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나무를 하던 가난한 나무꾼은 풀숲에서 뛰쳐나온 사슴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얼른 나뭇가지 더미 속에 숨겨주었다. 사냥꾼이 와서 사슴의 행방을 물었지만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무꾼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슴은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보답하겠다면서 나무꾼에게 소원을 물었다. 나무꾼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사슴에게 평소 바라던 소원을 말했다. "고운 색시를 얻어 장가를 갔으면 좋겠어!" 그에 사슴은 오늘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왔을 것이니, 나무꾼에게 그중 한 선녀의 옷을 훔치라고 했다.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없으니 그 선녀를 색시 삼으라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절대 선녀 옷을 내어주면 안 된다는 경고도 함께. 나무꾼은 사슴의 말대로 선녀들이 목욕한다는 폭포로 향했고, 거기서 선녀 옷을 한 벌 훔쳤다. 이제 선녀 옷의 주인만 찾으면 나무꾼은 예쁜 색시도 얻고 재밌게 살겠지...

 

...라고 우리가 알던 동화는 잘못됐다. 선녀들의 목욕을 훔쳐보고 옷까지 훔친 나무꾼은 새신랑이 아니라 죄인이 된 거다. 선녀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잃어버린 날개옷의 주인인 서령선녀는 나무꾼을 붙잡아서 옥반지를 낀 주먹으로 나무꾼의 얼굴을 내리쳤다. 훔친 옷을 돌려달라고 하는데도 나무꾼은 버텼다. "내가 훔쳤다는 증거가 있어?!" 이놈이 강펀치 한 방을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먼. 선녀와 나무꾼은 누가 빨리 나무를 베는지 내기를 하기로 한다. 나무꾼은 설마 선녀가 나보다 나무를 잘 베겠나 싶은 마음에 기세등등했지만, 선녀의 나무 베기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는 건 안 비밀. 선녀는 나무꾼을 이기고 선녀 옷을 되찾음과 동시에, 이 불량한 계획을 꾸민 나무꾼과 사슴을 가만두지 않았다.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두 놈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낱낱이 털어놓게 하고, 나무꾼에게 천 일간 투명 옷을 입을 것으로 벌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옷이라, 남들 눈에는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는 거야. 깔깔깔~ 그리고 사슴에게는 나무꾼과 작당한 죄로 천 일간 입이 묶인 채로 생활할 것을 명했다. 암만, 이래야지. 이렇게 벌을 주어야 당연한 것을 우리가 그동안 만난 「선녀와 나무꾼」 동화에서는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내용이었지, 아마?

 

 

구오 작가의 『선녀는 참지 않았다』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이 책이 기존의 동화와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하게 한다. 우리가 이미 아는 유명한 전래동화 10편을 가져와서, 원작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몰라서도 몰랐지만, 알고서도 말하지 못하고 감당해내야 했던 여자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살펴본다. 나무꾼에게 선녀 옷을 훔치라고 알려준 사슴은 은혜를 갚은 게 아니라 계략을 꾸민 거고, 선녀 옷을 훔쳐서 아내로 맞은 나무꾼은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은 게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다. 비슷한 이야기로는 「서동과 선화공주」가 있다. 선화공주에 관한 헛소문을 퍼트려 선화공주가 궁에서 쫓겨나게 한 서동은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아야 했다. 아버지에게 쫓겨난 선화공주가 울면서 신세 한탄을 할 때 ‘짠’하고 나타나서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가 아내로 삼는다는 원래의 이야기를 확 뒤집었다. 선화공주는 아버지에게 따진다. 왜 자식의 말을 믿지 않고 저잣거리에 떠도는 헛소문을 믿는 것이냐고. 선화공주는 범인 탐색에 나서고, 마를 팔던 서동을 붙잡는다. 그런데 서동의 핑계가 참 어이가 없다. "저는 그저 공주마마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흠모하는 마음에... 흑흑. 그저 실수했을 뿐이옵니다." 뭣이라? 실수? 그 헛소문에 한 사람 인생이 왔다 갔다 하는데 실수우우우우? 선화공주는 서동의 이마에 그의 죄를 잊지 못하게 하는 주홍 글씨를 새긴다. 사람들은 그의 만행을 알게 되고 선화공주를 둘러싼 오해는 풀린다. 세 자매의 지혜로 범인을 찾아내고, 신라의 세 자매는 현명하게 나라를 이끄는 존재가 된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전래동화의 그런 전개가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한다. 누군가에 기대어 인생을 얹어가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새로운 자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 시각에 맞는 동화의 재해석도 이어져야 한다. 아이가 글자를 알고 읽어가기 시작하는 동화 한 편, 두 편. 점점 더 많은 이야기에 빠져 지내게 될 텐데, 처음 잘못 접한 이야기가 그 시작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왕자가 와서 키스해줄 때까지 잠에 빠져 있고, 날개옷 하나 빼앗겼다고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헛소문 하나에 계획에 없던 쫓겨남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구오(俱悟)’는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함께 깨닫다’라는 이름 아래 2015년부터 함께 읽고, 쓰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 토론 모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작가의 필명쯤으로 생각했는데,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생각과 쓰기가 함께한 글이라고 하니 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10편의 동화는 앞서 언급된 선녀와 나무꾼, 선화공주와 서동, 처용, 우렁각시, 장화홍련전, 혹부리 영감, 콩쥐팥쥐전, 박씨전, 반쪽이, 바리데기다. 각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게 각색되었는데,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흥미롭게 깨트려놓는다.

