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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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도 시골의 삶을 잘 모른다. 아마도 그건, 우리 집의 직접적인 생계 수단이 농사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집주변으로 몇 발자국만 가면 누구네 밭, 누구네 논, 누구네 과실수 등.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흙을 밟고 돌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도 내가 직접 그 흙을 손에 묻히지 않고 살아왔기에, 그저 노인네들의 습관적인 넓은 오지랖이 부담스럽다고 여기는 정도였다. 아마도, 앞으로도 여기에 계속 살게 되더라도 나는 영원히 ‘시골의 삶’이라는 것을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마음이 남았다. 이 소설, 김종광의 『놀러 가자고요』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동안 느꼈던 게 겉으로만 보았던 어떤 어르신의 표정에서 다 읽지 못한 마음이었다면, 누군가의 푸념 같은 진심을 듣고 나니 조금 더 알게 되는 마음이 여기 있었다. 아마도 많은 부모의 생활이 그러하리라, 시골에서 사는 많은 이들의 진짜 속내였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주변의 작은 모습에서 유추하는 분위기 정도로만 봤던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부에 와 닿는 듯하다. 모두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단편은 하나의 단편소설이자 서로 연결된 장편소설이 된다. 작은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연작소설 느낌이 난다. 구석구석 시골의 삶이 묻어난다. 범골의 역사로 마을의 시간을 유추할 수 있는 「『범골사』해설」, 「범골 달인 열전」은 구수함이 풍기는 시골의 모습이었다. 어느 시간에 누가 어떤 행적으로 그 마을의 이름을 오르게 했는지, 글로 전해지는 범골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산후조리」는 농촌의 생활 그대로를 전하는 강한 메시지처럼 들린다. 자녀의 산후조리를 끝으로 더는 산후조리를 할 일이 없을 거로 여겼던 어머니는, 송아지를 출산한 소의 산후조리를 맡게 된다. 장기까지 쏟아내며 자식을 내놓았던 소의 모습에서 인간의 탄생이 동시에 보인다. 어머니는 마치 딸을 돌보듯 소의 산후조리를 하는데, 그 모습이 애틋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밤을 새워가며, 젖병에 우유를 물려가며 돌보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막상 어머니들이 우리를 그렇게 키웠다고 생각하니, 세상 모든 일에 그런 최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뜬금없는 다짐까지 생기려고 한다. 농작물을 키워내는 일, 가축을 돌보는 일,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 모든 일이 생계와 연결되어 있다면 더더욱.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들어왔던, 누군가의 입에서 우스갯소리로 들었던 그 말이 생각났다.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 뭐.’ 농촌의 삶을 만만하게 봐서 나온 말일 테다. 지금은 농촌의 모습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모든 것을 바쳐 농사를 짓고,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남은 것들을 다 쏟아붓고 남은 것은 늙은 몸과 농사일이 버거운 현실이었다. 소문처럼 누구네 자식 일이 입에 오르내리고, 마을회관에서나 어울려 점심 한 끼를 때우는 일, 명절날 누구네 집 마당에 늘어선 승용차들로 그 집 자식들의 생활 정도를 점치고... 정작 그곳에 남아 생을 이어가는 노인들의 마음을 듣는 이들은 없다. 그저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서로의 입장을 나누며, 같은 삶을 이어가려 애쓰는 정도다. 4백만 원이라는 욕조기를 사드릴 수 없는 아들의 마음을 그대로 읊은 「만병통치 욕조기」로 그 모습을 확인한다. 다리가 아픈 어머니에게 찾아온 만병통치 욕조기를 파는 외판원의 온갖 꼬임에도 넘어가지 않는 며느리의 태도는, 시어머니의 아픈 다리보다 자기가 새로이 일군 가정의 안위가 먼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아들은 손에 카드를 쥐고 있으면서도 선뜻 내놓지 못한다. 아내가 또박또박 쏟아내는 불매의 이유를 반박할 수 없어서다. 바쁜 농사철이 지나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시골 마을에 찾아드는, 흔히 행사장이라고 부르며 호객을 하는 집단에 찾아간 노인들이 두 손에 화장지며 달걀이며 바리바리 싸 들고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출입문을 통해 슬쩍 엿봤는데, 어르신들이 신나게 한 판 놀고 배를 채울 것들을 안고 가는 듯한 표정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어르신, 어르신’,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르며 안마를 해주고 노래를 부르면서 제품 홍보를 한다. 흡사 문화센터의 노래교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그들이 결국 마지막에 내놓는 건 고가의 제품들이었다. 처음에는 몇천 원짜리 생필품, 시간이 흐를수록 고가의 제품을 권한다. 무릎 통증에 좋다는 약, 가스 마시지 않아도 된다며 인덕션을, 누워있으면 허리가 저절로 찜질이 된다는 전기 매트,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준다는 약탕기. 필요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안 산다고 하면 자식들이 그거 하나 사주지 못하냐고 자존심을 건드린다. 「만병통치 욕조기」의 외판원은 현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구수한 입담을 쏟아내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을 퍼부으며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가발댁, 손만 댔다 하면 완벽하게 해내는 부업의 일인자 마늘댁, 돈벌이도 안 되는 노인회장으로 선출되어 아내를 더 바쁘게 만드는 김사또, 놀러 가자면서 2박 3일 일일이 전화를 하면서 남편의 일을 덜어주는 아내 오지랖, 진실을 왜곡하며 부풀리는 거짓말 제조기 소설가 소판돈, 견인차를 부를 필요도 없이 마을의 도랑에 빠지는 모든 차를 꺼내주는 김견인 등.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각각의 개성이 넘쳐흐른다. 어디 개성뿐이랴. 그들이 한데 모여 만드는 범골은 눈물 나게 웃기고, 웃음 나게 슬프다. 그곳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상에, 거를 것 없는 푸짐한 말들, 정말 들어야 할 말을 듣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게 하는 노인들의 ‘썰’들이 웃기다. 일할 젊은이가 없고, 5대의 거주민들을 청년이라 부르고, 농촌 노총각의 인생이 의미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자식을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하고, 좀 괜찮아졌나 싶으며 어김없이 터져버리는 구제역이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삶. 어릴 적 경험하고 피부로 접했던 농촌의 푸근함은, 현실의 팍팍함과 힘듦으로 푸근함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어떡하나. 그들 삶의 터전에서 그 삶을 이뤄주는 것들을 보듬어 안으면서 또 살아가야 할 것을...

