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천황 - 일본 제국의 기초를 닦다 살림지식총서 584
박진우 지음 / 살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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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이란 단어에서 거부감이 느껴지는 분들이 있겠으나 책 제목이 원래 그리 된 것이니 이해 바랍니다. 


서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혁신과 시대 계몽의 아이콘으로 이 사람을 꼽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곤 합니다. 아마도 소위 명치 유신 당시 일본이 근대화의 롤모델로 꼽은 나라가 프랑스였고(이후 독일로 바뀜) 이 때문에 일본의 법제를 비롯하여 많은 것이 프랑스 제도가 그 원형입니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인들도 자신을 따라하는 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호감을 느꼈고, 그 혁신의 기간 동안 군주로 재위한 이가 저 메이지 덴노이다 보니 그런 풍조가 생긴 듯합니다. 자크 아탈리의 책 <등대>가 2013년 10월 청림출판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 한국어 번역본에는 없지만 원서에는 메이지 덴노가 저 인물들 중에 포함되었더랬습니다. ( http://blog.yes24.com/document/7466573 )


친일파 이광수가 쓴 평전 <도산 안창호>(2015. 6. 30에 책프 11기 26주차에 이 책을 글감 삼아 제가 남긴 서평이 있습니다) 를 보면, 안 도산이 서거할 당시 큰 소리로 "목인아, 목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구나!"라 외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목인이라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저 메이지 덴노의 이름입니다. 그 아들 다이쇼 덴노의 이름은 가인, 그 손자 쇼와 덴노의 이름은 유인인데 이걸 일본식으로 읽으면 히로히토가 되는 거죠. 자칭 만세일계라 하는 일본 군주들의 이름자(휘)는 이처럼 어질 인(仁)으로 돌림자 비슷하게 내려오는 전통이 있습니다. 저는 저 도산 평전을 중학생 때 읽었는데, 어떤 설명이나 각주가 없어서 저희 부친에게 질문을 해서 겨우 "목인"이 무슨 뜻인지 알아냈던 기억이 있네요. 


저희 부친은 더불어, 그 아들 다이쇼 덴노가 좀 모자란 인간이라는 평판이 파다해서, 모두가 허리 굽혀 절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 한 사람이 연단 위의 덴노가 뭘 하나 힐끔 쳐다보았더니 연설문을 돌돌 말아 망원경처럼 보고 있더라는 일화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이게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이 어렵고, 다만 해당 인물에 대한 중평이 당시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는 있죠.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대정 연간에는 일본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덩달아 조선에도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게 시늉으로나마 행해졌죠. 아마도 일본의 보수 강경파가 이런 풍조를 못마땅히 여겨 의도적으로 그런 프로파간다를 퍼뜨렸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그의 참모습이고 어디서부터가 조작된 이미지인지 면밀히 구분해 낼 방법은 없습니다. 어쩌면 아마 본인에게도 비극이었을 겁니다. 현인신이라 일컬어지며 근대화 과정을 거쳐 제국주의 열강으로 발돋움하려 들던 일본인들에게 이런 상징조작은 필수 과정이었겠습니다. 삼국 간섭 과정에서 "강도들이다. 정당히 전쟁을 하여 뺏은 영토를, 별개의 간섭을 통해 도로 내놓으라고 하다니!" 라며 개탄하던 제국주의자들의 태도를 보면 연민의 웃음이 나옵니다. 강도판에 무슨 룰이 있다는 말입니까? 메이지 덴노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자신과 그 추종자들이 한 일의 정확한 의미가 뭔지 몰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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