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셰프 서유구의 식초 음식 이야기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8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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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저술 <임원경제지> "정조지" 중 주로 "미료지류"에서 갖가지 흥미로운 레시피를 분석, 연구하여 21세기 한국인들이 일상에까지 응용할 수 있게 만든 시리즈 여덟번째 권입니다. 식초는 요즘 체내 해독에 유익하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같은 입소문이 나서 많이들 섭취합니다. 책에서는 "희석해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삼시세끼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방법(p10)"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식초 자체가 아니라 "식초 음식"을 소개하되, "다른 식재료와 조화를 이루면서 식초 맛이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는 음식"들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우리가 식초 음식을 멀리하는 건 "(애초에) 식초 음식 가짓수가 적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식초 음식을 멀리해서 가짓수가 적어진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거죠. 실학자 서유구 선생이 당대의 식초 음식 조리법을 이처럼이나 많이 정리해 두었다는 건 조선 후기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많은 가짓수의 식초 음식을 즐겨 먹었다는 건데,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일제 강점의 영향이라든지, 급격한 현대화 와중 일시 망각했다든지[p9]) 전통이 단절되었던 바 있었고, 이렇게 옛 연구서를 통해 오늘에 복원하는 노력이 따로 필요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물론 우리가 즐겨 먹는 반찬에 식초가 끼는 경우는 상당히 많습니다만 책에서 강조하는 건 그런 음식에 식초의 효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식초는 이 책에서도 확인 가능하듯이 본디 용도가 매우 넓은 식재료이며 심지어 가격조차 싸다는 장점이 있다고 나옵니다. "미료지류"에서의 "미료"는 오늘날 우리가 "조미료"라고 할 때의 그 "미료"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잘 복원한 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식초는 조미료 그 훨씬 이상의 것입니다. 


p61에는 우리가 즐겨먹는 "육회"의 일종인 "육생방"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고기를 잘게 자른 건 회(膾)라고 하는데, 이 잘게 썬 걸 다시 모은 것은 회(會)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고기와 향신채를 참기름으로 잘 섞은 다음", 여기에 식초를 뿌려 먹는다고 합니다. 또 "익힌 고기도 생고기의 신선한 느낌을 갖게 하는 건 식초 덕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p7로 잠시 돌아가 보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냉장고가 상용화되기 이전 세대들은 온몸을 강타할 정도로 강렬한 신맛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냉장고가 상용화되기 전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래 전일까요. 냉장고를 넘어 김치 냉장고라는 것이 이제 가정마다 보급이 될 만큼인 지금도 대량으로 김장김치를 담가 먹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그런 강렬한 신맛은 주로 신김치의 그것을 말합니다. 여튼 p61의 육생방은 "일반적인 육회의 통념을 깨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배워야(=타 음식에 응용해야) 할 것은 식초의 활용법이라고도 합니다. 


"여러 유생들은 고기를 움켜 먹을 뿐 개장(芥醬)이 있는 줄 알지 못하였고 나 홀로 개장에 찍어 반 그릇을 먹었는데 맛이 매우 좋았을 뿐더러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하였다.(p70)" 이 대목은 문간공의 임원경제지에 나오는 게 아니라 비슷한 또래였던 학자 이옥의 글 <백운필>에서 저자가 인용한 것입니다. 학자가 저런 경험을 솔직하게, 감정을 넣어 가며 기록으로 남긴 것도 재미있지만 어떤 맛이었기에 저처럼이나 당시의 기분을 절실히 표현했나 싶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옥의 저 책은 이미 우리말로 완역이 되어 있고, 저자가 문간공의 글뿐 아니라 이런 책에서까지 다양하게 인용하며 또 주제에 맞게 정리한 걸 보면 그 성의와 노고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여튼 여기서의 "개장"은 겨자장의 다른 말이며 芥라는 글자도 그 뜻이 "겨자"입니다. 육개장과는 아무 관계 없습니다. 