 

 

 

농사철에 일정 잡았다고 걱정하셨는데요, 노인분들이 농사철 아니면 움직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잖아요. 추우면 추워서 안 되고 더우면 더워서 안 되고 먼지 많아도 안 되고 바람 많이 불어도 안 되고 비 맞아도 안 되고 딱 이맘때밖에 없어요. 괜히 옛날부터 사오월에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요. 석가모니 부처님도 하필이면 사월 초파일에 딱 맞춰 태어나신 것도 다 까닭이 있다고요. 농사철 중에도 논갈이 끝나고 못자리하기 전에 좀 한가하잖아요. 그래서 딱 그때로 정한 거라고요. 그것도 회장님 혼자 정한 게 아니고 회의에서 여러분이 정한 거라고요. (113페이지)

 

표제작 「놀러 가자고요」는 이곳의 삶이 어떻게 흐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일 년에 한번 놀러 가자고 하는 마을 사람들의 약속. 오지랖 여사는 놀러 간다는 사람의 확답을 듣기 위해 마을 주민 모두에게 전화를 건다. 저마다의 사정과 핑계로 인원을 추리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자식이 온다고 해서, 다리가 아파서, 그날은 국민안전의 날이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확답을 안 한다. 대신 전화를 건 오지랖 여사를 붙잡고 시시콜콜한 자기들의 이야기를 한다. 손녀가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는, 치매 부모를 모시기가 힘이 든다는, 무릎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된다는, 생일이라고 자식들이 와서 생일 밥 먹자는 이야기 같은.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었으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싶은데 대상이 없었다는 듯이, 지금 전화를 건 당신이 아니면 누구에게 말할까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런 마음은 비단 시골 생활이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따로 사회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아닌 이상, 노인의 삶은 말이 줄어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니, 말할 대상이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누구 하나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덜 외로운 노년의 인생을 지낼 것만 같다는 듯이.

