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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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를 떠올려 봤다. 특별할 게 없다. 다른 사람도 비슷한 일들을 겪으면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밋밋한 일상을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그런데 주변에 보면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아무래도 내가 정한 평범하다는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 상황들이다. 저자의 만화를 통해서 본 많은 사람도 그랬다. 좀 이상하다 싶은,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꼭 한 번은 봤을 사람들. 이런 경험 나만 한 게 아닌가 보다. 저자가 일상에서 만난, 재미있던 상황들을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기록했던 걸 보면 말이다. ^^

 

좋게 생각하면 특이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심하다고 싶으면 변태나 오지라퍼로 인식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주변에서 만난 재밌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디에 사연을 보내야 할 정도로 특이하다. 옷 가게의 점원은 자기가 변태라고 고백하지 않나, 100엔 샵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거울 고르기가 힘들어서 도움을 구하지 않나, 남의 이목 신경 쓰지 않고 탈의실에서 며느리 흉을 보는 아주머니는 또 어떻고. 그중 재미있던 것 중의 하나는 차내 방송으로 노래를 부르던 기관사 아저씨다. 가끔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기사 아저씨가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는 정도는 본 적이 있는데, 차내 방송으로 노래를 부르는 기관사 아저씨라니, 풋~!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싫거나 거북하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바라보게 된다. 소음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객차 내에 이렇게 노래를 불러대는 건 민폐라고 항의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자 들려주는 상황을 상상해보니 참 재미있는 장면 아닌가? 나라면 시끄럽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정겹고 재미있다는 생각하면서 목적지까지 웃으면서 갈 것 같은데...

 

 

저자의 이런 특이한 상황의 에피소드는 일상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여행지에서도 특이한 사람들과 상황을 마주한다. 혼자서 하는 여행지의 낯섦이 불안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기대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며 빽빽하게 작성한 리스트를 보면 저자의 여행 습관을 알 것도 같다. 방향을 잃고 길에서 헤매는 건 당연하고, 타국에서 만난 이방인에게 친절을 느낀다. 어느 순간 공감대가 형성하는 외로움이라는 녀석 때문일까. 식당 메뉴를 못 읽어서 대충 시켰는데 입에 맞아서 감탄하거나, 양 조절을 못하고 시킨 메뉴 때문에 배가 불러서 힘들어하기도 하는 일들. 여행 후기까지 꼼꼼하게 남기면서 재미있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놓친 순간들을 아쉬워하기도 하는, 다음 여행에 챙겨야 할 것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혹시나 저자가 여행했던 곳을 방문하려는 다음 여행자를 위한 팁까지 언급하면서, 같은 여행자로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여행하게 배려하는 마음까지 흐뭇하다. 반경 3미터 내에서 마주하는 상황과 사람들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가만히 보면 저자도 그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행동이 분명 있을 수도 있으니, 뭐, 이해하자고.

 

 

 

특히 재밌었던 건 수영장에서의 할머니들이다. 수영 강습 시간 조절하지 못해서 들어간 타임에는 노인들이 가득하다. 서로가 그냥 수강생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다들, 마치 오랫동안 같은 동네에서 얼굴 마주하며 살아왔던 것처럼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어디 가면 세일을 하니까 좋고, 몇 요일에는 어떤 행사가 있고 하는 일상의 팁 같은 것을 전수해주시는 분들. 사실 내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건 다른 사람들의 참견이나 말붙임인데, 저자가 수영 강습 시간에 겪는 일들이 낯설지가 않아서 계속 듣고 싶었다. 나는 이런 경우에 견디기 힘들어서 얼굴에 인상이 써지는데, 저자는 또 그 노인들의 말을 다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간 곳에서 생활 팁을 얻는다. 귀찮게만 들리던 노인들의 말이 어쩌면 세상을 더 많이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를 찾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노인들 참 다정하게도 저자의 수영 실력이 향상되자 박수까지 쳐주면서 응원한다. 수영 강습보다 자기네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시간 보내는 줄 알았더니, 수영 초보자의 성장까지 살갑게 지켜본 분들이셨네.

