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보실 분 예매해드립니다.

등록된 예매권이라, 제가 예매해서 확인 문자 보내드려요.

 

벌새

CGV 2매

조조불가. 좌석지정불가. (CGV 홈페이지 아니고 타사이트 예매라 좌석 지정이 안됩니다.)

내일 개봉입니다.

 

내일(29일) 정오까지만 댓글 확인 및 예매 가능합니다.

계속 댓글 확인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요.

 

관람 시간 정하시고 댓글 남겨주세요.

비밀글로 관람 시간과 연락처 남겨주시면, 제가 확인하는대로 예매해서 문자 보내드릴게요.

 

 

* 29일 오전 0시 30분 기준으로, 1매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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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9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9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9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30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30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빨강 머리 앤 걸 클래식 컬렉션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고정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왜 앤일까? 어느 순간부터 앤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어린이 동화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에게 다가오는 앤은 어떤 존재이기에 그런 이야기가 계속 나올까 궁금했다. 그냥 초록지붕집으로 온 고아 소녀의 이야기일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거의 일주일 동안 『빨강 머리 앤』을 읽었다. 어렵거나 긴 대하소설도 아니었는데, 읽다가 보니 시간이 그렇게 걸리더라. 그렇게 다 읽고 나서 알았다. 왜 어른이 된 우리가 자꾸만 앤을 찾아보고 싶었는지를. 아주 오래전 만났던 앤의 이야기에서 미처 찾지 못한 감정이 어떻게 다시 찾아오는지를.

 

일할 남자 아이가 필요했던 초록지붕집에 상상도 못한 여자 아이가 온다. 앤 셜리. 그냥 'Ann'으로 부르면 안 된다. 반드시 끝에 'e'를 붙여서 Anne이라고 불러줘야 한다. 아주 우아하게 말이다. 처음 매슈 아저씨가 앤을 데리고 초록지붕집으로 갔을 때, 마릴라 아줌마의 반대로 다음 날 바로 고아원으로 돌아갈 거로 생각했다. 아이를 한 명 키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계획했던 남자아이여야 했으니까. 하룻밤 사이 앤의 매력에 빠진 매슈와 마릴라는 앤과 함께 살기로 한다. 재잘재잘, 끝도 없이 말하는 수다쟁이 앤의 존재는, 두 어른만 지내던 고요한 집에 배경 음악이 된다. 보이는 모든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한껏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싶은 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까? 아니야, 이 정도로는 이 마음을 다 말할 수가 없어.' 혹시나 이 아이가 기죽지 않을까 걱정했다. 마치 공개 입양처럼, 초록지붕집으로 온 고아 소녀라는 것을 마을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앤의 긍정 마인드는 이곳에서의 삶을 피어오르게 한다.

 

“저는 이 길을 즐기기로 마음먹었어요. 제 경험에 따르면, 마음만 굳게 먹으면 어떤 일도 즐길 수 있어요.”

 

어렸을 적 앤을 보면서 그냥 앤의 성격이 이런가 보다 생각했던 상황들이 인제 와서 다시 읽으니 하나씩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감정과 상황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냥 유쾌한 아이가 아니었다. 앤의 가슴속에 새겨진 말들이나 상처들이 이제는 보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절망하는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초반부의 이 문장이 다르게 다가왔다. 입양이 취소되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심장은 어떤 것일까? 절망과 슬픔으로 주변의 것은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앤에게는 입양 취소라는 슬픔보다 이 아름다운 길을 지금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임무가 생긴 듯하다. 입양이 취소되는 건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왔던 이 길을 되돌아가야 할 상황이 오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순간, 앤에게 이 아름다운 길이 보인다. 지금 아니면 봐두지 못할 세상의 아름다움 하나를 이렇게 간직하고 싶었다. 뜻밖에도 앤은 매튜와 마릴라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여전히 실수투성이고, 말도 많아서 시끄럽고, 자존심이 강해 감정을 잘 누르지도 못하지만, 서서히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스며든다. 그러면서 앤은 배운다. 세상과 가족과 친구와 꿈과 여러 가지를.

