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프렌드
데이비드 바디엘 지음, 김송이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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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SF치고는 미래사회의 구조와 기술에 대한 통찰도 깊이가 있었고, 결말이 해피엔딩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포라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2014년작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무리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소설 초반부에 핍이라는 11살짜리 아이가 등장하는데 얘는 서기 3020년에 살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로 보아 남자애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지금으로부터 천년 뒤에는 이처럼 성별 구분이 잘 안 되는 외양으로 다니는가 봅니다. 핍이 1000년을 거슬러와 우리 시대로 (뜻하지 않게) 뛰어든 후 다른 사람들(즉 우리와 동시대인들)이 그를 가리켜 "여자아이"라고 부르는 데서 비로소 우리 독자들도 주인공 핍이 여성임을 알게 됩니다. 물론 핍이 여성이라고 분명히 정해 준 건 다른 주인공 소년(우리 시대 소속) 라훌이며 어른들은 그전까지 핍을 남자애로 착각합니다. 하긴 이런 생각 역시 "여성은 이러이러하게 꾸미고 다녀야 해!" 같은 성차별 편견이고 미래에는 그런 생각들이 다 극복된 상태라는 암시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토론거리로 자주 삼는 화제가, 과연 우리들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천재 노릇을 하고 살 수 있겠냐는 겁니다. 여기서 핍은 천 년을 거슬러와서는 거의 초인으로 군림합니다. 먼저 그녀는 중력 부츠를 신고 다니기에, 마치 예전에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에 대한 도시전설처럼 공중에 붕 떠 있을 수 있고 따라서 현대의 (어린이) 축구 시합에서 경기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는 그렇게만 나오지만(이 작품이 영국 작가분에 의해 지어졌으므로 축구가 화제지만) 미국이었다면 단연 농구나 아메리칸 풋볼이었겠죠. 


또 핍은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G안경과 마인드링크(머리에 심는 일종의 칩입니다)를 이용해 가능하며 핍이 딱히 엄청난 지식이나 지능을 가진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게 가능합니다. 책 후반부에는 건터라는 (희한하게도 독일식 이름인) 애가 등장하는데, 이 아이가 아주 못됐습니다. 마치 극우파나 혐오 경향애 찌든 무리들을 풍자하려는 의도 같습니다만 여튼 얘가 자꾸 핍을 못살게 굴자 핍이 마지못해 실력을 한번 보여 준 겁니다. 이 능력은 소설 끝나갈 때쯤 우리 시대로 온 OO이 OO을 상대로 또 선보이는데, 이게 이 작품에서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부분입니다. 


p104를 보면 우리 시대의 학교에서 소수(素數)를 가르치는데 핍은 뫼비우스 반전공식, 제타함수까지 들먹이며 선생님을 무안하게 만듭니다. 저는 처음에 이것이, 천 년 뒤의 초등학교 커리큘럼에서는 이런 걸 다룬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천 년 뒤에나 밝혀진 내용은 아닙니다. 21세기 현재에도 학부 저학년에서 얼마든지 가르치죠), 마치 2300년 전 최첨단 지식이었던 유클리드 기하학을 우리가 초4~중3 수준에서 배우듯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독일어(고대언어!)에 대해 전혀 모르던 핍이 마인드링크를 통해 해당 언어를 술술 말하는 장면이 이어지기에, 이 역시 기본 지식이 아닌 도구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 이 소설에서 아주 큰 비중은 아니지만, 미래에서는 앵무새, 고양이 등이 사람처럼 말을 할 줄 압니다. 마치 <둘리틀 선생>에서처럼 말입니다. 이는 천년이 지나는 동안 진화한 결과라고 하며, 그 미래에서는 돼지가 이미 노벨상을 탔으며, 닭들은 인간 중심의 사회에 저항하여 무력 투쟁을 펼칩니다. 이러니 앵무새가 천년 전인 현재로 왔을 때 가장 놀란 게 닭들이 온순하게 길들여진 모습입니다("닭들이 마침내 항복했나봐!"). 또 어떤 개가 목줄에 묶여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가는 걸 보고 핍은 "이러시면 안 된다"며 항의하기도 합니다. 


