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년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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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운 소년을 바라보는 네 명의 여자가 있다. ‘요셉으로 불리며 만인의 연인이 된 아이돌 소년. 네 명의 여자는 요셉을 향한 사랑을 주체할 수 없다.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납치했다, 요셉을. 옆에 두고 계속 보고, 만지고 싶었다. 하염없이 바라만 봐도 좋을 것 같은 사람, 요셉을 사랑했다. 이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매번 떨기만 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던 이들이 요셉을 옆에 두고 보니 묘한 마음이 샘솟는다. 더 강한 욕망, 욕심 같은 거. 다른 누구와 공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요셉의 독점이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이 납치했고, 같이 요셉을 돌보고 있지만, 요셉을 차지할 사람은 나야. 나 아니고서는 아무도 요셉을 가질 수 없어.’


안나, 희애, 미희, 나미. 네 명의 여자는 시골 산장에 요셉을 감금했다. 요셉의 기억은 온전하지 못했고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오직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요셉을 그들을 돌아가면서 돌본다. 요셉의 식사를 챙기고, 누워지내는 그가 더러워질 때마다 옷을 갈아입히고, 그의 통증을 줄여주려고 약을 먹인다. 어느 한 사람도 이 업무에서 빠지지 않는다. 성실히 임하고, 매번 자기가 요셉의 방으로 들어가는 시간만 기다린다.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손끝으로 얼굴을 만지기도 한다. 얼마나 긴장되고 떨릴까.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앞에 앉아 있다니. 내가 떠넣어 주는 밥을 먹고, 가만히 자는 모습을 보면서 슬쩍슬쩍 그의 피부를 쓸어보고. 하아. 미칠 것 같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싶다.


이들의 행동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세상 모든 사랑이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광기가 넘실댄다. 납치는 범죄이고, 이들은 범죄를 공모한 관계다. 요셉 한 명의 납치로 끝난 일도 아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산장 주인의 손자, 그 산장을 동경하며 자라온 지역 경찰 등 이들의 살인은 예상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걷잡을 수 없는 범죄를 만들면서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처음 요셉을 납치할 때 이게 범죄인 걸 몰랐을까? 이들은 이게 범죄인 걸 알면서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이건 사랑이니까! 자기 방식으로 사랑한 것뿐이라고 변명하겠지만, 결말을 걱정하지 않고, 단 한 번 붙잡을 이 쾌락을 느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사랑이 왜 이렇게 변질된 것일까. 이들은 각자의 결핍이 폭발하기 직전에 사랑을 만났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삶이 유지되지 않을 것 같은 그 순간에, 그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고 삶의 활력이 되었다. 그 정도면 일상을 유지하면서 적당한 즐거움으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사랑은 선을 넘었고, 사랑은 모습을 바꾸고 악행이 됐다. 어쩌면 이들의 행보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사랑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떻게 사랑이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겠는가. 사람이 다 다르듯 그들이 하는 사랑도 다를 테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위장한 사랑의 본성을 다 알지 못한다. 여기 모인 네 명의 여성이 보여준 사랑에, 사랑이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한다.


, 나는 이 정도의 열정으로 누굴 사랑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연예인을 보면서도 그 작품이나 노래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그 대상을 갖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치게 빠져들었던 적이 있던가? 없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의 광기 같은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듣다 보면 이들의 집착은 단순히 사랑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이들 각자를 둘러싼 환경, 그 삶에서 채우지 못한 것들을 어느 순간 요셉을 보면서 담았다. 가족에게 받지 못한 관심,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던 부모의 부재, 돈 때문이지만 아들을 뺏겨야 했던 여인, 거리를 방황하던 시간을 멈추게 했던 대상. 누구 때문에라도 슬픔과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유혹에 손을 뻗게 되지 않을까?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그라면, 그에게 빠져드는 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녀들의 사랑도 그랬다. 그거 말고는, 요셉에게 빠져드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위로와 충만함이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그를 사랑할 수밖에.


누군가를 돌보고 사랑한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 줄 몰랐어. 다시는 이런 행복을 느끼지 못할 거야.” (318페이지)


설은 인기 아이돌 요셉이 사라지고 이십 년이 지난 후에, 요셉을 잊지 못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시작한다. 요셉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요셉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그 자리에 한 여자가 나타나고, 이제 요셉에게 일어난 일의 진실을 알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요셉 납치사건의 경위, 과거의 그 사건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너무 다양하게 표현되는 이들의 사랑은 놀라웠고, 무서웠다. 처음에는 누군가 이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느낌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시 앞부분과 연결되는 설명은 이 소설의 반전이었고, 요셉 납치사건의 진실을 말한다. 그게 끝이었을까 싶은 궁금증은 비로소 풀리고, 결핍으로 시작된 이 광적인 사랑의 끝은 처참하면서도 순수했다. 그 순수함이 왜곡한 사랑의 정의는 누가 바로 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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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23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도 이 작가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에는 더 무서운 이야기를 썼네요 미저리 같은... 그 영화 제대로 못 봤지만,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네 사람이나 그 일을 함께 하다니...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닌데...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희선

구단씨 2021-12-23 22:27   좋아요 1 | URL
그렇더라고요. 이 책 읽으면서 찾아보니 전작도 비슷한 소재였나 봅니다. 읽진 못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강렬한 욕망은 알 것도 같은 마음에 다다릅니다. 이상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