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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여섯 달이 지나갔다는 말...

나름 성실하게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했는데, 마무리까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신간평가단 에세이 마지막 추천 도서.

 

 

 

소설가 손홍규의 칼럼을 묶은 글.

사실 그의 소설이 더 읽고 싶었지만 자꾸 미루게 되고 보니

이렇게 나온 에세이를 먼저 읽어도 좋을 듯하다.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이 한권에 다 담겨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기고,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어떤 희망 같은 것도 기대해 본다.

직설적인 문장도 환영.

 

 

 

 

 

 

 

 

저자의 전작을 읽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취재 형식의 연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했는데,

이번 도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하고 싶은 말,

가슴이 품은 말,

삶의 변화들을 글과 사진으로 엮었다.

 

펼쳐보고 싶다.

 

 

 

 

 

시골 생활 만만하게 본 거 아녀?

 

왠지 웃음이 나게 하는 일상의 에피소드가 막 펼쳐질 것 같은 느낌.

사실 우리의 일상이 좀 이럴 것 같지 않아?

다 아는 것 같지만, 다 좋을 것 같지만,

아닌 것 투성이.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튀어나와 웃음짓게 하는 것.

(그게 항상 좋지는 않지만...)

공감해보고 싶은 글이다.

 

 

 

 

 

 

유인경과 문정희가 여자의 몸을 주제로 나눈 대화라는데...

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보다는 여자로 사는 삶에 대해 더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역사 속 여자에서부터 오늘의 여자까지...

유쾌한 수다가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 같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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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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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오베가 문단속하고 난 후 꼭 세 번씩 확인하는 장면과 관공서에 서류 들이밀며 싸우는 장면이다. 그 외 몇몇 장면들 역시, 계속 내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아저씨(할배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애매해 보여), 나랑 닮았다. 어떨 때 나는, 문이 잘 잠겼는지 몇 번씩 확인하다가 나가야 할 시간을 넘긴 적도 있다. 한 번만 확인하면 왠지 불안해서 두 번 세 번 잠금장치를 확인하곤 한다. 어딘가로(특히 관공서 같은 곳) 문의할 때 한 번의 전화로 끝낸 적도 거의 없다. 전화로 해결이 안 되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살면서 평생 이런 일 한 번도 겪지 않는 사람 많은 텐데, 나는 이상하게도 한 번 민원 접수할 때 깔끔하게 해결 안 되면 완료되었다는 답변 들을 때까지는 계속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다. , 상황에 따라서는 한 번 해서 안 되면 물러나는 경우도 많지만... 암튼 여러 가지 면에서 오베를 자꾸 눈여겨보게 되는 건, 내가 싫어하는 성격과 나와 닮은 모습이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격 못돼 보이고, 이웃들에게 사랑받지도 못하는 듯한, 사람 질리게 하는 이 남자를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 괜히 편들고 싶네.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란 때로 어렵다. 오베는 아마도 자기가 뭘 했어야 했는지 내내 알았을 것이다. 죽기 전에 누굴 도와야 했는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민원을 제기할 시간도. (387페이지)

 

이 까칠한 남자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그 귀찮은 일들을 손수 나서서 하는지, 그의 까칠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가 왜! 굳이! 죽으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죽겠다고 나오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나.
59세의 오베. 반년 전 그의 아내 소냐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을 색으로 표현해도 된다면, 오베는 흑백이고 소냐는 풍부한 색을 가진 여자였다. 그러니 소냐는 그가 가진 유일한 색인 것이다. 오베가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담아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의 대상. 아내와 평생을 함께하면서 싸우기도 했겠지만, 그런데도 그에게 아내는 믿을 수 있고 함께 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곁을 떠나니 더는 살 이유가 없어진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 아내를 만나러 가는 것.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그는 '오늘' 죽으리라 다짐하고 계획에 옮긴다. 아침마다 정해진 산책을 하고, 산책길에 매일 그의 관리 하에 감시되는 곳들을 점검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스스로 택한 죽음을 매번 다른 방법으로 실행에 옮기는데... 아니, 한 번 죽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들고, 왜 관심 없는 이웃들은 그를 귀찮게 하느냔 말이다. 죽으려고 천장에 매단 밧줄이 끊어지지 않나, 철길에 뛰어들려고 하는데 오히려 한 사람을 구해 영웅이 되지 않나,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먹고 죽으려는 순간에 귀찮게 찾아온 앞집 여자가 방해하고, 약을 먹고 한방에 가려는데 그것마저 고양이의 눈빛이 가로막고, 쉽지 않네 그려. 이거, 죽을 수는 있는 거야?

