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남자를 따라갔다. 그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곳이라며 누군가를 이끌고 우세모노 여관을 향한다. 하지만 정작 우세모노 여관으로 사람들을 인도한 그는 여관의 문을 넘지 않는다. 여관 문 앞에서 그를 따라온 이를 여관의 지배인에게 인도할 뿐이다. 어쨌든. 여관을 찾은 사람들은 간절했던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잃어버린 무엇 혹은 잃어버린 사람을... 그래야 이 방황을 끝내고 다시 발걸음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말부터 하긴 좀 민망하지만, 나는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책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펼치자마자 그냥, 좋아해 버렸으니... 별거 없었다. 잘생긴 그 남자 마츠우라가 사람을 한 명씩 데리고 우세모노 여관으로 온다. 마츠우라를 따라 여관에 들어선 사람은 여관에 머물면서 그들이 찾는 것을 떠올린다. 무엇을 찾으러 왔을까? 찾고 싶은 게 있긴 한가? 아니, 그들이 찾는 것과 이 여관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온 거지? 여관의 사장은 어린 소녀다. 그래서 더 의아하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사장이라면 연륜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 같은 거라도 기대하겠는데, 이 어린 소녀에게서는 무엇을 기대하란 말인지... 그런데 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무슨 질문을 하면 사장에게 물어보란다. 저렇게 어린 소녀가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자꾸 사장에게 물어보래? 여관의 손님은 그런 사장에게 관심 두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찾으러 온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나는 무엇을 찾으러 여기에 온 것일까?'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러니 궁금증이 늘어날 수밖에. 궁금증이 늘면서 여관에 온 그들의 사연에 귀가 열린다. 그렇게 하나씩 펼쳐지는 이야기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그러니까 이 부분, 여관의 손님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인생을 되짚어보는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가슴이 뛰곤 했던 거다.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예상되는 것 같아서 긴장했다. 예상되면 되는 거지 무슨 긴장이냐고 묻고 싶겠지만,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냥, 막, 무슨 폭풍이 불어오기 직전의 고요함 같은 거? 그러다가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낼 때마다 눈물이 고였다. 기억을 더듬고 아쉬운 것들을 찾아내어, 후회를 후회가 아닌 것으로 만든 다음에 떠나는 사람들. 여기서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사자의 임무가 겹쳐 보이면서, 누군가의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차 한 잔이 그려졌다. 저승사자는 자기를 찾아오는 망자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쪽에서의 기억은 다 지우고 편한 마음으로 저쪽 세계로 가라고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망자들은 이곳, 그들이 살면서 겪었던 슬프고 기뻤던 모든 기억을 지우고 홀가분하게 저쪽 세상을 문을 열고 걸어간다. 아마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전생의 기억을 못 하는 건 저승사자가 내어준 차 한 잔 때문이겠지. 이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종종 등장했는데, 그때마다 생각했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이건 우세모노 여관 3권에서 등장하는, 여관 사장 사키의 이야기 때문에라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고민이다) 저승사자는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저승사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자기가 전생에 지은 죄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지워진 전생을 생각하려 애쓰기 보다는,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구백 년 넘게 살아온 도깨비를 제외하곤, 아무도 자기 전생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혼란의 시간이 온다. 주인공들은 어쩌다 보니 자기의 전생을 알게 된다. 그 이후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슬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전생의 기억 따위 모르고 사는 게 행복하겠다. 가끔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전생의 우리 모습에 대해 상상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고 슬픈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면 모르고 사는 게 나을 거라고... 그러지 않을까?

 

 

 

 

 

 

 

 

 

 

 

 

 

 

