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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누가 듣는가 - 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동효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평점 :
딱, 그 순간.
책을 읽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별것 아닌 내용에 갑자기 울컥해지거나,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눈에 들어온 문장 하나로 감동이 쏟아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배꼽 잡게 하는 허무맹랑한 제스처에 깔깔대거나... 우리 일상에 그런 순간을 만들어주는 게 많이 있겠지만, 책과 비슷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게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 기분에 맞춰, 상황에 어울리게 스리슬쩍 다가와 버리는 순간. 보통 이런 순간을 타이밍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 타이밍은 참 절묘하다.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이나 노래가 그렇게 다가오면 당황스럽잖아. 진짜 듣기 싫은 노래였는데, 갑자기 좋아지는 그런 거, 적응하기 좀 그렇잖아. 아이러니하게도, 그 타이밍이란 건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어느 순간, 정말이지 그 찰나에 꽂혀버리는 것. 오래전 얘긴데,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던 선배가 듣고 있던 노래 한 곡에 반해 그 선배를 좋아하게 된 적도 있다. '어? 이 노래 너도 좋아해?' 하는 괜한 공감의 이유를 찾아낸 게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제 와 기억해보면 그냥 웃을 일, 어렸을 적 얘기지만 그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역시 뭐든, 타이밍이 중요한 거였어.
왜 하필 지금 이런 노래가 나오는 것일까? 흘러나오는 저 노래야말로 그녀의 본질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문득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삶의 고비 고비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노래, 의미심장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모든 우연은 신이 흘린 편지래요, 소곤대는 성은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185페이지)
아버지의 구타가 장난 아니다. 주인공 오광철은 아버지의 술과 폭력으로 말더듬을 갖게 되었다. 이 말더듬은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첫 사회생활인 학교생활부터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그 말더듬은 어마무시한 장애가 된 거다. 학교생활, 직장생활, 군대생활, 연애까지 모두. 술을 마실 때,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말더듬은 잦아든다. 그가 찾은 말더듬의 치유법이다. 그래서 넘치게 술을 들이켠다. 술을 깨기 위해 노래방을 돌고, 다시 술을 마시고, 노래방, 술, 노래방, 술... 이 정도면 알코올중독 수준 아닌가? 금방 끊겨버리는 필름, 일어나보면 젖어있는 옷,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몸뚱이. '자신이 이렇게 된 게 다 그 인간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가 세상을 제대로 살지 못한 이유, 말더듬을 숨기려고 침묵을 택한 일상, 비겁하고 외로워지는 순간들은 덤.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모두 그 인간 탓이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모든 걸 내보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좋아했던, 기타를 잘 쳤던, 말발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개둥이(개주둥이). 개둥이와의 우정은 광철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제목 때문에라도 눈치를 챘겠지만, 다양한 노래가 등장한다. 1980년대의 음악이 주를 이루고 팝송과 가요가 계속 언급된다. 솔직히 내가 모르는 음악도 많았고, 흥얼거리던 기억이 있는 오래된 노래도 있었다. 가사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멜로디가 기억나 나도 모르게 알게 된 노래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삶을 성장의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음악으로 인해 이들의 인생이 어느 정도 흔들리는, 혹은 포기한 꿈이 만들어낸 격한 감정들을 풀어낸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광철이 처음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던 순간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나올 때는, 음악이 한 인생을 어떻게 주관할 수 있는지 놀랍게 한다. 그 안에 한 사람의 집착 같은 사랑이 어떻게 폭력을 감당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사람이, 절실해지면, 간절해지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은 절망, 체념, 혹은 기대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광철의 엄마가 선택한 인생, 광철의 아버지가 포기한 삶, 광철이 알지 못하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그가 선택한 인생의 찰나들이 그에게 남겨준 게 뭐였는지, 그 고리의 시작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게 했다. 그 길에서 함께한 노래들이 구성지다. 피식 웃음도 났는데, 사실 그 절절한 마음들이 노랫가락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아픈 마음이 더 컸다. 노래라는 게, 음악이라는 게 위로나 즐거움이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때로는 그 음악이 거부와 분노의 몸부림이 될 때는 안타까움이 흘러내린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모든 것들에 음악도 있을 텐데, 그 음악이 미움으로 변해버린 순간 바로 버려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노래는 내게 휴식이었고, 삶을 버팅기게 하는 피난처였다. 그건 내가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부터가 그랬다. 구타 뒤에 나오는 아비의 그 흥얼거림.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이 싫어서도 나는 곧잘 내 방에 처박히곤 했다. 처음엔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헤드폰을 꼈다. 헤드폰을 끼는 순간, 나는 외부로부터 완벽히 단절되었다. 헤드폰만 끼면 원하는 소리를 언제고 들을 수가 있었고, 혼자서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었기에 아비의 노랫가락이 들려오지 않아도 나는 자주 헤드폰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FM 라디오를 듣다가 금방 팝송에 빠져들었고, 중1 때 처음 스모키 판을 사들이는 걸 시작으로 그때부터 과도한 열정으로 레코드판을 모아댔다. (47페이지)
『노래는 누가 듣는가』의 주인공 오광철의 인생 안으로 다가온 노래가 참 굴곡지다. 화자인 '나' 오광철의 연대기적 서술로 이어가는 이 소설 속에서, 틈틈이 그에게 다가온 노래가 그의 역사를 함께했다. 그의 삶에 숨겨진 것들이라고 말해도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다 그의 시간을 채워준 것들이지만, 그 당시에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고스란히 보여서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가 깊고, 죄의식을 만드는, 열정을 품었던 음악과 인생들. 좋아서 좋았고, 싫어서 싫은, 귀로 파고드는 그 음악들이 그에게 온갖 감정을 만들고, 분노게이지를 상승시켰으리라. 알 것도 같다. 어쩌지 못하는 그 몸부림을, 발악을, 회피를,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원인으로의 화풀이를, 결국, 어떻게든 이루어질 것 같은 화해의 멜로디를...
주둥이만 살아있던 개둥이와의 추억, 미친 듯이 패대기치던 아버지의 폭력 뒤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던 노래, 어머니가 중독되듯 빠져들었던 교회의 찬송가.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를 카페 풍차의 주인 정희. 순간순간 어둠이 온몸을 장식하지만, 햇빛 아래로 돌아온다. 누구나가 바라는 결말 아닌가? 읽으면서, 대물림하듯 술판을 벌이는 광철에게 매번 분노했지만, 그 이유를 찾고 싶어 거슬러 올라갈 때마다 그를 향한 분노는 동정으로 변한다. 내가 알 것 같은 느낌들,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일들, 그래서 보는 이가 좌절하게 하는 순간들이 답답했지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을 봐야만 안심할 것 같아서... 참으로 광철스러운 행보에 웃음이 나지만 어쩌랴. 그가 그런 모습인 것을. 됐다, 그 정도면. 지금쯤 어디 시골 다방에서 주방을 책임지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