식초는 그저 첨가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p77의 과시방 같은 음식 속에서 그렇습니다. "삼복과 초가을 사이의 늙은 채과를 사용해야 소금과 식초, 그리고 햇볕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되어 아삭거리는 맛이 만들어진다." 늙은채과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며, 햇볕과 식초가 가해진 후에야 "아삭거리던 식감이 (이제는) 아작거리고" 비로소 꽉 찬 맛이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표현이 기막힙니다. 그러니 이게 문간공의 저작 복원 정도가 아니라 저자가 완전히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죠. 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런 형용이 가능해지는지. "채과"가 뭔지도 몰랐는데 과일 자체로는 맛이 없어 주로 장아찌로 담가 먹는다고 각주에 나옵니다. 레시피가 일정 수 소개되고 나면 정조지의 해당 대목이 한문 원문과 함께 소개되기에 한문 공부하려는 분들에게도 좋겠습니다. 참고로 마늘 녹변을 해결하는 방법이 p102에 나오니 익히면 좋겠습니다. 또 p193에는 난황장아찌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임란 즈음에 고추가 들어와 이후 김치의 매운맛을 전담했다고만 알지만 그전에도 김치 매운 맛을 내는 재료는 따로 있었는데 산초, 천초 등이 그것이라고 합니다(p37). 책에서는 서호수, 허균 등의 저작에서 이미 이런 언급이 나온다고 하며 이런 산초류는 약재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p108에는 동아, 혹은 동과라고도 부르는 채소의 사진이 나옵니다. 사진만으로 봐서는 이것이 박의 일종인 채소인지 아니면 수석 비슷한 것인지도 잘 분간이 안 됩니다만 저자는 "에머랄드와 옥빛의 중간 즈음에 흰 가루분을 살짝 칠한 듯하다"거나 "늦가을처럼 청아하고 맑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표현을 듣고 나서 보니 그런 듯도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박은 긴 줄기를 타고 자랍니다만 "동아줄"과는 무관합니다. 여튼 이 동아로 만든 선(膳)이 이 동아선이겠는데, 이 레시피는 그 출전이 임원경제지가 아니라 음식디미방과 규합총서로부터 소개됩니다. 두 문헌에서 제공하는 방법이 각각 달라 더 흥미롭습니다. "디미방"이라고 할 때의 "디"는 한자 知(지)를 그 당시 음대로 읽은 것입니다. 


부각과 튀각은 중국식이라기보다 마른 음식을 튀긴다는 점에서 한국식이라고 합니다(p122). "170도 정도의 고온 기름에 넣어 부풀어오른다 싶을 때 바로 건져내는 게 포인트라고 하니 잘 알아 두어야겠다 싶었습니다. 튀각을 제삿상에도 올린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이인좌의 난 당시 추포된 신치운이 "갑진년 이후 게장을 먹은 바 없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지만, 책에서는 규합총서의 기록을 인용하며 "한식에서 게장이란, 정말 각별한 위상"이라 평합니다(p125). 그런가하면 "육류나 생선을 중탕할 때 식초를 넣으면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고 영양성분이 쉽게 용출되므로 맛과 풍미를 함께 갖춘다(p133)"고도 합니다. 


식초가 관여하는 음식의 종류가 이처럼 많은 줄 몰랐으며 가히 식초의 관점에서 다시 본 온갖 일품 요리의 향연이라 할 만합니다. 압도적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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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환상이고 부부는 현실이다 - 부부상담사가 말하는 슬기로운 결혼생활
공진수 지음 / 마음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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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아무 계산 없이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드는 젊은 남녀의 감정입니다. 이처럼 숭고한 관계이고 시간이지만 감정에 치우지기 쉽기 때문에 상대방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서서히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때부터 현실의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물론 어떤 난관이 있어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이 모든 게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현실, 부부 생활이라는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대화는 몇 번이나 있어야 할까?(p64) 책에는 놀랍게도 일주일에 한 시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부부가 많다는 통계가 소개됩니다. 일주일에 서너 시간이 보통이라면 하루에 30분입니다. 이 대화에 일 관련 말고도 "성적인 부분"이 조금 추가되기까지 하면 행복감이 가장 높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30분! 어떻게 부부인데 그 정도밖에 대화가 없을까 싶지만 그 정도 시간만 확보되어도 매우 바람직하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매일 조금씩"을 권합니다. 하긴 다이어트 상식 중에도 매번 소식하고 끼니에 과식하지 말라는 게 있죠.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p67)." 사랑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만나 맺어진 사이조차도 그걸 가꿔 나가는 데 이처럼 많은 노력이 든다는 게...


"많은 문제가 결혼 전에 드러난다. 관계가 점점 깊어지면 다양한 문제를 무의식 중에 노출하게 마련이다(p38)." 그래서 요즘은 충격적이고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많이 터집니다. 결혼 며칠 전에 혼수 문제를 놓고 파혼이 일어난다거나, 혹은 상대방의 과거에 대한 충격적인 팩트를 비로소 접하고 참사가 빚어진다거나 하는 일 말입니다. 신혼여행 중 비로소 상대에 결정적으로 실망하는 일이 생겨 도중에 이혼했다거나 하는 건 좀 지난 세대에 있었던 패턴인 듯하기도 하고요. 결혼 날짜가 임박하면 안 드러나던 게, 안 보이던 게 슬슬 나타나는 거죠. 착시현상, 확증 편향, 책임 전가... 결혼을 앞둔 이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혼 사유로 가장 빈도가 높게 표시되는 게 "성격 차이"라고 합니다. 성격 차이라니... 그런 막연한 범주에 가장 많은 사례가 포섭되는 게 통계 분류의 무책임함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많은 부부들이 그 이유로 관계 파탄을 설명하고 싶어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겠죠. 저자는 말합니다. 성격 차이 때무에 헤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이게 뭔지를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망 탓이라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가난에 사무친 이라면 부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며, 정서 결핍이 심한 사람은 그 보상에 대한 욕망이 강한데, 상대방이 그걸 채워주리라는 기대가 이미 일방적인 것이다.(pp. 17~19)" 


또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헤어지는 이들은 보통 '만남부터가 잘못되었다'고들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은 비장하고 거창하지만 사실 만남부터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일방적인 기대를 그 상대방한테 건 것부터가 잘못된 걸 무슨 운명이 자신을 잘못 이끌기라도 했다는 듯 저리 남탓하며 표현하는 거죠. 다시 만나지만 만남이 잘못된 게 아니라 상대한테 자신도 모르는 무엇을 엄청나게 기대한 게 잘못이었던 겁니다. 그 사람한테 자신의 기대 같은 걸 그리 엄청나게 투영하면 안 되는 거였죠. 