예상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에 오는 이들은 망자다. 죽은 사람이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세모노 여관으로, 수상한 그 남자 마츠우라의 손에 이끌려 찾아왔던 거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오는 곳.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는데, 찾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여관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은 미련을 남기고 죽은 자들이고,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자들은 여관에 남아 종업원이 되어 계속 찾아다닌다. 그렇게 여관에 찾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으면 떠난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남아서 여관의 일을 계속 하는 거고. 여관에 찾아드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이렇게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죽은 다음 후회가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대개 그렇잖아. 죽음에 다다르면 후회스러운 것들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는데, 죽고 나서도 그 후회들이 계속 생각날 것 같은데... 후회하지 않는다던 그들은 어떤 인생이란 말이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 삶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이승을 떠난 슬픔을 덮을 수 있는 걸까.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에는 그 후회를 지우는 것까지 포함하는 거로 생각해서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우세모노 여관>의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그게 부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슬픈 거다. 왜 있잖아, 그런 거... 분명 후회하는데, 후회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말하면 후회 없는 삶이 되는 기적이라도 이루어질 것만 같은 간절함. 잃어버린 것 따위 없다고, 그러니 찾아야 할 것도 없어서 이 여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곤 했다. 나는 아직 죽어보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도깨비>의 저승사자 앞에 도착했을 때나 <우세모노 여관>에 찾아갔을 때, 무엇을 후회하게 될지 모르는 지금 마음 상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죽었다는 상상, 죽은 후에 마츠우라를 따라간 우세모노 여관, 여관에 들어서며 마주한 어린 소녀 사장의 눈빛 찌르기 같은 직설을 견디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여관을 떠나는 순간까지. 죽었다는 상상부터 쉽지 않았고, 잃어버린 게 한 개뿐일까 싶어 가늠할 수 없더라.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후회하고) 살아왔을지 계산을 할 수가 없어서다. 지금도 후회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은 다음에 찾아간 우세모노 여관에서, 나는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당당함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아마도 아닐 것 같다. 후회하고,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여관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글쎄. 뭘, 얼마나 후회하고 잃어버린 상태일까. 얼마나 많이 찾아야 그곳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울었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으면서 계속 울었다. 후회하는 순간을 찾을 때마다 울었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슬픈 마음에 또 울었다. 작정하고 그런 게 아니었기에, 무언가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마음이었지만, 후회하는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 선택이 전부였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지만... 한 번 지나간 그 순간을 불러내고 지켜보면서, 후회든 기쁨이든 확인하면서, 이제 더는 그때 그 순간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복기한다. 개운하게 눈물도 쏟아내고, 웃음도 찾아내면서,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은 그 끝에서 반드시 자기가 찾아야 할 것들을 찾아서 떠나곤 했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든 각인되었든, 시간이 오래 걸리든 짧게 걸리든, 결국에는 찾았다. 그게 우세모노 여관의 마법이다. 여관의 마법이 통할 때마다, 읽는 이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울컥하고 치미는 감정에 눈물이 고이는 건 자동이다.

 

'우세모노(うせもの)'는 '잃어버린 물건', '유실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관의 이름에 너무 잘 어울리고,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식에 잘 맞는 의미인 것 같다. 여관에 찾아오는 손님의 사연에 따라 바뀌는 계절도 신비하다. 찾아오는 손님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곳이라니. 겨울이었다가 겨울일 수도 있고, 가을이었다가 여름일 수도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찾게 되는 것은 마음에 얼마나 더 깊게 다가올까. 여관의 손님들이 자기의 유실물을 찾을 때마다 잃어버린 진심을 마주한다. 아니라고 거부했던 것들, 아니라고 말해야만 했던 진심을 마주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는 장면과 닮았다. <우세모노 여관>에서 여관이나 여관 사장이 찾아준 유실물을 앞에 둔 모습과 같은 느낌이다. 이걸 마셔야겠지, 그래, 이걸 찾았던 거지. 이제 됐다. 홀가분하게 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겠구나...

 

이제 궁금한 거 한 가지 더 남았을 거다. 여관의 사장 사키는 누구인가, 여관에 손님을 데리고 오는 마츠우라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만화의 하이라이트는 3권이다. 여관의 손님들과 여관 종업원들의 사연까지 다 지나가고 나니, 정작 남은 이들은 여관 주인과 마츠우라다. 그들의 사연이 없을 수가 없지. 과한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는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기억을 잃은 사키가 등장한다. 이 부분 때문에 기억의 여부를 두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기억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상태인 아무 기억도 없는 이와 잊은듯했지만 결국엔 다 기억나버려 잊을 수 없는 이, 둘 중 누가 더 아플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계속되는 거다. 영원히 분명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그 순간에 최선이라 여기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때마다 후회가 찾아오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찾으면 되겠지.

 

만화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더 관심이 없는 장르다. 어렸을 적에 보던 순정만화 몇 편이 전부였는데, 몇 년 전에 우연히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호즈미'라는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매력적인 만화 단편집이었다. 그림도 예뻤고 스토리가 소설을 읽는 느낌 그대로였다. 몇 컷의 그림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 그러다가 다음 작품 『안녕, 소르시에』까지 샀고, 이번 작품 『우세모노 여관』은 완결판이 나오기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구매했다. 망자들의 후회를 덜어주고 편한 걸음 만들어주는 여관이라는 설정은 판타지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되는 현실이었다. 읽는 이들과 마음이 닮은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즈미의 다음 작품을 고민 없이 구매하게 만드는 매력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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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2-1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즈미님의 만화 저도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가 ‘안녕 소르시에‘도 읽었는데, 저도 구단님 따라 이제 우세모노 여관을 읽어야할 차례인가봅니다.^^

구단씨 2017-02-15 10:34   좋아요 0 | URL
만화를 잘 모르는데, 호즈미의 만화는 기다려집니다. ^^
이야기가 참 예뻐요.
 