천 년 후의 미래가 좋기만 하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바깥 세상은 너무 뜨거워진 데다 생화학무기 부산물로 잘못 만들어진 온갖 유해한 미생물 때문에 이미 나갈 수가 없고 사람들은 실내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핍은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야 합니다. 부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여기서 저기로 이동할 수 있으나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중력 부츠가 있긴 하나 바깥 세상에 나갈 수가 없는 핍은 언제나 답답한 느낌이었는데 천 년 전 과거로 와서 펄펄 날아다닙니다. 축구 경기를 라이브로 현장에서 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그러니 천 년 전으로 온 핍이, 우리 시대에는 흔해 빠진 야외 스포츠 경기를 보고 감격할 밖에요. 


저는 처음에 핍의 부모가 "바깥 세상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구절, 또 이 소설 제2의 주인공 라훌이 꼬마 발명가라는 설정이 왜 등장했는지 궁금했는데, 낭비되지 않고 이 설정이 소설 전체를 꿰뚫으며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장치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또 주인공들은,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각종 연극을 하거나 지혜를 짜내 그들을 편안히 속입니다. 어른들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을지, 어른인 독자인 제가 미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가급적이면 폭력과 비합리적인 감정적 반응, 대립을 회피하려 드는, 많이 문명화한 미래에서도 여전히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결말은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 책이 시리즈로 계속 나올 줄 알았는데 결말을 보니 이 단권으로 아마 완결을 지으려나 봅니다. 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 작품에는 넌지시 떡밥만 던져졌을 뿐 그대로 묵히기 아까운 설정이 이미 많이 등장을 했습니다. 속편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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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차 게임 개발 - 아마추어들의 게임 프로젝트 관리와 기획, 게임 디자인 이야기
김다훈 외 지음 / 성안당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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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의 게임 개발자가 이 책의 공저자들입니다. 연령대는 다양한 듯 보이며 처음부터 게임 개발을 천직으로 여긴 듯한 분, 나중에 게임학과에 입학한 분 등 동기와 경력 들도 각기 차이가 나는 듯했습니다.


게임 개발은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핫한 직업 중 하나로 떠올랐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크래프톤, 넥슨이나 NC 등이 투자자들의 큰 주목 대상이었으며, 직접 게임 관련은 아니지만 소위 네카라쿠베, 혹은 네카쿠야 라고 해서 IT 기업 소속 개발자군이 선망 대상임이 분명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게임 개발자들의 삶이 어떠한지, 해당 직업의 자부심과 보람, 혹은 애환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p20에 보면 용어 해설에서 "개발자"란 프로그래머뿐 아니라 널리 게임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을 널리 포함한다고 합니다. 이에는 2D 아티스트도 포함되는데 예를 들면 이 책 저 뒤 p192, p194, p196 등에 그 작업이 소개되는 엄수영 씨, p209의 곽연정 씨 같은 분들이겠습니다. 


