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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맨 브라운
너새니얼 호손 지음 / 내로라 / 2021년 6월
평점 :
어느 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믿었던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의심 없이 사는 것도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 안에 신념이 쌓일 것이고, 그 신념은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의 바탕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삶이 이미 완성된 그림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닐 텐데, 사는 동안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많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신념이라 믿었던 것이 삶의 모든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때로 이런 믿음은 나를 옭아매는 편협한 가치관이나 편견이 되지는 않을까?
세일럼 마을에 사는 젊은 남자 굿맨 브라운은 아내 ‘신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다. 이 밤이 지나면 절대 아내 곁을 떠날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며 그 밤에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그에게는 그날 그 밤에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들어선 캄캄한 숲에서 자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십 대의 남자를 만난다. 아마도 야속한 눈빛을 보내던 아내를 뒤로하고 길을 떠난 이유가 그 남자와의 약속 때문이었나 보다. 그는 남자에게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만, 남자는 그에게 계속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마음과 다른 제안에 뿌리치고 돌아설 것 같지만, 희한하게도 굿맨 브라운은 남자를 따라 계속 걷고 있다.
그 숲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그들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걸까. 분위기를 보니 좋지는 않다. 남자를 따라 걸으며 그는 이 동행이 절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느끼며 말한다. 자기 집안의 사람들은 이런 곳에 오지도 않을 것이며, 자기가 속한 종교의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숭배하는 걸 숨기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신을 믿고 살아왔는지, 그들의 신념이 삶을 얼마나 선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런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훌륭한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믿는 선의 세상이 너무도 단단하여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남자는 그 어떤 믿음도 섣불리 단정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장면만 보면, 꼭 까만 옷을 입은 악마가 천사의 말에 의지하고 살아온 누군가의 귓가에 자꾸만 속삭이는 것 같다. 믿지 말라고, 의심하라고, 천사의 말이 틀렸다고 말이다.
혼란스럽다. 아무리 믿음이 강한 사람도 이 정도로 옆에서 말한다면 한 번쯤 흔들릴 것 같다.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모든 시간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괴롭기까지 하다.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는 강도로 충격이 클 것 같기도 하다. 굿맨 브라운은 어떨까. 그는 남자의 말에 휘둘릴까? 글쎄, 아마도 그는 남자의 말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아내 ‘신념’의 곁으로 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니까. 어쩌면 그 순간 그게 보게 된 것만 아니라면, 그의 신념은 더 단단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신념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남자를 따라가던 그 숲속에서 많은 사람을 본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 장로, 권사, 그리고 더 많은 마을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들이 숲속의 그 남자를 숭배하며 우러러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랬다. 그가 남자를 따라가던 곳은, 그가 신념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모여 남자를 숭배하는 의식의 자리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었던 신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지켜주던 믿음의 말들은 다 거짓이었을까. 그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아내 ‘신념’을 떠올리고 이겨내려고 했던 순간에 들려오던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이었을까. 의문에 의문은 꼬리를 물고, 우리가 살면서 신념이라 믿었던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번 시작된 생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생각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소설의 배경에는 종교가 있다. 종교로 뭉쳐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선을 신념으로 삼아 살아가지만,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종교에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살아가는 시간이 자신의 역사가 되듯, 굿맨 브라운이 가진 신념 역시 그의 인생에 자리한 역사의 바탕이 되었을 거다. 아마도 그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은 아니겠지.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아이였던 우리가 자라면서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서 주입된 모든 것이 우리가 말하는 ‘신념’이 되었을 거로 생각한다. 배우고 담으면서 살아오긴 했으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빠트린 것 하나가 있다. 우리가 ‘신념’으로 삼았던 것이, 삶의 모든 과정에서 옳은 선택만을 하게 했는지 검증하지 않았던 것.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은, 삶을 완성하는 이 순간에 필요하다. 누구도 판단해주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이 깨닫게 될 때, 자기 인생의 기준이 생기는 게 아닐까. 그건 종교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가 정하면서, 오직 하나의 신념이 아니라 그때의 고민이 주는 답을 찾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더 나은 삶을 향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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