 

작가가 풀어내는 『놀러 가자고요』 속 범골의 이야기는 범골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00 마을에서 지내는 우리 모두의, 우리 부모의 이야기이자 삶이었다. 혹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에 담았던 풍경들을 확인하는 듯해서 소설 속 이야기가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농사와 상관없는 삶을 이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9편의 단편이 전하는 것은 농사를 생계로 하는 시골의 삶뿐만이 아니라, 노인의 삶도 같이 비추고 있었다. 우리네 부모의 삶이자, 어쩌면 우리가 곧 만날 시간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상이 살기 좋게 발전하고 변한다고 해도, 노인으로 가는 인생의 이치는 바뀔 수 없으니까 말이다.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고이는 웃픈 이야기다. 익살스럽게 풀어낸 이야기마저 마지막에는 씁쓸한 속내를 들킨 기분으로 읽게 된다. 몇 문장만 읽어도, 나른한 오후의 풍경처럼 여겼던 농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확인하게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또 살아갈 그곳 사람들의 풍경이 가슴에 깊게 남는다. 작가가 풍성한 입담으로 쏟아낸 이야기가 인생의 고충을 그대로 담아내서일 테다. 아직은 내가 다 겪지 못한 그 삶의 고뇌 같은 것을 미리 맛본 기분이다. 어른의 삶은 이런 것인가 싶어 서글퍼지다가도, 아직 남아 있는 어린애 같은 마음에 또 웃음이 나는 일의 반복. 그러다 보니 인생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고, 걱정 앞에서는 한숨도 쉬고, 즐거운 일에는 실컷 웃기도 하는, 이런저런 눈치나 사정 같은 거 잠시 접어두고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가보자는 게 뭐 어때서.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서른 명쯤은 채워야 버스 움직이는 게 좀 신날 텐데, 오지랖 여사가 돌린 전화가 의미 있을 텐데, 범골 노인들 미적미적 뒤로 빼는 분들 많던데 확답을 줬는지 모르겠다. ‘그날 봐서’가 아니라, 그날은 그냥 다 같이 놀러 가는 날로 도장 쾅~! 찍었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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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삶의 방식
이수희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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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 가족 구성원의 정족수를 채워야만 행복해질까?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부부가 처음부터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 평생 버팀목이 되어 줄 배우자와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선택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213페이지)

 

내가 언젠가부터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서 읽어보기로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내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자발적으로 엄마이기를 거부하는, 건강의 이유가 아닌 것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로 생각했던 거다. 아니었다. 결혼하고 부부가 된 후, 많고 다양한 이유로 엄마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공감의 인터뷰로, 누군가에게는 전혀 몰랐던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이겠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못하는) 이들에게는 고통으로 불행이다. 아이가 있든 없든, 결국은 행복 하고자 하는 인생을 사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개인이 선택한 행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없는 오지랖을 부리고 언어로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를 가진 이들의 세상에 한발 들여놓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상에 속하지 못하면서 점점 거리가 생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배경에 두지 않고 함부로 생각하고 뱉는 말들에 두 번 상처받는다. 아이가 없다는 게 차별받고 계속 상처를 받아야만 하는 일인지 묻고 싶은 순간이다.

 

우리 사회는 왜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사람들만 비추는가?

저마다의 사정을 다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다. 결혼했지만 자녀 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많은데도 많은 시선이 그들의 삶을 비추지는 않는다. 난임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아이를 포기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오늘의 삶에 충실하다가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들, 처음부터 많은 고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들.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 아이가 없는 그 이유를 왜 타인들은 듣지 않으려고 하고 배려하지 않는가. 왜 아이 없는 삶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가. 아이가 없는 삶을 왜 비정상으로 간주하는가.

 

사회에서는 아이를 '사랑의 결실'이라고 하며, 그 결실이 없는 이들의 관계를 쉽게 부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틀렸다. 그러므로 아이를 억지로 만들면서 그 결실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 증명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부모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명하면 행복해지는가? 행복은 증명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225페이지)

 

많은 여성의 인터뷰에 내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가장 가까이에서는 가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주고, 조금 더 나가면 주변의 사람들이 아이 문제로 고통을 준다.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아야지.' 그 말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여성들. 노력해도 생기지 않는 아이 때문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해도 해도 안 되어서 아이를 포기하고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는 데도 왜 아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가. 반대로, 결혼해서 당연하게(?)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지? 아이를 낳았으면 키우는 게 부모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잘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려운 일을 선택하는 것조차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는 게 현실 속 사회 분위기다. 특히 요즘처럼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려는 국가 정책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면 함부로 말 꺼내기도 무섭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여러 번의 난임 시술 끝에 건강만 나빠지고 결국 아이를 포기한 상황에도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를 낳지 못한 것만 회자되어 계속 오지랖을 거둘 줄 모르기만 한다. 당사자만큼이나 그 슬픔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추가 업무 담당이 된다. 면접을 볼 때마다 임신에 질문과 질책을 받는다. 난임 시술로 아예 사직하고서도, 결국 임신하지 못하고 재취업 하려고 해도 힘들다. 나라에서는 아이가 없다고 세금은 더 내라고 한다. 아이가 없으니 돈 들어갈 일 없다고 시부모님 용돈을 더 내놓으라고 한다. 손주가 없어서 밖에 나가면 남부끄럽단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행복인가?

