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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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담긴 짧은 글들이 재밌다. 뭔가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그의 하루하루는 뭔가 자잘하고 말할 게 많은 이야기가 가득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소박한 그의 시간이 이렇게 이야기가 되고 누군가에게 흥미로움과 웃음을 만드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니라,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에 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는 거다.

 

저자가 1970~1978년까지 보낸 시간의 기록이다. 미국 몬태나와 일본 도쿄에 머물던 그의 시간에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미국과 일본에 머물던 그의 시간은 그리 밝은 분위기로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민낯을 보는 느낌은 오히려 그의 문장들이 더 가깝게 와 닿게 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때로는 상황에 맞게 포장해야 할 때도 있고, 침묵해야 할 때도 있는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도 되는 순간들을 목격한 것만 같다. 이런 기분, 이런 쓸쓸함을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편안함 같은 거 말이다. 왜 굳이 두 도시(실제로는 두 도시의 이야기만은 아니지만)의 시간일까 싶었다. 그는 미국이 자유주의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서 일본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말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변함없는 건 인간관계에서 보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나이 들어가는 슬픔을 언급한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겠지.

 

때로는 우리가 그곳에 존재할 수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눈을 뜨기도 전에 사라지는 날. (99페이지, 우리가 눈을 뜨기도 전에 사라지다)

 

살아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생의 화두를 그만의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이야기가 소박하면서도 즐겁다. 다양한 소재가 일상을 꽉꽉 채운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생각들을 쏟아내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가 새로운 세계로 맞이하고자 떠났던 일본은, 그의 생각만큼 삶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낯선 외국 생활이 그의 상실과 갈망을 해소해줄 거로 믿고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겪은 이국에서의 삶은 그를 더 공허하게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또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도 없이 만나는 인연들 사이에서 내 곁에 영원히 머무는 이는 없다. 가장 먼저 맺은 인연인 가족도 언젠가는 이별하지 않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그렇게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매 순간 또 다른 인연을 맺을 준비를 하고 또 맺어간다. 그러면서 또 잃어가고 얕아지는 것처럼 스치는 인연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에서 풀어내는 그 관계의 흐름도 비슷하다. 저자는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연극 무대에서 본 노인 분장의 배우 얼굴에서 노년의 쓸쓸함을 느낀다.

 

수록된 131편의 글에서 풍기는 서늘함이 오히려 저자를 애틋하게 바라보게 한다. 누구나 비슷하게 갖는 감정 앞에서 한 번쯤은 이렇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순간 있지 않을까. 누가 대꾸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 거르지 않고 한번 다 꺼내놓고 싶은 마음이 폭발할 때. 아마도 저자는 그런 작은 순간들의 소소한 기록들이 이 책 하나로 뭉쳐 거대한 감정을 쏟아낸 건지도 모르겠다.

 

앞서 출간된 저자의 작품들을 완독하지 못해서, 그의 작품이 꽤 어렵다는 생각만 했다. 왜 이렇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을까, 이 이름을 한 권쯤 완독하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싶어서 항상 궁금했던 작가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읽다가 만 그의 작품들을 읽을 마음이 생겼다.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이 책의 짧은 이야기들이 그의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을 더 가깝게 들리게 한다. 아마 읽다가 만 그 순간보다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가 하고 싶은 더 많은 말을 담은 것만 같은 그의 장편을 제대로 읽어볼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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