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프렌드
데이비드 바디엘 지음, 김송이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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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SF치고는 미래사회의 구조와 기술에 대한 통찰도 깊이가 있었고, 결말이 해피엔딩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포라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2014년작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무리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소설 초반부에 핍이라는 11살짜리 아이가 등장하는데 얘는 서기 3020년에 살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로 보아 남자애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지금으로부터 천년 뒤에는 이처럼 성별 구분이 잘 안 되는 외양으로 다니는가 봅니다. 핍이 1000년을 거슬러와 우리 시대로 (뜻하지 않게) 뛰어든 후 다른 사람들(즉 우리와 동시대인들)이 그를 가리켜 "여자아이"라고 부르는 데서 비로소 우리 독자들도 주인공 핍이 여성임을 알게 됩니다. 물론 핍이 여성이라고 분명히 정해 준 건 다른 주인공 소년(우리 시대 소속) 라훌이며 어른들은 그전까지 핍을 남자애로 착각합니다. 하긴 이런 생각 역시 "여성은 이러이러하게 꾸미고 다녀야 해!" 같은 성차별 편견이고 미래에는 그런 생각들이 다 극복된 상태라는 암시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토론거리로 자주 삼는 화제가, 과연 우리들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천재 노릇을 하고 살 수 있겠냐는 겁니다. 여기서 핍은 천 년을 거슬러와서는 거의 초인으로 군림합니다. 먼저 그녀는 중력 부츠를 신고 다니기에, 마치 예전에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에 대한 도시전설처럼 공중에 붕 떠 있을 수 있고 따라서 현대의 (어린이) 축구 시합에서 경기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는 그렇게만 나오지만(이 작품이 영국 작가분에 의해 지어졌으므로 축구가 화제지만) 미국이었다면 단연 농구나 아메리칸 풋볼이었겠죠. 


또 핍은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G안경과 마인드링크(머리에 심는 일종의 칩입니다)를 이용해 가능하며 핍이 딱히 엄청난 지식이나 지능을 가진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게 가능합니다. 책 후반부에는 건터라는 (희한하게도 독일식 이름인) 애가 등장하는데, 이 아이가 아주 못됐습니다. 마치 극우파나 혐오 경향애 찌든 무리들을 풍자하려는 의도 같습니다만 여튼 얘가 자꾸 핍을 못살게 굴자 핍이 마지못해 실력을 한번 보여 준 겁니다. 이 능력은 소설 끝나갈 때쯤 우리 시대로 온 OO이 OO을 상대로 또 선보이는데, 이게 이 작품에서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부분입니다. 


p104를 보면 우리 시대의 학교에서 소수(素數)를 가르치는데 핍은 뫼비우스 반전공식, 제타함수까지 들먹이며 선생님을 무안하게 만듭니다. 저는 처음에 이것이, 천 년 뒤의 초등학교 커리큘럼에서는 이런 걸 다룬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천 년 뒤에나 밝혀진 내용은 아닙니다. 21세기 현재에도 학부 저학년에서 얼마든지 가르치죠), 마치 2300년 전 최첨단 지식이었던 유클리드 기하학을 우리가 초4~중3 수준에서 배우듯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독일어(고대언어!)에 대해 전혀 모르던 핍이 마인드링크를 통해 해당 언어를 술술 말하는 장면이 이어지기에, 이 역시 기본 지식이 아닌 도구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 이 소설에서 아주 큰 비중은 아니지만, 미래에서는 앵무새, 고양이 등이 사람처럼 말을 할 줄 압니다. 마치 <둘리틀 선생>에서처럼 말입니다. 이는 천년이 지나는 동안 진화한 결과라고 하며, 그 미래에서는 돼지가 이미 노벨상을 탔으며, 닭들은 인간 중심의 사회에 저항하여 무력 투쟁을 펼칩니다. 이러니 앵무새가 천년 전인 현재로 왔을 때 가장 놀란 게 닭들이 온순하게 길들여진 모습입니다("닭들이 마침내 항복했나봐!"). 또 어떤 개가 목줄에 묶여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가는 걸 보고 핍은 "이러시면 안 된다"며 항의하기도 합니다. 


천 년 후의 미래가 좋기만 하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바깥 세상은 너무 뜨거워진 데다 생화학무기 부산물로 잘못 만들어진 온갖 유해한 미생물 때문에 이미 나갈 수가 없고 사람들은 실내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핍은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야 합니다. 부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여기서 저기로 이동할 수 있으나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중력 부츠가 있긴 하나 바깥 세상에 나갈 수가 없는 핍은 언제나 답답한 느낌이었는데 천 년 전 과거로 와서 펄펄 날아다닙니다. 축구 경기를 라이브로 현장에서 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그러니 천 년 전으로 온 핍이, 우리 시대에는 흔해 빠진 야외 스포츠 경기를 보고 감격할 밖에요. 


저는 처음에 핍의 부모가 "바깥 세상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구절, 또 이 소설 제2의 주인공 라훌이 꼬마 발명가라는 설정이 왜 등장했는지 궁금했는데, 낭비되지 않고 이 설정이 소설 전체를 꿰뚫으며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장치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또 주인공들은,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각종 연극을 하거나 지혜를 짜내 그들을 편안히 속입니다. 어른들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을지, 어른인 독자인 제가 미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가급적이면 폭력과 비합리적인 감정적 반응, 대립을 회피하려 드는, 많이 문명화한 미래에서도 여전히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결말은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 책이 시리즈로 계속 나올 줄 알았는데 결말을 보니 이 단권으로 아마 완결을 지으려나 봅니다. 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 작품에는 넌지시 떡밥만 던져졌을 뿐 그대로 묵히기 아까운 설정이 이미 많이 등장을 했습니다. 속편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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