세계문학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ㅣ 브런치 시리즈 3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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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정의로 문을 여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보인다. 저절로 공감을 부른다. 고전은 '나이를 2천 살 정도 먹어야' 나, 좀, 고전이네~ 하고 이름을 올릴 수 있다거나, '지속적인 탁월함'을 가진 작품이라고 인용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공감했던 고전의 정의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고전. 사람들이 칭찬은 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 이보다 더 매력적인 고전의 정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고전을 구매했는데도 읽지 않았거나, 혹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왔어도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나는 마크 트웨인의 고전에 대한 정의를 첫 번째로 뽑고 싶다. 실제, 『세계문학 브런치』를 읽다 보니, 고전의 맛보기나 재미있게 읽을 요소를 끄집어내서 밥상을 차려놓은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고전 속 메시지들을 찾아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원전으로 토핑까지 얹어놓으니 저절로 빠져든다. 그 결과로 칭찬은 하면서도 읽지 않는 책을, 읽고 나서 칭찬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겁겠냔 말이다.

 

모두 7개의 챕터로 나누어 그 흐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그 포문을 열고, 단테와 괴테의 삶을 비교하면서 선과 악, 지옥과 악마를 말한다. 장르 문학에서 인간의 내면을 보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소개한다. 근대 소설의 거장들을 불러오고, 세계문학의 악동들이라 부르는 작가의 생애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시를 읊으며 그들의 문장에서 감정을 읽는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 유명한 제목에 여러 번 읽어보자 마음먹으면서도 방대한 분량에 감히 첫 페이지를 열지도 못한 작품이다. 영화로 만나면서 흥미를 시도할 수는 있으나, 저자의 말에 멈칫거리게 된다. 실제 우리가 알고 들어왔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는 왜곡되었건, 빠져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원전을 읽어야만 제대로 그 작품을 판단할 수 있다는 건 여기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게다가 이 작품들을 검열해야 한다던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놀라웠다. 예나 지금이나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억압하려 했던 건 변함이 없구나. 그래서 고전이라는 말이구나 싶기도 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후대의 작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온갖 장르에서 재해석과 재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깊이와 작품성이야말로 고전의 힘이다. 독자 여러분이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향해 당긴 분노의 활시위처럼 힘차게 울리는 이 고전의 내공을 이번 챕터에서 조금이나마 느껴 봤기를 바란다. (76페이지)

 

메피스토펠레스를 데리고 와 우리 마음에 사이다 한 잔 뿌리기도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파우스트에게 던진 유혹에 메피스토펠레스를 악으로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얇고 두꺼운 가면 하나를 쓰고 사는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게 메피스토펠레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체면이나 분위기상, 해서는 안 될 일이나 말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 잘 안다. 그렇게 쌓이다가 뱃속에 엄청난 양의 고구마가 축적된 것처럼 만성 변비에 이르면 결국 성능 좋은 변비약 몇 알, 혹은 대장 청소를 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상태에 닿지 않게 살려면, 어쩌면 메피스토펠레스의 거칠 것 없는 입담이나 느물거리는 만사 오케이 태도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지금 우리 삶의 위치를 다시 보게 되는 일을 불러오는 것. 고전의 힘은 여기서 발휘되는 게 아닐까.

 

문학에서 찾는 어떤 메시지나 가르침이 아니라, 그 맛을 즐기면서 접근하는 게 우선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서 왜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나 싶었는데, 그 분위기는 언급된 작품의 제목과는 사뭇 달랐다. 고전이라고 해서, 첫 부분에 언급한 것처럼 2천 살 이상 잡순 작품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들까지 끌어들인다. 흔히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차려놓고 왜 그 작품들이 꾸준히 인기를 먹고 살아오는지 찾게 한다. 애드거 앨런 포, 애거서 크리스티를 비롯한 추리 소설의 대표 주자들이 말하는 냉혹한 현실을 상기하게 하면서도,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품을 분석한다. (여기서 '분석'이라고 하는 건 깊은 연구라기보다는 맛보기 정도다)

 

『보물섬』을 쓴 스티븐슨과 『솔로몬 왕의 보물』을 지은 해거드가 활동하던 당시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이라 불리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탐험가, 모험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이야기 속에 반영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 루카치(György Lukács)는 소설을 '부르주아 계급의 서사시(bourgeois epic)'라고 불렀는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모험 소설은 말하자면 '제국주의자들(imperialists)의 서사시'이기도 했다. (172페이지)

 

