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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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었다. 짧은 단편들의 모음집이라고는 하나,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는 건 생소한 느낌의 서술 정도였다. 다양한 직업 체험 같기도 하고, 그 다양함 속에서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삶을 엿본 것 같기도 하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불리기도 하고, 사후 11년 만에 출간작을 읽게 되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은근한 매력이 풍긴다는 거. 누군가의 삶을 엿보면서 찾게 되는 타인의 은밀한 내면을 보는 기분이 든다는 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의 한 부분을 이렇게 듣게 되는 게 낯설지만 좋았다는 거.

 

표제작 「청소부 매뉴얼」은 담백한 화법에 청소부로서의 일상이 드러난다. 독백처럼 그녀의 하루를 읊조리는데, 주로 자기가 청소하는 집과 집주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청소하는 집의 구조와 장식품으로 그들의 삶의 보기도 한다. 구속된 것 같기도 하고 집주인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게 또 은근히 자유롭다. 청소부들은 사실 물건을 훔치지만, 집주인은 그걸 염려할 것 없다고 말한다. 청소부를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의 과잉 반응이라고, 그녀가 실제로 훔치는 건 수면제뿐이라고. 이처럼 그녀는 직업에 관한 이미지와 고정관념을 한 번에 바꾸기도 한다. 특히 문장의 중간에 등장하는 '청소부 매뉴얼'은 생소한 직업군의 규칙 같이 들려서 특이하다. 마님이 주는 건 뭐든지 받고 나중에 버리면 되고, 원칙적으로 친구들 집 일은 절대 하지 말고, 취학 전 어린이가 있는 집은 절대 사양하는 등, 그동안의 경험으로 생긴 나름 규칙을 지키려고 한다. 덜 힘들고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의 청소부 매뉴얼을 머릿속에 작성한다.

 

이 책을 어느 정도 읽다가 조금 어렵고 답답한 느낌에 뒷부분의 작가 소개를 읽었는데, 이 작품집 속에 그녀의 전 생애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미국의 서부 탄광촌이나 칠레 등지에서 10대를 보내기도 했다. 삼십 대 초반에 이미 이혼을 세 번이나 했다. 네 명의 아들을 낳았고 알코올 중독자로 살기도 했다. 혼자서 네 명의 아이를 키워야 했던 저자는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의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다양한 직업 세계가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들린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려고 했던 시기의 「그녀의 첫 중독치료」, 응급실에서 일하는 게 좋다던 「나의 기수」, 병원 의사 선생을 짝사랑하는 동료 이야기를 적은 「관점」도 그녀가 걸어온 생의 한때를 심심하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사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여러 편의 이야기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있다. 소시민의 삶을 차곡차곡 보고 기록한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인생에 모자란 것이 많아 보여서 씁쓸하면서도 그런 어두운 시간에 침 한번 뱉고 돌아서고 싶은 단호함도 느껴진다. 가난과 알코올 중독을 직접 겪으면서 쌓아온 삶의 단면들, 병원에서 일하면서 마주친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생생함도 있다. 특히 응급실에서 마주한 풍경은 세상을 대신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자살을 기도하여 죽었거나 미수에 그친 이들, 혈관질환으로 실려 온 사람들, 물에 빠진 아이들,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죽음, 술에 저항하지 못하고 빠져든 이들. 당사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들의 삶을 그리지 않았나 싶다. 마치 그 시간을 같이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이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고, 마치 누군가와 상담하다가 꺼내놓은 이야기처럼 에세이 느낌도 있다. 그러면서 소설의 경계를 넘어서는 듯한 사실적인 분위기는 저자와 이 이야기가 더욱 가깝게 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쯤은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통해야 한다는 걸 여기서도 확인하는 순간이다. 저자의 인생이 쉽고 간단하게 흐르지 않은 것을 들어보면, 소설들에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게 그대로 풍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지만, 저자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쓰지 않고서는 그 시간을 건너올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간을 걸어온 것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그 시간의 경험과 생각으로 채워진 이 글을 읽는 순간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결하고 담백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의 소설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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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무를 하던 가난한 나무꾼은 풀숲에서 뛰쳐나온 사슴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얼른 나뭇가지 더미 속에 숨겨주었다. 사냥꾼이 와서 사슴의 행방을 물었지만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무꾼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슴은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보답하겠다면서 나무꾼에게 소원을 물었다. 나무꾼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사슴에게 평소 바라던 소원을 말했다. "고운 색시를 얻어 장가를 갔으면 좋겠어!" 그에 사슴은 오늘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왔을 것이니, 나무꾼에게 그중 한 선녀의 옷을 훔치라고 했다.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없으니 그 선녀를 색시 삼으라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절대 선녀 옷을 내어주면 안 된다는 경고도 함께. 나무꾼은 사슴의 말대로 선녀들이 목욕한다는 폭포로 향했고, 거기서 선녀 옷을 한 벌 훔쳤다. 이제 선녀 옷의 주인만 찾으면 나무꾼은 예쁜 색시도 얻고 재밌게 살겠지...

