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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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맥주 캔 한 개만~~"

“한 개면 되겠냐?”

“응. 딱 한 개만 사다주면 고맙겠어~.”

늦은 오후, 마트에 가신다는 엄마에게 나는 캔맥주 한 개를 주문한다. 다 늙은 딸내미 술까지 마시면 얼굴이 더 늙는다고 구박하시면서도 잊지 않고 장바구니 속에 챙겨다 주신다. 잔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또 한 번 이렇게 대꾸하면서 모른 척 안들은 척 나는 또 딴소리를 한다. “에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잔소리 좀 그만 하시지~?!” 그럴 때면 또 한 번 눈을 흘기고 만다. 그리고는 장바구니에서 과자 한 봉지를 조용히 꺼내주신다. “빈속에 마시지 말고 안주라도 챙겨 먹어라.” 하시면서.

장난처럼 웃으면서, 과자 한 봉지에 나도 모르게 울컥 해지면서, 문득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와 서로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모는 뭐든 다 저렇게 이해하고 봐주게 되는 것인가?’, ‘자식은 이렇게 철이 없이 마냥 자식으로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일까?’ 하면서. 부모는 부모라서 어른이고, 어른이라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라던 이 책 속의 한 구절이 동시에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부모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어서(부모가 아니니 어른이 아니므로) 잔소리를 하면서도 안주까지 챙겨다주는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갖다 붙인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흔히 철이 없다는 열일곱 나이에 자식을 낳은 부모가 여기 있다, 지금 서른네 살이 된, 아름이의 부모. 그리고 지금 자신을 낳았던 부모의 나이인 열일곱 살이 된 아름이. 거의 누워 살다시피 하는 아름이는 조로증 환자다. 아름이의 지금 신체나이는 여든의 노인. 이가 빠지고 주름이 생기고 머리숱이 적어지고 점점 눈이 안 보인다. 아름이가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움직이는 손으로 책을 읽고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것 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고 두 눈으로 봐두고 싶은 것뿐이다. 아름이는 어느 날부터 아빠와 엄마에게 들어오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자신의 열여덟 번째 생일에 부모에게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름이 자신은 몰랐던, 부모보다도 더 빨리 늙어가서 그 시절의 부모를 알아갈 수 없었던, 아름이가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아름이는 알아간다.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늙어가는 자신이 그래도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음을, 부모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자신을 부모는 역시 사랑한다는 것을, 자신이 부모의 기쁨이고 슬픔이란 것을. “니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이라던 아빠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자신으로 인해 부모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라고 마지막까지 행복의 순간을 놓지 않는다. 트램벌린 위에서 하늘을 향해 뛰어 올랐던 그때처럼.

 

이야기의 모든 순간들이 페이지가 계속 넘어가는 것을 멈추게 만든다.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내 가슴 속 어디선가 잠자고 있었던 감정들과 기억들을 끄집어내느라 분주하다. 묻어두고 싶고 그냥 모른 척 지나가고 싶었던 마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언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게 자신을 두근대게 한다는 아름이의 말은 충격이자 공포였고 나 자신을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루하루가 무료하다고 투정부리고, 시간 죽이기 놀이에 익숙하고, 지루하다는 말을 하는 게 일상이었던 지난 시간들이 아름이의 저 한마디로 다시 보이게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부모님께 대꾸하던 그 많은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부모가 하는 말들이 ‘알지도 못하면서’가 아니라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부모는 부모의 자식이었고, 지금은 자식의 부모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부모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고 있는 분명한 입장이었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투정을 부리고 억지를 부렸나보다.

 

영화에서 한번 봤던 소재가 이 책 속에 등장하던 그 순간 나는 이 조로증이라는 병이 흔치 않으면서도 동시에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도 있는 병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가 소개하고 써내려간, 아름이를 통해 표현했던 조로증의 증상들 역시 단순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특히나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늙어가서, 몸의 속도에 맞추려면 마음도 빨리 어른이 되고 늙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름이의 말이 기억에서 잊히지가 않는다. 나이라는 숫자가 늘어가고 겉모습이 늙어가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 것처럼 살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생각했는데, 아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게 또 마음만큼 자연스럽다거나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누구보다도 더 빨리 늙어갔던 아름이는 그만큼 더 성숙한 아이이면서 동시에 어른이었다. 부모가 되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름이는 어른으로 그 생을 마감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결코 만나거나 느낄 수 없었던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아름이는 그 누구 못지않은 성숙한 인격체였던 것이라고. 문제는 조로증이라는 병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던 건데 말이다.

 

인생의 속도,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와 늙어가는 몸과 마음의 속도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무언가 간절히 되고 싶었던 아름이의 바람도 어느 정도 이루어주고, 슬픔이어서 기쁘다는 부모의 사랑도 좀 더 받아보고, 거짓으로 끝났지만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대상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좀 더 아름이에게 만들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름이에게 두근두근 뛰고 있었던 심장의 울림을 더 들려주고 싶었는데 마냥 아쉬운 것 투성이다.

 

어쩌면 시간이 삶과 죽음의 그 모호한 경계에 걸쳐지면 느낄 수 있을지 모를 감정들을 나는 300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 한권에서 다 느낀 듯하다. 공중에 그려진 오선지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음표를 보는 듯한 즐거운 웃음이 설렌다. 허를 찌르는 진심이 담긴 농담 같은 아름이와 부모의 대화, 그들의 생각과 말 한마디마다 들려오던 그 재치가 귀엽다. 아름이의 가슴 속 말들을 들을 때마다 흘릴 수밖에 없었던 눈물이 슬프다. 아프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고 고개 숙일 일도 아니고 슬픔은 더더욱 아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슬픔과 동시에 기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던 아름이의 이야기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될 것 같다. 부모가 될 때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시간들, 부모가 되어서만이 볼 수 있는 모습들, 부모와 자식이기에 당연히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아름이를 통해서,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배우게 된다.

 

아름아, 사랑스러운 그 이름 아름아.

이제는 멜로디가 되고,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바다가 되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네 안에 가득 쌓아두었던 부모의 정을 나누어주렴. 너의 부모님이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온전한 기쁨과 슬픔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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