 

「우렁각시」에서는 씩씩하게 농사일을 하는 처녀 혜석이 주인공이다. 열심히 일하는 그녀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집안일 해주고 빨래 해주고 맛있는 식사도 챙겨줄 총각을 만나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일하면서 습관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나랑 살면서, 맛있는 밥과 반찬을 해줄 그런 총각 어디 없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저기 멀리 바닷속에 이런 청년이 딱 준비되어 있었다. 용왕의 아들인 우렁이 총각은 매일 깔끔하게 정리하고 음식을 만드는 게 너무 좋았는데, 아버지인 용왕은 그런 아들을 항상 혼냈어. “지금 사내가 무얼 하는 것이냐!” 이미 익숙해진 규범은 우렁이 총각이 집안일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렁이 총각은 저기 땅 위에서 일을 하는 처녀가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었던 거다. 자기에게 딱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농사를 짓는 혜석에게 다가간 거지.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알콩달콩 자기 스타일에 맞는 일을 해가면서 행복하게 살았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둘의 생활을 좋게 보지 않았다. 남사스럽다는 둥, 혜석이 요물이라는 둥, 우렁이 총각이 미련하고 둔해서 혜석에게 홀렸다는 둥. 둘은 마을 사람들의 편견을 깨주기 위해 초대를 한다. 우렁이 총각은 맛있게 음식을 하고, 그 음식 속에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게끔 하는 묘약’을 넣는다. 그날 이후로 우렁이 총각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변했다. 여자들은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남자들은 농사 외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며 미래를 생각했다.

 

 