 

처음엔 그가 왜 자꾸 죽으려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까칠하고 괴팍한 노인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런데 매일 아침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의 아내에게 다녀오는 모습에서, ', 이 남자는 삶의 전부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을 지탱해준 오직 하나가 사라졌던 그 부재, 그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의 삶에 함부로 침범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관여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하나. 그의 사랑 소냐밖에 없었으니까. BMW를 운전하는 루네를 싫어하는 것도, 아이패드에 키패드가 없어서 흥분하는 것도, 물건을 살 때마다 사기 당하는 기분이 들게 해서 열 받게 하는 것도 유일하게 다독여주고 충고해주던 한 사람. , 이제 그가 죽고 싶은 이유를 다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죽음을 응원할까? 아니면 목숨 함부로 결정짓는다고 평소 그의 성격대로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부어줄까?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읽고 나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그의 오래된, 새로운 이웃들이 하나씩 척척 해결해주고 있었다

 

반드시 상기해야 할 것은 오베의 성격이다. 한 가지 그가 세운 원칙이 있다면 끝까지 고수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 그는 사브 외에는 자동차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사브 외의 차를 선택한 사람을 경멸할 정도다. 그의 평생 동안 차는 오직 한 브랜드. 사브! 그의 영역 내로 들어오는 것들을 반기지도 않는다. 길고양이도, 마음대로 침범한 금발머리의 개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사 온 앞집 인간들도! 그의 앞집 사람들이 이사 오던 날부터 오베는 이 죽음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란 것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 멀대같은 남자 패트릭과 그의 이란인 아내인 임산부 파르바네, 시크한 첫째 딸과 아직은 발음이 부정확한 둘째 딸. 옆집의 뚱보 지미까지 합세한 좌충우돌 오베 갈망기가 시작된다. 공동 공간의 규칙만 지킨다면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오베와 부딪힐 일도 없는데, 앞집 사람들이 이사 오고 난 후부터 한가했던 오베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물론 본인의 의사는 아니다. 끌려가듯, 어쩔 수 없이, 더 피곤해지기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일들. 더 시끄럽게 될까봐 이웃의 집을 고쳐주고, 방치하던 길고양이의 동사를 책임지고,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앞집 여자의 운전 강사가 된다. 아이가 없는 오베가 앞집 아이들 때문에 할아버지가 되고, 동네 양아치 같은 아이에게 자전거 수리를 가르쳐준다. 그의 선의는 아니었다. 그가 그 모든 일에 관여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더 소란스러워지는 게 싫고, 그들이 그를 귀찮게 하는 게 싫고, 동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다. 그리고 모든 게 빨리 마무리 되어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함이다. 그런데 삶은 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흐르는 법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듯하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119페이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봤던 그에게 행복이란 단어가 조용히 스며든다. 한때는 친했지만 별것 아닌 일로 오랫동안 틀어져있던 루네를 다시 보게 되고, 루네의 웃음을 확인하던 순간 오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자신도 웃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과 함께 했을 때 느꼈을 포만감이 다시 오베에게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를 죽지 못하게 하는, 다시 그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의 바빠진 일상을 보는 건 나도 행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젠 그만 쉬라면서 하루아침에 자신을 해고한 회사에 부당함을 호소해도 달라질 것 없었던 일상. 많은 것을 체념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대가 되어버린 자신을 보는 게 암흑이었을 시간. 부엌에 기대서서 천장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던 그가 새로운 이웃으로 인해 자존감과 행복을 되찾은 것 같아서 기뻤다. 이게 살아가는 거야, 이렇게 사는 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야, 당신만의 슬픔이 아니야, 우리도 공감하는 세상의 일부분이야. 그러니, 아직은 당신의 선택이 필요할 때는 아니지. 아직은, 아니야. 우리와 조금 더 행복해도 되잖아?