 

내 기억 속의 『빨강 머리 앤』은 한 고아 소녀의 성장기였다. 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로 기억했다. 어떤 로맨스 소설의 설정처럼 길버트와 앙숙처럼 지내다가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될까 설레면서 결말을 기다렸다. 이미 다양한 버전의 앤을 만났으니, 다시 읽게 된 지금 새로운 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너무 유명한 앤이니까 새롭게 느끼게 될 뭔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앤을 만났던 그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그때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야기들이 보여서 너무 놀랐다. 그때는 미처 살피지 못한 두 사람의 삶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매슈와 마릴라 말이다.

 

처음에는 앤에게 매슈와 마릴라가 필요한 존재였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앤은 매슈와 마릴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두 어른, 점점 노인이 되어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전에는 이 이야기에서 보지 못했던 노년의 삶이 보여서 서글펐다. 천방지축 소녀에서 점점 숙녀를 자라는 앤을 보는 두 사람은 뿌듯했다. 특히 앤을 보면서 사랑을 느끼는 마릴라의 마음 변화가 놀라우면서도, 너무 당연한 변화여서 친근하고 애틋했다. 가끔 조카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느새 이렇게 자랐을까 싶어서 놀라면서도, 이 귀여운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때의 내 모습을 마릴라에게서 봤다. 나이 들어가고 몸이 늙어가는 걸 자각할 때마다 서글프다. 이 아이들의 지금 모습이 조금만 천천히 갔으면, 이 어린 모습을 조금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앤을 바라보던 마릴라가 어떤 날 했던 말처럼, 사랑하지만 서글픈 상실감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마릴라가 마음을 열고 사랑하게 된 어린아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제 키 크고 눈빛이 진지한, 이마에는 신중함이 드러나고 고개는 꼿꼿하게 든 열다섯 살 소녀가 있었다. 마릴라는 그 어린아이를 사랑한 것처럼 이 소녀도 사랑했지만 기이하고 서글픈 상실감은 어쩔 수 없었다."

 

 

100년이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읽으면서 하나씩 찾아내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소소하면서도 다양하게, 점점 부피를 키워가는 감동으로 남는다. 초록지붕집에 남게 된 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사랑을 준다. 집 근처의 숲에도, 다락방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도, 마치 목숨이라도 걸 것만 같은 우정에도, 앤에게 사랑을 주는 많은 사람에게도. 때로는 한 페이지 넘게 앤의 말이 계속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서 어떻게 이 아이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귀가 시끄러웠는데, 나도 모르게 서서히 앤의 수다에 중독이 된다. 아마 그 많은 말이 잘난 척이었으면 괴로웠을 텐데, 앤을 보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의 길을 엿본 것만 같다. 빨강 머리가 콤플렉스였고, 자기 얼굴의 주근깨가 보기 싫었던 아이가 너무도 당당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까지 하더라. 자기 삶을 하나씩 채워가는 앤의 성장이 마치 하나의 성장 교과서로 보였다. 누구나 다 앤과 같은 태도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앤의 시간을 보면서 어느 것 하나쯤은 닮은 듯 배우고 싶어지는 거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을까? 나는 앤이 바라는 것을 이루고자 미친 듯이 노력하는 열정이 닮고 싶었고, 길버트에게 뒤늦은 사과를 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초록지붕집에 머물기로 했을 때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인생 계획을 수정하는 긍정이 부러웠다. 언제나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던 순간이 부끄러워질 만큼, 앤이 찾아가는 희망이 사랑스러웠다. 아마도 앤의 주변 사람들은 다 알았을 것이다. 앤이 부르는 감사와 긍정과 사랑이 그들에게도 그대로 퍼지고 있었다는 것을. 결국, 모두가 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든 겉모습이 얼마나 변하든 여기는 달라지지 않아요. 깊은 곳에서 저는 언제나 아주머니의 앤이에요, 평생토록 날마다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와 그린게이블스를 더욱더 사랑하는 앤이요."

