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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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보안관 피터스 씨가 헤일 씨와 함께 사건의 장소 라이트 씨 집으로 간다. 남편 라이트 씨가 침대에서 죽어 있었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가족인 아내 미니는 남편의 죽음을 몰랐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아내는 당연하게(?) 용의자가 된다. 그럴 수밖에. 밖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고, 그 집에는 부부만이 살고 있었으니까.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와 헤일 씨는 사건 현장에서 단 하나의 단서라도 놓칠까 봐 구석구석 파헤친다. 보안관 피터스가 혹시라도 그 현장에서 뭐라도 발견할까 싶어 아내까지 동반하고, 혼자서 그 집을 둘러볼 용기가 없던 피터스 부인을 위해 이 사건의 신고자인 헤일의 아내 마사까지 함께 현장에 모이게 된 상황이다.


라이트 씨 집은 평소에 봐도 음침해 보였는데, 이곳에서 살인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하니 더 어둡고 음산한 곳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라이트 씨가 자던 침대에서 밧줄에 목이 감긴 채로 죽었다고 하니, 이 기괴한 장면을 그리는 집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시신 발견자가 봤을 때도, 담당 검사가 봤을 때도 아내가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데, 아직 완벽한 범인이 될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답답하기도 할 테다. 그런데도 그 집에 모인 남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살인의 증거를 쫓으며 용의자인 미니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여자들을 비웃는다.


발견 당시의 모습을 설명하던 헤일 씨의 말을 끝으로 남자들은 사건의 단서를 찾아다니고, 마사와 피터스 부인은 사건 용의자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 주방을 서성인다. 병에 담기다 말고 쏟아져 내린 설탕 가루, 선반에 놓여있다가 추위에 깨져버린 잼 병. 뭔가 다급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란 예상이 되는 주방의 장면에 여자들은 생각한다.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에 잼을 만드느라 애썼을 텐데 이렇게 깨져버려서 속이 상했을 미니의 마음을, 정리하다 말고 쏟아버린 설탕을 허무하게 바라봤을 미니의 눈빛을. 또 한 번 남자들은 비웃는다. 이 상황에서 잼이 담긴 병이 깨져버린 거나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글쎄, 같은 공간에 같은 이유로 모인 사람들인데, 무엇이 이들의 생각을 이렇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일까.


수건이 더럽네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주부는 아니었던가 봐요. 부인들이 봐도 그렇지 않나요?” (55페이지)


보안관은 식탁 앞으로 다가와 헨더슨 검사에게 물었다.

자네 우리 안사람이 뭘 챙겼는지 확인해 보겠나?”

헨더슨 검사는 피터스 부인이 챙겨놓은 앞치마를 집어 들고는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부인들께서 뭐 크게 중요한 물건을 고르셨을 것 같지는 않군요.” (131페이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집에서 마음을 누르며 살아왔을 미니의 시간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 남편의 무심함은 하늘을 찔렀고,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녀의 시선을 붙잡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정말 남편을 죽였을까? 만약 그녀가 정말 범인이라면 왜 그랬을까? 사실은 그 이유가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살인사건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을 테다. 다만, 어떤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남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생각할 필요가 없던 마음이 여기에 있다. 두 여자는 미니의 주방을 살펴보면서, 남편의 사망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던 의자를 보면서 미니의 삶을 반추한다. 마사는 알고 있었다. 결혼 전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얼마나 빛나고 밝았는지를. 그녀의 주방 한쪽에서 문이 부서진 새장을 보고 미니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새장의 부서진 문은 지금 미니가 뚫고 나갔던 거라고. 그렇게밖에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던 그녀의 삶이 이제야 비로소 보였다고 말이다. 평소 그 집을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현관문을 두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마사. 노래하는 새처럼 맑을 목소리를 뽐냈던 미니의 지난날을 이제야 기억해낸다. 맞아,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녀의 지난날은 그렇게 빛이 났었지.


한 남자가 죽었고, 남자의 아내가 용의자로 몰린 실제 일어난 사건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시 기자였는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저자가 이 사건에서 보고 싶었던 건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범인으로 몰린 아내가 어쩌다가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여자의 인생이 남자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대 안에서도 인간의 삶이 있고, 한 개인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렇기에 두 여자가 미니의 주방에서 주고받았던 눈빛, 섣부른 손놀림을 이해하게 된다. 엉망이 되었던 조각의 마감 처리, 바구니 아래에 깊게 숨겨놓았던 작은 상자의 존재를 그녀들이 다시 감출 수밖에 없던 마음을 이렇게 읽는다. 미니는 남자들이 찾아낸 어떤 증거 하나로 살인자로 낙인찍힐지 몰라도, 그녀에게 마음을 보내는 어떤 여자들의 연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저자가 실제 사건으로 이렇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도 비슷하리라 믿는다.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이 있을 테고, 그들에게도 전해지는 이 공감은 구원이 되리라고.


공감이나 이해 같은 말이 얼마나 힘이 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며칠 전에 봤던 어느 방송에서, 심한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방송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어서 살아갈 힘을 냈다는 그의 모습에, 누군가는 정말 힘이 된다면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단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용기를 얻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얼마만큼의 위로로 다가오는지 안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그 마음만큼은 크기를 따질 수 없는 연대의 힘을 가진다. 이 소설을 읽고, 미니의 삶과 두 여자의 공감을 우리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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