 

 

첫 부분 읽을 때는 세상에 왜 이렇게 오지라퍼가 많은 걸까, 이상한 사람들을 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읽어가는 동안 많이 공감하게 된다. 나도 가끔 물건 사러 가면 적당한 걸 고르지 못해서 옆에 서 있던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어떤 게 나은가요? 기억해 보니 그때도 상대방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그저 자기 의견 정도는 말해주었던 것 같다. 뭐 어때.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좀 다른 것뿐이잖아?!

 

평범한 일상의 기록을 참 재미있게 그려냈다. 카오스라는 말과는 다르게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정도의 혼란 정도? 지하철이나 동네 상점, 어느 거리 같은, 우리의 생활반경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 적당한 재미로 받아들이며 한번 웃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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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시리즈를 두 편 정도 읽은 게 전부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만화의 분위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알면서도 꾸준히 보고 싶은 만화이기도 하다. 특이 이번 베스트 컬렉션은 '베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녀석들의 모험 같은 일상이 재밌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얘네들 원래 이랬나 싶게 각 캐릭터를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한꺼번에 모아놓고 보니,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각자 해결하는 자세가 다르다. 각자의 개성이 더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매력이 달라서 다가오는 색이 다르기 때문에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이 녀석들의 일상에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우리와 너무 닮았다는 거다. '어라? 이거 나도 궁금했는데, 왜 그런 걸까?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문제들을 풀어가는 방식이 가슴으로 한 번에 들어온다. 때로는 고민도 해야 하지만,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 대부분은 의외로 쉬운 답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보노보노의 엉뚱함은 그가 하는 고민에 그대로 드러난다. 아빠의 보물창고에 새긴 구멍 때문에 사라진 귀한 것들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발을 동동 구른다. 너부리, 포로리와 머리 맞대고 고민하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 여기저기 다 뒤져봐도 마찬가지. 길을 떠난 아빠가 돌아올 때는 다 되었고, 사라진 아빠의 보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러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귀가 번쩍 뜨인다. "혹시 아빠가 길을 떠날 때 그 보물들을 가지고 간 건 아닐까?" 그러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처음부터 아빠의 보물창고에 생긴 구멍으로 사라진 보물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어봐도 좋았을 것을...

 

왜 우리는 아닐지도 모를 일에 걱정부터 하는 걸까 생각해보게 한다. 나처럼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을 계속 쓰고 고민하는 사람이 보면 좋은 안내서 같은 부분이었다. 보노보노가 아빠의 사라진 보물을 걱정할 때 누군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아마도 보노보노는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아빠가 들고 간 게 아니었는지 묻고, 그게 아니라면 다 같이 찾아보면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 대부분이 처음부터 할 필요 없는 고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일상적으로 뱉는 쉬운 말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 이 녀석들이 아빠의 보물을 찾아다닌 시간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언제 해도 해야 할 걱정이라면, 확인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꼬리를 떼어버리겠다는 너부리의 다짐으로 궁금해졌다. 너부리의 꼬리는 정말 필요 없는 것일까? 처음부터 있던 꼬리의 쓰임새가 분명 있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꼬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는 거겠지. 그런데도 너부리는 그 꼬리가 거추장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다. 떼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어떻게 떼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그렇고, 웬만한 다짐은 아닌 듯하다. 꼬리가 없어도 죽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참에 확 떼어버리고, 예쁜 너부리로 거듭나고 싶었나... 포로리와 보노보노는 너부리의 꼬리에 마음을 두고 너부리의 마음을 바꾸려고, 그동안 그 꼬리가 너부리의 몸에 붙어 있으면서 했던 활약(?)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혹시나 너부리의 떼어낸 꼬리로 동물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둥, 처음부터 한 몸이었으니 당연하다는 둥, 결론은 같다. 꼬리를 떼어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때 현명하게 답을 준 족제비 아저씨가 너부리의 다짐을 바꿔놓았는데, 이상하게도 매일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을 품평했던 나 자신이 떠오르더라. '나이 먹으면서 눈이 자꾸 처지는데 어떻게 좀 해야 하나? 조금 더 예쁜 외모를 만들고 싶은데 좋은 방법 없을까?' 하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하던 것을 고민해본다. 떼어내도 죽지 않으니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떼고 싶다던 너부리처럼,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외모를 만든다고 죽지 않으니까. 하지만 굳이 떼어내지 않아도 너부리인 것처럼, 지금보다 더 예쁜 외모가 아니어도 나인 것이라고. 목숨에 지장을 줄 문제가 아니라면, 이대로 사는 게 불편한 게 아니라면, 처음 주어진 상태로 오늘을 살아가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본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잖아?