 

어느 에세이를 읽으면서 앤을 소환하는 걸 보고, 아직 더 자라고 싶은 작가의 투정 같은 바람으로만 여겼던 순간이 있다. 동화 속 캐릭터는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억쯤으로 남겨두어야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앤이 이렇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왜 삶의 힘든 순간마다 앤을 부르고 싶었는지, 왜 상상력을 뽐내는 앤의 긍정을 닮고 싶었는지를 말이다. 어떤 순간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 부정적인 마음, 절망스러운 슬픔, 다시 일어서야 하는데 주저앉기만 하게 될 때. 세상을 대하기가 버거워질 때마다 앤을 불러오고 싶을 것 같다. 삶의 힘든 순간을 잠깐 앤에게 기대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좋을 것 같다.

 

 

*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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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식기 전에 커피가 식기 전에 시리즈
가와구치 도시카즈 지음, 김나랑 옮김 / 비빔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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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다. 그렇게 귀찮은 규칙이 있는데도, 찻집 푸니쿨리 푸니쿨라는 그 전설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마 성가신 규칙을 무시하는 것보다 자기가 확인하고 싶은 그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더 크기 때문이겠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보통 이런 설정을 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개 과거로 돌아가 어느 순간을 변화시키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바뀐 과거의 영향으로 현재도 바뀌는, 뭐 이런 내용이 대부분 아니었나?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 그냥 과거의 그 순간을 구경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어떤 상황을 바꾸고 싶기 때문인 경우였다. 현실에서 마주한 불행 같은 것을 없애고 싶어서, 그때 그 선택을 바꾼다면 현재의 불행도 달라졌겠지 싶은 확신 같은 바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찻집의 규칙에는 과거로 돌아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그럼 무엇을 기대하고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일까.

 

‘현실이 바뀐 게 아니야. 바뀐 건 두 사람이야. 고타케 씨와 히라이 씨가 과거로 돌아가서 달라진 건 바로 ’마음‘이야.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고타케 씨는 후사기 씨와 부부로 함께하는 시간을 되찾았고, 히라이 씨는 여관을 잇겠다는 여동생의 꿈을 이뤘어. 그건 그들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야…….’

 

그렇다. 찻집의 마법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무언가를 바꿔놓기 위한 게 아니었다. 현실을 바꿔놓을 수는 없지만, 어떤 시간을 보고 온 우리의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바뀐 마음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데 분명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고, 과거를 보고 오기 전의 현재와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갈 것이다. 찻집의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바꿀 수 없는 과거 같은 것은 그냥 지켜보기만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지켜본 잠깐의 시간으로 현재의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돌이켜보게 한다는 것.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것이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거였다. 눈물과 후회와 감동을 안고 돌아오는 과거로의 짧은 시간 여행이 현재의 우리에게 엄청난 위로를 주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다. 바꾸고 싶은 과거에 연연하면서 ‘만약’을 생각하는 것보다, 바꿀 수 없지만 현재의 삶을 돌보는 ‘마음’을 만나는 시간을 떠올려 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어느 순간을 돌이키고 싶은 우리에게 묻는다.

 

“자,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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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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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8페이지)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일방적으로 엄마가 바라보는 딸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추측했다. 내 딸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시선으로 더 가깝고 애틋한 느낌이 이 소설을 가득 채웠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한없이 따뜻한 애틋함과는 거리가 있다. 딸이 아니라, 여자의 삶을 말하는 느낌이 더 큰 소설이다. 하지만 '여자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더 많이 얹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 속 여자의 삶이 적나라하게 비치는 소설이다. 동성애자 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엄마는 자기가 배워온 대로, 살아왔던 대로 딸이 따라와 주기를 바라지만, 어디 자식이 내 맘대로 되는 존재였던가. 무엇보다, 삶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소설이 풀어갈, 결국 다다를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화자인 '나'는 노인 요양보호사로 요양원에서 일한다. 어느 날, 딸이 부탁한 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영부영 딸과 딸의 파트너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자기가 사는 집으로 들어온 딸과 딸의 파트너가 못마땅하지만, 몇 달 치의 생활비를 미리 받은 상태라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여유 있는 삶이 아니었던 '나'는 미리 받은 월세 겸 생활비로 위층을 수리하는 데 다 썼다. 하지만 이 이상한 동거가 단지 딸에게 내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서로 이해 못 하는 상대의 마음을 가끔은 받아들이기도 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면서 이들의 동거는 계속된다.