<괴도 앙팡>은 수업을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였으며 이 부분은 박소현 저자가 집필했습니다. 교내 프로젝트이므로 우리 같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게 당연한데요. 이 부분을 읽고 완전한 문외한이었던 독자로서 아 이런 식으로 게임 하나가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아주 어렴풋한 감이나마 잡을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는 일단 시각적으로 인식이 쉬워야 하는데, "맵 크기의 최대치를 정했더니 맵 구성의 범위가 좁아지면서 퍼즐이 매우 한정적으로 되"는 문제가 발생(p31)했다고 합니다. 개발자는 전혀 아니고 일반 유저의 입장에서 이 대목을 읽었으나, 아마도 대개 무슨 의미인지 정도는 감이 올 것입니다. 이 "맵"에 대해서는, 책 저 뒤의 pp.184~190에서, 같은 저자가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또 "포털"이라는 게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p31)도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건, 게임 개발도 일반 제품 디자인이나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상황에 대입하여 시행 착오를 거친 끝에 시장에서 가장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꼴을 갖추고 출시된다는 점 정도이겠습니다. "앙팡"은 물론 enfant의 불어식 발음이며, 우리에게는 애니메이션 혹은 지면 만화 캐릭터인 "괴도 루팡(뤼팽)"이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두 단어 발음의 유사성(하나는 프랑스 출신일망정 일어, 하나는 불어 발음이긴 하나) 때문에 나온 이름이겠습니다. 


pp.36~40에는 제작 or 작업 목록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애니메이션(작품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개별 연속동작 구현을 뜻합니다) 목록, 연출효과, UI 작업 목록 등이 포함됩니다. 이 중에는 개발자들끼리의 소통을 위한 것도 있고, 나중에 출시 후 유저들에게 알려 줄 튜토리얼로 활용할 전단계 자료도 있습니다. <괴도 앙팡>이라는 게임을 해 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으나(앞으로도 영원히?), 아 이런 식으로 게임이 만들어지는구나, 또 이런 동작 이런 효과를 낳기 위해 이런 토론과 고민이 이뤄지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상상하게도 되었네요. "UI 아티스트에게 다소 강하게 내 의견을 전달했는데 그가 공과 사를 잘 구별할 수 있으리라는 신뢰 때문이기도 했다(p42)."라든가, "결과물이 좋고 나쁨과 상관 없이 협업의 경험과 사례를 돌아보는 것이 앞으로의 발전에 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p7)" 같은 대목은, 아무래도 커리어상 본격 협업보다는 프리랜서로서 개인 작업이나 프로젝트 참여가 더 많을 젊은 개발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격려 같습니다. 


프로젝트 <나이트베리>에 관한 두번째 개발 사례의 집필자는 김다훈 저자입니다.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개발하는 게임은 취업의 관문이 되기 마련이고..."라든가 머리말 중의 "팀 개발에서 불화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존재하며, 프로젝트 관리를 통해 팀이 해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p5)" 같은 대목에서 이 저자가 지금 이 책(의 해당 집필 부분)을 통해 무슨 말을 주로 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게임 개발자도 개발자이지만 프로젝트 관리자(p69, p71)로서의 고충이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참고로 다른 대학도 사정이 비슷하겠으나 이 책에서 언급되는 "학교"는 저자들이 속했거나 현재 속해 있는 청강문화산업대를 가리키며, 작품은 미대생들처럼 "졸업 작품"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게임 <나이트베리>는 넥슨GT에서 선정한 우수게임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눈에는 아쉬운 점들이 여전히 눈에 많이 띄었다고 합니다. 


독자로서 저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사례 <캣칭>에서 보다 생생한 개발 과정 구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듯합니다. 특히 pp.78~81까지의 서술에서는 개별적인 완성도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을 할 뿐 아니라, 아예 방향성까지 수정되곤 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게임은 이렇게 만드는구나, 또 프로그램의 지식이 게임이라는 시각적 UI에 이렇게 적용되거나 접점이 생기는구나 같은, 아주 어설픈 문외한의 감각이었지만 말입니다. 또 p91의 테이블 엎기 게임안 문서를 보고, 이 부분 집필자인 이재호 저자 같은 분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감이 욌고 말입니다. 팀명이 잔다르칸이라고 나오는데 그 작명 동기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아마도 게임 개발자들이 현실적인 관심을 특히 느낄 만한 부분은 p109 이하의 step2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발자라면 step1의 내용은 가장 많이 시간을 투자할 만한 작업들이며, step2에서는 팀빌딩이라든가 일정관리,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이 나오는데 개발자로서는 설령 실무 능력이 뛰어나도 오히려 이런 부분이 낯설거나 서투를 수 있기 때문이죠. 반대로 게임 개발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하는 독자는 이 대목이 당장 읽기는 가장 편하지 싶습니다. 이런 부분은 사회 생활에서 으레 겪게 마련인, 소통과 인간 관계, 혹은 조직론의 각론과 디테일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면도 있고, 또 아 이런 부분은 공통점이구나 싶은 면도 있었습니다. 일정관리에 대해서는 pp162~165의 표가 독자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임 개발자가 되려면 개별 프로젝트에서 적용할 만한 여러 기법들을 알아 둬야 하며, 이 중 어떤 것을 해당 스테이지에 적용시킬지가 바로 개발자의 역량 척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p197에 나오는 FSM 같은 것입니다. "미리 계산해 두어야 하고 무한하게 만들 수 없으므로 유한한 상태를 가진 기계가 된다(p197)." 