인터뷰 답변을 듣고 있자니 화를 넘어서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왜 하나의 인간으로 봐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각자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마치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만 여겨진다. 왜 아이를 낳는 일이 생각과 계획이 빠진 채로 떠밀려야 하는지, 책임의 주체가 되는 개인은 왜 선택조차 어려운 일인 건지...

 

적당한 나이에 취직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적당한 나이에 아이를 낳고, 적당한 나이에 둘째를 낳는다…. 그런 적당한 삶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믿는 이들은 그 범주를 벗어난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다. (166페이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정상'이란 삶을 생각했다.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것을 이루며 보편적이라 여기는 인생의 항로를 가는 것. 그래서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이는 '낳는다'는 게 아니라 '선택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문제라고 여긴다.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 '출산은 부모가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능한 일(159페이지)'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 문제는 배우자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야 가능한 일일 거다) 내가 낳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고, 또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옛날 어른들 말씀처럼 자기 밥그릇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밥그릇 챙기기도 어려운 시대이지 않은가. 다른 것은 고사하고 밥 먹고 사는 일조차 너무 힘들기 때문에, 살면서 저절로 자기 밥그릇 챙기지 못한다. 그런 시대를 살면서 내가 낳은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지도 않고, 내가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낳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나는 환갑이 넘어서까지 미성년 자녀를 돌봐야 한다. 그때의 내가 경제적 육체적으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더 아이의 성장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아이는 낳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므로.

 

저자가 겪은 똑같은 일을 다른 여성도 겪는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그 실체를 확인하고,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자의의 선택이든 어쩔 수 없는 결과였든,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선택한 행복의 최선이라는 거다. '꼭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좀 더 깊게, 오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저자는 단순히 아이가 없는 이들의 인터뷰만을 들려주는 게 아니었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기 전에, 아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아이를 안 낳기로 했지만 갑자기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노후는 어떻게?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행복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벽 하나를 넘고, 세상을 더 배운 느낌이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미혼이든 비혼이든, 남자든 여자든,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고 생각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타인의 삶을 존중해주길 바라면서.

 

한국 사회에서 2인 가족의 삶은 고단하다. 수많은 이들이 '왜?'라고 질문해 온다. 생각 없이, 계획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는 축하는 보내는 이들이,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아이 없는 삶에는 의문을 표한다. 포기할 것은 얼른 포기하자. 그 삶이 어떤 모습이든, 부부 두 사람이 열심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2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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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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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무뎌지기 쉬웠다. 불편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안으로 숨기고 아닌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상대에게 다가올 언짢은 말을 듣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내가 느끼는 불합리한 대우를 나 스스로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해야만 편해진다고 생각했다. 그 편해지는 주체가 누구인지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아닌 상대가 편해지는 일이었겠지?

 

너무 익숙하게 보아왔던 장면들이 ‘별일’이 되어버린 건 왜일까. 저자는 전작 『82년생 김지영』의 의미를 이어가기라도 하듯이 이 ‘별일’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애쓰는 듯 보였다. 아니, 저자는 굳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레 전작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저자의 전작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받아들이기로 하곤 했던 김지영 씨 인생의 모든 순간이 우리의 이야기였기에 잊을 수 없다.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KTX 해고 여승무원 이야기인 「다시 빛날 우리」는 지금도 뉴스에서 보는 장면들이 소설에 녹아 있다. 그녀들이 외치는 현재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부정부패로 저지른 일 때문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오랜 시간 외치던 목소리들은 법원의 로비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낼 수 있을까? 다양한 이름의 그녀들이 부딪히고 겪은 별일들은 다양하지 않았다.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강이 모여서 바다로 연결되는 어떤 지점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저자가 불러낸 이름들은 각자가 좁은 강줄기였다. 그 강줄기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길목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소진 씨는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했다.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올바르게 처리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되돌아온 건 그녀를 향한 수많은 화살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위장병과 탈모를 얻은 그녀는 거기서 멈춰야만 하는 걸까? 학교 급식 조리사의 단체 파업 때문에 오늘도 엄마의 도시락을 들고 등교하는 수빈은 엄마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들 급식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한다고 서운한 눈빛을 보낼까? 아니면 엄마가 되찾으려고 하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응원할까? 국회 청소노동자 진순 씨는 열심히 일했다. 비정규직, 하청 같은 수식어가 그녀의 노동을 더 힘들게 했지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업무를 더는 열심히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 노동의 대가는 어이없는 수준이었다.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힘을 냈다. 직장으로의 출근길이 행복이었으면 싶었다. 매우 어려운 싸움을 하면서 얻어낸 결과로 그녀는 더 열심히 일하고 싶은 노동자가 되었다. 국회에 직접 고용된 청소노동자. 더 열심히 일하고 싶게 만드는 근무 환경이 일의 능률을 높여준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다.