나쁜 혹부리 영감에게는 혹을 하나 더 붙여서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때마다 아프게 만들었고, 장화홍련의 새엄마에게는 세상 모든 새엄마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했다. 언젠가부터 새엄마는 계모라고 불리면서, 무조건 아이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못된 엄마로 만들었을까? 계모는 모두 나쁘고 못됐다는 고정관념부터 새로 써야 한다. 장화홍련의 새엄마는 오히려 위기에 빠진 장화와 홍련을 구해주는 현명한 여자로 재등장했다. 홍련은 과거에 급제하여 고을 수령이 되고, 누명을 쓴 장화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장화와 홍련에게 다가가 술수를 부리고 약한 여인으로 대하면서 수작을 걸어보려고 했던 이들을 벌준다. 콩쥐팥쥐의 성별을 여자에서 남자로 바꿔놓는다. 또 박씨전에서는 결말을 바꾸어 허물을 벗고 외모가 달라지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박색이었던 박 씨가 나중에 허물을 벗는다고 하여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될 거로 생각하기 쉬운데, 박 씨의 어질고 현명한 모습이 외모가 달라졌다고 하여 인정받는 게 좀 억울하지 않은가? 외모가 달라도 내면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박 씨는 집안사람들의 구박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장착한 한 명의 인간이었는데, 그 인간다움을 존중받지 못하다가 외모의 변화로 인정받게 된다는 설정 자체가 외모지상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에서 재해석된 박 씨는 허물을 벗었어도 외모가 달라지지 않았고, 덕은 생김새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전쟁으로 붙잡혀가서 되돌아온 여인들은 사람들이 욕할 때, 그녀들은 그저 ‘환향 여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 여인들과 함께 상처 입고 아픈 기억을 지우는 데 애쓰면서 악몽을 벗어내 새로운 삶을 꾸려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바리데기는 어느 노부부에게 거두어져 자랐고, 상인으로 성공한 후에는 학당을 세워 갈 곳 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불러 모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특히 여자아이들)을 거둬서 무엇 하느냐고 말했지만, 바리데기는 상관하지 않았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그녀가 가슴에 한이 된 일이기도 했을 테지. 처음 바리데기는 부모에게 왜 버려졌는지 몰랐다. 그저 형편이 좀 어려웠나보다 싶은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도성에서 신하가 찾아와 바리데기를 붙잡았을 때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다. 딸이라고 필요 없으니 버려놓더니, 이제는 왕과 왕비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그 병을 고칠 사람이 바리데기밖에 없다면서 찾아온 게 화가 났다. 저승의 서천서역국에서 나는 약수를 먹어야만 병이 낫는다고,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하늘이 점지한 바리데기뿐이라나 뭐라나. 딸이라서 버리고, 딸이라서 왕위를 이을 수 없고, 그래서 내쳐지는 운명. 그런데 인제 와서 부모의 병을 고치러 저승의 서천서역국에 다녀오라고? 안 한다. 못 한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공짜로는 못하겠다. 뭔가 내놓아라. 어찌어찌 서천서역국까지 다녀온 바리데기는 스스로 왕이 되고, 성차별 없이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든다. 여인이어서 할 수 없고 거부당하는 세상은 이제 상대하지 않으련다.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았을까? 원님이 꽃신 한 짝을 들고 콩쥐를 찾아가는 일, 서동이 퍼트린 헛소문에 진상을 밝히지 못했던 일, 나무꾼의 절도에 벌하려고 하지 않은 일, 아내가 좋아하는 농사를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집안일을 할 수도 있는 거, 반쪽이에게 업혀 가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만 했던 것 등등. 아니라고, 잘못된 거로 생각하면서도 꺼내놓지 못한 마음속 말들이 왜 가슴 속에서 머물기만 해야 했을까. 학생들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이 페미니즘 전래동화는 말 그대로, 살짝 뒤집으니 이야기의 판이 뒤집어졌다. 여럿이 모여 함께 읽고 토의하고 여성적 시각이 담긴 이야기로 재구성하다 보니, 뭔가 더 적극적인 게 되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왔기에 당연하게 여긴 차별과 편견이, 더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런 의식을 변화하는 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강하게 다가온다. 익숙하게 만나온 전래동화에서 뿌리박힌 가부장적 사회와 그 사회에서 재생산되는 성차별을 없애는데 이 책이 굉장한 힘이 될 것 같다.

 

그냥 재밌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재미있고 통쾌해서 시원하다.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바라봤던 많은 것이 더는 익숙하지 않도록, 그 모든 것을 더 깊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전래동화를 떠올릴 때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면, 왜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흘러가야만 했는지 의문이 든 적이 있었다면, 이야기의 흐름과 다른 생각이 마구 비집고 나온 적이 있었다면, 더 의미 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오랜 시간 불합리하고 차별에 물든 역사가 동화 속에서 더는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기 좋은 글이다. 이렇게 바뀐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아이는 분명,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 것과 다른 의식을 심을 것이다. 불합리하고 억울한 여성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도록,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존재로 성장하기를, 집안일과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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