네 번째 챕터에서 다룬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더 흥미롭다. 유명한 저자의 이름과 작품들에서, 마치 그 작품들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게 나에게 각인된 셰익스피어였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읽은 게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한두 편이 전부다. 그런데도 마치 '내가 혹시 그의 작품을 읽진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자주 갖게 한다. 너무 유명해서, 너무 많이 각색되어 대중에게 알려졌기에 내용을 다 알아서가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 또 오해가 생기기 쉽다. 그 작품의 일부분이거나, 내용을 변형했기에 원전과 다르게 알게 되고 또 그게 사실이라고 굳어지는 내용.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그 상인'이라고 생각했던 적 없는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이를 보면서 '에구구, 어린 것들이 공부나 할 것이지~'하면서 읽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서 한 번쯤은 나에게도 그런 사랑 찾아오기를 바란 적 없었나? 살벌한 요즘을 살아가기에 너무 철없는 생각인가? ㅎㅎ 이번에 앤 타일러의 『식초 아가씨』를 읽으려고 하다가 원전인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먼저 제대로 읽고 나서 읽으려고 아직 펼치지 못했다. 희곡 버전과 소설 버전의 비교도 재밌을 것 같다.

 

특히 다섯 번째 챕터인 근대 소설의 거인들에서 소개한 작품의 목록이 토마스 C. 포스터의 『미국을 만든 책 25』에 언급된 목록과 겹치는 작품들이 몇 권 있었다. 그걸 보면서, 근대 소설에서 미국이 빠질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문학의 역사적 흐름이나 특히 이 책에서 말하는 고전들을 읽은 게 거의 없어서, 근대 소설과 미국 관계에 대해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겹치는 목록만 봐도 그 연관성에 관심 두고 싶어졌다. 문학과 역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또 한 번 이렇게 배운다. 『주홍 글씨』를 통해서 본 불륜의 공동 책임,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다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 여자의 인생과 사랑이 궁금하게 하는 『보바리 부인』과 『안나 까레니나』, 원전을 읽어야 그 인물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다짐하게 하는 『레 미제라블』,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했다는 『율리시스』 등 읽고 싶은 목록이 더 늘었다. 2천 살까지는 아닌 이 작품들과는 나이 차가 그래도 덜 할 터이니 부담이 적지 않을까? ^^

 

『율리시스』는 이렇게 작품을 둘러싼 주변의 엄청난 찬사와 담론에 휩쓸려 오히려 독자를 많이 놓친, 전형적인 저주받은 고전의 하나다. 독자 입장에서는 일단 기죽지 말고 책을 집어 들어-이렇게 말하기에는 책이 좀 두껍기는 하다. 보통 8백 페이지, 거기다 후대 평론가나 편집자의 상세한 주석이 달린 경우에는 1천 페이지를 훌쩍 넘어가기도 하니까-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297페이지)

 

나에게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했던 여섯 번째 챕터. 오랜만에 다시 만난 도리언 그레이도 반가웠고,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는 첫 페이지에서 이해가 안 되는 설정이 시작되더라도 어려워하거나 고민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드라큘라』를 화면이 아닌 활자로 만나면 더 섬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시에 그 섬뜩함 뒤의 마음은 혹시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더라. 냉소와 독설의 대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 더 궁금해진 건 물론이고, 아이들 책이라 여겼던 『걸리버 여행기』를 완독하고 싶어졌다(우리가 영화나 만화로 접한 걸리버 여행기는 원전 일부라고 한다). 『모비 딕』에 등장하는 캐릭터 스타벅이 스타벅스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도 이제 알았네. 무엇보다 나에게 이 챕터의 압권은 『돈 키호테』이다. 열린책들 판본으로 이 책을 구입했으나, 두 번 말하면 입 아플 정도인 그 말. 아직 읽지 않았다. 그냥 기사의 모험 정도로만 생각했다.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으면, 얼마나 주인공이 멋졌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회자하면서 다른 판본이 거듭 나올 정도가 되느냔 말인가, 라는 궁금증과 기대가 있던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에 알았다. 모험을 떠난 돈 키호테, 그는 젊고 멋지고 잘생긴 청년이 아니라 노인이었다는 걸. ㅠㅠ 뭐, 노인은 기사도 하지 말고 모험도 떠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오랜 시간 나에게 '돈 키호테'는 세상 모험을 즐기는 멋지구리구리한 배낭 여행자쯤으로 각인되었단 말이다. 정말 충격이야.

 

에이해브와 그 똘마니들의 으쌰으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스타벅. 하지만 비록 동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는지 몰라도 그의 이름은 『모비 딕』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보다도 더 현대인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라고 할 스타벅스(Starbucks)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회사 창립자들 중 한 명이 『모비 딕』의 광팬이라는 인연 덕분이었다. (352페이지)

 

세르반테스는 그가 활동하던 16세기 무렵까지도 스페인 사회 곳곳에 남아 있던 중세의 잔재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풍자하기 위해 『돈 키호테』를 썼다. 분명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풍차를 공격하는, 즉 이상주의에 도취되어 무모한 짓을 일삼는 일종의 '또라이'이자 반영웅(anti-hero)이다. 이 책이 동시대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끌어낸 것도 예리한 풍자의 힘 덕분이었다. (390페이지)

 

마지막은 시로 그 브런치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들을 소개한다. 여전히 시를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지워지지는 않지만, 그 배경과 시인의 삶을 듣고 읽으니, 그들이 하는 말을 조금 더 들어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편하지는 않지만 계속 접근하고 싶은 장르다.