 

 

꿈을 꾸는 이유를 궁금해하면서도 왜 꿈은 이상한 걸까 고민한다. 꿈이 이상한 건 현실이랑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놓는 너부리의 말에 공감도 된다. 꿈은 그냥 꿈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래서일까.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상황들이 꿈에 나타나는 걸 보면, 정말 현실과 구분하기 위해 꿈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꿈에서라도 간절한 바람을 이뤄보는 거, 잠깐이지만 행복해지는 순간이 될 것 같다. ^^

 

읽다 보면 이 녀석들이 모여서 일으키는 문제들만 보는 것 같다. 나쁘지 않게 웃음을 주면서 그들만의 엉뚱함을 뽐내는 것 같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에피소드에 이 만화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걷는 게 좋은데 걷는 게 왜 좋을까 자문하는, 혼자 있다는 것을 외로움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보노보노의 모습에 사색적으로 된다. 심심하니까 걸을 수도 있고, 풍경을 보면서 걸으니까 좋고, 좋아하는 곳에 갈 수도 있으니까 걷는 게 좋다고 말하면서도, 아주 쿨하고 정확한 답을 내놓는다. 걷는 게 좋으니까 좋은 거라고. 걷는 순간에만 보이는 것들을 소환하면서 천천히 가는 순간의 미학을 담는다. 어떤 의미도 답도 더는 필요 없다는 듯 '좋아하는 것' 자체에 모든 의미가 있다는 거. 생각해보니 그러네.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없잖아?! 좋으니까 좋은 거, 그 사람이 좋으니까 좋아하는 것. 같은 의미잖아. 좋은 건 그냥 좋은 대로 놔두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다. 흐뭇하게 마음에 두고 그냥 생각하면 되는 거였네.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이렇게 쉬웠는데, 왜 우리는 자주 그 쉬운 일을 어렵게 해야만 했던 것일까 되묻고 싶어진다. '외로움'이라는 화두, 계속 머릿속에 남을 질문이 되었다.

 

 

그렇게 포근해지는 답을 듣다가도,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 녀석들을 보면 진지해진다. 혼자 있는 아빠의 모습이 외로워 보였던 보노보노의 고민에 동물 친구들의 답이 가지각색이지만, 다 맞더라. 원래 모두가 외로운 거라고 말하는 포로리는 모두 쓸쓸하니까 시시한 얘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달래고 싶다는 말일까? 그러다가 듣게 된 홰내기의 말. '우리는 보통 누군가와 같이 있으니까 혼자 있으면 외로워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반대로 혼자 있다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외로워 보이지 않는 걸까? 행복하기만 한 걸까? 홰내기의 말에 시선을 멈추고 한참 생각했다. 타인의 시선에 외로워 보인다는 말이지 외롭다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외로운지 아닌지 누가 정해주는 걸까 궁금하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들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 하고, 연애나 결혼으로 짝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이 녀석들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어느 순간 인생 철학을 말하는 것 같은 퀄리티가 되어 새겨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마음이 힘든 하루에서,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찾아내는 보물 같은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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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지 마... 제발...


윤태호의 로망스를 이제야 알고 구매하려 했더니 절판...
생각보다 중고 가격도 좀 쎄더라.
찾아보니 다행히도 도서관에 딱 두권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책이다 보니 책 상태가 다 지지하더라는...
그나마 깨끗한 책으로 골라서 빌려왔는데,
한참 재밌게 읽고 있는데...
누가 이렇게 찢었어!!!!!
여덟쪽이나...
없으니까 사라진 페이지가 더 궁금해... ㅠㅠ
너무 재있는 이야기라 찢어간 거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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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3-1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의 책을 누가 감히 찢으셨나요!!!???^^

구단씨 2019-03-13 14:34   좋아요 1 | URL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ㅠㅠ
딱 한 챕터 찢어간 것 같은데, 없어지니까 그 부분 내용이 더 궁금합니다. ^^
 
세계사톡 2 - 중세의 빛과 그림자 세계사톡 2
무적핑크.핑크잼 지음, 와이랩(YLAB) 기획, 모지현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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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시리즈가 조선을 재미있게 여행하고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면, 『세계사톡』은 조선을 넘어서 더 넓은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보게 하는 책이다. 판이 커졌으니 등장인물도 다양해지고, 배경이 되는 나라도 더 많아졌다. 역사적 사건이 더 많아진 것도 그렇다. 1편은 고대의 시간을 다루었고, 2편은 중세를 이야기한다.