"당신은 민감한 것 같아." "당신은 예민한 것 같아." 이 두 문장, 표현은 비슷한 듯해도 전혀 다른 말이라고 저자는 지적(p56)합니다.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적 느낌을 풍긴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앞의 말은 니가 이걸 민감해하는 걸 내가 캐치했으니 앞으로 배려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고, 후자는 니가 무슨 이 점에 열등감 같은 게 있어서, 다른 사람이면 예사로 넘기는 걸 너 혼자 유난떤다는 비난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표현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어서 어떤 사람은 전자의 표현을 비난의 뜻으로도 쓰고, 후자의 표현을 걱정스러워 하는 뜻으로도 쓸 겁니다. 표정 등 부대적인 넌 버벌 익스프레션도 감안해야 하고 발화의 맥락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나야 나쁜 의도가 없었다 해도 내 언어 패턴에 문제가 있어서 상대가 오해하는 건 아닌지 "먼저 자신을 좀 돌아보자"고 합니다. 내가 사전에 조금만 조심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결과는 거의 다 피해갈 수 있습니다. "예방이 치료보다 더 효과적이다(p172)."


자존감은 나 자신도 높게 간직해야 하지만, 나의 배우자도 높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낮으면 그 역시 관계에 위험을 끼칩니다. 화를 자주 낸다, 감정 조절을 못한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존감이 낮아서 이러는데 더 큰 문제는 배우자 역시 이런 상대방의 성향을 점차 닮아간다는 겁니다. 저자는 이것을 "하향평준화"라고 정리합니다(p82). 이때 어떤 결과가 나오냐면 서로 자존감이 낮아서 싸움이 피해지는 게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작은 것에도 서로 예민해하며 과잉반응하다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큰 싸움이 매번 벌어진다는 거죠. 더 나쁜 건, 이런 부모 밑의 자녀조차도 덩달아 자존감이 낮아지는 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어디 가서 자신을 낮추고 사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걸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아예 다른 개념이니 말입니다.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정겹게 들릴 수도, 또 개인보다는 부모의 의무를 우선시한다는 의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비인격화(p89)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호칭의 비인격화가 진척되면, 예를 들어 "쟤, 저 사람" 등로까지 번지면 이미 비인격화를 넘어 하대로까지 이어집니다. 적절한 호칭을 평소에 사용하면 나중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불필요한 오해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왜 결혼하는가? 결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성숙해지기 위해서(p94)"라고 답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 저자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이처럼 이미 답을 준비해 두고 질문을 던지는 건, 저자가 생각하는 답이 이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도 보입니다. 저자는 일단 결혼은 자녀를 두는 게 보통이며(물론 여러 사유로 자녀가 없을 수도 있고 이것이 비정상이라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적어도 이전의 자신들보다는 더 성숙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자녀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적어도 이전에는 없던 자신의 반려자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성숙해지려고 의식 무의식으로 노력합니다. 심지어 저자는 결혼이란 모든 과정이 다 새로우며 재혼이라고 해도 "한 번 해 봤던 결혼"이 아니라 "처음 해 보는 재혼"이라고 합니다. 정말 명언 아니겠습니까? 억지로 잘하려는 강박이 아니라 처음 걷는 길이라는 겸손으로 조심스레 내딛는 걸음 속에 사람은 적어도 과거의 자신보다 성숙해지는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책에서 이 대목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 성숙이라는 키워드는 책 후반 p140 이하에도 다시 강조됩니다. 


부부싸움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참아지지도 않거니와 억지로 참는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관계가 병드는 선택입니다. 문제는, 나쁜 부부싸움을 나쁜 패턴으로 반복하다가 마침내 관계 자체를 방치하고 포기(p110)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저자의 결론은 그래서 부부싸움에도 룰이 있어야 하며, 시간의 룰, 주제의 룰, 방법의 룰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시간의 룰"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싸움에도 순기능이 있는데 여튼 상대를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는 하게 됩니다. 나쁜 면의 이해라고 해도 말이죠. 


