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의 직원은 당연히 여성이어야 한다는 건 무슨 선입견이었을까. 언젠가부터 콜센터에 전화하면 남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상하게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한 마디면 될 것을 여러 번 물을 때마다 왜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지 짜증이 났다. , 이래서 고객센터는 여성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더랬다. 이런 오류는 여성인 내가 여성의 감정노동을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가볍게 생각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콜센터 상담원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난 것도 아닌데, 이 책이 유독 더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감정노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흡연에서 접근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악질 진상에 감정이 병들어가는 존재이기에 앞서 콜센터 근무환경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그동안에는 잘 몰랐던, 그저 감정노동자로 알았던 콜센터 상담원이 겪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이 기회로 듣게 되었다.


구로공단의 공순이가 콜순이가 되기까지의 세월은 어떻게 흘러왔나. 가성비 높은 인력이었던 거다.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 가능한 대상, 여성이었다. 구로공단의 여성 노동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골에서 입 하나 덜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어린 여성은 공단의 노동자가 되어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은 미미하게 자기 위안으로 삼는 데 쓰기도 했고,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대부분 집에 돈을 보내기 위해 일했던 경우가 많을 테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내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처지에서, 배운 게 없어서, 남대문 시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공장의 생산 라인에 섰다. 그렇게 일하면서 폐가 망가져도 누가 치료해주지 않았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집안에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살아온 생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구로공단의 공순이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콜순이로 변모하며 그 자리를 지킨다.


어느 순간 업체들은 콜센터가 필요했고, 대부분 하청에 콜센터를 유지하다 보니, 콜센터 상담원의 노동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특별한 교육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통했다. 그렇게 인식하다 보니 걸려오는 전화의 감정노동에, 일하는 시간에 비하면 임금은 턱없이 낮았고, 그마저도 비정규직 신세였다. 그런데도 일을 놓을 수가 없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쌓인 피로와 한숨은 담배 연기로 쏟아내고 있었다. 모든 상담원이 흡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콜센터 상담원의 흡연율이 높은 이유를 저자는 주시했다. 왜 그녀들은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를 놓지 못하는가. 그건 고객에게 받는 감정의 피폐함뿐만 아니라 업체의 분위기도 한몫한다.


한숨들의 무덤!’

콜센터에 비치된 재떨이를 보고 어느 상담사가 한 말이다. 상담 중에는 한숨 소리조차 고객에게 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꾹꾹 눌러둔 뒤 흡연실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비로소 그 한숨을 내뿜는다. 과연 이런 제한된 한숨만이 보장되는 곳을 천국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콜센터 밖 세상이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하기에 겨우 흡연할 권리가 이렇게 큰 보상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91페이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전화 받고 클레임을 처리하면 되는 단순 노동이 아니었다. 콜센터는 고객의 전화 이전에 업체의 횡포와 관리자의 지독한 채찍질이 있었다. 콜 수가 곧 돈이 되는 상황이었고, 누구보다 콜을 많이 받는 상담원이 인기가 있었다. 그중에 경주마(콜 수 많이 받는 누군가)를 키워 다른 상담원에게 자극이 되게 만들기도 한다. 처음 경주마가 된 상담원은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으면서 수입에서도 차이가 조금 생기다 보니 기분도 좋았을 테다. 하지만 그게 곧 자신을 병들게 하고 다른 상담원과의 경쟁을 부추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콜 수 많이 받으려고 팀장에게 빵이며 간식 셔틀을 하는 것도 불사한다. 좋은 거래가 될 고객 정보를 받는 상담원은 상담을 성사시키면서 점수를 높게 받는다. 성사율 높은 고객의 정보를 받는 것조차 경쟁이다. 팀장에게 잘 보여야 하고, 그렇게 받은 고객 정보를 성사시킴으로써 또 한 번 능력을 인정받는 게 되는, 이상한 쳇바퀴가 돈다.


공순이가 콜순이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변한 게 없다. 낮은 임금,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열악한 근무환경, 그로 인해 높아지는 흡연율은 반복된다. 상담하다 지치면 휴게실에 가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내뱉지 못한 한숨을 담배 연기로 쏟아내느냐, 아니면 휴게실 테라스 아래로 뛰어내리느냐 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흡연이 몸에 좋을 리 없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이 정도면 일의 강도나 콜센터 환경의 문제를 찾아야 하는데, 이 와중에도 상담사는 여성의 몸이라는 이유로 자궁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취급되며, ‘아이를 낳아야 하는대상으로 몸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니까, 고객의 진상 짓에도 한숨은 삼켜야 하며(이로 인해 화병은 생기고), 한숨의 배출구로 흡연을 선택해도 여성의 몸을 지키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된다. 여성이 아니라 노동을 위한 몸으로만 여겨지며, 흡연은 개인이 지키지 못한 도덕으로 판단된다는 게 아이러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콜센터 상담원의 흡연에서 시작해 콜센터 내의 문제 안으로 들어간다.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고객센터를 생각해보면, 콜센터의 수요와 공급은 어마어마하다. 업주나 팀장의 횡포는 민간기업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콜센터 역시 상담원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어차피 하청이고, 노동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민원인에게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상담원은 본사 직원에게 연결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상담원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간주한다. 능력 부족으로, 평가 점수 감점으로 말이다. 콜 수, 민원 상담 해결 횟수, 고객과의 한마디에 매겨지는 점수, 화장실에 가는 시간마저 감시당하는 이들이 어떻게 일해왔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상담원들 사이의 경쟁 역시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이들이 병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감정노동을 하는 이들이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동료이기에 앞서 경쟁자였고 무자비한 상사였고 회사였다.


