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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너무나도 어렵게 또한 더디게 읽혀서, 그만큼 애가 타고 힘들게 마지막 장을 덮었던 책이다. 이제까지 김훈의 작품을 단 한편만을 본 내가 두 번째로 만난 책이다. 『흑산』
흑산에 유배되어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배자 정약전의 삶을 그려놓은 책이다. 그 안의 희망과 동시에 좌절을 배워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마지막까지 그의 이야기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절망은 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갔다. 게다가 천주교를 20년 가까이 다녔고, 종교를 바꿔 교회를 20년 넘게 다니고 있는 엄마의 종교관이 동시에 떠오르기도 했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종교가 가지는 의미와 삶에 대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의 전통이나 다를 바 없는 성리학과 맞선 천주학이었다. 이 책은 그 안의 정약전, 황사영 같은 지식인들의 내면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부패로 찌든 정부(조정)는 백성들이 눈 떠가는 것을 봐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부패하고 찌들어야 그들의 욕심을 채우고,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닌 자신이 주인이 된 나라를 유지하고 싶었을 테니까. 점점 나라의 문을 열고 서양의 문물과 함께 들어온 천주교는 조선의 그러한 시대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열어 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었다. 그 일을 꿈꾸고 해내고 싶었던 당사자인 정약전과 황사영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마감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남아서 의미를 담아 전해진다.
성리학만이 나라의 질서를 잡는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나타난 천주학. 실제 신유박해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굳이 어떤 사실이 아니었더라도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장면들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닌 자신의 욕심과 권력만이 존재하길 원하는 바라는 존재들이 세상을 온통 피바다로 만든 장면들이 눈앞에 선하다. 세상이 달라지길, 그렇게 되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의지는 꺾이기 일쑤였고, 감히 품어보지 못하는 꿈들은 넘쳐났고, 그들의 기도가 매 맞지 않고 굶지 않게 해달라는 정도였으니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오기는 올까 싶었다.
성리학을 배반하는 듯한 분위기로 천주학을 믿는 자들에게 몰살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인 것 같지만, 실은 처절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몸짓에 그저 눈물 밖에 나지 않는 이야기다. 요즘말로 살아가는 게 너무 치열해서 조금은 더 나은 삶을 꿈꾸고자 찾았던 천주학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배반이라는 구실을 담아 처단하고 유배를 보내고, 그러면서 이 책은 정약전이 유배지로 떠난 그곳 흑산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또 하나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약전이 흑산에서의 지내는 일과를 보여주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그런 것이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나가서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더 이상 눈물도 피도 없는 세상을 만져볼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넘쳐난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꿈을 꾸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 유배지까지 그 몸을 끌고 들어갔으니 무언가 원하는 것을 들고 나와야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 계산이 맞는 거 아닌가?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으므로…….
막상 펼쳐들고 끝까지 읽어가기는 했지만, 소설 같고 또 소설 같지 않은 느낌에 사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흑산(黑山)이 아닌 자산(玆山)으로 굳이 바꾸어가면서 그 섬을 부르고 싶었던 정약전의 마음이 조금은 보였다고나 할까. 여기를 지나 저 너머로 가서, 그 너머 세상을 이끌고 이 세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약하지만 희망 같은 것을 놓지 않고 싶었던 그 마음을. 어쩔 수 없이 결국은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는 그 곳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지만, 결코 그게 끝이 아님을 바라는 미세한 한 줄기는 남겨두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 것도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 최소 한번 이상은 읽어야 그 진심에 더 다다를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