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랜드
서레이 워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올해 들어 펑퍼짐한 원피스를 두 벌 샀다. 교복 이후로 처음 입어보는 치마다. 예쁜 원피스가 너무 입고 싶어서 산 건 아니다. 갑자기 살이 너무 쪄서 가진 옷 중에는 맞는 옷이 없어서였다. 그럼 평소처럼 바지를 사면 될 텐데, 사이즈 올린 바지를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괜히 우울했다. 기존에 입던 옷보다 큰 사이즈의 옷을 사야 한다는 현실이 화가 났고, 어쩌면 곧 다시 살이 빠질지도 모르니까 지금 큰 사이즈 옷을 사는 건 낭비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나는 곧 전의 몸무게로 돌아갈 거야. 지금 큰 사이즈 옷을 사는 건 돈 낭비야. 어차피 곧 입지도 못할 텐데 뭐.' 우울함은 멈추지 않고 반년 넘게 계속됐다. 반년 동안 나는 거의 7kg에 가깝게 살이 쪘고, 큰 사이즈 바지를 입어도 울퉁불퉁 삐져 올라오는 살을 가려주지 못했다. 결국 포댓자루 같은 원피스를 사고야 말았다. 밉게 올라온 살들을 가려줄 게 헐렁한 원피스 말고는 없었다.

 

 

플럼이 길을 걸으면서 자기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불편해하고, 쇼핑몰에 들어가서도 주눅 들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재택근무를 권유받은 상황들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덩치 큰 여자에게 시선이 가던 경험, 필요한 옷이 있어서 들어간 쇼핑몰에서 큰 사이즈를 찾아달라고 말하면서 슬펐던 일이 떠올랐다. 플럼이 키티의 대필 이메일을 작성하는데도 직장인 오스틴 타워가 아니라 집에서 일해도 된다고, 마치 플럼을 배려하듯이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 그녀의 뚱뚱한 몸을 날씬한 여자들이 활보하는 오스틴 타워에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플럼은 버틴다. 그녀에게는 키티의 보조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수술을 예약했다. 곧 그녀의 몸에서 지방이 빠져나가고 그녀는 날씬한 여자가 될 것이다. 수술 후 입을 예쁜 옷들도 미리 사놨다. 그녀의 원래 이름 '얼리샤'가 되돌아 왔을 때 '플럼'을 과감히 버리고 그녀는 원래 찾아야 할 인생으로 돌아갈 거다. 십 대의 고민 상담에 매뉴얼대로 답장을 써서 보내고, 돈도 벌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가득한 오스틴 타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필요했다. 현재의 삶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의 소리 없는 총격이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지만, 이것도 곧 사라질 거니까.

 

 

"모두 다죠!" 나는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얼리샤는 늘 혼자 있을 필요도 없을 테고, 이 아파트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을 필요도 없을 테고, 예쁜 옷을 입고 여행도 하고 마음에 드는 회사에 취직하고 디너파티를 열 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 말은 우습게 들렸겠지만, 예전부터 나는 빈 와인병에 초를 꽂아서 병을 타고 종유석처럼 흘러내린 주황색과 빨간색 촛농을 감상하는 디너파티를 여는 게 소원이었다. (162페이지)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은 뚱뚱한 여자의 다이어트 분투기나 성공기처럼 읽힐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플럼은 이제 살이 빠지고 예뻐질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데이트도 나갈 것이고, 세상 사람들(특히 남자들)의 시선을 받겠지. 칙칙한 방에서 나가기 싫었던 과거의 시간은 다 지우리라. 얼리샤의 인생을 되찾아와 삶이 빛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플럼이 유레일라 뱁티스트 프로그램(다이어트)에 참여하면서 날씬한 몸으로 가는 길을 걷는 동안 속은 것이 드러난다. 해당 프로그램은 살을 빼려는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 유레일라 뱁티스트의 상술이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온갖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되었던 거다. 설상가상 유레일라 뱁티스트의 원조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프로그램은 해체된다. 거기에 유레일라의 딸 베레나는 이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이면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거짓과 위선으로, 돈벌이로만 이용되어 많은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간 사기꾼임을 밝혀낸다. 그런데도 플럼은 포기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은 망했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남은 대책이 있다. 바로 수술. 날짜면 기다리면 된다. 변함없는 바람처럼, 그녀는 날씬해질 것이라고 주문을 걸던 그 순간 플럼의 뒤를 쫓던 리타의 등장은 소설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베레나가 쓴 『다이어트랜드 대모험』은 뱁티스트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사기극인지 드러낸다.