"학생들의 개발에서 교수님의 피드백은 위험하면서도 달콤하다(p229)." 즉 교수님들은 "상용화까지 가 보신 분들이므로" 장단점이 한눈에 보이기 마련인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 "위축되고 활기가 사라지거나" "아예 팀이 붕괴되는 경우"도 잦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부 피드백(교수님은 당연히, 당해 프로젝트의 구성원이 아니므로 외부겠죠)은 어떤 경우에나 필요하며 게임이란 상용화를 전제하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내부의 책임자이기 때문(p240)"에 이 외부 피드백은 양날의 칼이라 할 만합니다. 


게임뿐 아니라 일반 회사라고 해도 요즘은 어떤 천재적 기안자의 주도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물론 팀장 역량이 뛰어나서 각 분야의 최고들을 한 데 모아 드림팀을 꾸릴 수는 있지만, 오히려 이 경우 아폴론의 역설처럼 더 분위기가 융화 안 되기도 합니다. 게임이란 더군다나 각 분야의 겸직이 어려운, 다채로운 개성과 역량이 팀 안에서 잘 조화되어야 최종 프로젝트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점, 그 디테일에서 기술적으로 이러이러한 난점이 있겠구나 하는 점들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었네요. 이런 점은 역시 IT 서적에 다년간 깊은 노하우를 쌓은 출판사에서 책에 잘 구현할 수 있었겠다는 점도요.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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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예술가들 - 스캔들로 보는 예술사
추명희.정은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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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그렇지만 예술가들은 매우 자주, 같은 시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기행을 저지르곤 합니다. 예술가로서의 업적은 업적대로 따로 평가해야 하지만, 이러한 기행들은 우리들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 좀 삼가 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언행만 좀 반듯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지만 그러한 행동과 천재적인 예술적 기질은 애초에 그 본성상 둘로 분리되지 않는 것들이 많기에 우리는 더 흥미로운 시선으로 예술가들의 행적을 검토하며 분석하고 또 비판하곤 하죠.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도 배운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헥토르는 운명에 저항하며 신의 아들과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일합을 겨룬 영웅이었으나, 프랑스식으로 발음하여 h 사운드가 나지 않는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역시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마리 플례옐과 운명에 저항하지 않는 비극적 사랑에 빠집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리오즈는 기어이 이 여성을 놓치고 마는데, 더 놀라운 건 피아노 제작사의 나이 많은 대표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파리와 로마라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었다는 조건은 아마 치명적인 장벽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피아니스트가 끝내 사장님하고도 파국을 맞고 그 유명한 바람둥이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와 또 불륜 행각을 벌였다는 건데 아무리 자유분방한 기준이 통용되던 파리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이 얼마나 당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가뜩이나 이 분야에서 유명(?)했던 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큰 비난이 플레옐을 향해 쏟아졌겠습니까. 