 

바이런의 시편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일반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작품은 연애시들이다. 이들 시에는 여성 편력이 복잡했던 그의 실제 인생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초상화를 보면 바이런은 상당한 미남이었던 것 같고, 거기다 귀족 출신이라는 배경에 아름다운 시를 쓰는 재능까지 갖추어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절름발이였지만 오히려 그의 불구는 여성들의 모성 본능을 자극해서 돌봐 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468페이지)

 

엘리엇이 뮤지컬 <캐츠Cats>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캐츠>는 고양이들의 습성과 생태를 묘사한 시를 모은 엘리엇의 시집 『늙은 시인의 영리한 고양이 안내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원작으로 한다(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서식하는 유대류 동물 '포섬possum'에서 따온 Old Possum은 엘리엇의 별명이었다). (527페이지)

 

 

시와 소설, 희곡 등 80여 편의 작품으로 우아한 브런치 차려놓은 작가의 밥상을 잘 받았다. 때로는 극과 극의 분위기로, 때로는 비슷한 부분의 비교로, 때로는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졌다.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확인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고, 이렇게 재밌는 작품들을 못 읽을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의미나 메시지는 그다음에 찾아도 늦지 않으니 부담 내려놓고 즐겁게 시작해 보라고 말하는 듯해서 안심된다. 그래서 선뜻 도전해보고 싶은 목록이 엄청 늘었다. (인터넷서점의 장바구니가 이미 터질 지경이라는 건 안 비밀)

 

다른 목적이나 수식어 필요 없이, 일단은 문학을 즐겁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와 가치는 둘째 치고, 문학의 맛에 집중하라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맛있게 먹어야 소화도 잘되고 영양분도 섭취가 된다. 말 그대로 '문학의 맛'을 제대로 전하고 싶은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발휘된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고전 무식자인 나를 그 늪에서 건져 올릴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이 어려운 작품들 이야기를 하면서 편하게 읽히는 책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데, 앞서 출간된 작품들은 읽고 싶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도서 상세페이지에서 본 저자의 소개가 재밌어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과 관련 없는 일을 회계 일을 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국에 출장 왔다가 우연히 출판사를 소개받고 진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게, 저자는 천생 책과 가까이, 아니 이렇게 책을 직접 쓰면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 대책 없는 간서치가 되었다는 저자가 쓴 책은, 그것도 고전을 얘기하는 책은 어떨까 싶어 궁금했는데 읽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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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욱 2017-01-20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란 칭찬을 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이라는 말이 정말 공감되네요. 저는 이 독서노트가 고전 같아요. 마치 소개하신 이책을 다 읽은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오히려 책을 사서 읽을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건 무슨 조화일까요....

구단씨 2017-01-20 19:57   좋아요 0 | URL
어쩌면 좋죠? 제가 이 책의 스포일러를 너무 과하게 드러낸 걸까요? ^^
이 책의 저자분이 들으면 슬퍼할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이 브런치 시리즈를 한번은 다 접해보고 싶더라고요.
출간일 순으로 보면 이 책이 가장 최근 출간작인데, 그래서 저는 거꾸로 갑니다. ^^

조승욱 2017-01-2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는 좋은책은 칭찬만 하지 않고 직접 읽어보려고 결심했어요^^
덕분에요... 고맙습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인데,
오바마를 보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냐...
4년 더 하라고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어떤 건지 상상해본다...

 