 

2권은 중세의 시작과 함께 펼쳐진다. 몽골 고원에 사는 북방 유목민인 흉노족이 중국으로 넘어왔고, 중국의 북쪽은 흉노의 지배를 받는다. 흉노족의 세력은 커지고 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아시아와 유럽까지 그 세력을 넓히고 서로마까지 펼쳐간다. 서로마의 멸망과 프랑크 왕국의 시작, 게르만족의 이동과 동로마 제국의 유지,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며 그 명맥을 이어간다. 이 시기에는 세계사의 여러 가지 흐름 중에서도 종교의 문제가 많이 나타났다. 이슬람교와 그리스 정교, 불교, 힌두교 등 종교가 중심이 되어 각 나라의 문화가 형성되고, 각 나라 사이에서 그 문화가 충돌하면서 오랜 기간 전쟁도 계속되기도 했다. 종교가 우선 되어 흐르는 역사, 그 종교 때문에 서로 묶이고 흩어지는 관계, 그러면서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영역 확장의 구실을 만들어버리기도 했던 시대. 하지만 문명의 확대로 중국의 문물이 유럽에 전해지기도 했고, 이런 일은 후에 신대륙 발견을 이루기도 하면서, 기원후 300년에서 1400년 정도까지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세계사를 들려준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중세의 많은 면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각 시대의 인물과 관계, 그사이의 일들을 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형식으로 보여주면서, 좀 더 쉽게 세계사의 단면을 확인하게 한다.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군, 이 둘은 앙숙이었군,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아내로? 신분의 차이와 불평등이 반란을 일으켰네, 등등 오늘까지 이어온 중세 시대 세계사의 온갖 역사를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다. 사실 빡빡하게 설명된 글로만 보기에는 역사와 세계사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 우리 이미 학교 다니고 시험공부 하면서 많이 겪어보지 않았던가?! 공부만을 위한 책은 아니지만, 관심이든 공부의 목적이든 흥미와 재미를 함께 주는 책이 더 솔깃한 건 사실이니까. ^^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사 돋보기'라는 항목을 뒤에 붙이면서, 앞서 톡이나 인스타그램 형식으로 주고받은 대화나 게시글로 '카더라'라고 전해준 얘기들을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도를 덧붙이면서 글로 다 보여주지 못하는 설명을 한눈에 알아보게 한다. 각 시대나 사건으로 각 나라의 영토 확장의 범위, 영역 변경의 정도, 주변 국가와의 경계 같은 구분을 보여준다.

 

 

 

사실 세계사는 한 나라의 역사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과 공간, 사건들이 방대하다. 그래서 한꺼번에 살펴보기도 어렵고, 같은 시대에 각 나라와 대륙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정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역사 속 인물들이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재구성해서 재미있게 들려준다. 조금 더 가깝게 세계사에 접근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같은 시기의 동서양을 한꺼번에 아우르며 한국사까지 함께 언급한다. 그래서 더 관심 두고 읽게 한다.

 

『조선왕조실톡』에서 한껏 업그레이드한 전개로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세계사를 즐기게 하는 책으로 충분한 책이다. 일부러 외우려고 하니 힘든 공부, 굳이 외우지 않아도 생생한 상황을 마주하며 세계사에 들어가 현장 체험하듯 즐겨도 좋겠다. 중세를 다룬 2권에 이어 곧 3, 4권(근대), 현대편으로 이어지는 5권까지 기획되었다고 하니 다음 편을 기다리는 설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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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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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인생을 바꿀 기회는 몇 번이나 찾아올까? 아니, 처음부터 자기가 정한 인생대로 흘러가는 것을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자기가 정한 대로 삶을 이뤄나갈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현재 상황에 맞는 제일 나은 선택으로 삶을 정했다. 평범한 소시민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일상이었고, 그 고민의 결과로 선택한 삶은 대부분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묵묵히 일상을 지낸다. 하고 싶은 일은 저기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언젠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함부로 쉽게 꺼내놓을 수 없는 비밀처럼, 죽을 때까지 못 이룰 수도 있는 상상처럼 간직한다. 그렇다고 그 꿈을 잊은 것은 아닌 채로 말이다.