또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올 때에는 보통 내가 아니라 상대 배우자가 문제라고 봐서 상대 배우자를 선생님들한테 상담 시키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말합니다. "남편(혹은 아내)분 말고, 전화 해 주신 본인부터 먼저 상담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럴 때 많은 이들은 대개 반발합니다. "아니 엉뚱하게 나한테 왜?"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 같은 걸 보면 예를 들어 어느 불임 부부가 처음에는 아내 쪽에 원인이 있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무정자증이었다는 것 등이 자주 쓰이는 클리셰입니다. 참 아이러니컬한 게, 철석같이 상대가 문제라고 여긴 바로 그 사람이 문제였다는 게 이상하게도 자주 밝혀진다는 거죠. "먼저 자신을 돌아보자"는 게 이 책에서 자주 강조되는 포인트이며, 여기에 저자는 "두 사람 중 자발성과 동기부여가 강한 쪽이 먼저 앞장서도록 하며, 이런 좋은 성향이 상대에게 번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나쁜 것뿐 아니라 좋은 것도 부부니까 서로 닮기 쉽지 않겠습니까.


"나만 최선을 다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 그러면 듣는 사람은 아 저분이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가 나빴구나 하고 여기기 쉽지만 이걸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면 전혀 아닌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분이 저런 인간 말종을 그만큼이나 참고 견딘 게 용하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하죠.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도 오히려 잘못이 큰 자가 저런 식으로 최선을 다했다니 뭐니 하며 자기 연민,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정말로 문제가 큰 사람은, 까맣게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게 어찌 보면 너무도 신기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잘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기에 상대방보다 먼저 나 자신의 단점을 돌아볼 줄도 아는 것입니다. 단점투성이인 인간은 애초에 반성의 기제가 없습니다. 남도 아니고 내 배우자인데, 잠시만 더 참고 자신을 돌아보는 게 당연한 도리이고, 버럭 화를 내기 전 먼저 내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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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을 알면 노래가 쉽다 - 성악 발성 길잡이
김정현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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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노래를 잘하고 싶으며 특히 연말 회식이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한 곡조 뽑아야 할 일이 잦아지면 더욱 아쉬워지는 게 노래실력입니다. 성악가처럼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다 해도 적정 수준으로만 듣기 좋은 노래가 되어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책은 성악의 기초 원리만 잘 이해하고 자신에게 적용시키기만 해도 실력이 나아진다고 하네요. 


대중가수, 성악가, 뮤지컬 가수 등은 모두 멋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대중 앞에 선다는 점이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이들이 차별되는 걸까요? 책에서는 "공명(共鳴)"에서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p21에는 "돔 모양의 구강 구조"가 그림으로 나옵니다(p77의 그림도 같이 참조하면 좋겠습니다). 즉 사람의 구강을 돔 구장과 같은 구조를 지녔다며 저자는 비유하는 건데, 연주홀도 "그 실내 구조가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진 건 그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p32)" 이 공명을 최대 효과로 내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연주홀 자체가 이처럼 공명을 극대화하게 만들어졌다 해도 정작 연주자인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성악에 맞게 공명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성대를 잘 쓰라는 조언은 요즘 TV 예능 같은 데서 보컬리스트들이 많이 해 주기에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대의 내전근을 잘 써야 하는 건 물론이지만, 몸 전체, 사람이라는 악기를 두루 잘 쓸 줄 알아야 한다(p38)"고 합니다. 


"정지된 물체는 운동 에너지가 제로(p39)" 이 원리는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저자는 상기합니다. 또 베르누이의 원리도 언급하는데 직접 레슨을 받는 게 아닌 이상 이렇게 원리를 책에서 언급해 주는 게 효과적인 듯도 합니다. "압력과 위치 에너지, 운동 에너지의 합은 일정하다(p42)." 이로부터 저자는 공기가 소리의 내전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성대 사이에 공기가 흐를 때 성대는 서로 가까워진다(p44)"고도 합니다. 소리를 낸다는 건 바로 "성대가 진동한다는 뜻이다(p46)." 이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내가 예사로 내는 소리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감이 잡히는 듯도 합니다. 저기서 "내전(adduction)"이라는 말의 뜻은 책 후반부 p172에 보면 아주 자세히 나옵니다(외전도 함께).


물리학에서 모든 현상은 입자 아니면 파동으로 설명됩니다. 이 중 소리는 파동이며, 파동에는 종파와 횡파가 있는데 성악가의 소리는 횡파가 아니라 종파인 점에 유의하라고 합니다(p49). "성악가는 공기를 소리의 매질로 사용한다." 그리고 p54부터 "공명", 즉 이 책의 핵심 주제가 상세히 설명됩니다. "음정을 만드는 건 정확한 진동수, 즉 Hz를 만드는 일이다." "타고난 성대가 짧으면 진동수가 많아져서 고음을 내는 데 유리하다." 중고교에서 배운 물리의 원리가 이처럼 일일이, 좋은 목소리를 내는 방법에 적용되는 과정이 신기합니다. 이 파트의 설명이 무척 자세하고 체계적이어서 물리학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보조 교재로 활용해도 될 듯합니다. 


p66 이하에는 "포먼트"라는 생소한 개념이 나옵니다. "앞 음정의 울림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음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음이 툭툭 끊어지고 노래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들리는 거죠. 제 개인적으론 특히 흑인들이 이런 점에서 뛰어난 듯하더군요. 이 간격이 아주 짧기에, 높낮이가 크게 차이 나는 여러 음을 그처럼 빨리 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앞에서 저자는 성대뿐 아니라 몸 전체를 악기처럼 두루 잘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p80에서는 그 중 하나로 "흉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대의 울림이 저음에서 고음보다 배음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강보다는 흉강과 인두강 등의 울림이 비교적 크게 형성되어야 하는 게 저음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면서 성대를 울리게 해야 하는데 호흡을 일정히 유지하며 점차 비강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노래를 잘하는 건 그저 타고난 줄 알았는데 이처럼 구체적인 원리가 있으니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훈련을 통해 노래 실력을 낫게 하는 게 가능한 거죠. 