디지털단지 안에서 콜센터 상담사들은 과거의 여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닭장과도 같은 공간에서 감시를 받으며 몸을 통제당하고, 고객의 갑질은 물론 팀장, 매니저들의 횡포와 동료들 간의 따돌림 등 여러 문제가 겹겹이 쌓여 있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180페이지)


콜센터의 열악한 환경은 코로나 19로 수면 위로 드러난다. 집단 감염으로 콜센터 근무환경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닭장 같은 구조로 그들이 작은 칸막이 안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알려진다. 사실 코로나 19 때문이 아니더라고 콜센터 내부 구조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깔끔한 사무실, 정해진 자기 자리, 그 안에서 상담하고 있는 모습이 뭔가 전문적이고 단정해 보이기도 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보여준 사건이 된 거다. 코로나 19는 이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이들의 일을 가중하는 계기가 된다. 비대면 민원 상담으로 업무가 늘기도 했고, ·오프라인 상담원의 감염으로 근무하는 이들의 일이 늘었다. 갈수록 비대면 상담은 늘겠지만, 상담원을 힘들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원하청 계약의 문제와 낮은 임금, 악성 민원의 대처를 위한 보호 방법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관리자들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상담원들은 그들이 던지는 문제를 고스란히 감당하면서 오늘도 헤드셋을 쓰고 보이지 않는 상대를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영국과 인도의 콜센터 상황을 들려주면서 한국의 콜센터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 말한다. 콜 수에 민감하고 화장실조차 제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은 영국과 비슷했다. 영국은 점점 외주 업체를 이용하듯 인도의 콜센터를 이용한다. 의외로 인도의 콜센터는 여성 상담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아니었다. 고위 학력의 사람들이 상담사로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업무나 처우는 비슷했다. 이들 역시 내용은 달라도 차별을 겪고 있으며 하청 노동자였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나라의 콜센터 상담원을 콜키퍼라고 칭한다. 시대가 변하고 여성의 인권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집안에서 남편이나 아버지가 정한 규정대로 살아왔던 시대와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때의 여성이 집안을 돌보는 하우스키퍼였다면, 콜센터 상담원은 콜키퍼로 업무 변경을 한 것 같다. 가정의 남자의 지시에 따르고 소속된 것처럼 살아왔다면, 콜센터에서는 팀장이나 다른 상사의 감시와 차별, 악성 고객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닮았다는 거다.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려는 노력에 이들이 오늘도 버티는 게 아닐까 싶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들의 노동환경을 변화시키려 한다. 몸펴기 생활운동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굳어진 몸을 풀 시간을 만든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변화였다. 근무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일을 계속해야 하고, 이제 우리 사회의 필수가 된 콜센터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일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변화의 노력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이 일에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의 이 취재가 콜센터 상담원을 보는 뿌리 깊은 편견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변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을 읽은 나부터도 말도 안 되는 선입견에 빠져있던 걸 반성하게 된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그들이 하는 죄송합니다한 마디가 절대 당연하지 않았으며, 나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로 여겨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요즘 내가 하는 일과 많이 닮아서 그런지 많이 공감하면서 읽게 되는 주제였다. 감정노동이면서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힘든지 알게 된 날들이다. 남편은 사람 꼴 보기 싫어하는 내가 하루에도 몇백 명을 상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놀라울 지경이라고 말한다. 웬만한 진상은 놀랍지도 않다고 여겼는데, 한 번씩 겪을 때마다 단련이 되었다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놀라운 건, 진상들은 매일 업그레이드하여 찾아온다는 것. 여러 현장에서 벌어지는 감정싸움의 승자는 언제나 고객이다. 그럴 때 나를 보호해주는 배경이 없다면 더 힘들 것 같다. 콜센터 상담원의 상사나 회사나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할 때 얼마나 좌절하고 고통스러운지 듣고 보니, 이들의 인권과 노동환경 개선의 필요에 더 관심 두게 된다. 그들이 노력하는 만큼, 개선을 위해 뛰는 만큼 결실이 보이길 바란다. 많은 이의 관심 역시 그 노력에 힘을 보내는 일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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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0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구단씨 2022-04-23 14: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날씨가 너무 좋은 주말이네요.

이하라 2022-04-0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04-23 14: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 책 너무 생생하게 듣고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추천해요.

새파랑 2022-04-0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을 진심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04-23 14: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만난 귀한 시간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