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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오베가 문단속하고 난 후 꼭 세 번씩 확인하는 장면과 관공서에 서류 들이밀며 싸우는 장면이다. 그 외 몇몇 장면들 역시, 계속 내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아저씨(할배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애매해 보여), 나랑 닮았다. 어떨 때 나는, 문이 잘 잠겼는지 몇 번씩 확인하다가 나가야 할 시간을 넘긴 적도 있다. 한 번만 확인하면 왠지 불안해서 두 번 세 번 잠금장치를 확인하곤 한다. 어딘가로(특히 관공서 같은 곳) 문의할 때 한 번의 전화로 끝낸 적도 거의 없다. 전화로 해결이 안 되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살면서 평생 이런 일 한 번도 겪지 않는 사람 많은 텐데, 나는 이상하게도 한 번 민원 접수할 때 깔끔하게 해결 안 되면 완료되었다는 답변 들을 때까지는 계속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다. 뭐, 상황에 따라서는 한 번 해서 안 되면 물러나는 경우도 많지만... 암튼 여러 가지 면에서 오베를 자꾸 눈여겨보게 되는 건, 내가 싫어하는 성격과 나와 닮은 모습이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격 못돼 보이고, 이웃들에게 사랑받지도 못하는 듯한, 사람 질리게 하는 이 남자를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 괜히 편들고 싶네.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란 때로 어렵다. 오베는 아마도 자기가 뭘 했어야 했는지 내내 알았을 것이다. 죽기 전에 누굴 도와야 했는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민원을 제기할 시간도. (387페이지)
이 까칠한 남자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그 귀찮은 일들을 손수 나서서 하는지, 그의 까칠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가 왜! 굳이! 죽으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죽겠다고 나오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나.
59세의 오베. 반년 전 그의 아내 소냐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을 색으로 표현해도 된다면, 오베는 흑백이고 소냐는 풍부한 색을 가진 여자였다. 그러니 소냐는 그가 가진 유일한 색인 것이다. 오베가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담아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의 대상. 아내와 평생을 함께하면서 싸우기도 했겠지만, 그런데도 그에게 아내는 믿을 수 있고 함께 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곁을 떠나니 더는 살 이유가 없어진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 아내를 만나러 가는 것.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그는 '오늘' 죽으리라 다짐하고 계획에 옮긴다. 아침마다 정해진 산책을 하고, 산책길에 매일 그의 관리 하에 감시되는 곳들을 점검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스스로 택한 죽음을 매번 다른 방법으로 실행에 옮기는데... 아니, 한 번 죽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들고, 왜 관심 없는 이웃들은 그를 귀찮게 하느냔 말이다. 죽으려고 천장에 매단 밧줄이 끊어지지 않나, 철길에 뛰어들려고 하는데 오히려 한 사람을 구해 영웅이 되지 않나,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먹고 죽으려는 순간에 귀찮게 찾아온 앞집 여자가 방해하고, 약을 먹고 한방에 가려는데 그것마저 고양이의 눈빛이 가로막고, 쉽지 않네 그려. 이거, 죽을 수는 있는 거야?
처음엔 그가 왜 자꾸 죽으려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까칠하고 괴팍한 노인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런데 매일 아침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의 아내에게 다녀오는 모습에서, '아, 이 남자는 삶의 전부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을 지탱해준 오직 하나가 사라졌던 그 부재, 그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의 삶에 함부로 침범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관여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하나. 그의 사랑 소냐밖에 없었으니까. BMW를 운전하는 루네를 싫어하는 것도, 아이패드에 키패드가 없어서 흥분하는 것도, 물건을 살 때마다 사기 당하는 기분이 들게 해서 열 받게 하는 것도 유일하게 다독여주고 충고해주던 한 사람. 자, 이제 그가 죽고 싶은 이유를 다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죽음을 응원할까? 아니면 목숨 함부로 결정짓는다고 평소 그의 성격대로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부어줄까?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읽고 나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그의 오래된, 새로운 이웃들이 하나씩 척척 해결해주고 있었다.
