 뭐라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놈의 방귀를 박살을 내 버리자고 생각했는데, 이 며느리 이야기 읽으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더란 말이다.


방귀가 마려워.”

화장실로 가.”

소리가 들릴 거잖아.”

그래도 화장실로 가서 해결해.”

싫은데. 나는 그냥 여기서 뀌고 싶은데?”

그건 안돼. 우리 사이에 방귀는 아직인 것 같아.”


신경 쓰는 일 생기면 변비에 시달리고, 언제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다. 그러다 가끔 터지는 방귀가 내 속을 좀 시원하게 해주곤 했다. 결혼하고 나니 남편 앞에서 방귀를 뀌지 못하겠는 거라. 남편은 처음부터 방귀는 트지 말자고 했고, 나는 그럼 방귀가 마려우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화장실이나 방으로 들어가서 뀌고 나오라고 하더라. 그럼 냄새는 어쩔 거냐고 했더니, 그것도 같이 해결하고 나오라나? 어쩌란 말이여. 방귀를 뀌란 말이여 뀌지 말란 말이여.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직도 나는 방귀를 편하게 못 뀌고 있는데, 오래된 이야기 속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얼마나 방귀를 참으면 얼굴색이 철색이 되고, 참았던 방귀를 얼마나 시원하게 뀌었으면 집이 쓰러질 정도냔 말이다. 이 부분을 남편한테 읽어주면서, 방귀를 참으면 이렇게 된다고 했다. 내가 방귀를 참다가 뀌면 우리 집이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고. 그래도 싫단다. 방귀 트는 사이는 되지 말자고. 마침 그때 TV에서 방송인 박수홍 부부가 나왔는데, 박수홍은 아직도 다른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지 않는다고 했고, 아내는 진즉에 방귀를 텄다고 한다. 그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 남편과 이 장면을 같이 보면서, 저렇게 방귀를 귀엽게 트는데 너무 즐겁지 않냐고 했더니 알아서 하라고 하대. 이거 방귀 터도 괜찮다는 말, 맞지?


우리가 흔히 알던 옛이야기가 여성 서사 중심으로 들려오는 책이다. 전래동화 구술 채록본의 일부로 구성된 책인데, 입말 그대로 들려주다 보니 문장을 한참 읽어야 무슨 말인지 들린다. 그래도 끝까지 읽게 되는 건 그동안 우리가 알던 동화의 결말이 아니어서 재밌다는 거,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동화여서 해석도 다르게 들려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 흔한 예가 <선녀와 나무꾼>이 아니었던가. 이건 매체에서도 흔하게 들었던 여러 범죄(?)의 증거가 되기도 하니, 아마 지금도 여러 방향에서 새롭게 접근할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한 가지 방향에서만 다가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봐야 할 것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까지 언급한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옛이야기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재구성되며 교훈적인 내용으로 전해진 것에 비해, 구술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좀 더 심오하기도 하다. 여성의 삶을 더 깊게 비추기도 한다. 아마 앞에 몇 페이지만 읽어도 웃고 울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될 거다.


신랑의 상식으로 여자는 원래고기 같은 건 안 좋아하고, 누룽지를 밥보다 더 좋아하며, 식구들의 다음 끼니를 남기려고 대궁밥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가 감히 건장한 남자처럼 먹으려 드니 이거 야단났다. ‘된장녀김치녀처럼 제 몫을 챙기고 입치레를 하면 집안 살림, 나라 살림을 어떻게 불리겠는가. 더구나 밥을 양껏 먹고 기운이 솟구쳐 남자를 업신여기기라도 하면 더 큰 낭패가 아닌가. 그는 아내의 숨은 욕망을 들춰내고 뱃구레를 시험하기로 한다.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중 밥 많이 먹는 색시 51~52페이지)


<밥 많이 먹는 색시>는 진짜 웃기는데, 눈물이 나게 서글프다. 밥 많이 먹는 게 죄가 되나? 결혼한다는 게 같이 살아갈 배우자를 곁에 두는 게 아니라, 무임금 노동자 한 명 들이는 일인가? 남편의 함정에 걸려들어 남편이 권하는 대로 밥을 양껏 먹었고, 남편은 분을 못 이겨 아내를 때려죽인다. 곧 남편은 첫 마누라와 달리 숨 쉴 만큼만 먹으면서 부모 조상 잘 섬기고, 집안 살림 일구고, 남편 기죽지 않도록 잠자리 해 주고, 아들을 쑥쑥 낳아 줄 여자를 사방으로 구하러 다닌다. 그러다가 바라던 대로 입이 벌레 주둥이만큼 작은 여자를 찾아내는데... 이번에는 남편 입맛에 맞는 아내를 구했을까? 깔깔깔깔~ 나는 이 부분부터 뭔가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 번째 아내가 결코 남편이 찾는 이상형(?)이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으면서 읽었잖아. 남편이 뭔가 의심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그 의심을 밝혀줄 증거가 절대 드러나면 안 된다고 빌고 또 빌었단 말이야. 남편은 아내가 적게 먹는다는 걸 알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상하다. 아내는 분명 적게 먹는데, 이상하게 쌀이 줄어들어. 막 줄어들고 있다는 거지. 뭘까. 그러다가, 몰래 아내를 훔쳐보다가 놀랐잖아. 이럴 수가!


쌤통이다. 아무리 여러 번 결혼하고 여러 번 아내를 쫓아내고 죽인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여자는 찾지 못할 거라는 저주를 걸면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랐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여러 버전이 있지만, 아내와 화해하거나 행복하게 지냈다는 결말은 못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입맛은 완벽하게 찾아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한 채로 살았을 테다.


우렁이 각시 이야기도 그렇고, 대부분 우리가 들어왔던 동화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이었다. 대부분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을 등장시키거나, 한없이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나 아들을 그려놓는다. 실제 이야기 속의 여성은 자기 욕망과 존재감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부잣집의 고명딸은 음식 위에 장식이 되는 고명이 아니었다. 동물의 간을 빼먹으며 자기 원하는 것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족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폭력이 용서되는 것도 아니며, 아무런 사과 없이 다가와서도 안 된다. 가족 안의 남성이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아까워하는 당신은 가족도 아버지도 아니다. 두 손을 잃은 채로 쫓겨난 색시는 우물가에 모인 여성들에게 이해받고 도움받았다. 여성이 세상을 대하기 위해서는 연대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던가. 이야기 속 악역 전담이었던 계모나 시어머니도 재해석되어 어머니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할 때인 듯하다. 가부장제의 굴레에 갇힌 채로 인간 대접받지 못했으나, 분노와 서러움을 담은 여성의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있다.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잘 살아갈 세상에 관심 두어야 할 이야기라는 거다.


내용도 주제도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이 작은 책에 담겨있다. 처음에는 입말이 눈에 익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읽다 보니 이제는 이 문장들이 오디오북처럼 들린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로 라디오 드라마 듣는 기분? 아니면 조선 후기 실력 좋은 전기수가 다녀갔거나. ^^


어쨌든, 이 책이 참으로 고맙네. 나는 이제 시원하게 방귀를 뀔 거다. ! 빵빵!! 빵빵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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