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환상이고 부부는 현실이다 - 부부상담사가 말하는 슬기로운 결혼생활
공진수 지음 / 마음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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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아무 계산 없이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드는 젊은 남녀의 감정입니다. 이처럼 숭고한 관계이고 시간이지만 감정에 치우지기 쉽기 때문에 상대방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서서히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때부터 현실의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물론 어떤 난관이 있어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이 모든 게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현실, 부부 생활이라는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대화는 몇 번이나 있어야 할까?(p64) 책에는 놀랍게도 일주일에 한 시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부부가 많다는 통계가 소개됩니다. 일주일에 서너 시간이 보통이라면 하루에 30분입니다. 이 대화에 일 관련 말고도 "성적인 부분"이 조금 추가되기까지 하면 행복감이 가장 높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30분! 어떻게 부부인데 그 정도밖에 대화가 없을까 싶지만 그 정도 시간만 확보되어도 매우 바람직하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매일 조금씩"을 권합니다. 하긴 다이어트 상식 중에도 매번 소식하고 끼니에 과식하지 말라는 게 있죠.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p67)." 사랑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만나 맺어진 사이조차도 그걸 가꿔 나가는 데 이처럼 많은 노력이 든다는 게...


"많은 문제가 결혼 전에 드러난다. 관계가 점점 깊어지면 다양한 문제를 무의식 중에 노출하게 마련이다(p38)." 그래서 요즘은 충격적이고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많이 터집니다. 결혼 며칠 전에 혼수 문제를 놓고 파혼이 일어난다거나, 혹은 상대방의 과거에 대한 충격적인 팩트를 비로소 접하고 참사가 빚어진다거나 하는 일 말입니다. 신혼여행 중 비로소 상대에 결정적으로 실망하는 일이 생겨 도중에 이혼했다거나 하는 건 좀 지난 세대에 있었던 패턴인 듯하기도 하고요. 결혼 날짜가 임박하면 안 드러나던 게, 안 보이던 게 슬슬 나타나는 거죠. 착시현상, 확증 편향, 책임 전가... 결혼을 앞둔 이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혼 사유로 가장 빈도가 높게 표시되는 게 "성격 차이"라고 합니다. 성격 차이라니... 그런 막연한 범주에 가장 많은 사례가 포섭되는 게 통계 분류의 무책임함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많은 부부들이 그 이유로 관계 파탄을 설명하고 싶어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겠죠. 저자는 말합니다. 성격 차이 때무에 헤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이게 뭔지를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망 탓이라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가난에 사무친 이라면 부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며, 정서 결핍이 심한 사람은 그 보상에 대한 욕망이 강한데, 상대방이 그걸 채워주리라는 기대가 이미 일방적인 것이다.(pp. 17~19)" 


또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헤어지는 이들은 보통 '만남부터가 잘못되었다'고들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은 비장하고 거창하지만 사실 만남부터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일방적인 기대를 그 상대방한테 건 것부터가 잘못된 걸 무슨 운명이 자신을 잘못 이끌기라도 했다는 듯 저리 남탓하며 표현하는 거죠. 다시 만나지만 만남이 잘못된 게 아니라 상대한테 자신도 모르는 무엇을 엄청나게 기대한 게 잘못이었던 겁니다. 그 사람한테 자신의 기대 같은 걸 그리 엄청나게 투영하면 안 되는 거였죠. 


"당신은 민감한 것 같아." "당신은 예민한 것 같아." 이 두 문장, 표현은 비슷한 듯해도 전혀 다른 말이라고 저자는 지적(p56)합니다.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적 느낌을 풍긴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앞의 말은 니가 이걸 민감해하는 걸 내가 캐치했으니 앞으로 배려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고, 후자는 니가 무슨 이 점에 열등감 같은 게 있어서, 다른 사람이면 예사로 넘기는 걸 너 혼자 유난떤다는 비난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표현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어서 어떤 사람은 전자의 표현을 비난의 뜻으로도 쓰고, 후자의 표현을 걱정스러워 하는 뜻으로도 쓸 겁니다. 표정 등 부대적인 넌 버벌 익스프레션도 감안해야 하고 발화의 맥락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나야 나쁜 의도가 없었다 해도 내 언어 패턴에 문제가 있어서 상대가 오해하는 건 아닌지 "먼저 자신을 좀 돌아보자"고 합니다. 내가 사전에 조금만 조심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결과는 거의 다 피해갈 수 있습니다. "예방이 치료보다 더 효과적이다(p172)."