 

다양한 나이대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이 소설이 결코 소설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사회 초년생으로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달리기와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시간을 만드는지, 가사와 노동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고충 같은,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눈물만 흘리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싸우기만 하자니 통하는 말이 없고, 두 손을 내려놓고 있자니 해결될 게 하나도 없는 상황. 답답하고 힘들지만 계속 나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대로 꿋꿋하게 묵묵히 걸어가야만 하는 그녀들의 일상이, 인생이 말을 하는 거다. 우리 여기 이렇게 있다, 더 나아가지 않고서는 현실의 불합리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으니, 인간다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이 목소리는 힘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그녀들의 많은 이야기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이혼일기」와 「결혼일기」, 「엄마일기」는 한 가정의 세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정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시선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같은 어려움을 가진 여성의 마음을 엿볼 수도 있었다. 큰딸의 이혼과 작은딸의 결혼이 동시에 이뤄진다. 언니의 이혼으로 여동생은 결혼에 관해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아직 겪지 못한 일들에 언니의 이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곧 언니와 동생은 공감의 시간을 가질 거로 생각한다. 두 딸의 이혼과 결혼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심란하지만, 큰딸의 이혼을 반대하기는 싫다. 당신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혼이란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큰딸의 이혼이 곧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발악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여자의 이혼이 주홍 글씨로 여기던 시대는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이혼이 주홍 글씨가 될 이유는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언니, 나 프러포즈 받았어. 오월에는 상견례를 하려고 해."

"아, 그래? 잘 됐네."

그리고 잠시 침묵.

"언니, 나 결혼 할까 말까? 결혼이라는 거 어떤 거야? 할 만한 거야? 언니가 하지 말라면 그냥 여기서 멈출게. 이유 같은 거 묻지 않을게."

결혼이라는 게 어떤 걸까. 나는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의외로 여러 장면들이 기억났다. 오랜 상의 끝에 선택한 식탁 위 액자, 같은 영화를 보고 나누었던 너무 다른 의견들, 밤 산책 중 사먹은 삼각김밥과 컵라면, 내 승진 축하파티…… 나는 동생에게 결혼하라고 말했다.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그게 쉽지 않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대로 나는 내 이혼을 진행했고 동생은 결혼을 준비했고 나와 동생의 일 모두 잘 마무리됐다. 이게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90페이지, 이혼일기)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당신이 윤 서방한테 전화 넣어봐."

"내가? 내가 왜?"

"잘 달래서 데려가라고 해야지."

"쟤들이 어린애들이야? 왜 우리가 끼어들어?"

"그래서 이혼하게 둘 거야?"

"이혼하라고 안 하지. 근데 절대 이혼만은 안 된다고도 안할 거야. 우리 정은이 똑똑하고 정확한 애야. 알아서 잘 판단하고 선택하고 잘 살 거야."

남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자고 딸들을 다 저렇게 키워놨어? 여자애들이 좀 숙이고 들어가는 법이 없어. 다들 나 잘났다고 저러고 있으니. 당신은 정은이 걱정되지도 않아? 여자 혼자 사는 게 어떤 건지 당신이 알기나 해?" (187페이지, 엄마일기)

 