책 저자께서는 "아마 플례옐도 처음에는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라며 우호적인 추측을 시도합니다만(또 독자로서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여튼 결과가 그리 나왔으니 설령 노력을 했다 해도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멀쩡한 가정을 파탄냈다면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비판 받아야 마땅합니다만 이런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유독 자신에게만 너그러운 도덕적 기준을 적용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샤를 구노는 그 대표작만 들어 보면 한없이 경건한 삶을 살았을 듯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스캔들은 충격을 넘어 경악 수준입니다. 귀족 사회에서 어떤 귀부인이 천재 음악가를 후원하는 건 수백 년도 넘은 전통이고, 또 간혹 가다가 이 둘이 불륜에 빠지는 것도 드물지만은 않게 보는 사건입니다만 여튼 영국의 귀족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혈통을 따지고, 그 족보도 더 믿을 만합니다. 또 당시는 빅토리아 연간이기도 했는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조지나 웰던 같은 이가 작곡가와 불륜에 빠진 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겠죠. "어떻게 프랑스 남자를 믿을 수 있었단 말인가?(p93)" 구노는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프랑스 남자 전체의 명성(가뜩이나 좋지도 않았던)에 먹칠을 한 장본인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감상하기엔 좋지만 연주하기엔 너무도 어려운 곡이 많습니다. 그 시계태엽처럼 정확한 곡 진행을 듣자면 마치 임마누엘 칸트와 같은 절도 있는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는 고모의 딸과 사랑에 빠진, 어느 나라에서나 대단히 위험하고 흉하게까지 보는 사랑에 빠진 위인이었다고 합니다. 이 결혼을 위해서는 당시 러시아를 지배하던 군주의 특별 허가(p140)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차르는 러시아 정교회의 최고 수장이기도 했기 때문인데 이는 비잔티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는 황제 교황주의의 일환이기도 하죠. 여튼 이 커플은 어렵게 맺어진 만큼 오랜 동안 사랑을 이어갔는데 이후 러시아 제정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전복된 후엔 미국으로 망명해서까지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의 음악은 아마 경직된 공산주의 제체 하에서는 불온시되어 널리 인정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드뷔시는 그 특유의 신비로운 선율로 오늘날에도 폭 넓은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이 사람도 여러 여인과 맺어져 그 나름 화려하게 이어진 애정 행각으로 유명한데, 맺어진 여인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운명에 빠졌다는 것도 독특합니다. 하긴 남자가 이처럼 정신 없이 여성을 갈아치우는데 어떻게 그 여성들이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상하게도 동시대에 산 다빈치와는 달리 미켈란젤로는 애정사라는 이슈에 대해 무감각한 편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괴퍅한 성미도 남달랐는데요. 책에 따르면 만년에 비토리아 콜론나라는 여성을 만난 후부터는 만많이 누그러진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천재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외골수로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서, 심지어 여성 일반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갖고 상례에 벗어난 태도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클로드 모네는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와 함께 인상파의 대표로 꼽히는 천재 화가이며 스릴러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검은 수련> 같은 작품을 기억할 만하며 저도 5년 전에 문충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그 서평도 쓴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책에서 아주 드물게도 클로드 모네의 사랑은 비록 그 발전 과정이 험난하기는 했어도 불륜은커녕 모든 남자가 본받아야 할 아주 모범적인 패턴입니다. 인상파라는 건 세계 회화사에 남을 파격이었는데, 그 대표자 중 한 사람인 모네의 애정사는 그만큼 정격이 또 없었으니 역설적입니다.