 

단순히 웃기기만 할 줄 알았다. 소개 글도 그랬지만, 이 괴팍하고 까칠한 노인네가 보여주는 행동에서 욕이 나올 뻔 하다가도, 그의 죽음을 방해하는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일들에 웃음이 났다. 이 영감탱이, 그렇게 까칠하게 살더니 맘대로 죽지도 못하게 되니 참으로 고소하구만! 그런데 말이다. '오베였던' 그의 과거 모습과 '오베인' 그의 현재가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점점 그를 이해하게 되는 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의 삶,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그의 성정, 그가 자라면서 배운 세상의 많은 모습,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달파 눈물짓게 한다. 그가 왜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부연설명처럼 따라오는 과거 에피소드가 그를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삶의 대부분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나이 들고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로 그의 존재감을 삭제하고, 삶 곳곳에서 발견되는 부조리함에 온갖 서류를 들고 싸워도 변하는 게 없는 공공기관의 대처가 피곤하고, 온갖 억울함을 호소해도 받아줄 곳이 없는 게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같이 싸우고 싶을 만큼 많이 공감하고 흥분했다. 내가 사는 작금의 현실도 다르지 않으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읽다가도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듯한 이웃들의 어이없는 오베를 향한 도전기가 웃음이 터지게 한다. 특히 기가 막힌 타이밍을 맞추는 앞집 여자 파르바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 재밌어. 그녀의 모습이 막 그려진다. 작은 키의 동양 여자, 임신해서 불룩한 배를 안고 종종거리며 다니는 모습, 작은 체구에도 오베에게 전혀 기죽지 않고 할 말 다하는 표정이 떠올라 유쾌해진다. 이 소설 물건일세 그려. 무슨, 사람을 조울증 환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거. (뭐긴,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감동이었다는 얘기지.) 

 

재밌고 유쾌했다. 진지함과 감동이 함께 해서 더 눈길을 사로잡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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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상당히 현실적인 투명인간이군! 『안녕, 다비도프氏』

 

 

장난삼아, 혹은 남들 몰래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투명인간의 생활이 이 남자 같다면 정말, 못할 짓이군. 아, 나의 상상과 바람과 희망을 이렇게 꺾어놓다니. 슬프다. 슬프긴 슬픈데, 투명인간인듯 투명인간이 아닌 것 같은 투명인간의 모습이 웃기면서 슬픈 거다. 투명인간이나 불투명인간이나 왜 현실을 살아가는 건 똑같은 거야?! 아 쫌, 판타지 좀, 팍팍 심어주면서 '어이, 여기 이 망토 한 번 걸쳐봐. 네가 그토록 바라던 투명인간이 될 거야. 실컷 즐겨 보게~' 뭐 대충 이렇게 기분 좋은 꿈이라도 꿔야 하는 거 아녀? 아니면, 꿈 깨라고 일부러 그런 거야?

 

투명인간과 불투명인간이 존재하는 세상. 불투명인간의 세상에서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굳이 드러내서 아는 척하지 않는다. 세상 시끄러워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지. 주목받지 못한 인생을 살다가 드디어 연극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열연할 기회가 찾아온 주인공. 자신감도 있고 느낌도 좋다. 퐈이야~ 드디어, 주인공이야! 그런데 무슨 마가 낀 건지 처음 공연하는 날, 무대 위로 오른 그는 갑자기 투명인간이 된다. 왜? 나도 모르지. 모든 게 엉망이 된다. 여자 친구는 날아가고,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연극은 조연이 주인공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부모마저 자신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도착한 의문의 엽서 한 장. 불가리 익스트림 옴므가 다비도프 쿨워터맨에게 모임의 초청장을 보낸 것. 다비도프 쿨워터맨은 누구? 바로, 당신. 너라고! 신입 투명인간. 자기만 투명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만. 투명인간이 무더기로 있었어. 아니 그럼, 이 투명인간은 어떻게 상대를 알아본단 말이야? 아하, 향수. 그들의 이름은 향수로 표현된다. 오직 그 사람만이 그 향수를 뿌리고 나타나야 한다는 불문율. 그래야 상대방이 누구인지,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거 참, 별세상이군. 어쨌든 투명인간 집단에 입성한 것을 축하(?)합니다, 다비도프씨~