이혼하는 큰딸, 결혼하는 작은딸, 그런 두 딸을 바라보는 엄마. 세 사람의 마음을 듣는 동안, 여자라는 존재가 다양한 자리를 갖고 있구나 싶었다. 거기에 사회에서 또 차지하는 역할들까지. 그렇게 많은 위치에서 존재하는 대상인데, 왜 적정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했나... 아프고 아픈 이야기들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익숙하고 당연시하게 되는 습관까지 붙었는지도 모른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인 건 맞다. 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틀리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일어나는 ‘별일’이 익숙해지지 않을 시간을 꿈꾸게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넘기고 나니, 가만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저자가 이 기록을 남겨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이유가 저절로 알게 될 수밖에 없다. 특별히 별일도 아니라고 말문을 여는 그녀들에게는,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때로는 투쟁이 되는 일들이었던 거다. 르포 기사로 연재되어 다시 소설로 태어난 이 이야기들이 내는 목소리는 부조리의 폭로이면서, 힘든 싸움에서 다른 방법이 없기에 계속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용기에,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연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독자로 그녀들의 싸움에 동참하는 나의 힘도 보태고 싶다.

 

그녀들의 짧은 이야기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다. 결혼과 이혼, 오랜 고심 끝에 선택한 비혼, 억울하게 당한 해고, 버스 기사를 하면서 추행에 대처하는 방법을 습득한 여성 버스 기사, 아내에서 엄마로 손주를 돌보는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이 육아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국정농단 폭로의 문을 연 여학생들의 시위가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 위해 기록해낸 결과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인생의 품위를 만드는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온몸으로 묻고 답하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끝은 없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것이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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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들에게 사면초가 1~2 (완결) - 전2권
소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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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주(여자 주인공 이름이 ‘여주’다)에게 찾아온 네 명의 남자. 그냥 남자도 아니고 네쌍둥이다. ㅋㅋ 네 명의 남자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좋아야 하는데, 팔짝팔짝 뛰어야 하는데, 이건 대력 난감이다. 형제라잖아. 여주가 생각하는, “인생에 한 번쯤 인기가 폭발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데, 나는 그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꽃보다 남자 F4의 형제 버전. 네쌍둥이의 등장은 다른 여학생들도 부러워하지만, 문제는 네 명의 남자 모두 여주에게 향하는 눈길이다.

첫째 일남이. 내신도 1등급인 우등생이다. 마음도 예쁘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여주라면 가장 먼저 일남이를 보게 될 것 같은데, 또 일남이 같은 애가 좋긴 해도 음, 너무 모범생이라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나는 그런 심심함을 느낄 수 없다. 왜냐고? 나는 여주가 아니잖아. ㅠㅠ 일남이가 나에게는 안 올 거니까...)

둘째 이남이. 과격하게 보이는 상남자다. ‘여주 넌 나랑 사귀어야 해!’라고 외치면서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가만히 보면 똘끼 충만한 것 같은데, 단순한 것 같아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것 같기도 하고. 그 단순함이 매력이 되기도 할 것 같은데, 내 취향은 상남자는 아니므로... 하긴 이남이로 나에게 안 올 것이기에 이남이의 상남자 스타일을 내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네. 쩝!)

셋째 삼남이. 운동을 하는 캐릭터. 거친(?) 외모와는 다르게 마음으로만 말하는 남자. 눈으로 말해요, 라고 말하는 시기가 지나간 지가 언제인데 고릿적 연애를 꿈꾸는가. (삼남이의 순수한 마음을 아름답지만, 답답해서 패스. 삼남이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을 살짝 가르쳐주고 싶기도 하다.)

넷쨈 사남이. 귀요미 폭발. 애교부터 청소, 요리,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남이는 그 집 형제들의 엄마처럼 보인다. 물론 사남이도 여주를 좋아한다. 동갑인데도 여주한테 누나라고 부르며 연하남 캐릭터를 만든다. (귀엽기로 따지면 사남이가 최고지만, 음, 사남이의 들러붙음이 나는 별로일세. 사남이도 내가 별로겠지만... ㅠㅠ)

 

“전생에 지구쯤은 구해야 이런 기적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염없이 부럽긴 하다. 한꺼번에 네 명의 남자가 달려들면, 무섭기도 하겠지만 흐뭇하기도 하겠지? 근데 여주는 좀 이상해. 아니, 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다 이상해. ㅎㅎ 뭐랄까, 책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남주를 찾아 헤매기 마련인데, 매 회 남주가 달라지는 느낌? 남주가 달라질 것만 같은 느낌? 오늘은 일남이였나 싶으면, 일주일 후에는 이남이? 그러니까 이 말인 즉슨, 여주의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의 마음이기에, 그 마음 들여다볼 수가 없어서 함부로 남주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게 이 웹툰의 재미였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여주의 짝은 누구란 말이냐~ 하면서 보게 되니까 말이다.