 

...라고 우리가 알던 동화는 잘못됐다. 선녀들의 목욕을 훔쳐보고 옷까지 훔친 나무꾼은 새신랑이 아니라 죄인이 된 거다. 선녀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잃어버린 날개옷의 주인인 서령선녀는 나무꾼을 붙잡아서 옥반지를 낀 주먹으로 나무꾼의 얼굴을 내리쳤다. 훔친 옷을 돌려달라고 하는데도 나무꾼은 버텼다. "내가 훔쳤다는 증거가 있어?!" 이놈이 강펀치 한 방을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먼. 선녀와 나무꾼은 누가 빨리 나무를 베는지 내기를 하기로 한다. 나무꾼은 설마 선녀가 나보다 나무를 잘 베겠나 싶은 마음에 기세등등했지만, 선녀의 나무 베기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는 건 안 비밀. 선녀는 나무꾼을 이기고 선녀 옷을 되찾음과 동시에, 이 불량한 계획을 꾸민 나무꾼과 사슴을 가만두지 않았다.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두 놈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낱낱이 털어놓게 하고, 나무꾼에게 천 일간 투명 옷을 입을 것으로 벌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옷이라, 남들 눈에는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는 거야. 깔깔깔~ 그리고 사슴에게는 나무꾼과 작당한 죄로 천 일간 입이 묶인 채로 생활할 것을 명했다. 암만, 이래야지. 이렇게 벌을 주어야 당연한 것을 우리가 그동안 만난 「선녀와 나무꾼」 동화에서는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내용이었지, 아마?

 

 

구오 작가의 『선녀는 참지 않았다』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이 책이 기존의 동화와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하게 한다. 우리가 이미 아는 유명한 전래동화 10편을 가져와서, 원작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몰라서도 몰랐지만, 알고서도 말하지 못하고 감당해내야 했던 여자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살펴본다. 나무꾼에게 선녀 옷을 훔치라고 알려준 사슴은 은혜를 갚은 게 아니라 계략을 꾸민 거고, 선녀 옷을 훔쳐서 아내로 맞은 나무꾼은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은 게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다. 비슷한 이야기로는 「서동과 선화공주」가 있다. 선화공주에 관한 헛소문을 퍼트려 선화공주가 궁에서 쫓겨나게 한 서동은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아야 했다. 아버지에게 쫓겨난 선화공주가 울면서 신세 한탄을 할 때 ‘짠’하고 나타나서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가 아내로 삼는다는 원래의 이야기를 확 뒤집었다. 선화공주는 아버지에게 따진다. 왜 자식의 말을 믿지 않고 저잣거리에 떠도는 헛소문을 믿는 것이냐고. 선화공주는 범인 탐색에 나서고, 마를 팔던 서동을 붙잡는다. 그런데 서동의 핑계가 참 어이가 없다. "저는 그저 공주마마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흠모하는 마음에... 흑흑. 그저 실수했을 뿐이옵니다." 뭣이라? 실수? 그 헛소문에 한 사람 인생이 왔다 갔다 하는데 실수우우우우? 선화공주는 서동의 이마에 그의 죄를 잊지 못하게 하는 주홍 글씨를 새긴다. 사람들은 그의 만행을 알게 되고 선화공주를 둘러싼 오해는 풀린다. 세 자매의 지혜로 범인을 찾아내고, 신라의 세 자매는 현명하게 나라를 이끄는 존재가 된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전래동화의 그런 전개가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한다. 누군가에 기대어 인생을 얹어가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새로운 자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 시각에 맞는 동화의 재해석도 이어져야 한다. 아이가 글자를 알고 읽어가기 시작하는 동화 한 편, 두 편. 점점 더 많은 이야기에 빠져 지내게 될 텐데, 처음 잘못 접한 이야기가 그 시작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왕자가 와서 키스해줄 때까지 잠에 빠져 있고, 날개옷 하나 빼앗겼다고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헛소문 하나에 계획에 없던 쫓겨남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구오(俱悟)’는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함께 깨닫다’라는 이름 아래 2015년부터 함께 읽고, 쓰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 토론 모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작가의 필명쯤으로 생각했는데,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생각과 쓰기가 함께한 글이라고 하니 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10편의 동화는 앞서 언급된 선녀와 나무꾼, 선화공주와 서동, 처용, 우렁각시, 장화홍련전, 혹부리 영감, 콩쥐팥쥐전, 박씨전, 반쪽이, 바리데기다. 각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게 각색되었는데,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흥미롭게 깨트려놓는다.