"형, 저는 베이스 아리아를 부르면서 저음을 낼 때 왼쪽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아요(p126)." 저자는 각자가 감각적 루틴이 다 다르다고 해도, 근육의 위치와 신경감각의 전달은 서로 비슷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레슨을 하는 분들이 쓰는 말 표현이나 짚어 주는 포인트는 달라도 결국 내고자 하는 효과는 같은 것입니다. 만약 모든 레스너들이 과학적 원리를 이해한다면 전부 이 책과 같은 방식, 같은 표현으로 가르치겠죠.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공명"입니다. 이는, 폐의 구조와 기능을 정확히 알아 가장 (성악에) 효과적인 호흡을 내는 방법과 통합니다. 네 발로 다니는 동물은 흉식 호흡이 어렵고 복식으로만 가능한데, 사람은 둘 다를 할 수 있습니다. 횡격막을 충분히 내려가게 하고, 이로써 복압도 충분히 발생하게 하는 게 노래 잘하는 비결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쓰는(use) 식이 되어야 하며, 억지로 가지고 버티는(hold) 게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p138). 언제나 염두에 두고, 이렇게 해야지 라며 의식해야 할 명제 같습니다. 여튼 복식호흡의 중요성을 인식하던 중 수영을 하며 또다시 복식 호흡의 다른 면을 깨달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수영 하시는 분들은 특히 유념해서 볼 대목 같습니다. 수영 선수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파" 파고 내뱉는 그런 방법으로 횡격막을 충분히 쓰라고 합니다. "쓰다 남은 숨을 버리고 새 숨을 쉬어야 한다(p147)."


이어 p152 이하에는 바른 숨 쉬는 방법이 나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일일이 인용하지 않겠으나, 과연 이렇게 숨을 쉬어야 타인이 듣기에 좋은 소리가 나오며 어쩌면 이게 건강에도 올바른 숨쉬기 방법이지 싶었습니다. 


p164부터 이어지는 3부는 후두 등 목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옵니다. 여기서 저자는 성대를 두고 "쓰지 말고, 쓰이도록 하자"고 합니다. 보통 골프를 칠 때도 그렇고 노래를 할 때도 "힘을 빼라"는 주문을 하는데, 이러려면 "단기간에 뚜렷한 성과를 내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은 이런 문화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노래뿐 아니라) 어디서든 힘을 빼고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소리는 단기간에 멋진 소리를 내려고 지나치게 골몰할 게 아니라, 자신의 소리가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연습을 하면 목이 막히고, 성대가 잘 붙지도 않게" 된다는 거죠. 


"처음 볼륨의 절댓값은 없다. 그런데 마지막 솔 음의 볼륨이 가장 작아야 하는데 이게 많은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된다. 고음에서 날숨의 압력이 강해지고 성대에 강한 압력을 주게 된다. 이러면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p197)." 실제로 제가 소리를 내어 보니 과연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노래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거죠. 또 원리도 모르고 방법도 틀렸으니 개선이 안 되고 더 흥미도 잃게 됩니다. 


p222에는 모음 삼각도가 나오는데 우리가 중3 국어시간 때 배웠던 것과는 가로축으로 대칭이 된 모습입니다. 이탈리아어에 정통한 저자는 일일이 단어의 예를 들며 모음을 바로 내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이처럼 음성학, 호흡법, 인간 신체 구조의 의학적 분석까지 뒤따르는 무척 복잡한 과정입니다. 허나 노래를 잘하고 싶은 절박함이 있다면 이 원리들이 어렵게만 다가오지는 않겠으며 오히려 어떤 이치가 규명되었으니 이대로만 따르면 되겠다며 안도감이 느껴지겠습니다. 고급용지에 인쇄되었으며 컬러 도판이 많은 멋진 구성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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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서 다시 태어나다 - 우리는 정신분석치료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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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지식은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이다(p4)." "언어와 사유라는 문법적 구조를 발명함으로써, 인간은 언어 뒤에 숨어 다양한 의미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pp. 4~5). 몽환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가장 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우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19세기의 사상가 니체를 놓고 저자는 분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작가 윤정님이 니체를 임상의 침대에 눕혀 놓고 요모조모로 분석하며 소통하고 마침내 (아픈 곳이 매우 많았던) 그를 고쳐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아파서 더 매력적이었고 아팠기에 그처럼 놀라운 사유의 결과물을 빚어내었던 니체. 이제 그를 멀끔히 치료해서 "재탄생"시키면 그만의 천재성까지 덩달아 밋밋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만 은근히 우리 평범한 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 줬던 천재의 아픈 상처를 요리조리 뜯어보는 건 그 자체로 뭔가 복수감(?)의 충족이 되는 듯도 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물론 천재의 신들린 필치이기에 황홀하지만 그 행간에서 "그만의 아픈 상처와 약점"을 솜솜 긁어 보는 건 좀 비겁할지는 몰라도 은근히 통쾌합니다. 