 

여주의 친구 나비가 등장하는데, 나비 역시 오늘은 일남이, 내일은 이남이, 이런 식으로 마음이 갈대가 된다. 아니, 나비는 갈대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사빠라고 해야 할까? 너무 착해서 순간순간 상대의 착한 점이나 매력을 바로 캐치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여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그때마다 알게 모르게 나비와 여주, 네쌍둥이 중 한 명은 삼각관계(사각관계)에 빠지게 되고 은근한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는데, 그게 참 웃음이 난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어서 그런지, 애들의 연애가 참 풋풋하고 신선하게 보인다.

 

매 순간 달라지는 여주의 마음, 그때마다 연애와 실연에 빠지게 되는 네쌍둥이, 질투와 응원을 보내는 여주 친구 나비. 갈팡질팡, 오락가락, 여주의 마음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목적지를 확인하려고 끝까지 읽게 되는데, 아............. 너였어?

 

네쌍둥이의 성격과 매력이 다 달라서 누구 하나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각자의 매력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기에 누구 하나 놓고 싶지도 않고, 다 가질 수도 없고... 그렇게 보면 어쩌면 여주는 현명한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때그때 자기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그냥 가버리는 그녀가 당돌하게 보이면서도, 그게 솔직한 마음이기에 맞는다는 생각도 들고. ㅋㅋ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도,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느낌에 이 애들의 성장기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만 작가의 머릿속에 어떤 이야기가 남겨있을지 알 수 없어서 궁금할 뿐이다. 오랜만에 풋풋한 아이들을 보면서 잠깐 설레기에 좋은, 오래 전에 읽었던 순정만화 느낌에, 로맨틱 코미디 같은 분위기에, 현실감 좀 떨어지는, 오직 설렘설렘을 느끼고 싶은 순간에 딱 펼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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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누가 듣는가 - 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동효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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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 순간.

책을 읽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별것 아닌 내용에 갑자기 울컥해지거나,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눈에 들어온 문장 하나로 감동이 쏟아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배꼽 잡게 하는 허무맹랑한 제스처에 깔깔대거나... 우리 일상에 그런 순간을 만들어주는 게 많이 있겠지만, 책과 비슷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게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 기분에 맞춰, 상황에 어울리게 스리슬쩍 다가와 버리는 순간. 보통 이런 순간을 타이밍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 타이밍은 참 절묘하다.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이나 노래가 그렇게 다가오면 당황스럽잖아. 진짜 듣기 싫은 노래였는데, 갑자기 좋아지는 그런 거, 적응하기 좀 그렇잖아. 아이러니하게도, 그 타이밍이란 건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어느 순간, 정말이지 그 찰나에 꽂혀버리는 것. 오래전 얘긴데,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던 선배가 듣고 있던 노래 한 곡에 반해 그 선배를 좋아하게 된 적도 있다. '어? 이 노래 너도 좋아해?' 하는 괜한 공감의 이유를 찾아낸 게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제 와 기억해보면 그냥 웃을 일, 어렸을 적 얘기지만 그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역시 뭐든, 타이밍이 중요한 거였어.

 

왜 하필 지금 이런 노래가 나오는 것일까? 흘러나오는 저 노래야말로 그녀의 본질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문득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삶의 고비 고비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노래, 의미심장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모든 우연은 신이 흘린 편지래요, 소곤대는 성은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185페이지)

 