반드시 상기해야 할 것은 오베의 성격이다. 한 가지 그가 세운 원칙이 있다면 끝까지 고수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 그는 사브 외에는 자동차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사브 외의 차를 선택한 사람을 경멸할 정도다. 그의 평생 동안 차는 오직 한 브랜드. 사브! 그의 영역 내로 들어오는 것들을 반기지도 않는다. 길고양이도, 마음대로 침범한 금발머리의 개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사 온 앞집 인간들도! 그의 앞집 사람들이 이사 오던 날부터 오베는 이 죽음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란 것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 멀대같은 남자 패트릭과 그의 이란인 아내인 임산부 파르바네, 시크한 첫째 딸과 아직은 발음이 부정확한 둘째 딸. 옆집의 뚱보 지미까지 합세한 좌충우돌 오베 갈망기가 시작된다. 공동 공간의 규칙만 지킨다면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오베와 부딪힐 일도 없는데, 앞집 사람들이 이사 오고 난 후부터 한가했던 오베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물론 본인의 의사는 아니다. 끌려가듯, 어쩔 수 없이, 더 피곤해지기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일들. 더 시끄럽게 될까봐 이웃의 집을 고쳐주고, 방치하던 길고양이의 동사를 책임지고,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앞집 여자의 운전 강사가 된다. 아이가 없는 오베가 앞집 아이들 때문에 할아버지가 되고, 동네 양아치 같은 아이에게 자전거 수리를 가르쳐준다. 그의 선의는 아니었다. 그가 그 모든 일에 관여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더 소란스러워지는 게 싫고, 그들이 그를 귀찮게 하는 게 싫고, 동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다. 그리고 모든 게 빨리 마무리 되어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함이다. 그런데 삶은 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흐르는 법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듯하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119페이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봤던 그에게 행복이란 단어가 조용히 스며든다. 한때는 친했지만 별것 아닌 일로 오랫동안 틀어져있던 루네를 다시 보게 되고, 루네의 웃음을 확인하던 순간 오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자신도 웃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과 함께 했을 때 느꼈을 포만감이 다시 오베에게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를 죽지 못하게 하는, 다시 그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의 바빠진 일상을 보는 건 나도 행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젠 그만 쉬라면서 하루아침에 자신을 해고한 회사에 부당함을 호소해도 달라질 것 없었던 일상. 많은 것을 체념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대가 되어버린 자신을 보는 게 암흑이었을 시간. 부엌에 기대서서 천장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던 그가 새로운 이웃으로 인해 자존감과 행복을 되찾은 것 같아서 기뻤다. 이게 살아가는 거야, 이렇게 사는 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야, 당신만의 슬픔이 아니야, 우리도 공감하는 세상의 일부분이야. 그러니, 아직은 당신의 선택이 필요할 때는 아니지. 아직은, 아니야. 우리와 조금 더 행복해도 되잖아?
단순히 웃기기만 할 줄 알았다. 소개 글도 그랬지만, 이 괴팍하고 까칠한 노인네가 보여주는 행동에서 욕이 나올 뻔 하다가도, 그의 죽음을 방해하는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일들에 웃음이 났다. 이 영감탱이, 그렇게 까칠하게 살더니 맘대로 죽지도 못하게 되니 참으로 고소하구만! 그런데 말이다. '오베였던' 그의 과거 모습과 '오베인' 그의 현재가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점점 그를 이해하게 되는 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의 삶,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그의 성정, 그가 자라면서 배운 세상의 많은 모습,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달파 눈물짓게 한다. 그가 왜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부연설명처럼 따라오는 과거 에피소드가 그를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삶의 대부분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나이 들고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로 그의 존재감을 삭제하고, 삶 곳곳에서 발견되는 부조리함에 온갖 서류를 들고 싸워도 변하는 게 없는 공공기관의 대처가 피곤하고, 온갖 억울함을 호소해도 받아줄 곳이 없는 게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같이 싸우고 싶을 만큼 많이 공감하고 흥분했다. 내가 사는 작금의 현실도 다르지 않으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읽다가도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듯한 이웃들의 어이없는 오베를 향한 도전기가 웃음이 터지게 한다. 특히 기가 막힌 타이밍을 맞추는 앞집 여자 파르바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아, 재밌어. 그녀의 모습이 막 그려진다. 작은 키의 동양 여자, 임신해서 불룩한 배를 안고 종종거리며 다니는 모습, 작은 체구에도 오베에게 전혀 기죽지 않고 할 말 다하는 표정이 떠올라 유쾌해진다. 이 소설 물건일세 그려. 무슨, 사람을 조울증 환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거. (뭐긴,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감동이었다는 얘기지.)
재밌고 유쾌했다. 진지함과 감동이 함께 해서 더 눈길을 사로잡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