만약 정말로 니체가 현대의 정신분석학과 의학이 결합한 영역의 놀라운 발전을 알았다면 과연 자신의 내면이 낱낱이 파헤쳐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까요? 니체는 일단 약게, 교묘한 핑계를 대며 회피할 수도 있고, 아 그렇지 않고 복잡다기한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기에 아직은 그 도구가 미진하다고 판단하여 흔쾌히 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소 불안정하고 충동적이었던 그의 성격을 감안할 때 작가님의 입담에 별 생각 없이 넘어가서 덜컥 응했다가 나중에 가서 큰코다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죠. 여튼 p19에서 니체는 작가님의 제안에 응합니다. 작가님의 분석이 그의 정체를 과연 어디까지 드러낼지도 궁금하고, 이런 리스키한 상담에 (아마 이 기회에 자신의 오랜 병 좀 고쳐 보자는 생각도 있었는지) 대뜸 응한 그의 속셈도 혹시 알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을 듯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p35에서 "피분석가" 니체는 분석가(이 책 저자)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어려서 아버지, 남동생 등이 모두 죽고 여성들만 가득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폴란드 귀족 집안이라서 자부심이 가득했다 등등... 폴란드 귀족들은 본국에서 버림 받고(기층민중과 불화했든, 외세에 의해 축출되었든 간에) 남의 나라에 와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한 듯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할머니, 고모(p38) 등의 다소 억압적인 양육 분위기가 그의 반 기독교적 성향 등에 영향을 끼친 게 크겠죠. p42에서 그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횔더린을 언급합니다. p43에서 분석가는 중요한 말을 하는데 왜 약물 처방 등을 해 주지 않냐는 니체의 질문에 대해 "결국 치료의 주체는 선생님(피분석가)이다"라며, 사는 방식, 말의 구성을 보며 스스로가 문제를 알아차리도록 도와 줄 뿐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윤 정 저자님 같은 분이 현실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 이런 방향성을 갖고 있구나 싶었네요. 


"...역(逆)전이 현상은 아직 없다. 글을 쓰고, 성서의 구절을 읽고, ... 보이지 않는 보편적 흐름에 저항을 느끼며 깊은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횔더린의 시에서... 강렬한 충동을 간직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열망하는 저항의 존재로 나아가려고 한다...(p46)" 


p55에서 "니체"는 다시 질문을 합니다.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묻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분석가는 "인간의 모든 의심은 언어와 의미에 대한 강박적인 자아 기제의 반복입니다... 언어를 선택한 말로 인하여 말도안되는 소리를 믿을 위험마저 있습니다.... 본질에 닿을 수 없는 한계가 있어요... 인간은 결국 언어의 의미에 매달려 부유하는 기생적인 존재이므로 스스로 삶으로 언어의 의미를 버려야 하는 운명의 주체인지도 모르죠." 그리고 "분석가"는 이제 니체를 두고 "주변 분들의 칭찬과 격려를 자기 꿈과 동일시하는 강한 애착은 불안으로 인한 집착으로 보여진다(p59)"는 결론에까지 이릅니다. 역전이 현상의 일단을 관찰하면서 말입니다.


p72에서 니체는 다시 묻습니다. "탈구조, 탈언어란 무엇을 말합니까?" 사실 이 부분은 독자로서도 더 명징하고 더 쉬운 설명이 없을지 궁금했는데 운동성의 강조, 착각, 환상, 자아의 방어적 개념 등을 써서 분석가가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니체의 시대에는 아직 이런 사조가 등장하지 않았겠으므로 그(아무리 천재라 해도) 역시 시대상의 업데이트가 필요하죠. 


"정신분석에서 '부재'란, 소외되고 결여된 모든 삶의 다른 이름이다(p75)." "정신 분석에서 분석 공감이란, 분석가와 피분석가가 똑같이 관찰자가 되고 참여자가 되는 과정의 관계다.(p77)" 분석가는 피분석가 니체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또 분석가가 채택하는 방법론 자체가 매우 공정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분석은 결국, 결국, 어떤 이론의 세심한 적용. 처방이라기보다 특정 도그마의 원색적 표명, 반복으로도 보이며 니체는 마치 실험용 모르모트처럼 분석가의 언표에 무기력하게 굴복당하는 불쌍한 존재로 결국 전락하는 게 아닐지. 