아버지의 구타가 장난 아니다. 주인공 오광철은 아버지의 술과 폭력으로 말더듬을 갖게 되었다. 이 말더듬은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첫 사회생활인 학교생활부터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그 말더듬은 어마무시한 장애가 된 거다. 학교생활, 직장생활, 군대생활, 연애까지 모두. 술을 마실 때,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말더듬은 잦아든다. 그가 찾은 말더듬의 치유법이다. 그래서 넘치게 술을 들이켠다. 술을 깨기 위해 노래방을 돌고, 다시 술을 마시고, 노래방, 술, 노래방, 술... 이 정도면 알코올중독 수준 아닌가? 금방 끊겨버리는 필름, 일어나보면 젖어있는 옷,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몸뚱이. '자신이 이렇게 된 게 다 그 인간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가 세상을 제대로 살지 못한 이유, 말더듬을 숨기려고 침묵을 택한 일상, 비겁하고 외로워지는 순간들은 덤.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모두 그 인간 탓이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모든 걸 내보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좋아했던, 기타를 잘 쳤던, 말발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개둥이(개주둥이). 개둥이와의 우정은 광철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제목 때문에라도 눈치를 챘겠지만, 다양한 노래가 등장한다. 1980년대의 음악이 주를 이루고 팝송과 가요가 계속 언급된다. 솔직히 내가 모르는 음악도 많았고, 흥얼거리던 기억이 있는 오래된 노래도 있었다. 가사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멜로디가 기억나 나도 모르게 알게 된 노래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삶을 성장의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음악으로 인해 이들의 인생이 어느 정도 흔들리는, 혹은 포기한 꿈이 만들어낸 격한 감정들을 풀어낸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광철이 처음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던 순간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나올 때는, 음악이 한 인생을 어떻게 주관할 수 있는지 놀랍게 한다. 그 안에 한 사람의 집착 같은 사랑이 어떻게 폭력을 감당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사람이, 절실해지면, 간절해지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은 절망, 체념, 혹은 기대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광철의 엄마가 선택한 인생, 광철의 아버지가 포기한 삶, 광철이 알지 못하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그가 선택한 인생의 찰나들이 그에게 남겨준 게 뭐였는지, 그 고리의 시작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게 했다. 그 길에서 함께한 노래들이 구성지다. 피식 웃음도 났는데, 사실 그 절절한 마음들이 노랫가락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아픈 마음이 더 컸다. 노래라는 게, 음악이라는 게 위로나 즐거움이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때로는 그 음악이 거부와 분노의 몸부림이 될 때는 안타까움이 흘러내린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모든 것들에 음악도 있을 텐데, 그 음악이 미움으로 변해버린 순간 바로 버려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노래는 내게 휴식이었고, 삶을 버팅기게 하는 피난처였다. 그건 내가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부터가 그랬다. 구타 뒤에 나오는 아비의 그 흥얼거림.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이 싫어서도 나는 곧잘 내 방에 처박히곤 했다. 처음엔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헤드폰을 꼈다. 헤드폰을 끼는 순간, 나는 외부로부터 완벽히 단절되었다. 헤드폰만 끼면 원하는 소리를 언제고 들을 수가 있었고, 혼자서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었기에 아비의 노랫가락이 들려오지 않아도 나는 자주 헤드폰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FM 라디오를 듣다가 금방 팝송에 빠져들었고, 중1 때 처음 스모키 판을 사들이는 걸 시작으로 그때부터 과도한 열정으로 레코드판을 모아댔다. (47페이지)

 

『노래는 누가 듣는가』의 주인공 오광철의 인생 안으로 다가온 노래가 참 굴곡지다. 화자인 '나' 오광철의 연대기적 서술로 이어가는 이 소설 속에서, 틈틈이 그에게 다가온 노래가 그의 역사를 함께했다. 그의 삶에 숨겨진 것들이라고 말해도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다 그의 시간을 채워준 것들이지만, 그 당시에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고스란히 보여서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가 깊고, 죄의식을 만드는, 열정을 품었던 음악과 인생들. 좋아서 좋았고, 싫어서 싫은, 귀로 파고드는 그 음악들이 그에게 온갖 감정을 만들고, 분노게이지를 상승시켰으리라. 알 것도 같다. 어쩌지 못하는 그 몸부림을, 발악을, 회피를,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원인으로의 화풀이를, 결국, 어떻게든 이루어질 것 같은 화해의 멜로디를...

 

주둥이만 살아있던 개둥이와의 추억, 미친 듯이 패대기치던 아버지의 폭력 뒤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던 노래, 어머니가 중독되듯 빠져들었던 교회의 찬송가.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를 카페 풍차의 주인 정희. 순간순간 어둠이 온몸을 장식하지만, 햇빛 아래로 돌아온다. 누구나가 바라는 결말 아닌가? 읽으면서, 대물림하듯 술판을 벌이는 광철에게 매번 분노했지만, 그 이유를 찾고 싶어 거슬러 올라갈 때마다 그를 향한 분노는 동정으로 변한다. 내가 알 것 같은 느낌들,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일들, 그래서 보는 이가 좌절하게 하는 순간들이 답답했지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을 봐야만 안심할 것 같아서... 참으로 광철스러운 행보에 웃음이 나지만 어쩌랴. 그가 그런 모습인 것을. 됐다, 그 정도면. 지금쯤 어디 시골 다방에서 주방을 책임지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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