 

「우렁각시」에서는 씩씩하게 농사일을 하는 처녀 혜석이 주인공이다. 열심히 일하는 그녀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집안일 해주고 빨래 해주고 맛있는 식사도 챙겨줄 총각을 만나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일하면서 습관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나랑 살면서, 맛있는 밥과 반찬을 해줄 그런 총각 어디 없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저기 멀리 바닷속에 이런 청년이 딱 준비되어 있었다. 용왕의 아들인 우렁이 총각은 매일 깔끔하게 정리하고 음식을 만드는 게 너무 좋았는데, 아버지인 용왕은 그런 아들을 항상 혼냈어. “지금 사내가 무얼 하는 것이냐!” 이미 익숙해진 규범은 우렁이 총각이 집안일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렁이 총각은 저기 땅 위에서 일을 하는 처녀가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었던 거다. 자기에게 딱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농사를 짓는 혜석에게 다가간 거지.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알콩달콩 자기 스타일에 맞는 일을 해가면서 행복하게 살았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둘의 생활을 좋게 보지 않았다. 남사스럽다는 둥, 혜석이 요물이라는 둥, 우렁이 총각이 미련하고 둔해서 혜석에게 홀렸다는 둥. 둘은 마을 사람들의 편견을 깨주기 위해 초대를 한다. 우렁이 총각은 맛있게 음식을 하고, 그 음식 속에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게끔 하는 묘약’을 넣는다. 그날 이후로 우렁이 총각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변했다. 여자들은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남자들은 농사 외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며 미래를 생각했다.

 

 