 

기존의 투명인간 얘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어차피 같은 설정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거라면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투명인간이 되면 제일 먼저 은행을 털어야지, 하는 식상한 생각 말고. 뭔가 기발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를 만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의외의 행동이나 발상으로 투명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선을 붙잡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안녕, 다비도프氏』는 그 기발함과 재치가 읽는 재미를 준다. 특히 앞집 여자 캐릭터 완전 죽여준다. 동등의 개념을 아주 확실하게 써준다. '동등'이란 내가 어디 있는지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네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기 위해 밀가루를 뿌리는 거다.(아, 이 부분은 책을 읽어보면 안다.) 하는 말마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게 하다가도 '틀린 말 하나도 없잖아?' 하며 인정하게 되는 마력을 가진 여자다. 반박의 여지를 품을 수조차 없게 한다. 이런 캐릭터의 이런 독설(?) 너무 좋아. 흐흐흐~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투명인간과 함께 사는 부모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아하' 하는 다른 입장을 살피게 한다. 투명인간 아들과 사는 부모가, 어디선가 계속 CCTV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앞집 여자의 '동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 반대로 나는 상대에게 보이는 사람. 일방적으로 나의 모든 것이 상대에게 비춰지고, 나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동선조차 보지 못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일 수 있는...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 나한테는 이게 없었던 게 아닐까? 총… 아니, 이 한 방의 총성…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게 하고 거기서 머물게 하는… 나의 진짜 목소리… 어쩌면 내 손에 언제나 총이 있었는데… 나는 두려워 한 방 쏴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던 거 아닐까….' (246페이지)

 

불투명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들이 씁쓸하고 웃프게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공감을 불러낸다. 곳곳에서 풀어내는 세태를 꼬집는 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서글픈 인생의 장면을 고발한다. 입사원서에 사진 따위가 뭐가 필요하다고(일만 잘하면 되지 외모로 뽑아?), 진실을 풀어놓겠다는데 왜 포털 게시판의 글을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거며(검색 순위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거 정말이야?), 세상에 진실이 너무도 많아서 저마다의 입장에서 다 끼워 맞출 수도 있는데 그중 살아남는 진실은 힘 있는 자의 진실이라는 거... 약자에게 행해지는 윽박지름, 어느 곳에서나 사람이 모이면 조직이 되고 사회 질서를 위해 규범이 생긴다는 진리. 무엇보다 인간이 나약해지는 틈을 타 들어오는 온갖 절망들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줄 때는 섬뜩했다. 어쩌면 투명인간이 된 것도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길을 가는 느낌? 샤넬No.5가 투명인간이 될 소지가 보이던 인물들을 관심 두고 봤던 것처럼 결국 정해진 운명이라는 건가? 그게 아니면 참 좋겠는데 어째 흘러가는 분위기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혹시 이러다가, 나도 투명인간이 되는 거 아닌가 몰러.

 

'누구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서 그런 줄 아냐?' 라고 울부짖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다시 불투명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인간으로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듯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방법이 쉬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소설에서 계속 이어지는 에피소드와 설정, 주인공의 방향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참 많은 시선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비도프씨와 그의 부모,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앞집 여자, 사건 해결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있는 최형사, 왠지 사기당한 기분이 들게 했던 조화백, 그리고 가장 마음 갔던 인물 샤넬No.5까지. 기발함과 상상력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재밌었지만 블랙코미디 같았다. 웃기지만 슬픈, '이건 그냥 판타지잖아.'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한편으로는 정말 내 주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투명인간이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의심도 들고. ^^ 투명인간으로의 삶이 무엇을 고민하고 관찰하며,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볼 수 있었던 작품. 이게 현실이든 판타지든,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게 진리인 듯하다.