사실, 오바마를 더 좋아했던 건 돌아가신 외삼촌을 닮은 이유도 있다.
한국에 남은 엄마 형제 중에서 가장 자주 왕래하셨기에...
나이 든 여동생에게 여전했던 잔소리가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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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MBN에 등장한 새로운 프로그램. 내 손님 - 내 손안의 부모님. 새로 시작한다고 광고했을 때는 별 관심 없었다. 내 취향의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그 시간에는 엄마 때문에 TV를 잘 보지 못한다. 엄마는 보통 9시 정도에 잠자리에 드는데, 많이 예민한 편이라 불이 켜져 있거나, TV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자다가 깨곤 한다. 그래서 밤에 TV를 켜놓기가 불편해서 잘 안 보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tvN의 <문제적 남자> 같은 건데, 나중에 찾아보기는 해도 본방송을 본 적이 많지 않다. 그러니 밤 11시에 새로 시작한다는 프로그램에 관심 둘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내 손안의 부모님이라니... 부모님과 함께 만드는 예능프로그램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제는 엄마가 이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궁금하다고 그 시간에 안 주무시는 거다. 요즘 밤에 잠이 잘 안 온다면서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밤 11시에? 어쩌다 보니 그 시간에 둘 다 깨어있었고, 엄마와 나는 그 프로그램을 같이 보기 시작했다. 박상면, 서경석, 김형범. 세 아들이 엄마(부모님)와 1박 2일을 함께 보내는 거다. 서경석이 엄마 집을 향하면서 하는 말은, 엄마와 단둘이 있어 본 적이 10년이나 되었다고 하더라. 결혼하고 나서 혼자 엄마를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고. 혹자는 이 말을 듣고 ‘왜?’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정말 이상하다. 딸은 결혼하고 나서도 혼자 친정을 찾아오는 일이 있던데, 아들은 결혼 후에 혼자 본가에 갈 일이 없나 보다. 그럴 것도 같다. 평일에는 출퇴근 때문에,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기가 꾸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느라 엄마를 찾아올 시간적 여유가 없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일은, 명절이나 가족의 경조사 때뿐이다. 서경석의 그 말을 듣고, 나는 작년에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남동생(엄마의 아들)이 결혼한 지 5년이 좀 넘었다. 그 전에는 몇 년 정도 나가서 살았고. 결혼 전에 남동생은 엄마에게 종종 전화도 하고, 가끔 평일에 엄마를 만나러 다녀가기도 했다. 남동생 하는 일이 공휴일이나 연휴를 지켜가면서 쉬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오히려 평일에 휴가 내서 다녀가는 게 엄마에게는 더 좋았나 보다. 그런 아들이 결혼했고, 아내와 아이들이 생겼다. 올케의 친정은 여기서 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다. 그래서 남동생이 내려올 일이 생기면 늘 자기 가족들과 함께 왔고, 친가와 처가를 왔다 갔다 해야 하므로 시간을 오롯이 엄마에게 할애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엄마는 아들이 다녀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마냥 아쉽겠지... 남동생이 그렇게 다녀갔던 어느 날, 집에 많은 일이 있었고 여전히 진행 중인 일들이 있었는데, 엄마는 남동생과 통화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하더라. ‘시간이 되면 혼자서라도 잠깐, 피곤하고 힘들겠지만, 당일치기라도 왔다 갔으면 좋겠다’라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물었다. 일하느라 피곤한데, 당일로 왔다 가기에도 힘들 텐데 뭐하러 그런 말을 했느냐고. 그랬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보고 싶다’라고. 아들이 보고 싶어? (딸은 안 보고 싶고? ㅎㅎ)

 

엄마의 마음은 그런 건가 싶었다. 시간이 안 되고, 자기 가정 꾸리니 더 바쁘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크게 별일 없이 사는 게 다행이고 좋은 거라고 여기면서도, 엄마를 보러 와주기를, 전화 한 통 더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마치 연인 사이에서 바라는 일들 같았다. 그런데도 다른 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어떤 감정인 듯하다. 내리사랑. 엄마는 아들에게, 아들은 또 자기 자식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애정. 서경석뿐만 아니었다. 김형범의 어머니는 뭐하러 왔냐고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박상면의 어머니는 힘든 몸을 하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온다는 아들을 기다렸다. 특히 내 눈에 가장 많이 보였던 건 서경석의 어머니였다. 아들은 오후 두시에 온다고 했는데,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씻고 준비하고 하면서 아들을 기다렸다. 아, 정말이지 기다리는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서 모른척할 수가 없더라. 그 사이에 아들이 방송하는 라디오를 습관처럼 틀어놓고 말이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인가...

 

처음 사전 인터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어머니 모두, 아들들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을 언급했다. 다리가 아픈데 괜찮다고, 뭐든 괜찮다고... 걱정할까 봐 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며, 걱정할까 봐 그랬다고 하더라.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들들은 또 눈물을 찍었다. 저럴까 봐 내가 안 간다니까, 라고 박상면은 말했다. 물론 엄마를 보러 자주 못 가는 이유는 많겠지만, 엄마가 하는 말을 듣기 싫어서 가기 싫은 마음도 무시 못 했던 거다.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편안한 죽음을 원한다는 엄마의 말은 아들을 자꾸 속상하게 한다. 지들만 잘 살면 되지, 나는 괜찮아, 라고 하는 말들. 이 프로그램이 재밌게 보이기 위해 어떤 설정을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읽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아니 에르노의 책 두 권이 계속 생각나는 거다.