나쁜 혹부리 영감에게는 혹을 하나 더 붙여서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때마다 아프게 만들었고, 장화홍련의 새엄마에게는 세상 모든 새엄마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했다. 언젠가부터 새엄마는 계모라고 불리면서, 무조건 아이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못된 엄마로 만들었을까? 계모는 모두 나쁘고 못됐다는 고정관념부터 새로 써야 한다. 장화홍련의 새엄마는 오히려 위기에 빠진 장화와 홍련을 구해주는 현명한 여자로 재등장했다. 홍련은 과거에 급제하여 고을 수령이 되고, 누명을 쓴 장화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장화와 홍련에게 다가가 술수를 부리고 약한 여인으로 대하면서 수작을 걸어보려고 했던 이들을 벌준다. 콩쥐팥쥐의 성별을 여자에서 남자로 바꿔놓는다. 또 박씨전에서는 결말을 바꾸어 허물을 벗고 외모가 달라지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박색이었던 박 씨가 나중에 허물을 벗는다고 하여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될 거로 생각하기 쉬운데, 박 씨의 어질고 현명한 모습이 외모가 달라졌다고 하여 인정받는 게 좀 억울하지 않은가? 외모가 달라도 내면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박 씨는 집안사람들의 구박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장착한 한 명의 인간이었는데, 그 인간다움을 존중받지 못하다가 외모의 변화로 인정받게 된다는 설정 자체가 외모지상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에서 재해석된 박 씨는 허물을 벗었어도 외모가 달라지지 않았고, 덕은 생김새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전쟁으로 붙잡혀가서 되돌아온 여인들은 사람들이 욕할 때, 그녀들은 그저 ‘환향 여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 여인들과 함께 상처 입고 아픈 기억을 지우는 데 애쓰면서 악몽을 벗어내 새로운 삶을 꾸려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바리데기는 어느 노부부에게 거두어져 자랐고, 상인으로 성공한 후에는 학당을 세워 갈 곳 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불러 모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특히 여자아이들)을 거둬서 무엇 하느냐고 말했지만, 바리데기는 상관하지 않았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그녀가 가슴에 한이 된 일이기도 했을 테지. 처음 바리데기는 부모에게 왜 버려졌는지 몰랐다. 그저 형편이 좀 어려웠나보다 싶은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도성에서 신하가 찾아와 바리데기를 붙잡았을 때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다. 딸이라고 필요 없으니 버려놓더니, 이제는 왕과 왕비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그 병을 고칠 사람이 바리데기밖에 없다면서 찾아온 게 화가 났다. 저승의 서천서역국에서 나는 약수를 먹어야만 병이 낫는다고,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하늘이 점지한 바리데기뿐이라나 뭐라나. 딸이라서 버리고, 딸이라서 왕위를 이을 수 없고, 그래서 내쳐지는 운명. 그런데 인제 와서 부모의 병을 고치러 저승의 서천서역국에 다녀오라고? 안 한다. 못 한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공짜로는 못하겠다. 뭔가 내놓아라. 어찌어찌 서천서역국까지 다녀온 바리데기는 스스로 왕이 되고, 성차별 없이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든다. 여인이어서 할 수 없고 거부당하는 세상은 이제 상대하지 않으련다.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았을까? 원님이 꽃신 한 짝을 들고 콩쥐를 찾아가는 일, 서동이 퍼트린 헛소문에 진상을 밝히지 못했던 일, 나무꾼의 절도에 벌하려고 하지 않은 일, 아내가 좋아하는 농사를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집안일을 할 수도 있는 거, 반쪽이에게 업혀 가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만 했던 것 등등. 아니라고, 잘못된 거로 생각하면서도 꺼내놓지 못한 마음속 말들이 왜 가슴 속에서 머물기만 해야 했을까. 학생들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이 페미니즘 전래동화는 말 그대로, 살짝 뒤집으니 이야기의 판이 뒤집어졌다. 여럿이 모여 함께 읽고 토의하고 여성적 시각이 담긴 이야기로 재구성하다 보니, 뭔가 더 적극적인 게 되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왔기에 당연하게 여긴 차별과 편견이, 더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런 의식을 변화하는 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강하게 다가온다. 익숙하게 만나온 전래동화에서 뿌리박힌 가부장적 사회와 그 사회에서 재생산되는 성차별을 없애는데 이 책이 굉장한 힘이 될 것 같다.

 

그냥 재밌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재미있고 통쾌해서 시원하다.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바라봤던 많은 것이 더는 익숙하지 않도록, 그 모든 것을 더 깊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전래동화를 떠올릴 때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면, 왜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흘러가야만 했는지 의문이 든 적이 있었다면, 이야기의 흐름과 다른 생각이 마구 비집고 나온 적이 있었다면, 더 의미 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오랜 시간 불합리하고 차별에 물든 역사가 동화 속에서 더는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기 좋은 글이다. 이렇게 바뀐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아이는 분명,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 것과 다른 의식을 심을 것이다. 불합리하고 억울한 여성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도록,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존재로 성장하기를, 집안일과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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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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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트남 출신 아내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면서, 우는 아이가 겁에 질려있는 걸 쳐다보면서도 폭행을 멈추지 않는 남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봤다. 아이가 보고 싶다면서 같이 살자고 아내를 한국으로 오게 한 남자의 진짜 모습이었다. 아내가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국말을 잘 못 한다고, 가져오라는 물건을 잘못 가져왔다고 폭력을 일삼던 한국인 남편.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닫힌 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알 수 없던 일이었다. 남들에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일, 분명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확인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바로 닫힌 문 안쪽에서 일어나는, 가정 폭력이다.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도 결혼해서 살다 보면 성격이나 문화의 차이로 다툰다.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문화를 겪으며 살아온 다문화 가족에게는 같은 문화를 가지고 살아온 이들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텐데, 그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한 노력은커녕 당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로 분풀이를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재미 한인 작가 정 윤이 쓴 이 소설도 다르지 않았다. 돈 때문에 힘들어서 집을 내놓기로 했던 그날, 경의 집을 향해 걸어오던 나체의 여자. 경의 어머니였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맨발로 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어머니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다. 곧 알게 된 경의 부모님 사건은 고요하던 마을에 큰 이슈로 남는다. 경의 부모님 집에 2인조 강도가 들었고, 그들은 그 집에 있던 사람들을 폭행하고 강간하며 금품을 갈취했다. 강도 중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도주했다. 도주한 범인이 잡히지 않아서 더 두려운 상황.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고, 집을 팔아서 빚을 줄이려고 했던 경의 계획도 변경되었다. 경의 아내 질리언은 당분간 경의 부모님을 모셔와 같이 지내기로 한다.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어서 오랫동안 고생하면서도 철저히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경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경과 그의 부모가 함께 지내야 하는 쪽으로 만들어진다. 어쩔 수 없이, 경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버텨보려 한다. 거리를 두고 싶었던 부모와 한집에서 살게 된 경의 정신은 피폐해진다.