 

그나저나, 앞집 여자 캐릭터 완전히 닮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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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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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셨습니까?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온순하고 진실 되며 믿음직스럽게 전달될 수 있는 게 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번 쓰면 지우기가 쉽지 않고, 지워도 흔적이 남으니 말 한마디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골라서 쓸 것 같다. 무슨 말을 할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뭘까,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식으로, 한 번에 한 마디를 쓰더라도 많은 고민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더 진중하고 진실하게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실제로 내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럴 것 같거든...

 

오래전에, 지금처럼 팩스나 이메일, 휴대전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전에는, 편지가 가장 원활한 통신 수단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빨리’를 외치는 이 시대에 우편으로 오가는 편지는 그렇게 효율적인 통신 수단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가끔 그때의 정서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가끔 있는 걸 보면, 편지는 할 말을 전하는 수단 그 이상의 어떤 의미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게 전해지는 그 무엇이 편지글에 더 얹어져서 전달되는 거라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전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그때,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았던 편지는 서로를 향한 훈훈한 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며칠에 걸려 오가는 편지 속에 상대의 건강을 염려하며 안부를 묻고, 힘든 인생에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응원한다. 특히 이오덕은 권정생의 오래된 병을 걱정하며 약값을 부쳐주고, 그가 더위와 추위를 유독 심하게 앓을 때마다 근심한다. 교회의 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며 글 쓰는 삶을 놓지 않는 그의 열정에 육체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으로 서 있는 아동문학에 관한 내용이 오갈 때마다 ‘아, 이 두 사람은 정말이지 한국 아동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불편한 몸으로 시와 동화를 쓰고 평론을 쓰는 그들에게 좀 더 투명하고 안정된, 진심으로 이루어진 아동문학계가 형성되어야 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한탄하게 되고 글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고 싶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게 오직 쓰는 일 한 가지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닐 텐데, 아동문학을 둘러싼 사람들과 사회적 배경들이 그들이 가진 아동문학을 향한 애정에 자꾸 냉기를 퍼붓는 듯했다. 열심히 썼으나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고, 출판계와 작가들의 신뢰가 무너지기도 했고, 사람이 모여서 이룬 공간인지라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일도 있었을 테다. 그때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동문학이라고 해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게 된다.

 

아동문학이 문학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까닭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작가, 시인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아동문학의 정체성과 위기는 오직 우리 문학인들의 반성과 진지한 노력으로서만 타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재미있게 읽히면서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써서 독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편 문단과 사회에는 우리 아동문학을 옹호하고 그 존재를 과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5페이지 /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보낸 편지)

 

행인 건, 그런 위기가 한두 번 찾아온 것도 아닐 텐데 끝까지 그 애정을 놓지 않았기에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 된 두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빛나는 작품들 역시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겠고. 겨울의 추위에도 골덴바지에 고무신이면 충분하다는 권정생, 그런 권정생이 마음에 걸려 늘 걱정하는 이오덕. 열두 살의 나이 차가 무색하게 소박하게 이어가는 두 사람의 우정은 진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시쳇말로 가족끼리도 마음 상하면 돌아서서 남이 되기 일쑤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갖고 30년의 우정을 지속하기란 진심을 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 몸이 아픈 것처럼 스스럼없이 보내는 약값이 그렇고, 바쁜 와중에 굳이 서신을 주고받는 시간을 할애하는 게 정성스럽고, 서로의 글에 전하는 애정과 조언이 상대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만 같아 애틋하다. 아마 글 쓰는 일에서도 서로에게 많은 영향이 미쳤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꾸준히 관심 두고 써내려간 아동문학이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고 정이 담긴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얘기하고 싶은 거라고...