 

엄마는 바란다. 자신의 부족한 삶에 빗대어 내 딸이 나처럼 살지 않기를, 조금은 부유하고 여유 있게 살기를,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을 가진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을 만들어가기를, 사랑 하나에 목숨 거는 게 아니라 평온한 일상을 만들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통 '정상'이라고 부르는 삶을 만들어야 할 텐데, 딸의 동성애는 그런 의미로 엄마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다. 자기 일을 신경 쓰고 사는 것도 힘들고 팍팍한데 다른 이의 삶을 위해 같이 나서서 싸우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고요하고 안전하게 사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오지랖 부리지 말고 자신만을 위한 선택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딸은 번번이 엄마의 그런 바람을 벗어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겪는 불합리한 일 처리를 보면서, 을의 처지로 별다른 항의조차 못 하는 자신의 인생이 비루해서, 딸은 자신과 다른 생활을 영위하기 바라는 엄마였다. 그런데 딸이 동성애자로 살면서 겪는 불합리한 일들을 보며 엄마의 불안과 불만은 커진다. 내 딸이, 내 자식이 왜...

 

단순하게 생각하면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한숨과 욕심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속내를 들여다볼수록 커다란 그림이 다시 그려진다.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돌보는 '젠'은 아이들의 입양과 후원으로 평생을 바친 여자다. 훌륭하다고 칭송받고 존경받았던 여자의 현재는 치매 걸린 노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움뿐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바쳐 봉사의 삶을 걸었던 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요양원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지내는, 먹을 것을 탐내는 치매 노인으로 남았을 뿐이다. 젠을 돌보면서 엄마는 당신 딸의 인생을 겹쳐봤을지도 모른다. 내 딸이,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동성의 애인과 평생 살아갈지도 모르는데. 누군가 가족이라고 할 사람도 없고 힘이 되어주지도 못하는 노년의 삶을 맞이할 거로 생각하면, 딸의 현재를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던 거다. 그러니까 엄마가 걸어온 보통이고 정상이라 여기는 여자의 삶은 남편과 아이가 존재하는, 누군가 의지가 되고 돌봐줄 나중이 그려지는 거였다. 불합리함을 위해 싸우며 온몸에 멍이 들고 다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보호 아래 든든한 일상을 누리는 것. 그런 인생을 위해서는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로 만들어진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

 

엄마가 겪어온 인생에서 서글펐던, 중심에서 밀려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들 그대로 목격했는데, 딸이 그 대상이 되어가려는 걸 막을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과 걱정. 엄마의 바람을 모르는 건 아닐 테지만, 딸이 가고자 하는 세상은 또 다른 곳이었으니... 그렇게 이해의 선을 넘지 못하고 싸움의 연속인 일상에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성의 삶이 이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렇게 계속 흘러가도록 둘 수 없는 대책을 위해 온몸으로 말하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세상에 스미지 못하고 소수자의 삶을 이어가려는 딸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내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딸의 외침을 이해하고 싶기도 한 엄마의 마음과 시선을 그대로 담은 소설이다. 그 시선을 따라가면서 변하는 건 오히려 엄마였다. 딸의 선택과 행동에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의문 '왜?'를 찾아가는 길.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면서 그 안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삶의 현실적인 장면들을 그대로 고발한다. 이해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의 많은 일을 엄마가 확인한다. '내 딸이 이런 세상을, 이런 마음으로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이해의 언저리쯤 닿았을까? 사실 이해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일지도, 타인의 이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재어볼 필요가 없는 일은 아니었을까. 각자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너무도 다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는 시간에 애타게 바라는 건 역시 그 이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그 시간이 닿으려 애쓰는 곳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내가 하는 최선의 이해가 상대에게 닿는 지점.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딸이, 딸의 파트너가, 젠이 가 닿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삶의 최선이었을 테지.