 

 

"우리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잡아갈지 모르는 나쁜 남자를 조심하라는 교육을 받잖아요. 나쁜 남자에게 성폭행과 성추행은 물론이고 심지어 살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죠. 하지만 문제는 좋은 남자와 나쁜 남자를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남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밤늦게 혼자 외출하지 말고, 옷도 이상하게 입지 말고, 모르는 남자와는 말도 섞지 말고, 남자가 관심으로 착각할 만한 행동은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어요. 호신술 수업을 받고, 문을 잠그고, 페퍼 스프레이와 호신용 호루라기를 들고 다니고요. 남자에 대한 두려움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 머릿속 깊이 뿌리박혀 있죠. 그게 일종의 테러리즘 아닌가요?" (344페이지)

 

 

뚱뚱한 여자의 다이어트 분투기에서 사회적인 문제의 큰 그림을 보게 한다. '미투 운동'이나 '탈코르셋'도 떠올리게 된다. 왜 여자는 날씬하고 예뻐야 하는가, 왜 화장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야 하고, 말로의 책 제목처럼 왜 '떡을 치고 싶은 여자'로 보여야 하는가, 왜 성폭력 앞에서 당당한 피해자가 되지 못하는가, 등등. 여성으로 살면서 고통받는 많은 순간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오히려 죽음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성폭력의 가해자가 오히려 당당한 놀이를 즐길 것처럼 말하는 세상을 단죄한다. 여기에서 드러난 인물 제니퍼는 더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죄를 벌할 수 없다는 걸 안다는 듯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성을 무참히 짓밟은 인물들을 한 명씩 처리한다. 조용히 납치해서, 고통의 시간을 겪게 한 후, 사막의 한가운데에 떨어뜨린다. 제니퍼는 누구인가, 또 누가 제니퍼를 돕고 있는 건가, 제니퍼는 정의로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독성을 놓치지 않는 소설이다. 처음에는 뚱뚱한 플럼의 날씬해지려는 계획을 지켜보는 재미로 흥미로웠는데, 중간에 한 명씩 등장하면서 그들과 어떤 조화를 이루며 소설이 흘러갈까 싶은 기대감으로 읽게 된다. 얼굴 반쪽이 화상 흉터로 자리한 새너, 아름다운 여배우에서 비만의 아이 엄마로 변한 말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던 리타, 비밀이 가득해 보였던 줄리아, 칼리오페라는 성을 만들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과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베레나. 다이어트가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플럼, 아니 얼리샤. 그리고 제니퍼. 제니퍼의 등장은 세상 모든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한 일인지, 자존감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보여주면서 소설의 느낌은 점점 무거워진다. 무거워지는 만큼 진지하고, 우리가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그동안 참았던 부조리, 침묵해야만 평화롭다고 믿었던 상황들, 인격적으로 살아가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제니퍼가 쏟아낸 단죄가 옳다고 찬성하는 건 아니다. 어찌 되었든 살인은 처벌받아야 할 범죄니까. 다만, 제니퍼가 그들(?)에게 그렇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를 더 깊게 봐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또 세상에 깊게 새기게 하는 의미들. 여성들이 지금 가진 자기 몸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게 만들고 싶었으리라.

 

 

버스 옆면에 달린 한 쌍의 젖가슴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걸어가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보란듯이 당당하게 턱을 들었다. 막말을 하려면 해보라지. 사람들은 늘 뚱뚱하다는 말로 내게 모욕감을 줬지만 이제 더는 그런 식으로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나는 뚱뚱한 게 맞았고, 내가 그걸 단점으로 보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향해 휘두른 무기는 힘을 잃었다.