 

몸으로 생활하며 쓴 아이들 것과, 어쩔 수 없이 머리로 만들어진 노래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어른이 아이들을 위한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훌륭한 동요 동시인데도 아이들은 그렇게 감동스럽게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되는 고민일 것입니다. (358페이지 /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일상과 꿈에 관한 고민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게, 두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이 아닐까 싶다. 평생을 두고 이렇게 훌훌 털어내듯,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고통의 순간까지 말할 수 있는 사이가 그리 쉽게 이루어질까.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야 굳어지는 관계인지 알게 하는 편지였다.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느끼는 설렘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장면에 감동하며 수다스러워지는, 아끼는 책도 선뜻 빌려줄 수 있는 사이. (솔직히 나는 책 안 빌려주는 사람이라, 책 빌려주는 관계는 어지간한 믿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 살짝 부러워진다. ^^ 특히 이오덕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며 쓴 권정생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모두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무던히도 애썼다. 출판이 미뤄질 때마다 안타까워했고, 그의 글을 이곳저곳에 기고하기를 바라며 전달했다. 아마 이오덕의 이런 노력이 권정생의 글쓰기를 더욱 부채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보나 여러 가지로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서로의 발전을 향해 가는 길이었음은 틀림없다.

 

 

1973년 이오덕과 권정생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2003년 이오덕이 하늘로 가기까지 3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읽는 이에게 소박하고 담백하게 다가온다. 편지나 일기가 지극히 사적인 내용인데도, 이들의 편지는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오늘 하루, 어느 순간을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익숙하게 공감되는 글이다. 편하게 들리면서도 삶의 한순간을 배우는 묵직한 분위기로 말이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라고 묻는 안부가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는 일상의 인사로 느껴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과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인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에게나 밥은 먹었느냐는 안부가 금방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이 두 사람 사이의 정과 믿음이 단단함을 글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당연하게 이런 편지도 주고받고, 오늘날 이렇게 책으로 공개되기까지 이르렀겠지, 싶다. 서로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나이 들어가며 배우는 세상의 모습, 한국 아동문학의 변천사까지 한눈에 보게 하는 내용이 좋았다. 이오덕과 권정생이 서로에게 전하는 애정과 위로가 그대로 전해져 진정한 교류와 교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따뜻한 글이다.

 

 

덧)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 『강아지 똥』과 『몽실 언니』하면 권정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요즘이다. 이 편지글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어 그런지 이 작품들이 더 솔직하면서도 아프게 보이기도 한다. ‘동화’라는 단어에 내가 가진 선입견 같은, 환상적인 판타지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여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한 시절의 아픔, 혹은 누군가의 고통이 묻어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서 아름다웠다.

앞으로는 제 동화도, 그리고 행동도, 좀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에 맺힌 것, 실컷 풀어 볼 수 있는 작품 쓰고 싶습니다. 선생님, 부디 염려 마세요. 언젠가 모든 오해가 풀릴 날이 오겠지요. 선생님이 지금 걱정하시는 사건도 조금 짐작이 갑니다만, 저는 별로 걱정 않고 있습니다. (121페이지 /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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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리를 잘한다, 고 생각했다. 여기서 ‘잘’의 의미는 눈앞에서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청소하는 걸 워낙 싫어해서 그런지 눈앞에 뭐 있는 꼴을 못 본다. 내가 정리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버리거나 쌓아두거나. 쌓아놓는 것도 위태로울 수 있으니(특히 책), 적당한 높이로 쌓아두다가, 한 번씩 꺼내 확인하고 버리거나 하는 정도. 청소도 너무 싫으니 최소한으로 하는데, 그것도 청소기 돌리기 귀찮아 아주 간략한 방법으로,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알라딘에서 책 구매하면 따라오는 스티커형 영수증을 떼어서 먼지 찍찍이로 쓴다. 이건 집에 넘쳐난다. 함부로 막 쓴다. 찍찍 소리 내면서 먼지나 머리카락을 다 떼어내고, 천 원에 100장짜리 물티슈를 사서 막 뽑아서 닦는다. 물론 여기서 정리를 안 하니 눈에 보이는 곳만 닦는다는 게 함정이다. 제대로 된 청소가 안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한번 뒤집어엎기 전에는 제대로 된 청소라는 게 불가능한 나이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괜찮아. 이 정도면 숨 쉬고 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