자존감은 나 자신도 높게 간직해야 하지만, 나의 배우자도 높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낮으면 그 역시 관계에 위험을 끼칩니다. 화를 자주 낸다, 감정 조절을 못한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존감이 낮아서 이러는데 더 큰 문제는 배우자 역시 이런 상대방의 성향을 점차 닮아간다는 겁니다. 저자는 이것을 "하향평준화"라고 정리합니다(p82). 이때 어떤 결과가 나오냐면 서로 자존감이 낮아서 싸움이 피해지는 게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작은 것에도 서로 예민해하며 과잉반응하다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큰 싸움이 매번 벌어진다는 거죠. 더 나쁜 건, 이런 부모 밑의 자녀조차도 덩달아 자존감이 낮아지는 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어디 가서 자신을 낮추고 사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걸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아예 다른 개념이니 말입니다.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정겹게 들릴 수도, 또 개인보다는 부모의 의무를 우선시한다는 의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비인격화(p89)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호칭의 비인격화가 진척되면, 예를 들어 "쟤, 저 사람" 등로까지 번지면 이미 비인격화를 넘어 하대로까지 이어집니다. 적절한 호칭을 평소에 사용하면 나중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불필요한 오해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왜 결혼하는가? 결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성숙해지기 위해서(p94)"라고 답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 저자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이처럼 이미 답을 준비해 두고 질문을 던지는 건, 저자가 생각하는 답이 이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도 보입니다. 저자는 일단 결혼은 자녀를 두는 게 보통이며(물론 여러 사유로 자녀가 없을 수도 있고 이것이 비정상이라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적어도 이전의 자신들보다는 더 성숙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자녀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적어도 이전에는 없던 자신의 반려자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성숙해지려고 의식 무의식으로 노력합니다. 심지어 저자는 결혼이란 모든 과정이 다 새로우며 재혼이라고 해도 "한 번 해 봤던 결혼"이 아니라 "처음 해 보는 재혼"이라고 합니다. 정말 명언 아니겠습니까? 억지로 잘하려는 강박이 아니라 처음 걷는 길이라는 겸손으로 조심스레 내딛는 걸음 속에 사람은 적어도 과거의 자신보다 성숙해지는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책에서 이 대목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 성숙이라는 키워드는 책 후반 p140 이하에도 다시 강조됩니다. 


부부싸움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참아지지도 않거니와 억지로 참는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관계가 병드는 선택입니다. 문제는, 나쁜 부부싸움을 나쁜 패턴으로 반복하다가 마침내 관계 자체를 방치하고 포기(p110)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저자의 결론은 그래서 부부싸움에도 룰이 있어야 하며, 시간의 룰, 주제의 룰, 방법의 룰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시간의 룰"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싸움에도 순기능이 있는데 여튼 상대를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는 하게 됩니다. 나쁜 면의 이해라고 해도 말이죠. 


또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올 때에는 보통 내가 아니라 상대 배우자가 문제라고 봐서 상대 배우자를 선생님들한테 상담 시키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말합니다. "남편(혹은 아내)분 말고, 전화 해 주신 본인부터 먼저 상담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럴 때 많은 이들은 대개 반발합니다. "아니 엉뚱하게 나한테 왜?"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 같은 걸 보면 예를 들어 어느 불임 부부가 처음에는 아내 쪽에 원인이 있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무정자증이었다는 것 등이 자주 쓰이는 클리셰입니다. 참 아이러니컬한 게, 철석같이 상대가 문제라고 여긴 바로 그 사람이 문제였다는 게 이상하게도 자주 밝혀진다는 거죠. "먼저 자신을 돌아보자"는 게 이 책에서 자주 강조되는 포인트이며, 여기에 저자는 "두 사람 중 자발성과 동기부여가 강한 쪽이 먼저 앞장서도록 하며, 이런 좋은 성향이 상대에게 번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나쁜 것뿐 아니라 좋은 것도 부부니까 서로 닮기 쉽지 않겠습니까.


"나만 최선을 다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 그러면 듣는 사람은 아 저분이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가 나빴구나 하고 여기기 쉽지만 이걸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면 전혀 아닌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분이 저런 인간 말종을 그만큼이나 참고 견딘 게 용하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하죠.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도 오히려 잘못이 큰 자가 저런 식으로 최선을 다했다니 뭐니 하며 자기 연민,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정말로 문제가 큰 사람은, 까맣게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게 어찌 보면 너무도 신기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잘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기에 상대방보다 먼저 나 자신의 단점을 돌아볼 줄도 아는 것입니다. 단점투성이인 인간은 애초에 반성의 기제가 없습니다. 남도 아니고 내 배우자인데, 잠시만 더 참고 자신을 돌아보는 게 당연한 도리이고, 버럭 화를 내기 전 먼저 내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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