 

집이란 무엇일까. 물리적으로는 의식주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집의 개념은 그 한 가지에 머물지 않는다. 머물 수 있는 곳, 정신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누구나 그런 개념으로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만들려고 한다. 경의 부모님도 그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의 미국, 동양인 이민자가 살아가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낯설고 친근하지 않은 곳,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더 큰 노력을 해야 하는 곳. 그런 환경에서 경의 아버지는 교수 자리까지 얻고, 그 명성과 부를 유지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친목 활동도 한다. 경의 부모는 그곳 한인들에게 한없이 부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떤 목적으로든 가까이 지내면 좋을 사람들이기에 교회라는 공간에서 똘똘 뭉친 관계를 형성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들만의 비밀처럼 간직한 집 안쪽의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의 인생 계획에 없던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강도를 당한 후유증으로 온몸에 상처 입은 이들 3명과 함께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강도에게 강간당했다고 믿은 경의 어머니와 강도에게 묶이고 폭행당한 아버지, 경의 부모님 집에 일하러 왔던 가정부까지 돌봐야 하는 경의 심신은 피곤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서로의 거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경의 모습에, 어쩌면 이들이 다시 정상적인 가족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상상했다. 부모님에게 닥친 이 사건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부모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회복될 거라고 믿었다.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나아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경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못한다. 그는 부모와 화해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번번이 그 기회를 놓친다.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경의 가슴에 머무는 어릴 적의 기억에 그는 부모님에게 다가가는 그 한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 가지 시선을 갖게 된다. 한 가지는 경의 부모님 집에 든 강도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따라가면서 추리소설을 읽는 시선이다. 어쨌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의 마무리는 범인이 잡히는 것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한국인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뿌리박힌 그 문화다. 미국에서 살지만, 그 내면의 한국인 정서가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부모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부모가 우선이다. 부모가 하는 말에 토 달지 마라. 자식이나 가정생활이 모두 부모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올바른 것이라고 가르치고 믿게 하는 것. 세 번째는 타지의 생활에 저절로 선택하게 되는 종교 단체는 한 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 한국 문화를 더 돈독하게 하는 수단과 계기가 된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해도 괜찮은, 소속된 종교단체가 개인의 삶 안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도 이상할 게 없다는 시선. 이 세 가지가 만나니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한국 문화의 어벤져스가 완성된 것만 같다. 그런 환경에서 떨어져 나오고자 애쓴 경의 노력은 그날의 사건으로 물거품이 된다. 여전히 자기 이기심만 펼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며 따르는 어머니, 마치 구원을 위해 등장한 것처럼 그들 가족의 삶에 파고드는 종교인들. 하지만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감춰진, 보이는 것 이면의 모습을 숨긴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의 정서를 알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폭력의 대물림이 결국 폭력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묻고 싶기도 했다. 어느 집이나 문 안쪽의 일은 타인이 다 알 수 없다. 풍문처럼 들리는 이야기로 추측하거나, 아예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하지만 불행보다 행복의 지분이 많게 하는 일은 가족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장 먼저는 그 가족을 구성하는 부부, 부모의 노력일 것이다. 경의 아버지가 경의 어머니에게 이해로 먼저 다가갔다면 이 가족이 몇십 년을 불행하게 보낸 시간은 처음부터 없지 않았을까? 경의 아버지가, 스무 살에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도 못 하면서 남편만을 의지하는 삶을 시작해야 했던 아내를 조금만 살펴봐 주었더라면, 어쩌면 경의 성장 과정도 보통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텐데 말이다. 가족이란 관계가 사랑과 이해로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항상 긴장하고 폭력을 당해야 하는 관계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맞는 것일까. 결국은 경이 겪은 모든 시간과 닮지 않았겠는가.