 

어질러 놓는 게 싫다고 말하면 혹자는 내가 엄청나게 깔끔하고 항상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던데(주변에서 그렇게 알고 있더라), 절대 그렇지 않다. 오백 권도 안 되는 책이 몇 년 동안 정리가 안 되어 책 있는 방에는 잘 안 들어간다. 가끔 필요한 책 꺼내러, 새로 사들인 책 던져놓으러, 뭔가 꽂히면 다 팔아버리려고 들어가는 게 전부다. 그 정도면 왜 청소하거나 정리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한소리 할 만한데, 적어도 책 있는 방에 한해서는 그리 뭐라 하지 않는다. 꾸준히 책을 사는데도 늘 책의 양은 그대로라 잔소리할 명분이 없어서인 듯하다(이건 내 생각). 분명 매일같이 택배 기사님이 책 던져주고 가시는데, 책이 새끼 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지난번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한번 읽고 다시 안 읽는 책은 팔거나 지인에게 나눔 하거나 기증하거나 하니까. 그리고 이 이상으로 책을 늘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얼추 지켜지는 것 같기도 하고. 늘 게으른 습관처럼 많이 읽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요즘엔 읽고 싶어졌다고 막 책 사기도 좀 그렇고... 암튼, 책 정리에 관해서도 청소 안 하는 나의 습관이 적용되니까, 아주 조심해야 함.

 

그에 반해 나는 엄마가 정리 안 하는 걸 가끔 뭐라고 하는데, 그건 엄마가 정리 안 한 게 눈에 그대로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안 쓰는 그릇은 안 보이는 곳에 넣어두든지 버리든지 하면 되는데,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면서 굳이 버리지 않는다는 것. 부피가 큰 냄비 같은 경우 더 눈에 띄는데, 내 살림 아니니까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겠고... 아예 주방에 안 들어가는 게 상책. 그러면 또 늙은 엄마 밥 시켜 먹는다고 또 한 소리. 아, 이걸 우째...

 

특히 엄마의 옷 얘기는 하다 보면 끝이 없는데, 매일 입을 옷이 없다면서(이건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말 아닌감? 옷을 사도 입을 옷이 없어. ㅎㅎ), 입을 거 하나 사야겠다면서, 서랍에 옷이 한 가득이다. 해가 바뀌었으니,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 하나 산다고 세상 무너지지 않을 터이니, 뭐가 어떻겠느냐마는, 문제는 서랍의 옷을 버리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놔둬, 입을 거야.’ 하면서 버리지 않은 옷이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나는, 새로 옷을 사는 양만큼 버리라고 했다. 어차피 좁은 집이기도 하지만, 한 번 안 입은 옷은 곧! 입을 일이 없다는 거다. 엄마한테 항상 부르짖는 게, 작년에 안 입고 올해 안 입은 옷은 내년에도 안 입는다는 것. 그러니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 버리라는 것!!!! 입지도 않은 옷에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아서 입을 거라고 끌어안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잔소리 끝판왕을 흉내 내는 나지만, 그래도 옷 주인이 안 버리는 것을 어쩌랴. 맘대로 하시라면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

 

 

