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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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를 떠올려 봤다. 특별할 게 없다. 다른 사람도 비슷한 일들을 겪으면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밋밋한 일상을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그런데 주변에 보면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아무래도 내가 정한 평범하다는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 상황들이다. 저자의 만화를 통해서 본 많은 사람도 그랬다. 좀 이상하다 싶은,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꼭 한 번은 봤을 사람들. 이런 경험 나만 한 게 아닌가 보다. 저자가 일상에서 만난, 재미있던 상황들을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기록했던 걸 보면 말이다. ^^

 

좋게 생각하면 특이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심하다고 싶으면 변태나 오지라퍼로 인식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주변에서 만난 재밌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디에 사연을 보내야 할 정도로 특이하다. 옷 가게의 점원은 자기가 변태라고 고백하지 않나, 100엔 샵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거울 고르기가 힘들어서 도움을 구하지 않나, 남의 이목 신경 쓰지 않고 탈의실에서 며느리 흉을 보는 아주머니는 또 어떻고. 그중 재미있던 것 중의 하나는 차내 방송으로 노래를 부르던 기관사 아저씨다. 가끔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기사 아저씨가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는 정도는 본 적이 있는데, 차내 방송으로 노래를 부르는 기관사 아저씨라니, 풋~!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싫거나 거북하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바라보게 된다. 소음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객차 내에 이렇게 노래를 불러대는 건 민폐라고 항의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자 들려주는 상황을 상상해보니 참 재미있는 장면 아닌가? 나라면 시끄럽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정겹고 재미있다는 생각하면서 목적지까지 웃으면서 갈 것 같은데...

 

 

저자의 이런 특이한 상황의 에피소드는 일상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여행지에서도 특이한 사람들과 상황을 마주한다. 혼자서 하는 여행지의 낯섦이 불안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기대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며 빽빽하게 작성한 리스트를 보면 저자의 여행 습관을 알 것도 같다. 방향을 잃고 길에서 헤매는 건 당연하고, 타국에서 만난 이방인에게 친절을 느낀다. 어느 순간 공감대가 형성하는 외로움이라는 녀석 때문일까. 식당 메뉴를 못 읽어서 대충 시켰는데 입에 맞아서 감탄하거나, 양 조절을 못하고 시킨 메뉴 때문에 배가 불러서 힘들어하기도 하는 일들. 여행 후기까지 꼼꼼하게 남기면서 재미있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놓친 순간들을 아쉬워하기도 하는, 다음 여행에 챙겨야 할 것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혹시나 저자가 여행했던 곳을 방문하려는 다음 여행자를 위한 팁까지 언급하면서, 같은 여행자로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여행하게 배려하는 마음까지 흐뭇하다. 반경 3미터 내에서 마주하는 상황과 사람들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가만히 보면 저자도 그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행동이 분명 있을 수도 있으니, 뭐, 이해하자고.

 

 

 

특히 재밌었던 건 수영장에서의 할머니들이다. 수영 강습 시간 조절하지 못해서 들어간 타임에는 노인들이 가득하다. 서로가 그냥 수강생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다들, 마치 오랫동안 같은 동네에서 얼굴 마주하며 살아왔던 것처럼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어디 가면 세일을 하니까 좋고, 몇 요일에는 어떤 행사가 있고 하는 일상의 팁 같은 것을 전수해주시는 분들. 사실 내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건 다른 사람들의 참견이나 말붙임인데, 저자가 수영 강습 시간에 겪는 일들이 낯설지가 않아서 계속 듣고 싶었다. 나는 이런 경우에 견디기 힘들어서 얼굴에 인상이 써지는데, 저자는 또 그 노인들의 말을 다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간 곳에서 생활 팁을 얻는다. 귀찮게만 들리던 노인들의 말이 어쩌면 세상을 더 많이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를 찾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노인들 참 다정하게도 저자의 수영 실력이 향상되자 박수까지 쳐주면서 응원한다. 수영 강습보다 자기네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시간 보내는 줄 알았더니, 수영 초보자의 성장까지 살갑게 지켜본 분들이셨네.

 

 

첫 부분 읽을 때는 세상에 왜 이렇게 오지라퍼가 많은 걸까, 이상한 사람들을 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읽어가는 동안 많이 공감하게 된다. 나도 가끔 물건 사러 가면 적당한 걸 고르지 못해서 옆에 서 있던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어떤 게 나은가요? 기억해 보니 그때도 상대방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그저 자기 의견 정도는 말해주었던 것 같다. 뭐 어때.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좀 다른 것뿐이잖아?!

 

평범한 일상의 기록을 참 재미있게 그려냈다. 카오스라는 말과는 다르게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정도의 혼란 정도? 지하철이나 동네 상점, 어느 거리 같은, 우리의 생활반경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 적당한 재미로 받아들이며 한번 웃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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