 

닫힌 문 안쪽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눈앞에서 보는 게 아니고 읽는 것뿐인데도 고통스러웠다.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마음의 여유는 없었고, 남들에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가면을 쓰면서 스트레스는 쌓이고, 그 분노를 폭발시킬 지점이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 때라는 게 안타깝다. 가족은 상하 관계가 아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뒤늦게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해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의 결말이 보여준다.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켜야 한다. 관계 회복의 기회는 계속 오는 게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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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꽉 짜인 스토리에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뭐든 분명한 결말과 범인을 찾게 되는 사건에 길들어서일까. 그동안 미스터리 소설에서 확인하고 싶은 건, 확실한 답이었다. 발생한 사건에서 찾는 범인과 범행동기, 잔인할 정도의 수법에 기가 차는 이야기. 그렇게 하나의 사건은 해결되고 독자는 개운한 결말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특히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그 등줄기 오싹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면 최고의 추리소설이 아니겠는가. 구라치 준의 이번 소설에서는 특히 그 기대가 컸다고 말할 수밖에. 왜냐고? 제목을 좀 봐봐. 기대를 안 하게 생겼나. 그동안 어느 추리소설에서 상상이나 했던 상황이었느냔 말이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이었겠어? 이 정도면 끝내주는 추리소설에 쌍 엄지 추켜들고 대박을 외치게 되는 상황이지.

 

마사키 박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리고 시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대체 뭔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이 걸렸다. 시체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하얀 것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두부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년 12월 초순. 제국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157페이지,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밀실 같은 방에서 한 병사가 죽은 것으로 시작한다. 시체의 주변에는 하얀 두부 조각이 흩어져 있다. 방은 목격자가 나간 뒤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병사 한 명만 죽어있는 걸 빼고는. 아, 흩어진 두부 조각이 있었지. 죽은 이의 뒤통수에는 모서리에 찍힌 흔적이 있다. 아마도 이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모서리? 그 방에서 모서리는 없는데? 별다른 가구도 없고, 도구도 없다. 그렇다면 범행도구는 하나뿐이다. 두부. 그럼 그 두부는 어쩌다가 그 밀실에 들어가게 되었나? 마사키 박사가 숨진 병사에게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버려라!’라고 말하며 야식으로 넣어준 것이다. 그런데 두부가 무슨 힘이 있다고 사람의 뒤통수를 가격할 정도가 될까.

 

이상하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사건은 일어났고, 사람이 죽었다. 범행도구라고 남겨진 게 흩어진 두부뿐이라 단서는 그거 하나다. 그렇다고 두부에서 계속 사건 해결을 하려고 하니 뭔가 분명하게 찾아지는 것도 없다. 오리무중. 어찌 되었든 사건의 기승전결을 찾아야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혹시, 당신은 이런 사건의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그래서 계속 이 사건을 추리하는 등장인물들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끝장을 보고 싶어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시선이 향하는 쪽은 죽은 이가 아니라 두부다. 도대체 왜, 두부는 거기서 그런 형태로 남아있는지, 그것만 찾으면 될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아아아아악~! 답답하도다! 판타지 같은 해석이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단 말인가.

 

 

시신이 있는 곳이었다.

젊은 여성이다.

반듯이 누운 자세라 마치 잠든 것 같다.

옷에도 훼손된 부분이 없다.

평온해 보이는 시체다.

다만 딱 한 가지가 몹시 기이하고 묘했다.

괴상하고 기괴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경만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뭐, 뭐지 이건…….’ (80페이지,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이 작가의 분위기가 원래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신선하면서도 경쾌하다. 이 책에 실린 총 6편의 이야기 중에서 어느 것 하나 특이하지 않은 게 없다. 물론 그 바탕에는 인간의 심리와 어느 지역의 풍습 같은 미신이 작용하는 게 있다. 특히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둘러싸고 작은 케이크 3개가 시신의 머리 둘레로 진열되어 있다. 시신의 입에는 긴 파가 그대로 꽂혀 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살해의 현장이 참 묘하다. 케이크와 파라니. 형사들은 탐문 끝에 용의자를 바로 찾는다. 이제 용의자를 잡아서 취조하면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케이크와 파가 같은 공간에서 묘하게 살해 현장을 장식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은 것은 과학적이고 명쾌한 답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감정적인 것만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살해 동기와 과정을 찾아서는 안 되지만, 또 그게 사건을 설명하는 유일한 답이 되기도 한다.

