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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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눈에 봐서는 보이지 않는, 숨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멋진 것이나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발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눈을 돌리고 싶은 거나 아름답지 않은 수많은 것 안에도 어딘가에 반짝이는 빛이 깃들어 있다. 나는 그런 믿음으로, 선입관에 얽매이지 않고 결코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128~129페이지)

 

매일 보던,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장면들에서 찾아오는 어떤 느낌이 있다. 때로 그런 느낌들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생각의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오늘을 바라보는 작은 지침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렇게 일상을 채우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순간들은 예고 없이 무심한 듯 찾아온다는 거다.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에, 무심코 바라보던 작은 꽃잎 하나에서 일상의 생각들이 피어나는 일들. 낯설지 않은 경험이지 않은가? 저자가 조그맣게 얘기하듯 들려주는 일상의 단편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어제의 경험과 오늘의 시선이 만들어낸, 인생의 작은 지침들이 쌓이는 순간을 만든다.

 

처음 만난 작가다. 그렇다고 낯설거나 어색하지도 않다. 오히려 친근한 말투에,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건네듯 말하는 문장들이 여자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수다를 떠는 기분에 가깝다. (실제로 저자가 여성인 줄 알았다가 남성인 것을 확인하고 ‘깜놀’했다는 건 안 비밀) 수다를 떤다고 하면 시간 낭비하는 것으로 여기기 쉬운데, 오히려 이 짧은 글들 속에서 인생의 작은 지침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는 말을 좋아한다.

무척 근사한 말이다. 직접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우니 한 번 에두른다고 할까. 조금 물러나서 “혹시 만날 수 있으면 꼭 만나자.”라는 마음을 담아 쓰는 말이다.

(중략)

그런데 이 말의 본질은 “당신이 좋으니 만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어떤가?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연애 감정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좋아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92~93페이지)

 

그 순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좋은 기억으로, 나쁘게 생각하면 나쁜 기억으로. 하지만 좋은 느낌이 계속 전달되기를 바라는 건 나뿐이 아닐 터. 저자의 저 문장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묻는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 마음, 비용 그 이상의 여러 가지. 때로는 물리적인 이유로 만남을 거절해야 하기도 하고, 마음과는 다르게 만남을 성사해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은근 따라오는 스트레스로 그 대상을 떠올리면 괜한 미움까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고 보듬어 안는다. 내가 좋으니 만나고 싶다는 의미로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네. 내가 싫으면 아무리 일 때문에 만난다고 해도 얼굴에서 표가 날 텐데. 누군가가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귀찮거나 불필요하다는 생각보다 만나자는 그 마음을 먼저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저자의 말을 들을수록 생기는 의문이 있다. 왜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일쑤일까. 뻔한 답일 것 같지만,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부정의 시선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이다. 저자처럼 긍정의 시선으로 보니 세상 모든 것이 차례대로 진행되는 어떤 일처럼 차근차근 흐르는 느낌이다. 작가의 사인본에, 직접 인쇄된 서명의 편지지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어떤 값어치의 계산보다 그 선물에 담긴 마음이 먼저 보였기에 그 기쁨을 아는 것이다. 이 선물을 주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편지지가 되었으니,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 정도였다는 걸 알게 된 감동 같은 거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감동을 발견한다. 발견하는 것은 감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어떤 시선들을 알아챌 때마다 감동한다. 어떻게 해야 이런 마음으로 일상을 지낼 수 있지? 솔직히 말하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상황이나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나 같은 사람은 저자의 한없는 긍정과 감동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긍정의 에너지를 받아 나도 조금은 착하고 좋은 생각을 먼저 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품어본다. 긍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건만, 평소의 습관으로 보면 쉽게 바뀌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기대를 하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좋은 기운’이 있어서다.

 

이 책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단조로운 일상에 순간순간 스미는 시선이 어떻게 하루를 변화시키고 삶 전체를 달라지게 할지 궁금해서다. 저자의 모든 것을 그대로 흡수하기는 어렵겠지만, 저자가 보여준 그의 삶의 바탕이 어떻게 일상을 흐르게 하는지 그대로 보여서 무시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 거는 긍정의 주문이 그동안 내 안에 자리했던 부정의 힘을 밀어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분명하게 삶의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내 안으로 들이기 싫었던 투정을, 이제는 좀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반성에 의미를 두고 싶은 글이다. 저자가 말하는 그 경험에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믿는다. 자기가 쌓은 경험만큼 인생을 만드는 건 없다. 이미 알고 있었고, 누군가가 보여준 검증의 순간도 봤다. 그러니 저자의 긍정에너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저자를 통해 일상이 무기력하지 않게, 매 순간 힘을 내게 하는 방법을 더 잘 듣고 싶어진다.

 

무슨 일이든 저마다 ‘알맞게 무르익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 순간에 이르러야만 만날 수 있는 뛰어난 품질을 바쁘다는 이유로 멀리하면 안 된다. 결코 안 된다. (중략) ‘알맞게 무르익은 순간’이란 ‘즐거운 순간’이다. 좋은 것보다는 즐거운 것이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156페이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2년이나 살았다면 당신만 아는 로마의 진면목이나 에피소드가 넘쳐날 텐데 왜 그런 것들을 쓰지 않느냐고. 당신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마음을 열지 않는 한 무엇을 써도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다고.

글쓰기는 괴로운 일이다. 괴로워도 쓰고 싶은 것이 글이다. (38페이지)

 

여행지에서 단골 식당을 만들고, 신발 장인에게 마지막 선물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A 씨를 만나는, 일주일을 준비하려고 일요일마다 셔츠를 다리는 일들. 누군가는 듣고 웃을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한없이 진지하고 중요한 일상의 단편들이다. 그런 조각들이 모여 채우는 하루가 인생이 되어간다. 그런 소박함이 우리 삶 곳곳에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게 행복이 아니면 뭐가 행복이란 말인가. 저자는 자기의 그 소박한 조각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다양함을 증명한 셈이다. 읽으면서 저절로 느낀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그 행복의 기회에서 멀어지지 말라는 메시지에, 행복의 크기보다 행복 그 자체에 의미를 둔 문장들에 조용히 긍정의 끄덕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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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2020-03-1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저도 사소한 일상의 단상들이라고 여기며 읽기 시작했는데 ... 책을 덮고나니 마치 좋은 스승을 만난 기분이었어요.ㅎ 회사 다닐때 이런 상사가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싶고...ㅎㅎ 좋은 어른을 만난다는게 이런 일이구나 싶었답니다. 가볍게 시작한 마음과는 다르게 깊게 남은 책이 되었어요.^^

구단씨 2020-03-18 12:22   좋아요 0 | URL
무슨 문장들이... 삶의 문장들 같은 느낌이었네요. ^^
작가가 남자라는 데서 한번 놀랐는데, 어떻게 보면 여학생의 일기 같은 낙서를 훔쳐본 것도 같고... ㅎㅎ
다정하게 들려오는 그 말들이 좋았어요.

노란장미 2020-03-1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ㅎㅎㅎㅎㅎ 여자인줄 알고 한참 읽다가 어느순간 뉘앙스가 이상한 부분이 나와서 검색해보니 남자분이시더라구요. 진짜 엄청 놀랐어요.ㅎㅎㅎㅎ

구단씨 2020-03-18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게 글의 분위기만 보고 선입견을 가졌었나 봐요.
이런 경우 몇 번 있기도 했어요. (특히 에세이 만날 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