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마주치지 않았을 순간들
송인석 지음 / 이노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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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우리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다닐 수 있었던 그 많은 곳들을 우리는 가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갈 마음을 먹지 못했던 모든 곳에 한번 정도는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작가분께서 코로나 때문에 강제로 머무르거나, 혹은 그 외의 이유로 머물러야 했던 많은 여행지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이 잘 되지 않아도,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이라도 어떤 행운이 옮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남의 불운을 기원하는 못된 심뽀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께서 여행 중에 만난 사람 중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모 외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어린이도 있으며,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을 겨를이 없는 불행한 분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을, 코로나가 강제로라도(?) 연결해 주지 않았다면, 저자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또 우리는 이런 예쁜 책으로 지면을 통해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줬습니다. 생계를 잃은 분들도 있고, 어이없이, 청천벽력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곁에 그런 사람 하나 없이 2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다가 위드 코로나를 맞이하는 중입니다만, 아무 탈 없이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목숨을 잃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무심히 돌아갑니다. 


"송! 나는 친절하고 항상 웃고 그러는 니가 좋아. 너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p52)" 물론 저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저 주변 사람한테 친절히 구는 것만으로도 큰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언 이웃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기도 하니 말입니다. 


"포도주는 쓰지만 달콤하다. 마치 나의 이번 해와 같다(p226)" 저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번 해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까요? 세상사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쓴 듯하면서도 달고, 단 듯하면서도 씁니다. 바이러스 때문에 마지막 교통편이 끊기듯 갑자기 정상적인 운행이 중지되는 듯하다가도 결국은 또다시 정상으로 복귀합니다. 호객꾼과 실랑이하듯 그렇게 세상은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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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 수행 지침서 1 - 진정한 정토불교의 가르침을 만나다
영화 지음, 조소영 옮김 / 운주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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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이 고난에 가득한 땅을 떠나 윤회의 고리를 끊고 궁극의 평온을 얻길 원합니다. 늙어가고 병 걸리고 죽는 것도 고통이지만, 그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의 시작이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칩니다. 이 모든 과정이 고통이고 이 고통의 사슬을 벗어나야 한다는 각성을 우리가 먼저 얻어야 하며, 그런 각성 후에는 부단한 수양을 통해 마침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끗한 땅, 즉 정토(淨土)입니다. 


보살도 여러 업연(業緣)을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여성 신도들에 대해 꼭 성불하시라는 뜻에서 보살이라고 호칭해 드리지만, 물론 평범한 우리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직 보살의 경지에 다다르기엔 까마득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얻은 후, 발원(發願)을 하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p145). 통일 신라 시대 김대성도 발원을 통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건립하게 했죠.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짓고 있으며, 또 극복해야 할 악연은 얼마나 많은가, 이 점에 생각이 이르면 사람은 절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집멸도를 가리켜 불교에서는 사성제의 중요한 원칙으로 가리킵니다. 고, 집, 멸, 도... 생각하면 할수록 심오한 이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멸(滅)의 진리에 따라 위 없는 불도를 이루오리다." 이 구절은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는 듯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끝도 없는 더러운 욕망입니다. 책 p172에 보면 이 세상은 욕계, 색계, 무색계로 나뉘는데 우리는 이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욕계라는 사바에 갇혀 우리 자신의 맑고 깨끗한 심성과는 무관하게, 더러운 색욕에 빠져 몸부림치는 꼴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어 수면욕, 재물욕 등에 사로잡혀 때로는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혼자 힘으로 이 무서운 욕망, 짐승이나 다름 없는 지경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 이 욕망에서 벗어나게 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모든 불자들의 공통적인 발원인 "정토 입문"에 다다르면 이런 욕구에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저의 종교가 불교 공부를 금지하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면 하지 마십시오. 다만 양심과 자유로운 마음은 가지도록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p252)" 아마 이런 질문을 한 분은, 공부로서만 불교를 접하고, 신앙은 다른 종교로서 계속 가지길 원했나 봅니다. 아니 공부하다가 정 마음이 움직이고 큰 깨달음에 다가갈 것 같다면 그냥 종교를 바꾸면 되지 않나 싶지만, 가족관계나 현실적인 어떤 의무 때문에 그런 개종(?)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저 나름대로 한번 상상해 봅니다. 


