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가 가만 보이 걱정이라. 이래서,
“며느라, 니가 와 얼굴이 와 철색(鐵色)이 지노?” 이러카이,
“예, 아버지예 제가 방구를 몬 뀌서 그랬읍니더.” 카더란다.
“야, 야, 방구로 뀌라. (…) 방구로 안 뀌고 살 수가 있나? 방구로 뀌라.”
“새이(올케)는 저 모퉁이 기둥 잡고, 아범은 앞 기둥 잡으소.” 이래 카거든. 이놈우 방구가 얼매나 크게 낄란지 그러 카이께네, 그 시아버지 앞 기둥 잡고, 신랑캉 모퉁이 기둥 잡고 있으니께, 방구를 한 대 펑 터자 놓이께, 집이 꺼떡하게 넘어가 뿌거든.
또 이쪽으로 끼 노이까 이쪽으로 집이 꺼떡한다 말이지. 집을 이리 자빠치다가 저리 자빠치다가 그마 집이 다 찌그저 가거든. 어떻기(어찌나) 보골이 나는지 “에레이 빌어무을 거 이년을 데려주야 되겠다.” 인자 데리다 주러 간다.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중 방귀쟁이 며느리 27~28페이지)
시집온 며느리가 처음과 다르게 얼굴색이 썩어가고 있더라. 이를 이상하게 본 시아버지가 이유를 물었다. 며느리가 방귀를 뀌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에, 시아버지 너그럽게 방귀를 뀌라고 한다. 방귀, 그게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얼굴색까지 변하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며느리 방귀 뀔 준비를 하며, 시집 식구들 모두 모아 집안의 기둥 하나씩 잡고 있으라고 하니, 며느리 방귀 우습게 알고 이게 무슨 준비인가 싶었겠지. 자, 이제 카운트다운~ 빵빠라바라빵! 며느리의 방귀 한방에 집이 이쪽으로 쓰러지고, 다시 또 한방에 저쪽으로 쓰러지고. 오메, 세상 이런 방귀는 또 처음 보네. 뭔 놈의 방귀가 집을 무너뜨릴 정도의 폭탄급이란 말이냐. 안 되겠다. 이 며느리 방귀 한 번만 더 뀌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네. 같이 못 살겠으니 친정으로 데려야 주야 쓰겠네.
속이 다 시원해서 박장대소하며 읽었다. 방귀, 이게 뭐라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놈의 방귀를 박살을 내 버리자고 생각했는데, 이 며느리 이야기 읽으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더란 말이다.
“방귀가 마려워.”
“화장실로 가.”
“소리가 들릴 거잖아.”
“그래도 화장실로 가서 해결해.”
“싫은데. 나는 그냥 여기서 뀌고 싶은데?”
“그건 안돼. 우리 사이에 방귀는 아직인 것 같아.”
신경 쓰는 일 생기면 변비에 시달리고, 언제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다. 그러다 가끔 터지는 방귀가 내 속을 좀 시원하게 해주곤 했다. 결혼하고 나니 남편 앞에서 방귀를 뀌지 못하겠는 거라. 남편은 처음부터 방귀는 트지 말자고 했고, 나는 그럼 방귀가 마려우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화장실이나 방으로 들어가서 뀌고 나오라고 하더라. 그럼 냄새는 어쩔 거냐고 했더니, 그것도 같이 해결하고 나오라나? 어쩌란 말이여. 방귀를 뀌란 말이여 뀌지 말란 말이여.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직도 나는 방귀를 편하게 못 뀌고 있는데, 오래된 이야기 속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얼마나 방귀를 참으면 얼굴색이 철색이 되고, 참았던 방귀를 얼마나 시원하게 뀌었으면 집이 쓰러질 정도냔 말이다. 이 부분을 남편한테 읽어주면서, 방귀를 참으면 이렇게 된다고 했다. 내가 방귀를 참다가 뀌면 우리 집이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고. 그래도 싫단다. 방귀 트는 사이는 되지 말자고. 마침 그때 TV에서 방송인 박수홍 부부가 나왔는데, 박수홍은 아직도 다른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지 않는다고 했고, 아내는 진즉에 방귀를 텄다고 한다. 그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빵! 남편과 이 장면을 같이 보면서, 저렇게 방귀를 귀엽게 트는데 너무 즐겁지 않냐고 했더니 알아서 하라고 하대. 이거 방귀 터도 괜찮다는 말, 맞지?