질병 때문에 일찍 죽어서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 천재로는 이 책에 로트렉과 에곤 실레 등의 이야기가 더 실려 있습니다. 이들의 사랑 역시 비난은커녕 남들을 숙연하게 만들 정도의 숭고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앤디 워홀이나 피카소 같은 이의 애정 행각은 참으로 현란하죠. 이처럼 예술가들의 애정 전선은 그 추구한 예술세계의 노선과 그 결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동시대인들이 애정 문제에 있어 어디까지 그 일탈을 참아 주느냐의 문제도 반드시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무튼 천재의 재능과 실제 삶이 비슷한 길을 걷기도 하지만, 반대로 극와 극의 발산을 보이는 것도 참으로 재미있는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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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 - 일본 제국의 기초를 닦다 살림지식총서 584
박진우 지음 / 살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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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이란 단어에서 거부감이 느껴지는 분들이 있겠으나 책 제목이 원래 그리 된 것이니 이해 바랍니다. 


서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혁신과 시대 계몽의 아이콘으로 이 사람을 꼽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곤 합니다. 아마도 소위 명치 유신 당시 일본이 근대화의 롤모델로 꼽은 나라가 프랑스였고(이후 독일로 바뀜) 이 때문에 일본의 법제를 비롯하여 많은 것이 프랑스 제도가 그 원형입니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인들도 자신을 따라하는 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호감을 느꼈고, 그 혁신의 기간 동안 군주로 재위한 이가 저 메이지 덴노이다 보니 그런 풍조가 생긴 듯합니다. 자크 아탈리의 책 <등대>가 2013년 10월 청림출판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 한국어 번역본에는 없지만 원서에는 메이지 덴노가 저 인물들 중에 포함되었더랬습니다. ( http://blog.yes24.com/document/7466573 )


친일파 이광수가 쓴 평전 <도산 안창호>(2015. 6. 30에 책프 11기 26주차에 이 책을 글감 삼아 제가 남긴 서평이 있습니다) 를 보면, 안 도산이 서거할 당시 큰 소리로 "목인아, 목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구나!"라 외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목인이라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저 메이지 덴노의 이름입니다. 그 아들 다이쇼 덴노의 이름은 가인, 그 손자 쇼와 덴노의 이름은 유인인데 이걸 일본식으로 읽으면 히로히토가 되는 거죠. 자칭 만세일계라 하는 일본 군주들의 이름자(휘)는 이처럼 어질 인(仁)으로 돌림자 비슷하게 내려오는 전통이 있습니다. 저는 저 도산 평전을 중학생 때 읽었는데, 어떤 설명이나 각주가 없어서 저희 부친에게 질문을 해서 겨우 "목인"이 무슨 뜻인지 알아냈던 기억이 있네요. 


저희 부친은 더불어, 그 아들 다이쇼 덴노가 좀 모자란 인간이라는 평판이 파다해서, 모두가 허리 굽혀 절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 한 사람이 연단 위의 덴노가 뭘 하나 힐끔 쳐다보았더니 연설문을 돌돌 말아 망원경처럼 보고 있더라는 일화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이게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이 어렵고, 다만 해당 인물에 대한 중평이 당시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는 있죠.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대정 연간에는 일본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덩달아 조선에도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게 시늉으로나마 행해졌죠. 아마도 일본의 보수 강경파가 이런 풍조를 못마땅히 여겨 의도적으로 그런 프로파간다를 퍼뜨렸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그의 참모습이고 어디서부터가 조작된 이미지인지 면밀히 구분해 낼 방법은 없습니다. 어쩌면 아마 본인에게도 비극이었을 겁니다. 현인신이라 일컬어지며 근대화 과정을 거쳐 제국주의 열강으로 발돋움하려 들던 일본인들에게 이런 상징조작은 필수 과정이었겠습니다. 삼국 간섭 과정에서 "강도들이다. 정당히 전쟁을 하여 뺏은 영토를, 별개의 간섭을 통해 도로 내놓으라고 하다니!" 라며 개탄하던 제국주의자들의 태도를 보면 연민의 웃음이 나옵니다. 강도판에 무슨 룰이 있다는 말입니까? 메이지 덴노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자신과 그 추종자들이 한 일의 정확한 의미가 뭔지 몰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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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1 - 풍운천하
구종서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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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기록"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소설 형식입니다. 또,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정사에 근거를 두고 꼼꼼한 연구 끝에 쓰인 작품이므로 거의 역사책으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 같은 이의 대하소설도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서부터가 소설인지 모호한데 이 책도 그런 기분으로 읽으면 좋을 듯하네요.