 

잔뜩 긴장하고 읽으면서 그 오소소한 소름을 즐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서 읽었는데, 첫 이야기부터 그 긴장감은 박장대소로 뒤바뀌었다. 「ABC 살인」 인간의 심리를 참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쇄살인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 피해자는 A 지역에 사는 A, 두 번째 피해자는 B 지역에 사는 B. 누가 봐도 다음 피해자는 예상된다. C 지역에 사는 C일 것이다. 도박으로 유산을 탕진한 주인공은 돈이 궁하다. 자기보다 살짝 더 받은 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하자 동생을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ABC 연쇄 살인에 편승하여 동생을 죽여 버리자. 그럼 자기의 단독 범행은 연쇄살인에 묻어갈 수 있고, 범행이 성공했을 경우 동생의 재산도 갖고 보험금도 받고 일석이조. 딱 좋아. 그런데 주인공의 살인 계획에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등장한다. 처음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계속되는 방해꾼(?)들에 주인공은 당황한다. 어라? 이거 뭐지? 한번, 두 번. 계속되는 방해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그러면서도 씁쓸한 기운을 감출 수가 없다. 인간에게 내재한 살해와 분노의 감정이 이 정도로 많았던가? 인과응보처럼, 동생을 죽이려고 했던 주인공도 그 누군가의 살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변수를 간과했다. 자기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인간이 선택한 편리함 이면에 자리한 거대한 오류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내 편애」는, 인간이 발명한 것에게 역으로 공격당하는 기분이 든다. 인간이 설정한 인공지능이 인간이 해야 할 거의 모든 일을 대신에 한다. 특히 분명하게 선을 그어놓고 처리해야 할 일들에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가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일에 투입된다. 잘 됐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 앞에서 주춤할 필요가 없으니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여기서 판단 오류가 생겼다. 인공지능이라고 완벽할 수가 없던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지만, 인간보다 못한 감정으로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무감정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한다. 평등과 균형을 위해 도입한 시스템에서 오히려 인간이 처리할 때보다 더한 불평등과 오해가 쌓이게 된다. 과연 인간이 발명한 시스템은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게 맞는 걸까? 기계의 편애로 엉망이 된 생활을 벗어나고픈 주인공의 분투가 눈물겹다.

 

휴식하려고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간 주인공이 눈여겨보게 된 고양이의 눈빛(「밤을 보는 고양이」)은 인간이 보지 못한 부분의 흔적을 쫓는다. 듣고 보는 것 이상으로 인간에게 흔적을 느끼게 하는 후각. 그리고 그런 고양이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 살펴보며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주인공이다. 누군가에게 가격당한 이를 대신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읽게 되는 틈(「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은 인간의 욕망이 어느 정도의 행동까지 하게 하는지 묻는다. 사실 그 내막을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지 말자고 묵언의 약속을 하는 게 또 인간이 아니겠는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규정을 어기는 일은 인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지키면서 살자.

 

하마오카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저분한 갈색으로 시든 담쟁이덩굴이 얽힌 폐건물을 보면서 멍하니 생각한다. 네코마루 선배는 연구원 중 누군가가 농땡이를 치러 이곳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천적인 의견이다. 한편 가시와 씨는 수상한 사람이면 무섭다고 말했다. 여성스러운 생각이다. 산본마쓰 연구원은 정말로 스파이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연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다운 견해다. 처지에 따른 세 가지 생각. 이렇게 의견이 나뉘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257페이지,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때로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말하는 게 문제의 답이 되기도 한다. 마치 다양한 장르를 한데 모아놓은 것처럼 펼쳐지는 6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궁금했다가, 기대했다가, 어이없다가, 씁쓸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가...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게, 어느새 논리를 꽉 채운 구성으로 뒤바뀌기도 하는 상황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장면을 상상했다가 코믹한 상황에 웃음도 안 나는 뒤통수에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거 미스터리 맞아?’ 하면서. 아마도 그게 이 작가의 매력인 듯하다. 골라 먹는 맛이 다양해서 찾는 뷔페처럼, 의외의 순간에 찾게 되는 답이 더 즐거운 것처럼, 느슨하게 마음 놓고 있다가 툭 치고 들어오는 긴장감처럼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6편의 이야기가 너무 개성이 넘쳐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단편집 읽는 다양한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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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 어린이과학동아 1년 정기구독 (24권)
동아사이언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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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선물용으로 구매. 초등학생 눈높이에 딱 맞는 과학이야기가 흥미로움. 정기구독으로 매번 구매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딱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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