주말 동안, 지난겨울부터 정리하려던 것을 이제야 마음먹고 정리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아름다운 가게 기증 접수 신청해놓고, 곧 수거하기 오신다기에 미리 다 정리해놓으려고. 사실 내 성격대로 했으면 다 끌어내 놓고 버리면 끝인 것을, 엄마는 또 그 물건들을 꺼내놓고 한참을 망설이신다. 이걸 써? 말어? 버려? 말어? 누구 줄 사람 없나? 이건 필요할 것 같은데? 이건 다시 입을 것 같은데? 아, 고민은 언제 끝나나... 엄마가 망설이는 사이 나는 다 끌어다가 내놓았다. 조카가 타던 킥보드, 롤러블레이드, 안 듣는 음반, 옷, 신발, 가방 등등. 특히 이번에 물건 꺼내다가 놀란 건, 아니 우리 집에 한복이 열 벌도 넘게 있더라. 그것도 엄마 한복은 비싼 것만 남아 있더라고. 그 와중에 엄마는 이 한복 비싸게 했는데, 언제 입을 일이 있을지 모른다며 도로 원래의 박스에 넣으려고 하기에 얼른 꺼내서 내보낼 박스에 넣었다. “엄마, 요즘엔 이것보다 예쁜 한복 더 많아. 앞으로 한복 입을 일이 몇 번이나 더 있다고? 그리고 엄마 살쪄서 이거 맞지도 않잖아?!” 와아, 나의 마지막 말에서 엄마의 입이 닫힌다. 정말 모든 이유를 들어서도 남겨둘 수 있겠지만, 엄마는 몇 년 사이에 살이 쪄서 예전 한복이 안 맞는다. 그 옷에 맞추기 위한 만큼 다시 살이 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걸 본인도 인정하는 순간 그 한복들은, 예전 옷들은 기증할 박스에 풍덩 담겼다. 아이고, 개운해라.

 

특히 어디서 숨은 그릇이며 냄비들이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지,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 쓰던 게 아니고 새것들. 커피잔 세트 여러 개, 그릇 세트 여러 개, 냄비 세트 여러 개... 나도 처음 보던 것들이 구석구석에서 막 쏟아져 나왔다. 엄마한테 이거 다 언제 샀던 거냐고 물었더니, 언제인지는 몰라도 본인이 산 게 맞댄다. 세상에... 그동안 짝짝이 그릇 사용할 게 아니라 이거 다 꺼내어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지금은 쓰지도 않을 그릇들이기에 그것도 미련 없이 나눔 박스에 넣었다. 아름다운 가게 직원 둘이 수거하러 왔는데, 우리가 꺼내놓은 물건들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 가지고 온 차량이 1톤 탑차였는데, 그 안에 3분의 2 정도 채워졌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원래 우리 다음으로 수거하러 갈 곳이 있었는데, 센터에 들어가서 이 물건들 내려놓고 다시 나와야겠다고, 정말 엄청나다고 하시더라고. 그러면서 기증 물품은 자기네가 정리하고 수량 및 금액 확인해서 연락 주겠다고 하더라. 원래 수거할 때 박스 기준으로 몇 개라고 서로 확인하고 가져가는데, 우리한테 수거한 물품의 양이 워낙 많아서 박스로 정리가 안 되기에 그렇다고 말하더라고. 내가 봐도 많긴 많더라. 그런데 며칠 지나면 또 정리하고 버릴 게 나올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은 뭐란 말이야...

 

엄마의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가 조금(아주 조금) 휑하다. 속이 다 후련하다면서 옆에서 자꾸 건드렸더니 엄마가 팩~! 소리를 지른다. 우리에게 쓸모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 재활용된다는 건 좋은 일인데, 엄마의 물건이 나간 자리가 마음까지 휑하게 하나보다. 괜한 심통에 나한테 뭐라 그러네. 그래도 나는 책 때문에 엄마한테 욕먹지는 않았지롱~(미리 땡스기브에 기증 신청해서 끝내버렸다는.)

 

 

문득, 이번에 며칠 동안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한꺼번에 버리고 말고 할 게 아니라, 평소에 정리만 잘해도 오늘 같은 중노동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거다. 한꺼번에 정리하고 치우고 버리고 하려니까 몸이 고생이다. (이번에 몽땅 버린 물건 중에 내 것은 거의 없다는 게 쫌 억울하다. 엄마 거니까 엄마 혼자 다 해야 하는 거 아녀?! 엄마가 등짝을 후려치는 소리가 막 들리긴 하는데...) 허리가 아파서 파스까지 붙였는데, 정말이지 정리 잘하는 달인이 되고 싶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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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fair7 2021-03-23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릇 세트를 왜 버린 거에요 ? 쓰던 그릇을 처분하고 ㅡ 새 그릇 세트를 쓰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