출간된지 14년이 지났는데 저는 11년 전쯤인 2010년쯤에 전권을 구매했었습니다. 그 당시 도정제 실시 전이라서 특히 교보 한 군데에서만 싸게 판매했기에 얼씨구나 하고 샀던 기억입니다. 작가는 중앙일보 국제부장을 역임한 구종서씨이며 필력이 좋아서인지 소설이 술술 재미있게 읽힙니다. 왜 아직까지 이 책을 제가 책프 글감으로 삼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책프에 오래 참여하다 보니 이게 혹시 전에 리뷰했던 책은 아닌지 일단 책좋사 카페에서 검색을 한 후에 읽고 독후감을 써도 쓰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구종서 작가님이 쓴 다른 책에 대한 서평은 여러 회원님들이 남긴 기록이 눈에 띕니다. 


이런 역사소설을 읽는 보람은,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사실이 머리에 잘 정리된다는 걸 그 첫번째로 꼽고 싶습니다. 역사를 국사 교과서나 참고서로 공부할 때처럼 지루하고 괴로운 순간은 없습니다. 아무리 설 모씨나 최 모씨처럼 일타 강사한테 배우더라도 이게 공부는 어디까지나 공부라서, 아무리 배워도 헷갈리는 부분은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반면 소설로 접근하는 역사는 게임 못지 않게 꿀잼이라 결과물이 오래 기억된다는 게 비교할 수 없는 장점입니다. 


다음으로 이 작품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작가분이 정말로 열정을 기울여 연구한 흔적이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할 만큼, 문장 하나하나가 비분강개한 애국심을 뿜습니다. 그래서 독자로서 작품을 읽어 가며 새삼 자세를 고쳐 잡기도 했습니다. 작가분의 고향이 강화라고도 나오는데 아마 그래서 더 특별한 창작 동기와 열정이 부여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최충헌 집권기부터 시작합니다. 처음에 최충헌이 명종을 폐하고 신종을 옹립할 때 명종의 태자도 함께 폐위되었는데, 신종은 병으로 붕어하고 그 아들 희종이 즉위하여 최충헌을 상대로 일종의 친위쿠데타를 기도하다 실해합니다. 이걸 계기로 희종까지 다시 폐위하고는, 최충헌 자신이 14년 전에 태자 자리에서 쫓아낸 왕숙(王璹)을 즉위시킵니다. 이분이 고려 강종이죠. 즉위시에 이미 나이가 육십이었습니다. 휘(諱)인 숙(璹)은 옥그릇 숙 자인데 이 글자도 지금 제가 시도해 보니까 여튼 윈도에서 바로 지원이 되네요. 


강종은 병으로 승하하고 아들이 즉위하는데 이분이 고려 고종입니다. 즉위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북방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이는데 거란의 잔당이 고려 국경을 넘어온 사건입니다. 이를 진압하라고 금나라(여진)에서 보낸 포선만노가 연전연패한 후 처신이 힘들게 되어 엉뚱하게도 스스로 일어나 나라를 세우는데 이게 동하(東夏)입니다. 한국에서는 동진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여기에 당시 엄청난 기세로 동아시아 일대를 휩쓸던 몽골까지 합세하여 아주 복잡한 양상의 국제전이 일어납니다. 


이 1권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북방 민족의 한다하는 장수들이 고려의 김취려 장군을 보고 형님으로 모시며 친분을 도모하는 장면입니다. 개인의 역량(외모 포함!)이 이처럼 압도적이면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는 점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 대목은 꼭 작가의 상상이나 허구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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