상담 중에는 낙태 때문에 괴로워하는 어느 분의 사연도 짧게 나옵니다. 낙태는 일단 남도 아니고 자신이 잉태한 아기의 생명을 이른 단계에서 앗는 행위이기 때문에, 깊은 자책감과 충격이 올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낳아서 키울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낙태하는 많은 여성들의 처지는 물론 충분히 이해가 되죠. 죄책감도 죄책감이지만 몸에 칼을 대어 고통스러운 수술을 겪는다는 자체가 하나의 큰 충격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저자는 지장경을 읽으며 아이의 고통을 달래주라고 합니다. 일단은 아기에게 초점을 맞춘 조언 같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깊게 집중해서 읽은 대목은 발원입니다. 앞서 p145에도 발원이 나왔고, p292에도 또 발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어떻게 발원을 해야 할까요? 대승에서 가르치는 선지식의 중요성에 대해 저자는 말씀합니다. 아무래도 혼자서 모든 걸 해 나가기보다는, 나의 길을 능숙하고 안정감 있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 수 있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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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삽니다 - 자신만의 직업을 만든 20인의 이야기
원부연 지음 / 두사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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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자기 뜻대로, 자기 적성에 맞춰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최대한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은 게 우리 희망이겠는데 책에서는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방법 중 재미있고 따라하기 쉬운 것, 혹은 남들이 채 생각 못 했다 싶어 앞으로 잘 통할 것 같은 좋은 노하우를 많이 알려 주네요.


여러 저자들은 주로 자신의 인생사에 관한, 좋은 노하우 여럿을 알려 줍니다. 20년 무상 임대 사업이라고 하면 사실 우리한테는 많이 낯이 설 수밖에 없는데요. 행안부에서 6억원의 사업비를 빌려 쓰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기는 힘들 것 같은 이 사업을 저자는 결국 성공시키고 맙니다. 이 역시 어떤 남다른 의지와 집념이 있어야 가능했을 듯합니다. 


미국 농구단 LA 레이커스는 한국 안에도 팬이 많습니다. 줄여 쓰면 LAL이므로 랄이라고도 재미삼아 부르는데 이 꿈의 사업체에 입사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필자도 있습니다. 아마 중고등학교 때 나는 미국 농구단에 입사하고 싶다고 하면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반응이 많았겠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버립니다. 이것이 저력이고 집념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떤 방법을 그들은 생각해 낸다는 뜻도 되죠.


정육점에서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골라 즐겁게 조리해 먹지만, 그 고기의 신선도에도 사실 차이가 있습니다. 초신선 고기는 어떤 것일까요? 이렇게 초신선을 컨셉으로 잡고 그것도 소고기를 파는 거라면 마진이 높을까요?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남들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떠올리지만 이걸 비즈니스 모델로 바꿔 놓는 건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영국을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건 그만큼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입니다. 어떤 저자는 가상의 전시 큐레이팅을 떠올려 대박을 쳤는데, 그 핵심에는 영국에서 잘 받은 교육적 기반이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 끝도 없이 펼쳐지는 인터뷰, 인터뷰 속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사업 모델로 빚어볼 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꿈은 그저 꿈으로만 놓아 두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처럼 과감한 도전 정신으로 무엇인가를 만들 소재로 삼으면 그 순간 대박의 발판이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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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투자자 부동산 경매 홀로서기
노일용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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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는 누구한테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초보자도, 고수가 친절히 가르쳐 주는 한 걸음 한 걸음을 그대로 따라하다 보면 결국은 실무의 핵심만 잘 파악하여 요령껏 흉내낼 수 있고, 어느덧 내것으로 만들어 큰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에는 보통 소유권자 한 사람만의 권리만 명시된 게 아니라 여러 권리가 함께 존재합니다. p56에 잘 나오듯이 등기부를 요밀조밀 따져 보면 어느어느 사람의 권리가 부동산에 붙어 있는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저당권이다 전세권이다 임차권이다 해서 붙어 있으면 실질 가치가 하락하는 게 당연합니다. 경매는 낙찰로서 이런 복잡한 권리 관계를, 가위로써 실타래를 끊듯 한 번에 정리하기도 하므로 그 점에서 매매보다 안전하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물론 경매라고 해도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p103에는 특히 비조정지역의 경우를 좋은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 책의 최고로 좋은 점은, 이처럼 사례가 풍부히 실려 있어서 임금채권자가 배당요구를 하는 경우, 예전 경매사건의 요구가 남아 있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에 대비를 할 수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입찰 보증금 역시 사건마다 납입해야 하는 수준이 모두 다릅니다. 이런 부분이 실전경매에서는 매우 어려운데 책에서 여러 자료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독자들이 최대한 알기 쉽게 배려하고 있네요.