나는 내 체구에 대해 미안해하길 거부하며 밝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 원피스를 입자 반항적인 기분이 들었다. 난생처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329~330페이지)

 

 

여전히 나는 살을 빼고 싶다. 뚱뚱해지기 전 입던 옷을 다시 입고 싶고, 다시 큰 사이즈 옷을 사면서 돈 낭비도 하기 싫다. 살이 찌면서 통증이 심해지는 허리와 다리의 고충을 덜어내고 싶다. 살을 빼고 외모에서 오는 만족감보다, 병원 다닐 일이 늘어나는 게 겁나서 예전의 몸무게로 돌아가고 싶다. 플럼이 좋아하는 베이킹을 하면서 마음껏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이해가 가지만, 나는 먹는 것에서 그 정도의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하므로 플럼이 쌓아두고 먹는 일에 많이 공감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순간이 기대된다. 응원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고 싶으니까. 이 소설로 최소 한 가지는 얻었다. 플럼이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 그들의 수군거림이 플럼을 아파트 안으로 가두었던 일을 더는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런 삶의 자세를 나도 몸에 장착하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을.

 

 

"체중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되돌아올 것이었다. 나는 온갖 일들을 겪었음에도 겉으로는 예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변신을 거쳤다." (318~31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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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0-2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사두고 안읽은 책중에 한 권인데 이 리뷰 읽으니 당장 읽고 싶어지네요. 지금 읽고 있는 책 끝내면 바로 들어가야겠어요. 불끈.

구단씨 2018-10-31 13:46   좋아요 0 | URL
정말로 다이어트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의외의(?) 결말에 가벼움이 사라졌던 소설이었어요. ^^
 

 

아직은 이렇게 추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이미 추워져버린 날씨만 탓하기에는 의미가 없는 듯하고.

이대로 놔두면 다시 좀 포근해지는,

아직은 가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려나 싶지만 그것도 확신이 서질 않고.

 

밀린 숙제하듯 서평 도서 몇 권 읽고 있는데,

역시나 책의 맛은 신간이지 하면서,

날씨도 이렇게 스산하고 지치지 않고 비까지 내려주시니,

'책 사기 딱 좋은 날씨군!' 하면서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책을 넣는다.

 

10월이 다 가기 전에 품으로 들여올 것...

 

 

 

 

 

 

 

 

 

보관함에 있던 것을 꺼내봤는데, 뜬금없이 <수미네반찬>이 있다.

이건 엄마의 책.

"엄마, 이 책 보고 똑같이 해줘. 내가 하면 맛이 없어. 역시 음식은 손맛이 최고지!"

 

 

아니 에르노 - 사진의 용도

그녀의 글은 적나라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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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로 난 길로 저녁마다 산책을 하는데, 기찻길이 보인다. 30분 정도 걷다 보면 지나는 기차를 몇 대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랑 둘이서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기차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라고. 질리도록 했던 말... 그냥 역에 가서 기차를 타면 되는 일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일까. 막상 기차를 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건 실행에 옮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냥 습관처럼 하는 말이라는 것을, 엄마도 나도 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아버지 때문에 어디 가는 일이 불가능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신데도 어딘가로 가는 일이 쉽지 않더라. 오늘은 이런 일로 내일은 저런 일로, 며칠 동안 집을 비우고 떠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는 걸 새삼 느낄 즈음. 드디어 기차를 탔다. 집을 떠나 어딘가로 향했다.

 

10월 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기로 말만 한 상태였는데도 설렜다. 기차표 예약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캐리어를 꺼내고, 소지품 몇 개와 엄마와 내가 갈아입을 옷 한 벌씩만 넣고 짐을 다 쌌다. 동생과 통화를 하고 하루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몇 년 동안 집을 비우지 못해 힘들었을 엄마와 나에게, 제부가 어렵게 예약한 숙소도 있으니 설악산에 가자고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 때문에 예약한 일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꼭 오셔야 한다고. 이렇게 같이 어딘가로 가자고 얘기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곤 했는데, 예전 같으면 너희들끼리 다녀오라고 말했을 엄마가 별 고민도 없이 같이 가자고 하더라. 그럴 때 주저하면 안 된다. 엄마 마음 변하기 전에 일을 저질러야 한다. 바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짐을 싸고, 말을 번복하지 말라고 엄마한테 으름장을 놓고. 별다른 준비도 없이 그렇게 집을 떠났다.