 

 

 

 

 

 

 

 

 

 

 

<한 여자>와 <남자의 자리>는 아니 에르노가 부모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경험한 것만 기록한다는 그녀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들의 자취를 기록한 글이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울 수 있는 대상을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관조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런데 역시, 그녀답다. 상당히 담담하게 표현한 그녀의 문장이 오히려 더 감정적으로 읽혔다. 픽션을 거부한다는 그녀의 글을 몇 번 읽어봤기에 뭐 다를 게 있겠나 싶었는데, 밋밋하게까지 느껴질 법한 그녀의 문장에 감정적으로 더 격해지곤 했다. 국경을 넘어선 부모의 모습이 이렇게 비슷할 수 있는 건가 싶어 말을 잃었다가, 역시 좀 더 애정이 쏠리는 상대에게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구나 싶은 이해가 따라왔다. 읽는 동안, 100페이지 조금 넘는 이 책들이 페이지 수에 반비례하여 가슴을 채우곤 했다.

 

<한 여자>는 알츠하이머로 죽은 어머니를 기억하며 적어 내려간 글이다.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그녀의 글이 재구성한다. 태어나고 자라 여자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죽는 그 순간까지 그녀가 듣고 본 장면을 기록한다. 함께 있는 동안 미처 다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죽고 난 뒤에 기억되니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와의 온전한 이별을 위해 기록하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이 시간은 그녀에게 한 여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불러온다. 그때야 비로소 한 여자에 대한 사랑과 이해, 이별이 완성된다.

 

나는 그녀의 사랑에 대해 확신했다. 또한 그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자와 우유를 팔아 댄 덕분에 내가 대형 강의실에 앉아 플라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는 그 부당함에 대해서도. (한 여자, 66페이지)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한 여자, 110페이지)

 

<남자의 자리>는 아니 에르노가 <한 여자>와 같은 방식으로 쓴 글인데, 아버지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난 후 기록한 아버지의 시간이다. 대상이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소를 치는 목동에서 공장 노동자로, 어머니와 함께 꾸렸던 상점의 주인으로, 신분 상승을 바라며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다.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던 사람. 그 자리를 딸이 채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딸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자식에게 잊히는 사람, 그렇지만 자신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한없는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 그녀의 아버지였다.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채워진 기록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는 것도 <한 여자>와 다를 바 없다. 내가 본 주변의 아버지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보살피며,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나가려 애쓰는 사람. 때론 실수도 하겠지만, 자신을 지탱해주는 가족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얻기도 하는 사람. 내 주변에서 보편적(?)으로 보아오던 아버지, 아버지는 그래야 한다고 인식된 아버지의 모습. 내가 꿈꾸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버지니까 당연하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내 가정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하고 싶어.'라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싶었다. 결혼이라는 건,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된다는 건, 혼자일 때와 다른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것, 아닌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예절 바르게 대하는 모습은 내게는 오랫동안 신비로 남아 있었다. 또 나는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간단한 인사말을 건넬 때에도 극히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어조의 인사말을 듣게 되면 부끄러웠다. 난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어떤 특별한 호의를 품고 있다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결국 알아차리게 되었다. 몹시 관심 있는 듯한 태도로 질문을 하거나, 이렇게 따뜻하게 미소 짓는 것은 입을 다물고 식사를 하거나 살그머니 코를 푸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남자의 자리, 78~79페이지)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자리, 127페이지)

 

아니 에르노의 두 권의 책은, 우리가 다 알지 못했던 우리 부모의 모습은 어떤 걸까 생각하게 한다. 당연히 모르겠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다 알고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부모와 자식 관계라도 말이다. 그저 조금 더 알기를, 조금 더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의 시간을 지켜보는 거다. 거기에 마음마저 더해지면 끈끈하고 애정이 넘치겠지. 걱정도, 안심도 더 늘어나는, 서로의 일상과 생각에 조금 더 침투해도 괜찮은 사이가 되는 거겠지. 엄마는 서경석의 어머니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라디오를 틀어놓을 때도 ‘에휴...’ 박상면의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며 남편에게 연락이 없느냐고 물을 때도 ‘에휴...’ 김형범의 어머니가 아들이 사온 조끼를 입으면서 투덜대면서도 웃는 모습에 ‘에휴...’ 마음과 다르게 나가는 말들에 많이 공감하셨던 듯하다. 그러면서 덧붙이시더라. “엄마들은 다 그래...” 그래, 다 그러겠지. 더 못 해줘서 마음 아프고, 더 건강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바쁜 줄 알지만 전화 한 통 더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더 자주 대화했으면 좋겠고, 나의 일상을 공유했으면 행복할 것 같은. 떨어져 있는 자식들이 더 생각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별일은 없는지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돈이 많아서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도 분명 필요하지만, 여기서 엄마가 원하는 것들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 손가락 한 번 움직이면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입으로 한 마디 꺼내면 되는 말들이었다. 그거 한 번 하기가 어려워서 마음이 서운해지고 서글퍼지는 일을 만드는 거다. 미안한 말이지만, 알면서도 잘 안 된다고 핑계를 대고, 쑥스러워서 못 하겠다고 하는 일을 이제는 연습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남동생과 자주 통화하는 편이 아니다. 무슨 일이 없으면 일 년에 한 번도 통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동생은 내가 전화하면 무슨 일이냐고 먼저 묻는다. 집에 무슨 일이 없으면 전화하지 않기에. 그런 남동생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야, 바쁜 줄 아는데 짬 나면 엄마한테 전화 좀 해. 엄마가 요즘 외로워한다. 고기를 먹어도 안 기쁜가 봐. 아들 보고 싶대...” 문자 확인했을 거면서 대꾸도 없다. 안다. 원래 이런 녀석이라는 걸. 이것도 안다. 곧 엄마에게 전화할 거라는 걸...