계약으로 성립한 지상권 말고 법정 지상권이 그냥 당사자 의사 무관하게 성립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법을 공부하면서 꼼꼼히 살펴야 이런 불의의 손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채무를 상속받은 자는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판결도 있습니다. 재항고인을 최고가 매수인으로 매각허가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결인데, 이런 걸 보면 공부를 정말 꼼꼼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유치권도 언제나 성립하는 게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상식에서 벗어난 이런저런 채권을 들고와서 유치권을 행사하려는 이들도 있는데, 이때 견련성 여부를 법정에서 다투면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외동포나 외국인은, 내국인과 대항력의 정도가 같을까요? 이 역시 경우에 따라 잘 다퉈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이나 물건에 대해 반드시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고 여기면 의외의 결과를 맞을 수 있고, 그래서 항상 책을 펴 가며 과연 내가 예상한 대로의 결과가 나오는 건지 따져 봐야만 합니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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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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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국의 공중보건의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완화의료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위한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저자는 (어디에서나 사정이 비슷하지만) 여건이 매우 열악한 "응급실 근무를 자처하며(책 앞날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 왔습니다. 이 역시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한데, 적지 않은 의료인들이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명제와는 많이 어긋나게도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개탄하며, 그 누구보다도 의료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각별한 보호를 베푸는 호스피스 업무에 종사해 왔습니다. 병원이라는 뜻의 영단어인 호스피탈과, 지금 이 맥락에서의 "호스피스"는 서로 발음도 비슷하며 매우 닮은 겉모습입니다. 의료 서비스의 본원이 바로 "환대, 보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일반 시민이 병원에 혹시라도 가게 되면 기대할 법한 서비스의 본질이 바로 이 지점에 있으니 책은 어찌 보면 우리 독자 모두의 가장 첨예한 관심사 중 하나를 다루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저자는 아버지, 생전에 그 누구보다도 깊은 감정적 유대를 지녔던 부친이 말년에 대장암으로 큰 고통을 겪었기에 이 호스피스 업무에 특별한 사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부친께서는 어찌해서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독한 (화학) 항암제 처방을 견뎠습니다만 2017년에 안타깝게도 기어이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생전에 무척 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 유명한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괴테(의 고전들)를 영국인이 읽을 때에는 번역이 필요하지만, 베토벤의 걸작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환자나 죽음 직전의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치료 역시 같은 영역이 아닐까 암시하는 듯도 합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수험생 시절 그녀는 면접을 볼 때 "자 레이첼, 어떤 동기로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까?"라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무척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우리하고는 의학교육기관에의 입학 과정이 많이 달라서 그녀는 전직 방송국 직원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막상 방송국에 입사하고 보니 "일이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아마 반대였을 겁니다(점수에 맞춰 의대에 들어오고 보니 공부가 너무 힘들어 방송국 일로 진로를 바꾼...."). 


의학 교육 분위기도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듯합니다. 임상에서 무엇이 환자에게 최상의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레이첼은 (선배 의대생, 전공의, 수련의도 아닌) 무려 교수한테 과감하게도 반대 의견을 수시로 표현합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당돌한 의대생에게 어떤 반응이 돌아왔겠습니까? 또 저자는 의대생 시절 자궁경부암이 의심되어 "치욕적인(p98)" 경험도 하게 됩니다(남성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녀는 젊은 나이에, 유난히 예민한 감수성 때문이었는지 그저 갑의 위치인 (미래의) 의사로서의 입장만 굳혀 가는 게 아니라 무력한 환자 입장에도 자주 서 보는 체험을 하게 된 듯합니다. 


심폐 소생술을 CPR이라 하죠. 일반인들도 의료 드라마, 혹은 그냥 일반 컨텐츠에서도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CPR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잔인한 과정(p127)"이라며 아주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심정지에 빠진 이들 중 CPR을 통해 소생하는 이들은 1/5" 정도뿐이라고 하며, 의사들 역시 뻔히 알면서 정면 논의를 회피하는 이슈라고 말합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멋진 모습은 거의 과장이거나 환상에 가깝다고 하네요. 


천식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은 레일라라는 19세 소녀를 치료한 경험도 자세히 소개됩니다. "진짜 나는 의사들이 미워요. 멍청한 환자 입장은 돌보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잖아요?(p153)" 사실 소녀가 분노하는 건 의사들이라기보다 그들의 차갑고 냉정한 태도일 것입니다. 백혈병 재발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나든 앨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톰(이란 남성 환자)은 밤에 잠도 못 자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당시 저자는 그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해 주지 못하고 그저 사무적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과연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었을지 당시의 일을 저자는 다소 냉소적으로 회고(p187)합니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며 우리는 이런 진실을 그저 남의 사례에서나 합리적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노인 사이먼과 그의 딸을 대할 때 저자는 더 성숙하고 더 공감 잘하는 의사였습니다. 사이먼은 의사들에게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환자였으며 이런 경우를 능란히 다루는, 그래서 그와 더 깊은 소통에 마침내 성공하는 저자의 변모를 지켜 보는 건 독자로서 또다른 재미입니다. 결국 환자는 의사한테 깊이 의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자에 더 밀도 높게 공감하는 건 결국 의사의 능력이고 성취고 보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송국 일도 그녀는 처음에 오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겠다는 의도에서 지원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현실은 크게 다달랐던 거죠. 이제 그녀는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그 힘든 공부를 마치고 까탈스러운 환자들을 두루 겪고 자랑스러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픈 아버지를,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만납니다. 이런 운명을 맞기 위해 그녀는 그 먼 길을 돌아온 것일까요? 인생은 참 얄궂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닌 제3로서 접하는 이런 스토리는 언제나 또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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