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해 꼼짝달싹 못할 때에는, 그것이 나중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해지겠지요. 하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반드시 무언가 얻은 것이 있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힘 110페이지)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나. 나중에 되돌아보면?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 많은 것이 떠나간 후에, 사라진 후에야 알 수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럼 그렇게 지나간 시간과 많은 것은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 건지 답이 없다. 아니, 그렇게 들렸다. 막연하게 하는 말은 내 입에서 맴도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인문학자까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암담했다. 너무 느긋하게, 아무런 불행도 겪어보지 않은 채로, 그냥 다 잘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좀 삐딱해졌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깐이었다. 뭔가 위로와 토닥임을 건네는 듯한 그의 말에, 근거 없는 안도감까지 밀려오는 것처럼 잠시 멍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혹시나 차근차근 말하는 투가 지루한 설득처럼 들리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차분히 들을 수 있어서 진중하게 들리는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흔하디흔한 단어처럼 들리는 ‘마음’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어떤 힘을 얘기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모습과 접목하려 하는지 기대됐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토대로 저자의 마음 이야기는 시작한다. ‘왜?’ 왜 굳이 그 두 책으로 마음의 힘을 꺼내려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강상중의 책을 끝까지 읽은 게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펼쳐 들고 싶었던 이유가 크다. 두 책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이 책으로 같이 얘기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을 듯하다. (아마 독서토론 하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마음』이나 『마의 산』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저자의 이야기를 소화하거나 공감하기에 무리가 되진 않는다. (책의 뒷부분에 두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가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마음』의 주인공 ‘나’(선생을 지칭하는 ‘나’와 선생의 유서를 받은 ‘나’)의 생각과 『마의 산』에서는 요양소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 주인공 한스의 여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야기의 토대로 삼는다. 답 없는 고민과 방황으로 세월을 보낸 것처럼 보이는 두 주인공의 삶을 비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혹은 모양에 관한 언급은, 잠깐 이렇게 돌아가도 괜찮다는 말을 대신하는 것으로 들린다. 저자 자신이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와 고민이, 성장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러서 이런 삶의 자세를 만든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어쨌거나 지금 그의 모습은 이런 말을 해도 좋을 것처럼 안정되어 보이니, 괜한 믿음에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과거의 그러한 시간이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삶의 연속성으로 해석된다. 그 의미를 담아 이야기를 계승한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마음이란 것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한 나름의 자기 이해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 20페이지)

 

사람은 생물이기 때문에 죽어 버리면 당연히 그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그 끝나 버린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받은 누군가가 있어서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 주고, 그걸 떠맡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일이 계속된다면, 죽은 사람의 인생이 그냥 끝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영원이 되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계승됨으로써 그저 사라질 줄 알았던 누군가의 삶에, 다시 한 번 생명의 등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힘 166페이지)

 

『마음』과 『마의 산』 두 작품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는 100년 전의 두 청년이 마주한 현실과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유예(모라토리엄)의 시간을 인정하고 보듬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가 걸어온 인생과 그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소설 속에서 ‘나’와 한스는 그 후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갔는지 말하진 않는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이 덧붙여진다. 두 사람이 만나 대화하듯 풀어가는 소설 형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드러낸다. 과거의 그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항로가 불가능했을 거란 것. 소설 속 청년들이 평생 붙잡아 묻고 있던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의 길이 그들의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으로 저자의 말을 전한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방황하던 자신의 청년 시절에 버팀목이 되어준 두 소설과 함께 이야기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야기의 계승이야말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우리 삶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거라고. 세대를 뛰어넘어 삶의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입버릇처럼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불안은 친숙하고, 희망은 멀어진 단어이며, 대책 없는 문제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좌절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손 내밀면 누군가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관계의 어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현실이 앞을 캄캄하게 만들기 일쑤다. 그런 세상에서 남들보다 다르게, 느리게 간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저자는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걸어도 좋을 시간이라 말한다. 마음은 시대와 함께 있으며 마음 안에 자리한 시대의 질병과 고민을 치유하면서 가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때로는 삶을 리셋할 수도 있고, 지금 가진 것을 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확신을 할 필요도 있음을 시사한다. 복수의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으니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그저 무의미한 달리기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 지금 그렇게 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의미 없는 개념에 끌려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때다.

 

그리하여 저자는 모라토리엄을 권한다. 두 소설 속 ‘나’와 한스가 머물렀던 공간과 시간. 한스가 아무 의무감 없이 몸과 마음을 뉘였던 요양소 같은 곳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서의 7년이 무의미하게 흘러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가 사람과 세상을 배울 수 있었던 최적의 시간과 장소가 아니었나 싶은... 너무 한가한 소리처럼,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충전의, 성장의 시간으로 자리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도 필요함을, 가져도 좋음을 말한다. 남들에게 떠밀리듯 조급하게 가는 길이나 다른 이의 말에 휩쓸리는 시간들은 자칫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저자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시선에, 남들의 말에 휩쓸려 살아가는 인생으로 머물지 모른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정작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건, 나 자신의 마음이 발휘하는 힘이 아닐 텐가. 그러니 나 자신을 위한 유예가 때로는 필요한 것임을 상기하게 한다.

 

그날 이후로 우리들은 어디를 어떻게 지나 지금 어디까지 걸어온 걸까. 나는 또 버려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또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곳으로 쓸려와 버린 것일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마음의 힘 133페이지)

 

두 소설과 이 책 속의 또 다른 소설로 인생길에서 저절로 보일 수 있는, 메마른 우리 마음의 치유를 위한 힘을 끌어낸다. 저자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과 이어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 이야기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다양한 의견을 새겨 넣으면서도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을 권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이어가고, 그리고 이 이야기를 훗날의 언젠가, 누군가 읽고 계속 이어받아 가길 바란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내 안에서 머물고 우러나고 힘을 발휘하는 마음뿐이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 마음을 나누며 함께 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저자와 같은 목소리가 계속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눈으로 보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과 용기를 다독이기에 충분한 멘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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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6-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고 <담론>을 읽게 되었는데 모라토리엄 시간을 깊게 보내신 우리시대 최고의 스승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구단씨 2015-06-18 23:08   좋아요 1 | URL
저는 아직 <담론> 펼쳐보지 못했어요. 곧 저에게도 그 책을 접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네요.
보물선님의 말씀으로 더 만나고 싶은 책이 되었어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