"말을 반복하게 되면 무의식의 억압량이 늘어나게 되고 더 충동적인 반발을 가져오게 되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문명의 관점에서는 정신병적 이상행동으로 분류되어 질병의 이름을 달게 됩니다(p92)" 결국 이런 분석은 니체(의 치료)를 향했다기보다, "향정신성 의약품의 처방"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현실의 풍토에 대한 비판과 개탄이 더 주된 목적인 듯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비극은 이제 디오니소스적인, 혹은 아폴론적인 것도 아닌,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생성적인 대립은 무너지면서 생명력을 잃고 멸망했다는 것이죠.... 새로운 예술은 도덕적 합리화가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힘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하죠. 이런 기대를 걸고 기다렸던 디오니소스적 예술가가 바그너 선생님이라고 믿었습니다.(p107)" 후반부로 갈수록 발언량(자유연상[p206]의)이 늘어나는 니체의 말입니다. 이제 바그너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믿었다는 건데...


"모든 질병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택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p115)" 맞는 말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해당이 안 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처럼도 보입니다. 정신분석학 명제의 가장 취약한 점은, 그 추상성 때문에 먼저 이 말을 꺼내드는 사람의 선제적, 일방적인 언표로 분석 대상에 어떤 부당한 낙인이 찍히고 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의 노예(p119) 역시 노예라서 불쌍하지만, 그래도 어떤 폭력이나 권력의지, 충동의 노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해 이 노예들은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그 멍에를 둘러멘 이들 아닐꺄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그 선율이 무척 아름다운 것처럼 도덕의 노예 역시 헤겔의 표현대로 인륜의 최고 형태인 국가 안에서 제 자리를 겸손되이 찾습니다. 어디 세상에 조악한 위선(p141)만 있겠습니까? 니체 선생님, 울지(p145) 마십시오. 많이 아프신 건 사실인 듯합니다. 


사실 빅바운스(p181)도 시기적으로 니체보다 뒤에 나온 가설인 만큼 그의 영겁회귀사상로부터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니체와 동일한 영감의 원천을 공유할지도 모흡니다. 베르그송이나 데리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동생과 함께 마지막으로 연구소를 찾은 니체는 자신의 아픈 상처를 함께 더듬다 burst into tears하고 마맙니다. 참 불쌍한 모습이네요. 그런데 이미 죽은 니체보다도, 혹 마음이 아프다면 아직 현실을 살아내어야 할 이 시대의 우리들이야말로 이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더듬고 진술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놀랍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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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도 인공지능이다
김명락 지음 / 미문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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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공지능이라는 분야는 요즘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합니다. 의료, 법률, 경영, 교통, 레저... 그런데 저자는 스포츠 여러 영역에 특히 인공지능이 중요한 구실을 하리라고 이 책에서 전망합니다. 그럼 저자는 전문 체육인이거나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분일까 추측할 수 있는데 책날개에 소개된 약력을 보면 스포츠와는 적어도 거리가 꽤 멀어 보입니다. 모 대학 학부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분인데 이 저자분 연배라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소위) 입결이 높았던 때이기도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분야에 종사하려면 면도날 같은 두뇌가 필수일 듯해서 학력과 약력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또 이 저자분 또래 세대가 유독 스포츠에 (야구를 비롯해서) 열광하던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수한 두뇌와 집단 열정의 교차점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게 되더군요. 


<스토브리그> 같은 드라마만 봐도 요즘은 프로 선수들이 "부상 방지"에 늘이는 노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연투에 연투(뿐 아니라 완투까지)를 거듭해 4승을 챙기고 팀에 우승을 안기는 최동원 레전드 같은 말도안되는 혹사는 요즘 세상에 상상도 못합니다.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재일교포 출신 김성길 피처는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너무 혹사당한 끝에 선수생명이 단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떠어떠한 패턴으로 훈련해 온, 혹은 실전에 투입된 선수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부상을 당할 수도 있을지 예측(p27)을 하는 시대입니다. 이를 통해 선수(의 건강과 능력치)를 최대한 보호하고, 혹은 연봉 협상에 중요한 참고 자료를 쓰는 등의 용도를 생각할 수 있겠죠. 물론 전자가 최우선이지만. 


또 야구의 경우 통계가 정말 다각도로 활용되는데 요즘은 각 팀의 전력 분석원들(p27)이 타자의 타구 방향을 분석하여 수비 위치를 이동시키는 전술 수립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인공 지능이 적용된다면 정말 놀라운 결과가 나올 만합니다. 미국에서는 경기 진행 스피드 촉진 등의 이유로 시프트를 금지할 것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리는데 여튼 어떤 종목보다 야구는 인공지능 등 통계의 체계적인 활용이 기대되는 종목입니다. 


책날개에는 스스로를 "부족한 운동신경과 형편 없는 체력"으로 소개하지만 p45을 보면 학사장교 출신임이 나옵니다. 한국 남성 평균 체력과 신체 능력을 넉넉히 상회하지 않으면 장교 생활을 감당할 수 없죠. 아무튼 청년 시절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틈날 때마다 야구 시합에 몸소 참여하고 싶어했던 저자는 자신처럼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취미삼아 운동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전문가에 레슨보다 더 큰 도움이 되고 더 저렴한 비용으로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게 바로 AI라고 말합니다. 