 

 

여기서 서울까지는 고속열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다. 노원에 사는 동생이 잠실에 있는 언니한테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보다 빠른 시간이다.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는 곳인데, 매번 한번 오라고 하는 제부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거절만 했는데,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는 게 조금 씁쓸했다. 사실, 그렇게 다녀온 곳에서도 별거는 없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 사람들, 먹을 것 같은 게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태풍 콩레이가 지나간 후여서 바닷바람은 세고 파도도 높고 너무 추웠다. 아직은 이른 시기였던 터라 설악산의 단풍도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좋았다. 엄마와 함께여서 더 좋았다.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 아프면서 오래 걷지 못하는 엄마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데도 엄마는 그 먼 거리를 걸어 올라가고, 힘들다고 밤마다 코를 골면서 주무시는데도 일정에 다 맞춰 움직여줬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재미있다고, 이렇게 데리고 나와 줘서 자식들한테 고맙다는 말도 하셨다. 노인네 데리고 다니는 거 쉽지 않은데 애썼다고.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또 오고 싶다고... 또 오면 되는 거지!!! 여동생과 내가 동시에 한 대답에 다 같이 웃고 말았는데, 속으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에게 이런 말 처음 들었다. 그동안 사는 게 팍팍해서, 크고 작게 일어나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가족을 이끌어온 엄마의 고달픔이, 막상 어디 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거절하던 엄마가 어딘가로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들려서. 이제라도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싶은데 엄마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그래서 요즘 부모와 함께 떠난 여행, 특히 엄마와 함께 다니는 이야기를 찾아서 보고 있다. 작년에는 <엄마의 골목> 때문에 참 많이 울컥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발랄한 느낌의 엄마와의 여행책들을 만났다.

 

작가 태원준이 엄마와 떠난 여행이 마냥 신기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한 해외여행도 아닌 듯했다. 여행비용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편안하고 고민할 게 적은 패키지여행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조건에 엄마가 함께했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두 사람은 해냈다. 막상 떠나고 보니 어떻게든 나아가게 되어 있더라. 아들과 엄마. 그 조합이 이뤄낸 여행이 참 발랄해서 보는 이가 다 즐거웠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신난 놀이를 하는 기분이 들더라. 아, 부러워라. 예순 살과 서른 살의 엄마와 아들이 한 이 여행은, 힘들면서도 놓치기 아까운 하루하루를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삶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그러니 언제 또 올지 모를 이 여행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오자는 바람처럼 보였다. 엄마도 아들도, 열심히 걷고 많은 것을 보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겪고... 뭉클했다. 커다란 배낭 하나씩 메고 서 있는 모자의 뒷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부럽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너도 엄마랑 가면 되잖아?!’라고 말하겠지만, 이 모자의 여행이 부러운 건 그렇게 떠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정부터 비용까지, 떠나있는 동안 비워둘 곳의 정리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발목을 잡곤 했다. 작가는 엄마의 환갑잔치 대신 그 비용으로 엄마와의 여행을 택했고, 작가의 엄마 역시 아들의 제안에 응해주었다. 한국에서의 일상을 정리해야 할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같이 여행길에 오르면 감정 상할 일이 많을 텐데, 그걸 아들과 엄마가 한다는 게 무슨 기적이라도 보는 듯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300일이라니... 가능할까 싶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야 만 이 모자가 부럽지 않을 수가 있나?

