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삶의 방식
이수희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부부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 가족 구성원의 정족수를 채워야만 행복해질까?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부부가 처음부터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 평생 버팀목이 되어 줄 배우자와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선택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213페이지)

 

내가 언젠가부터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서 읽어보기로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내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자발적으로 엄마이기를 거부하는, 건강의 이유가 아닌 것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로 생각했던 거다. 아니었다. 결혼하고 부부가 된 후, 많고 다양한 이유로 엄마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공감의 인터뷰로, 누군가에게는 전혀 몰랐던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이겠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못하는) 이들에게는 고통으로 불행이다. 아이가 있든 없든, 결국은 행복 하고자 하는 인생을 사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개인이 선택한 행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없는 오지랖을 부리고 언어로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를 가진 이들의 세상에 한발 들여놓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상에 속하지 못하면서 점점 거리가 생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배경에 두지 않고 함부로 생각하고 뱉는 말들에 두 번 상처받는다. 아이가 없다는 게 차별받고 계속 상처를 받아야만 하는 일인지 묻고 싶은 순간이다.

 

우리 사회는 왜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사람들만 비추는가?

저마다의 사정을 다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다. 결혼했지만 자녀 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많은데도 많은 시선이 그들의 삶을 비추지는 않는다. 난임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아이를 포기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오늘의 삶에 충실하다가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들, 처음부터 많은 고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들.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 아이가 없는 그 이유를 왜 타인들은 듣지 않으려고 하고 배려하지 않는가. 왜 아이 없는 삶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가. 아이가 없는 삶을 왜 비정상으로 간주하는가.

 

사회에서는 아이를 '사랑의 결실'이라고 하며, 그 결실이 없는 이들의 관계를 쉽게 부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틀렸다. 그러므로 아이를 억지로 만들면서 그 결실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 증명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부모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명하면 행복해지는가? 행복은 증명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225페이지)

 

많은 여성의 인터뷰에 내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가장 가까이에서는 가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주고, 조금 더 나가면 주변의 사람들이 아이 문제로 고통을 준다.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아야지.' 그 말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여성들. 노력해도 생기지 않는 아이 때문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해도 해도 안 되어서 아이를 포기하고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는 데도 왜 아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가. 반대로, 결혼해서 당연하게(?)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지? 아이를 낳았으면 키우는 게 부모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잘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려운 일을 선택하는 것조차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는 게 현실 속 사회 분위기다. 특히 요즘처럼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려는 국가 정책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면 함부로 말 꺼내기도 무섭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여러 번의 난임 시술 끝에 건강만 나빠지고 결국 아이를 포기한 상황에도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를 낳지 못한 것만 회자되어 계속 오지랖을 거둘 줄 모르기만 한다. 당사자만큼이나 그 슬픔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추가 업무 담당이 된다. 면접을 볼 때마다 임신에 질문과 질책을 받는다. 난임 시술로 아예 사직하고서도, 결국 임신하지 못하고 재취업 하려고 해도 힘들다. 나라에서는 아이가 없다고 세금은 더 내라고 한다. 아이가 없으니 돈 들어갈 일 없다고 시부모님 용돈을 더 내놓으라고 한다. 손주가 없어서 밖에 나가면 남부끄럽단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행복인가?

인터뷰 답변을 듣고 있자니 화를 넘어서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왜 하나의 인간으로 봐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각자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마치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만 여겨진다. 왜 아이를 낳는 일이 생각과 계획이 빠진 채로 떠밀려야 하는지, 책임의 주체가 되는 개인은 왜 선택조차 어려운 일인 건지...

 

적당한 나이에 취직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적당한 나이에 아이를 낳고, 적당한 나이에 둘째를 낳는다…. 그런 적당한 삶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믿는 이들은 그 범주를 벗어난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다. (166페이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정상'이란 삶을 생각했다.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것을 이루며 보편적이라 여기는 인생의 항로를 가는 것. 그래서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이는 '낳는다'는 게 아니라 '선택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문제라고 여긴다.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 '출산은 부모가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능한 일(159페이지)'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 문제는 배우자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야 가능한 일일 거다) 내가 낳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고, 또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옛날 어른들 말씀처럼 자기 밥그릇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밥그릇 챙기기도 어려운 시대이지 않은가. 다른 것은 고사하고 밥 먹고 사는 일조차 너무 힘들기 때문에, 살면서 저절로 자기 밥그릇 챙기지 못한다. 그런 시대를 살면서 내가 낳은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지도 않고, 내가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낳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나는 환갑이 넘어서까지 미성년 자녀를 돌봐야 한다. 그때의 내가 경제적 육체적으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더 아이의 성장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아이는 낳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므로.

 

저자가 겪은 똑같은 일을 다른 여성도 겪는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그 실체를 확인하고,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자의의 선택이든 어쩔 수 없는 결과였든,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선택한 행복의 최선이라는 거다. '꼭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좀 더 깊게, 오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저자는 단순히 아이가 없는 이들의 인터뷰만을 들려주는 게 아니었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기 전에, 아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아이를 안 낳기로 했지만 갑자기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노후는 어떻게?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행복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벽 하나를 넘고, 세상을 더 배운 느낌이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미혼이든 비혼이든, 남자든 여자든,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고 생각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타인의 삶을 존중해주길 바라면서.

 

한국 사회에서 2인 가족의 삶은 고단하다. 수많은 이들이 '왜?'라고 질문해 온다. 생각 없이, 계획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는 축하는 보내는 이들이,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아이 없는 삶에는 의문을 표한다. 포기할 것은 얼른 포기하자. 그 삶이 어떤 모습이든, 부부 두 사람이 열심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2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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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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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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