 

이 애들이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그곳에 서서 이 애들이 무엇을 보는지, 보려고 하는지, 보게 될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밥알은 좀처럼 삼켜지지 않고 나는 울컥거리며 치솟는 뜨거운 것들을 계속 삼킨다. (149~150페이지)

 

노년에 다다른 여자의 삶은 어떨까, 하는 걱정과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어도, 세상을 위해 애쓴다고 살아왔어도 우리를 기다리는 노년은 소설에서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딸의 태도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읽을수록 엄마의 시선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 좀 살아본 여자의 한숨 섞인 목소리는 현실이었으니... 페이지를 넘길수록 세상이 혐오하고 배제했던 딸의 인생을 엄마가 품어주는 게 눈에 보인다. 타인에게 거부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엄마가 보듬고 배려해주는 시간으로 거듭난다. 엄마라는 존재가 그런 것일까. 소설의 제목과는 다르게, 결국 엄마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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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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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담긴 짧은 글들이 재밌다. 뭔가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그의 하루하루는 뭔가 자잘하고 말할 게 많은 이야기가 가득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소박한 그의 시간이 이렇게 이야기가 되고 누군가에게 흥미로움과 웃음을 만드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니라,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에 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는 거다.

 

저자가 1970~1978년까지 보낸 시간의 기록이다. 미국 몬태나와 일본 도쿄에 머물던 그의 시간에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미국과 일본에 머물던 그의 시간은 그리 밝은 분위기로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민낯을 보는 느낌은 오히려 그의 문장들이 더 가깝게 와 닿게 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때로는 상황에 맞게 포장해야 할 때도 있고, 침묵해야 할 때도 있는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도 되는 순간들을 목격한 것만 같다. 이런 기분, 이런 쓸쓸함을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편안함 같은 거 말이다. 왜 굳이 두 도시(실제로는 두 도시의 이야기만은 아니지만)의 시간일까 싶었다. 그는 미국이 자유주의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서 일본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말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변함없는 건 인간관계에서 보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나이 들어가는 슬픔을 언급한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겠지.

 

때로는 우리가 그곳에 존재할 수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눈을 뜨기도 전에 사라지는 날. (99페이지, 우리가 눈을 뜨기도 전에 사라지다)

 

살아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생의 화두를 그만의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이야기가 소박하면서도 즐겁다. 다양한 소재가 일상을 꽉꽉 채운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생각들을 쏟아내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가 새로운 세계로 맞이하고자 떠났던 일본은, 그의 생각만큼 삶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낯선 외국 생활이 그의 상실과 갈망을 해소해줄 거로 믿고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겪은 이국에서의 삶은 그를 더 공허하게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또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도 없이 만나는 인연들 사이에서 내 곁에 영원히 머무는 이는 없다. 가장 먼저 맺은 인연인 가족도 언젠가는 이별하지 않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그렇게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매 순간 또 다른 인연을 맺을 준비를 하고 또 맺어간다. 그러면서 또 잃어가고 얕아지는 것처럼 스치는 인연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에서 풀어내는 그 관계의 흐름도 비슷하다. 저자는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연극 무대에서 본 노인 분장의 배우 얼굴에서 노년의 쓸쓸함을 느낀다.

 

수록된 131편의 글에서 풍기는 서늘함이 오히려 저자를 애틋하게 바라보게 한다. 누구나 비슷하게 갖는 감정 앞에서 한 번쯤은 이렇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순간 있지 않을까. 누가 대꾸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 거르지 않고 한번 다 꺼내놓고 싶은 마음이 폭발할 때. 아마도 저자는 그런 작은 순간들의 소소한 기록들이 이 책 하나로 뭉쳐 거대한 감정을 쏟아낸 건지도 모르겠다.

 

앞서 출간된 저자의 작품들을 완독하지 못해서, 그의 작품이 꽤 어렵다는 생각만 했다. 왜 이렇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을까, 이 이름을 한 권쯤 완독하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싶어서 항상 궁금했던 작가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읽다가 만 그의 작품들을 읽을 마음이 생겼다.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이 책의 짧은 이야기들이 그의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을 더 가깝게 들리게 한다. 아마 읽다가 만 그 순간보다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가 하고 싶은 더 많은 말을 담은 것만 같은 그의 장편을 제대로 읽어볼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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