 

누군가는 책 속의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스타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한다. 우리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찰나에 찾아오는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이 책에서,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삶을 바꾸는 계기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느낀다. ‘아차’ 하는 순간에 놓친 것을, ‘문득’ 하는 순간에 잡아채는.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였다.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록키 발보아처럼 그녀는 공부를 재개할 것이다.

공부를 더 할 것이다.

의과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부를 마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의사가 될 것이다. (15~16페이지)

 

어느 날, 리즈는 <록키3>를 보고 자기가 내려놓았던 꿈을 생각한다.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다 멈춰버린 일, ‘언젠가’라는 생각으로 미루기만 했던 일을 기어코 꺼내놓고 실행에 옮긴다. 부모님 집으로 가서 사용하던 책과 노트를 가지고 온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일상. 쉽지 않은 날들이지만 그녀는 해낸다. 의사가 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의사로의 그녀 삶도 채워나간다.

 

도대체 <록키3>가 무슨 영화이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표작인 록키. 권투로 인생의 오르막을 오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실베스터 스탤론을 세상에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 말이다. 아주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영화 속 사각의 링 안에서 권투 글러브를 끼고 동그란 두 눈을 뜬 배우의 표정은 잊지 못한다. 강한 이미지였지만, 실상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의 인생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는 밑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인생으로 남지 않겠다는 각오가 들리는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 리즈에게도 그 순간이 그대로 전해졌던 것일까? 리즈는 이 영화 속 몰락해가는 챔피언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 자신의 삶을 본다. 이대로 사는 게 맞는 것일까?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현재에 안주하면서? 이때 뒤통수를 치듯 그녀의 꿈이 가슴 속에서 튀어나온다. 중단했던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의사가 되기로 한다. 그 이후로 그녀는 한 번도 그 꿈을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 배우에게 애정을 느낀다. 이른바 덕질을 시작한다. 그가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다 본다. (못 볼 때는 티켓을 사는 것으로 대신한다) 무너져가는 챔피언의 모습에 그가 경제적 위기를 겪을 때를 대비하여 계좌를 개설한다. 유언장에도 남긴다. 그 돈은 오직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남긴다고.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기가 생각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해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리즈의 삶은 <록키3>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뉜다. 누구에게나 그런 타이밍 한 번씩 찾아온다는 말을 식상하게 하지만, 그게 진짜라는 것을 보여준 그녀다. 언제라도 자기 삶을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있었지만, 그게 현실로 반영되기까지 우리는 많이 망설인다. 겁이 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염려하고, 변화하려고 시도했는데 또다시 실패할까 봐 무섭다. 차라리 시도하지 않은 게 나은 선택은 아니었을까 후회할까 봐 걱정된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실패는 남아있으니, 다시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선뜻 자기 안의 바람을 내놓지 못하는 삶을 이어가곤 한다. 하지만 그게 맞는 삶일까?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다는 걸 리즈가 그대로 보여줬다. 짧고 굵은 문장으로, 아주 간결한 한 편의 소설로, 울림은 깊게. 100페이지 소설로 유명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글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짧은 문장과 분량으로 가독성은 좋게,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은 깊게 전달하고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짧은 글이 발휘하는 문학의 힘을 그대로 증명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착하게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로 전해지는 감정이, ‘아, 나 그거 알아!’ 하는 강렬한 느낌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바치는 소설이자 작가 자신의 삶과 똑같이 닮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정도는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 인생에서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내려놓아야만 했던 간절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루를 사는 일은 힘들고 고되지만, 혹시 그 안에서 같이 쌓여가는 매너리즘을 모른 척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묻는다.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인생의 변화를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 인생을 바꿀 의지를 꺼낼 계기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거, 그렇게 찾아온 계기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거, 그렇게 이뤄내는 인생의 주체도 우리 자신이라는 것. 빰 빠바밤 빠바밤~

 

짧지만 강하게 빛났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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