마음으로는 하고 싶어도 막상 해 보면 전혀 적성이 발견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이 남거나 할 때 인공지능은 당사자에게 여러 테스트를 시켜 보고 그에게 가장 맞는(혹은, 가장 맞지 않는) 종목을 정해 줄 수 있습니다(p60). 야구로 만약 정해지면 그에게 가장 잘 맞는 포지션이 무엇인지도 인공지능이 추천해 주는데 팀에서 그냥 목소리 큰 순서대로 위치를 정하거나 주먹구구로 선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도 부상의 위험을 최소로 줄이는 게 가능합니다. 


사회인 스포츠를 우습게 볼 수 있으나 직장에서 생각보다 낮은 만족, 직위 등으로 인해 자존감이 크게 낮아진 이들에게는 자신의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종목을 골라 부상 위험 없이 체계적으로 운동에 몰두함으로써 일종의 힐링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회인뿐 아니라 젊은 혈기를 주체못해 맨날 사고나 치던 틴에이저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을 골라 한우물을 파게 되면 이는 한 인생에 대한 멋진 구제 방법이 됩니다. 엘리트 스포츠건 생활체육이건 가리지 않고, 인공지능은 모두에게 예상치 못한 큰 규모의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셈입니다. 


요즘은 야구에서 이른바 클래식 스탯 외에 WAR, WPA 등 다양한 통계 지표를 활용해서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며, 케이블 스포츠 채널에서도 OO톱OO 등 여러 단일지표를 개발해 내어서 투수와 야수를 통합하여 순위를 매기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EOPS라는 지표를 소개하는데(p84) 이는 주로 야수로서의 능력치를 계산하는 방식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인 야구는 수비수의 실책이 잦고 포수는 도루하는 주자를 거의 잡아내지 못합니다. 책에는 또 스낫 상황에서 포수가 포구 미숙이나 1루 송구 능력 부족으로 타자를 출루시키는 일이 잦은데 이럴 경우를 상정해서 E-출루율이 사회인 야수 능력치를 재는 데 보다 적합(p85)하다고 합니다. 또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객관적으로 체크할 수 있어서 뜻밖의 탄핵(?)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경영의 영역으로 옮아가면, p110에 그 구체적인 적용례가 나옵니다. 특정 선수에 주목하여 어떤 기업이 장단기 스폰서십을 체결하고자 하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삼성그룹도 1990년대에 테니스의 전미라, 골프의 박세리 등 유망주를 조기 발굴하여 장기 후원을 시도한 적 있습니다. 책에서는 NBA 스테픈 커리의 예를 들며 이 선수가 아직 어린 나이였을 때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선수로 성장할지 인공지능 예측을 시도할 수 있다는 에피소드를 전달합니다. 또 이건 독자로서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선수로서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장래 대스타가 되었을 때 그의 이미지 방향성과 기업 자체의 지향점, 비전이 서로 얼마나 잘 맞을지에 대한 예측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또 선수가 광고에 출연했을 때 가장 잘 맞을 분야를 미리 예측하여 괜한 실패 광고에 출연해 선수 이미지를 괜히 소진하지 않게 방지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자는 p185에서 "과거 3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공간과 역량 부족으로, 예컨대 100개의 데이터가 있으면 이 중 10개의 정보(인포메이션)와 90개의 비(非) 정보 데이터로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서는 이 100개를 모두 데이터 상태로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 잘 보존된 데이터는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준을 통해 제련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지난시대의 IT가 아닌, 보다 진화된 DT, 즉 데이터 테크놀로지로서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IT와 DT의 차이, 잘 알아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격변하는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일단 컴퓨터 언어 몇 개를 잘 배워 두어 코딩 능력을 향상시킬 필요(p197)가 있습니다. 또 클라우드 기술에 익숙해져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접근하고 가공하는 쪽으로 항상 관심을 유지하며 또 업무에도 활용해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그저 컴퓨터공학의 한 분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신경과학, 경제학, 심리학, 언어학 등이 두루 만나는(p205) 학제적 영역인 만큼, 정말 큰 야심이 있다면 다방면에 두루 관심을 두고 천착할 필요도 있습니다. 


한국은 알고보면 올림픽 종합 순위 10위권 안에 꾸준히 드는 편이며 국내 프로 스포츠 시장의 규모도 매우 큽니다. 그런 만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이 스포츠 시장에서 새로운 입지를 마련할, 이른바 창업의 여지가 생각보다는 넓은 편이라고 저자는 귀띔합니다. 스포츠와 동시에 첨단 발전 학문 분야에 두루 주의가 쏠리는 젊은이라면 꿈을 크게 가지고 도전할 만한 비전이 있다고나 할까요. 진정한 적성은 생각지도 않은 계기에 뜻밖의 방향으로 발견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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