(사실은 연말에 엄마와 며느리 사이에 작은 오해가 있었고, 엄마는 그 일로 무척 서운해했다. 서로 오해라는 걸 알았고 그날 바로 풀었지만, 엄마는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지 않는가 보다. 지금 그걸 다독여 줄 수 있는 건 엄마의 아들밖에 없다는 걸 안다. 좋아하는 고기를 먹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엄마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아들의 목소리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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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1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감동적인 글입니다. 저도 부모한테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눈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

구단씨 2017-01-17 11:52   좋아요 0 | URL
알겠는데, 잘 알겠는데... 또 잘 안 되네요. ㅡ.ㅡ;;;
반성 모드입니다.
 

 

 

책을 선택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유독 세계문학을 고를 때는 더 고민하게 된다.

출판사도 중요하고 번역도 중요한데, 그 와중에 꼭 끼어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책표지 디자인.

읽게 될 책의 내용도 봐야하지만 책 디자인에 결정권이 넘어갈 때가 있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게 고민하여 선택받은 세계문학이 펭귄클래식 판본이다.

소장하고 있는 세계문학 중에서 펭귄클래식 판본을 가장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장 아끼고 싶은 디자인이다.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펭귄클래식의 기본은 블랙판본.

가끔씩 특별판으로 나오는 표지 때문에 독자들의 가슴에 지름신을 부른다.

같은 내용의 책이라면 이왕이면 예쁘고 내 맘에 드는 디자인으로 고르고 싶은 게 진심이디.

나도 그런 이유로 구매한 펭귄클래식이 있다.

주황색의 오리지널 표지. 처음엔 이 책 표지가 어색했는데 그것도 잠깐.

블랙판본 사이에 하나씩 끼어있으면 괜히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물론 나는 그 정도로 꽂아둘 블랙판본의 책이 없어서 아쉽지만, 이 색 자꾸자꾸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더 이 색상으로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블랙판본 사이에서 홍일점처럼 자리 차지하는 모습에 계속 구입하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싶은 추측... ^^

 

 

오만과 편견

가장 최근에 구매한 판본 중의 하나. 양장본 특별판.

특히 넘버링이 있어서 구매 욕구를 상승시키기도 했다.

한정판이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기존 양장본 특별판과 같은 디자인이어서 더 솔깃했다.

사이즈는 앞서 출간된 양장본보다 1cm 정도 작다. 손에 들어오는 안착감은 더 좋다.

책 두께 때문에 계속 손에 들고 읽을 수는 없겠지만

겉표지 느낌이 좋아서 손목에 무리 오기 전까지는 들고 읽을 수 있겠다. ^^

 

 

 

 

지킬박사와 하이드, 가든 파티, 크로이체르 소나타.

3종 세트로 묶어 나왔다. 물론 개별판매도 했다. 지금은 다 절판인 듯하다.

표지가 <오만과 편견>과 같은 디자인에 같은 질감이지만 사이즈는 살짝 크다.

책도 가볍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책의 종이가 사알짝~ 바랜다는 점.

보관을 잘못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종이가 조금 누렇게 변했다.

책을 읽는데 지장은 없지만 초콤 서운하다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흰색 종이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에 뭐, 나무랄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옆면은 잘 안 보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은 띠지. 띠지가 블랙판 책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표지는 자꾸 눈에 들어온다. 무섭게 생긴 반쪽 가면 같은... ^^

 

 

 

월든.

 

오리지널 표지에 초록색으로 태어난 특별판. 색이 책과 잘 어울린다.

안전하고 강한 질감의 크라프트지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처음에는 자꾸만 어떤 포대, 자루를 연상했다. ^^

표지 색상에서 나무 색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듯해서 더욱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

 

 

펭귄클래식은 기프트 상품도 같이 나온다.

텀블러, 머그컵, 캐리어, 등등. 뭔가 많이 나오고 있던데,

내가 가진 것은 오리지널 디자인의 머그컵뿐이라 다른 기프트 상품을 못 봐서 아쉽다.

특히 앙증맞은 캐리어, 꼭 한 번 보고 싶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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