우리가 흔히 알던 옛이야기가 여성 서사 중심으로 들려오는 책이다. 전래동화 구술 채록본의 일부로 구성된 책인데, 입말 그대로 들려주다 보니 문장을 한참 읽어야 무슨 말인지 들린다. 그래도 끝까지 읽게 되는 건 그동안 우리가 알던 동화의 결말이 아니어서 재밌다는 거,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동화여서 해석도 다르게 들려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 흔한 예가 <선녀와 나무꾼>이 아니었던가. 이건 매체에서도 흔하게 들었던 여러 범죄(?)의 증거가 되기도 하니, 아마 지금도 여러 방향에서 새롭게 접근할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한 가지 방향에서만 다가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봐야 할 것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까지 언급한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옛이야기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재구성되며 교훈적인 내용으로 전해진 것에 비해, 구술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좀 더 심오하기도 하다. 여성의 삶을 더 깊게 비추기도 한다. 아마 앞에 몇 페이지만 읽어도 웃고 울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될 거다.
신랑의 상식으로 여자는 ‘원래’ 고기 같은 건 안 좋아하고, 누룽지를 밥보다 더 좋아하며, 식구들의 다음 끼니를 남기려고 대궁밥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가 감히 건장한 남자처럼 먹으려 드니 이거 야단났다. ‘된장녀’나 ‘김치녀’처럼 제 몫을 챙기고 입치레를 하면 집안 살림, 나라 살림을 어떻게 불리겠는가. 더구나 밥을 양껏 먹고 기운이 솟구쳐 남자를 업신여기기라도 하면 더 큰 낭패가 아닌가. 그는 아내의 숨은 욕망을 들춰내고 뱃구레를 시험하기로 한다.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 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중 밥 많이 먹는 색시 51~52페이지)
<밥 많이 먹는 색시>는 진짜 웃기는데, 눈물이 나게 서글프다. 밥 많이 먹는 게 죄가 되나? 결혼한다는 게 같이 살아갈 배우자를 곁에 두는 게 아니라, 무임금 노동자 한 명 들이는 일인가? 남편의 함정에 걸려들어 남편이 권하는 대로 밥을 양껏 먹었고, 남편은 분을 못 이겨 아내를 때려죽인다. 곧 남편은 ‘첫 마누라와 달리 숨 쉴 만큼만 먹으면서 부모 조상 잘 섬기고, 집안 살림 일구고, 남편 기죽지 않도록 잠자리 해 주고, 아들을 쑥쑥 낳아 줄 여자를 사방으로 구하러 다닌다. 그러다가 바라던 대로 입이 벌레 주둥이만큼 작은 여자를 찾아내’는데... 이번에는 남편 입맛에 맞는 아내를 구했을까? 깔깔깔깔~ 나는 이 부분부터 뭔가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 번째 아내가 결코 남편이 찾는 이상형(?)이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으면서 읽었잖아. 남편이 뭔가 의심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그 의심을 밝혀줄 증거가 절대 드러나면 안 된다고 빌고 또 빌었단 말이야. 남편은 아내가 적게 먹는다는 걸 알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상하다. 아내는 분명 적게 먹는데, 이상하게 쌀이 줄어들어. 막 줄어들고 있다는 거지. 뭘까. 그러다가, 몰래 아내를 훔쳐보다가 놀랐잖아. 이럴 수가!
쌤통이다. 아무리 여러 번 결혼하고 여러 번 아내를 쫓아내고 죽인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여자는 찾지 못할 거라는 저주를 걸면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랐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여러 버전이 있지만, 아내와 화해하거나 행복하게 지냈다는 결말은 못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입맛은 완벽하게 찾아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한 채로 살았을 테다.
우렁이 각시 이야기도 그렇고, 대부분 우리가 들어왔던 동화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이었다. 대부분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을 등장시키거나, 한없이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나 아들을 그려놓는다. 실제 이야기 속의 여성은 자기 욕망과 존재감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부잣집의 고명딸은 음식 위에 장식이 되는 고명이 아니었다. 동물의 간을 빼먹으며 자기 원하는 것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족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폭력이 용서되는 것도 아니며, 아무런 사과 없이 다가와서도 안 된다. 가족 안의 남성이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아까워하는 당신은 가족도 아버지도 아니다. 두 손을 잃은 채로 쫓겨난 색시는 우물가에 모인 여성들에게 이해받고 도움받았다. 여성이 세상을 대하기 위해서는 연대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던가. 이야기 속 악역 전담이었던 계모나 시어머니도 재해석되어 어머니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할 때인 듯하다. 가부장제의 굴레에 갇힌 채로 인간 대접받지 못했으나, 분노와 서러움을 담은 여성의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있다.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잘 살아갈 세상에 관심 두어야 할 이야기라는 거다.
내용도 주제도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이 작은 책에 담겨있다. 처음에는 입말이 눈에 익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읽다 보니 이제는 이 문장들이 오디오북처럼 들린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로 라디오 드라마 듣는 기분? 아니면 조선 후기 실력 좋은 전기수가 다녀갔거나. ^^
어쨌든, 이 책이 참으로 고맙네. 나는 이제 시원하게 방귀를 뀔 거다. 빵! 빵빵!! 빵빵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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