 

엄마는 일상의 대부분이 걱정투성이다. 이제 11월이 시작인데, 엄마는 벌써 김장할 걱정을 한다. 기름값이 많이 올랐는데, 기름으로 난방을 하는 여기 시골에서의 겨울을 지낼 걱정을 한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는 감기 없이 올겨울을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을 한다.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자식들이 별문제 없이 하루하루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기도한다. 마치 그게 자신의 걱정과 기도로 다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10월에는 한 달 사이에 세 번의 장례식을 다녀오면서, 언제 닥칠지 모를 자기 죽음도 걱정한다. 며칠 전 누군가의 장례식에 다녀온 어느 날,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면서, 또 어딘가로 놀러 가고 싶다고도 했다. 엄마에게 그런 말을 처음 들었다. 지난번의 짧은 여행이 좋으셨나 보다. 그러면서, 어딘가를 다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듯하다. 두 다리가 건강해야 여기저기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볼 것이고, 정신이 건강해야 보고 듣는 많은 것을 즐기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그건 누구보다 우리가 바라는 일인데 말이다. 엄마가 건강하게 지내면서 우리와 지금처럼 스스럼없이 얘기도 하고, 싸우고, 같이 다니는 일상을 계속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엄마가 없으면 할 수 없으니까, 의미가 없으니까.

 

짧았던 가을 여행을 기억하며 다시 겨울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어디로 갈지 언제 갈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생각만 해도 좋다. 엄마 앞에 닥친 가장 급한 일은 김장일 텐데, 김장이 끝나고 가야겠지? 명절이 돌아오면 힘들다고 하실 테니까 명절 기간도 피해야겠지? 겨울이니까 지난번보다 짐은 많아지겠지? 캐리어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으니까 하나 더 사야겠다. 혹시라도 엄마가 망설이면 조금 더 귀찮게 졸라봐야지. 달달 볶이다 보면 두 손을 들고 가자고 하겠지...

 

집을 나서는 게 문제이지, 막상 나서고 나면 그다음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게 되어 있다. 추우면 가방 안에서 패딩을 꺼내 입고, 다리가 아프면 조금 쉬었다 가고, 배가 고프면 근처 식당에서 뭐든 먹으면 될 것이고. 한 가지 걱정은 체력이다. 유독 겨울 지내기를 힘들어하는 엄마가 잘 견딜 수 있기를... 나야 엄마보다 젊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게 익숙해서 덜 힘들겠지만, 허리와 무릎이 안 좋은 엄마가 오랜 시간 걷기에는 무리가 생기는 게 걱정이 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가 될지 몰라서 놓치는 게 더 후회될 것 같다. 조금은 덜 춥고, 덜 힘들 곳. 겨울을 즐길 수 있지만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곳,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같이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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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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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어떤 날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이 살아온 어떤 날 중의 하루를 꺼내어 들려주는 것만 같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는 않고, 돌이킬 수 없어서 그렇게 끌어안고 사는 기억을 한 번쯤은 꺼내고 싶은 날. 이들에게 그런 날들의 숨소리가 건너온다. 우리 삶을 두르고 있는 일상의 굴레를 이렇게 슬쩍 열어놓는다.

 

「에트르」의 서른 살 ‘나’는 백화점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연말의 매장은 붐빈다. 밥 한 숟가락 제대로 넘길 시간이 없는 일상에서 부담은 늘어난다. 집주인이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다. 이사를 결심하고 12월 31일 집을 보러 간다. 연말이고 누구나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 ‘나’는 집을 보러 갔지만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새로 이사하려고 집을 보러 간 동네도 지금 사는 동네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너무 닮아서 놀랄 정도다. 이곳(지금 사는 동네)과 저곳(집을 보러 갔던 동네)이 다른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동시에 밀려드는 건, 월세나 보증금의 문제보다는 그저 ‘나’의 삶의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여전히 무겁고 버겁고 힘들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12페이지, 「에트르」)

 

