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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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인생을 바꿀 기회는 몇 번이나 찾아올까? 아니, 처음부터 자기가 정한 인생대로 흘러가는 것을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자기가 정한 대로 삶을 이뤄나갈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현재 상황에 맞는 제일 나은 선택으로 삶을 정했다. 평범한 소시민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일상이었고, 그 고민의 결과로 선택한 삶은 대부분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묵묵히 일상을 지낸다. 하고 싶은 일은 저기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언젠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함부로 쉽게 꺼내놓을 수 없는 비밀처럼, 죽을 때까지 못 이룰 수도 있는 상상처럼 간직한다. 그렇다고 그 꿈을 잊은 것은 아닌 채로 말이다.

 

누군가는 책 속의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스타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한다. 우리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찰나에 찾아오는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이 책에서,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삶을 바꾸는 계기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느낀다. ‘아차’ 하는 순간에 놓친 것을, ‘문득’ 하는 순간에 잡아채는.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였다.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록키 발보아처럼 그녀는 공부를 재개할 것이다.

공부를 더 할 것이다.

의과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부를 마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의사가 될 것이다. (15~16페이지)

 

어느 날, 리즈는 <록키3>를 보고 자기가 내려놓았던 꿈을 생각한다.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다 멈춰버린 일, ‘언젠가’라는 생각으로 미루기만 했던 일을 기어코 꺼내놓고 실행에 옮긴다. 부모님 집으로 가서 사용하던 책과 노트를 가지고 온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일상. 쉽지 않은 날들이지만 그녀는 해낸다. 의사가 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의사로의 그녀 삶도 채워나간다.

 

도대체 <록키3>가 무슨 영화이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표작인 록키. 권투로 인생의 오르막을 오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실베스터 스탤론을 세상에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 말이다. 아주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영화 속 사각의 링 안에서 권투 글러브를 끼고 동그란 두 눈을 뜬 배우의 표정은 잊지 못한다. 강한 이미지였지만, 실상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의 인생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는 밑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인생으로 남지 않겠다는 각오가 들리는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 리즈에게도 그 순간이 그대로 전해졌던 것일까? 리즈는 이 영화 속 몰락해가는 챔피언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 자신의 삶을 본다. 이대로 사는 게 맞는 것일까?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현재에 안주하면서? 이때 뒤통수를 치듯 그녀의 꿈이 가슴 속에서 튀어나온다. 중단했던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의사가 되기로 한다. 그 이후로 그녀는 한 번도 그 꿈을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 배우에게 애정을 느낀다. 이른바 덕질을 시작한다. 그가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다 본다. (못 볼 때는 티켓을 사는 것으로 대신한다) 무너져가는 챔피언의 모습에 그가 경제적 위기를 겪을 때를 대비하여 계좌를 개설한다. 유언장에도 남긴다. 그 돈은 오직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남긴다고.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기가 생각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해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리즈의 삶은 <록키3>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뉜다. 누구에게나 그런 타이밍 한 번씩 찾아온다는 말을 식상하게 하지만, 그게 진짜라는 것을 보여준 그녀다. 언제라도 자기 삶을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있었지만, 그게 현실로 반영되기까지 우리는 많이 망설인다. 겁이 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염려하고, 변화하려고 시도했는데 또다시 실패할까 봐 무섭다. 차라리 시도하지 않은 게 나은 선택은 아니었을까 후회할까 봐 걱정된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실패는 남아있으니, 다시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선뜻 자기 안의 바람을 내놓지 못하는 삶을 이어가곤 한다. 하지만 그게 맞는 삶일까?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다는 걸 리즈가 그대로 보여줬다. 짧고 굵은 문장으로, 아주 간결한 한 편의 소설로, 울림은 깊게. 100페이지 소설로 유명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글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짧은 문장과 분량으로 가독성은 좋게,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은 깊게 전달하고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짧은 글이 발휘하는 문학의 힘을 그대로 증명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착하게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로 전해지는 감정이, ‘아, 나 그거 알아!’ 하는 강렬한 느낌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바치는 소설이자 작가 자신의 삶과 똑같이 닮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정도는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 인생에서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내려놓아야만 했던 간절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루를 사는 일은 힘들고 고되지만, 혹시 그 안에서 같이 쌓여가는 매너리즘을 모른 척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묻는다.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인생의 변화를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 인생을 바꿀 의지를 꺼낼 계기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거, 그렇게 찾아온 계기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거, 그렇게 이뤄내는 인생의 주체도 우리 자신이라는 것. 빰 빠바밤 빠바밤~

 

짧지만 강하게 빛났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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