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예술가들 - 스캔들로 보는 예술사
추명희.정은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현대에도 그렇지만 예술가들은 매우 자주, 같은 시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기행을 저지르곤 합니다. 예술가로서의 업적은 업적대로 따로 평가해야 하지만, 이러한 기행들은 우리들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 좀 삼가 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언행만 좀 반듯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지만 그러한 행동과 천재적인 예술적 기질은 애초에 그 본성상 둘로 분리되지 않는 것들이 많기에 우리는 더 흥미로운 시선으로 예술가들의 행적을 검토하며 분석하고 또 비판하곤 하죠.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도 배운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헥토르는 운명에 저항하며 신의 아들과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일합을 겨룬 영웅이었으나, 프랑스식으로 발음하여 h 사운드가 나지 않는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역시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마리 플례옐과 운명에 저항하지 않는 비극적 사랑에 빠집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리오즈는 기어이 이 여성을 놓치고 마는데, 더 놀라운 건 피아노 제작사의 나이 많은 대표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파리와 로마라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었다는 조건은 아마 치명적인 장벽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피아니스트가 끝내 사장님하고도 파국을 맞고 그 유명한 바람둥이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와 또 불륜 행각을 벌였다는 건데 아무리 자유분방한 기준이 통용되던 파리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이 얼마나 당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가뜩이나 이 분야에서 유명(?)했던 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큰 비난이 플레옐을 향해 쏟아졌겠습니까. 책 저자께서는 "아마 플례옐도 처음에는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라며 우호적인 추측을 시도합니다만(또 독자로서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여튼 결과가 그리 나왔으니 설령 노력을 했다 해도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멀쩡한 가정을 파탄냈다면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비판 받아야 마땅합니다만 이런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유독 자신에게만 너그러운 도덕적 기준을 적용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샤를 구노는 그 대표작만 들어 보면 한없이 경건한 삶을 살았을 듯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스캔들은 충격을 넘어 경악 수준입니다. 귀족 사회에서 어떤 귀부인이 천재 음악가를 후원하는 건 수백 년도 넘은 전통이고, 또 간혹 가다가 이 둘이 불륜에 빠지는 것도 드물지만은 않게 보는 사건입니다만 여튼 영국의 귀족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혈통을 따지고, 그 족보도 더 믿을 만합니다. 또 당시는 빅토리아 연간이기도 했는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조지나 웰던 같은 이가 작곡가와 불륜에 빠진 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겠죠. "어떻게 프랑스 남자를 믿을 수 있었단 말인가?(p93)" 구노는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프랑스 남자 전체의 명성(가뜩이나 좋지도 않았던)에 먹칠을 한 장본인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감상하기엔 좋지만 연주하기엔 너무도 어려운 곡이 많습니다. 그 시계태엽처럼 정확한 곡 진행을 듣자면 마치 임마누엘 칸트와 같은 절도 있는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는 고모의 딸과 사랑에 빠진, 어느 나라에서나 대단히 위험하고 흉하게까지 보는 사랑에 빠진 위인이었다고 합니다. 이 결혼을 위해서는 당시 러시아를 지배하던 군주의 특별 허가(p140)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차르는 러시아 정교회의 최고 수장이기도 했기 때문인데 이는 비잔티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는 황제 교황주의의 일환이기도 하죠. 여튼 이 커플은 어렵게 맺어진 만큼 오랜 동안 사랑을 이어갔는데 이후 러시아 제정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전복된 후엔 미국으로 망명해서까지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의 음악은 아마 경직된 공산주의 제체 하에서는 불온시되어 널리 인정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드뷔시는 그 특유의 신비로운 선율로 오늘날에도 폭 넓은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이 사람도 여러 여인과 맺어져 그 나름 화려하게 이어진 애정 행각으로 유명한데, 맺어진 여인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운명에 빠졌다는 것도 독특합니다. 하긴 남자가 이처럼 정신 없이 여성을 갈아치우는데 어떻게 그 여성들이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상하게도 동시대에 산 다빈치와는 달리 미켈란젤로는 애정사라는 이슈에 대해 무감각한 편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괴퍅한 성미도 남달랐는데요. 책에 따르면 만년에 비토리아 콜론나라는 여성을 만난 후부터는 만많이 누그러진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천재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외골수로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서, 심지어 여성 일반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갖고 상례에 벗어난 태도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클로드 모네는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와 함께 인상파의 대표로 꼽히는 천재 화가이며 스릴러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검은 수련> 같은 작품을 기억할 만하며 저도 5년 전에 문충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그 서평도 쓴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책에서 아주 드물게도 클로드 모네의 사랑은 비록 그 발전 과정이 험난하기는 했어도 불륜은커녕 모든 남자가 본받아야 할 아주 모범적인 패턴입니다. 인상파라는 건 세계 회화사에 남을 파격이었는데, 그 대표자 중 한 사람인 모네의 애정사는 그만큼 정격이 또 없었으니 역설적입니다.


질병 때문에 일찍 죽어서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 천재로는 이 책에 로트렉과 에곤 실레 등의 이야기가 더 실려 있습니다. 이들의 사랑 역시 비난은커녕 남들을 숙연하게 만들 정도의 숭고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앤디 워홀이나 피카소 같은 이의 애정 행각은 참으로 현란하죠. 이처럼 예술가들의 애정 전선은 그 추구한 예술세계의 노선과 그 결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동시대인들이 애정 문제에 있어 어디까지 그 일탈을 참아 주느냐의 문제도 반드시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무튼 천재의 재능과 실제 삶이 비슷한 길을 걷기도 하지만, 반대로 극와 극의 발산을 보이는 것도 참으로 재미있는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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