사는 건 왜 이리 힘들까. 이십 대의 치기 어린 마음이 무모해서 힘든 걸까? 대책 없이 서울로 상경해서 시작한 청춘이어서 그런 걸까? 그럼 이십 대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이제 곧 서른을 넘어서는 주인공이 보내는 지금이 그렇게 아프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미 알아버렸지 않은가. 그건 이십 대여서가 아니라 청춘이어서가 아니라, 삶이 고단한 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을 알아가고 인생을 더 배운다고 해서 달라질 거로 믿고 오늘을 버틴다는 것을. 다른 단편 속 주인공들 삶도 비슷하다. 「뒷모습의 발견」의 아내는 갑자기 사라진 남편 때문에 남편의 회사 생활과 동료들을 만난다. 그녀가 알던 남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본다. 10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남편을 모른다. 그가 스스로 사라진 건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을 생각하면 혼란스러운 것뿐이다. 「이후의 삶」의 남자는 이혼 후 임시 거처로 찜질방을 택한다. 곧 나갈 거지만 그곳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익숙해지고 있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죽음의 이야기를 듣는다. 돈이 많아도 외롭다는 말은 남자에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찜질방 남자의 말이 틀린 것도 없다. 죽음 이후의 모습조차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혼자 죽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제 낯선 일도 아닐 것이기에 말이다.

 

어느 날 자기 삶이 어떤지 돌이켜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변해가네」의 주인공 ‘나’는 그날 오래전 인생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들여보내는 것과 딸이 산통이 시작되는 건 동시에 이루어졌다. 마음이 급했다. 엄마를 안전하게 요양원에 인계해야 했고, 첫 출산을 하는 딸에게도 가봐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지나간 시간이 떠오른다. 현재의 그녀가 사는 모습까지 지나온 시간, 그래서 지금 행복한지 스스로 묻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그래, 이 정도면 나 지금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을까? 이와 반대의 느낌을 주는 단편이 「개의 나날」이었는데, 주인공 ‘나’는 성매매 알선하는 일을 한다. 거구의 몸으로 먹는 것을 일삼고 있다.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그는 어떤 꿈을 상상한다. 새아버지가 될 뻔한 남자의 죽음, 아주 오래전 잠깐 인연이었던 남자의 죽음을 왜 자기에게 알리는 건가 싶지만 그가 남긴 걸 찾아가라는 말에 유산을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주인공 ‘나’는 혹시 돈을 생각했던 건 아닐까? 지금 그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돈은 아니었지만 죽은 이가 남긴 건 그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물론 내 생각에는 그렇다. 죽은 이가 남긴 봉투에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가 성매매 업소의 문 앞을 지키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줄 알았다. 서성이던 개에게 다시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그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다.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고, 멀어져가는 개를 쳐다볼 뿐이다. 어쩌면 그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선뜻 그 말을 품지는 못한다. 그 말이 의미를 담지 못해서다. 현재 그의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안도할 수 없어서다. 허기진 그 마음을 채우려 계속 먹고 또 먹었던 것처럼 그의 비어있는 속을 채워줄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다. 누구라도 그걸 쉽게, 금방 알 수 있을까? 알지 못해서 현재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각 단편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다양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혹시 내일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람, 노력으로 오늘을 채우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이 너무 팍팍하다. 피하고 싶은 위기는 언제나 잘도 찾아왔다. 때로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르지 않은 건 여전히 존재한다. 불안한 삶. 나름 오늘을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남는 게 없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너무 익숙하다. 지금 여기, 우리 삶과 다를 게 없는 그대로였다. 현실 속 우리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다. 미래를 꿈꾸기도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이 암담해서 오늘을 살아내기에 급급한 모습. 그렇다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또 꿈을 꾸고. 그래서 무언가를 품어가면서 그 마음 내려놓지 않는다. 떨어트려서 망가졌지만 다시 주워서 품에 안아버린 케이크처럼, 떠나지 못하는 삶을 대신 떠나가라고 개에게 말하는 것처럼, 불행을 알리는 소식이 올지도 모르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이상하게 웃던 엄마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케이크는 다시 사면 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언젠가 자기가 될지도 모르는, 이상하지만 엄마의 웃는 모습은 아직 볼 수 있는...

 

열차가 삶의 한 시기를 지나 간이역에 멈춰 설 때, 내리지 못한 채 네모난 칸에 실려 덜컹거리는 여정을 이어갈 때마다 반대편의 삶과 새로운 바람이 불던 창 밖에 대해 생각했다. (172~173페이지, 「변해가네」)

 

그저 가볍게, 삶의 한 부분을 기억에서 꺼냈다고만 하기에는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현실 속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아서 공감하지만, 역시 우울하고 서글픈.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게 우리 모두의 운명인 것처럼 여겨져서 씁쓸했지만, 또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내일 또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펼쳐진다면 그렇게 또 살아가고, 또 그날과 이별하면서 살아가겠지. 마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던 소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이고 평범하던 삶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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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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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력이라니. 강지영이라는 작가가 원래 이런 글을 썼나? 모르겠다. 다른 작품을 가지고 있지만 읽지는 않았으니, 이 작품으로 작가 강지영을 처음 만났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아홉 편의 단편이 담긴 이 소설집의 첫 단편을 만난 순간부터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의 소설이 작가 강지영의 색깔인 것만 같다. 강렬하면서도 공포였고, 이런 공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되는 장면들 속의 사람들이 저절로 그려진다. 마치 오랫동안 그런 일상을 영위한 사람들의 익숙함. 천연덕스럽게 공포를 소화하는 듯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알게 된, 기억에서 희미해진 과거의 사건이 벌이 되어 돌아온 표제작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한편의 짧은 미스터리였다. 개에게 물린 ‘나’는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개 주인의 말을 듣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놀라웠고, ‘나’가 잊었던 시간을 불러온다. 그래, 그때 그랬었지. 하지만 그때 일어난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동안 잊었던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표제작과 다 비슷하다. 「눈물」이나 「스틸레토」처럼 판타지 같이 흐르기도 하다가, 「있던 자리」처럼 답답한 현실에 울부짖다가...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인간이 저지르고 있으니, 어디 다른 세상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디에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일들에 누군가의 욕심은 하늘을 뚫고, 그런 욕심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각 단편의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가진 참혹한 현실이 결말로 드러난다. 하아, 이런 삶에서 무엇을 찾아 살아가고 있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그런 비밀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는 그들의 의지가 놀랍기도 하면서...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고통을 즐기거나 끝장을 낸다. 「사향나무 로맨스」의 노파에게 젊은 청년들이 옆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아이러니했는데, 노파의 몸이 점점 나무가 되어 가는데도 사라지지 않은 사향나무 향기는 그녀만이 가질 수 매력을 선사한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놓아버려야 할 순간일지도 모를 때, 오히려 비밀은 향기는 낸다.

 

각 단편 모두 그들이 품은 비밀을 말하지만, 그 비밀은 의외의 결말로 독자를 충격에 빠뜨린다. 가장 충격적이고 아팠던 결말은 「눈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3개였던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마에 자리한 작은 눈 하나에서, 눈물이 흐를 때마다 특이한 보석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소녀의 눈물을 쥐어짜면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부를 축적한다. 소녀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소녀의 눈에서 나오는 보석의 이익금을 분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녀에게 눈물을 얻어내려고 감금하고 폭행한다. 소녀가 한번 눈물을 흘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부자가 된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기자가 소녀를 탈출시키고, 소녀는 기자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자가 마치 소녀를 구해준 은인 같았는데...

 

「눈물」의 소녀가 말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이 단편에서 보여준 결말은 그 누구의 침묵도 침묵이 아니었다는 거다. 기자와 함께 떠난 소녀가 새로 만난 세상에 적응하는 분투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던 나의 예상은 한참을 빗나갔다. 소녀는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자기의 고통을 끝내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한다. 비정한 세계를 직접 단죄했다.

 

인간은 착한가? 아니면, 인간은 악한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인간은 착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속한 현실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그 현실 탓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인간이 내재한 욕망과 이기심에 그 악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내몰리는 인생들이 있고, 저지른 죄를 잊고 살다가 복수를 당하기도 하는, 남의 고통에 빌붙어 먹고 사는 인간들도, 다 우리 사는 세상에 존재한다. 그들만의 비밀,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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