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서 다시 태어나다 - 우리는 정신분석치료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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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지식은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이다(p4)." "언어와 사유라는 문법적 구조를 발명함으로써, 인간은 언어 뒤에 숨어 다양한 의미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pp. 4~5). 몽환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가장 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우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19세기의 사상가 니체를 놓고 저자는 분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작가 윤정님이 니체를 임상의 침대에 눕혀 놓고 요모조모로 분석하며 소통하고 마침내 (아픈 곳이 매우 많았던) 그를 고쳐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아파서 더 매력적이었고 아팠기에 그처럼 놀라운 사유의 결과물을 빚어내었던 니체. 이제 그를 멀끔히 치료해서 "재탄생"시키면 그만의 천재성까지 덩달아 밋밋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만 은근히 우리 평범한 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 줬던 천재의 아픈 상처를 요리조리 뜯어보는 건 그 자체로 뭔가 복수감(?)의 충족이 되는 듯도 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물론 천재의 신들린 필치이기에 황홀하지만 그 행간에서 "그만의 아픈 상처와 약점"을 솜솜 긁어 보는 건 좀 비겁할지는 몰라도 은근히 통쾌합니다. 


만약 정말로 니체가 현대의 정신분석학과 의학이 결합한 영역의 놀라운 발전을 알았다면 과연 자신의 내면이 낱낱이 파헤쳐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까요? 니체는 일단 약게, 교묘한 핑계를 대며 회피할 수도 있고, 아 그렇지 않고 복잡다기한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기에 아직은 그 도구가 미진하다고 판단하여 흔쾌히 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소 불안정하고 충동적이었던 그의 성격을 감안할 때 작가님의 입담에 별 생각 없이 넘어가서 덜컥 응했다가 나중에 가서 큰코다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죠. 여튼 p19에서 니체는 작가님의 제안에 응합니다. 작가님의 분석이 그의 정체를 과연 어디까지 드러낼지도 궁금하고, 이런 리스키한 상담에 (아마 이 기회에 자신의 오랜 병 좀 고쳐 보자는 생각도 있었는지) 대뜸 응한 그의 속셈도 혹시 알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을 듯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p35에서 "피분석가" 니체는 분석가(이 책 저자)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어려서 아버지, 남동생 등이 모두 죽고 여성들만 가득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폴란드 귀족 집안이라서 자부심이 가득했다 등등... 폴란드 귀족들은 본국에서 버림 받고(기층민중과 불화했든, 외세에 의해 축출되었든 간에) 남의 나라에 와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한 듯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할머니, 고모(p38) 등의 다소 억압적인 양육 분위기가 그의 반 기독교적 성향 등에 영향을 끼친 게 크겠죠. p42에서 그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횔더린을 언급합니다. p43에서 분석가는 중요한 말을 하는데 왜 약물 처방 등을 해 주지 않냐는 니체의 질문에 대해 "결국 치료의 주체는 선생님(피분석가)이다"라며, 사는 방식, 말의 구성을 보며 스스로가 문제를 알아차리도록 도와 줄 뿐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윤 정 저자님 같은 분이 현실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 이런 방향성을 갖고 있구나 싶었네요. 


"...역(逆)전이 현상은 아직 없다. 글을 쓰고, 성서의 구절을 읽고, ... 보이지 않는 보편적 흐름에 저항을 느끼며 깊은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횔더린의 시에서... 강렬한 충동을 간직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열망하는 저항의 존재로 나아가려고 한다...(p46)" 


p55에서 "니체"는 다시 질문을 합니다.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묻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분석가는 "인간의 모든 의심은 언어와 의미에 대한 강박적인 자아 기제의 반복입니다... 언어를 선택한 말로 인하여 말도안되는 소리를 믿을 위험마저 있습니다.... 본질에 닿을 수 없는 한계가 있어요... 인간은 결국 언어의 의미에 매달려 부유하는 기생적인 존재이므로 스스로 삶으로 언어의 의미를 버려야 하는 운명의 주체인지도 모르죠." 그리고 "분석가"는 이제 니체를 두고 "주변 분들의 칭찬과 격려를 자기 꿈과 동일시하는 강한 애착은 불안으로 인한 집착으로 보여진다(p59)"는 결론에까지 이릅니다. 역전이 현상의 일단을 관찰하면서 말입니다.


p72에서 니체는 다시 묻습니다. "탈구조, 탈언어란 무엇을 말합니까?" 사실 이 부분은 독자로서도 더 명징하고 더 쉬운 설명이 없을지 궁금했는데 운동성의 강조, 착각, 환상, 자아의 방어적 개념 등을 써서 분석가가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니체의 시대에는 아직 이런 사조가 등장하지 않았겠으므로 그(아무리 천재라 해도) 역시 시대상의 업데이트가 필요하죠. 


"정신분석에서 '부재'란, 소외되고 결여된 모든 삶의 다른 이름이다(p75)." "정신 분석에서 분석 공감이란, 분석가와 피분석가가 똑같이 관찰자가 되고 참여자가 되는 과정의 관계다.(p77)" 분석가는 피분석가 니체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또 분석가가 채택하는 방법론 자체가 매우 공정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분석은 결국, 결국, 어떤 이론의 세심한 적용. 처방이라기보다 특정 도그마의 원색적 표명, 반복으로도 보이며 니체는 마치 실험용 모르모트처럼 분석가의 언표에 무기력하게 굴복당하는 불쌍한 존재로 결국 전락하는 게 아닐지. 


"말을 반복하게 되면 무의식의 억압량이 늘어나게 되고 더 충동적인 반발을 가져오게 되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문명의 관점에서는 정신병적 이상행동으로 분류되어 질병의 이름을 달게 됩니다(p92)" 결국 이런 분석은 니체(의 치료)를 향했다기보다, "향정신성 의약품의 처방"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현실의 풍토에 대한 비판과 개탄이 더 주된 목적인 듯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비극은 이제 디오니소스적인, 혹은 아폴론적인 것도 아닌,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생성적인 대립은 무너지면서 생명력을 잃고 멸망했다는 것이죠.... 새로운 예술은 도덕적 합리화가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힘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하죠. 이런 기대를 걸고 기다렸던 디오니소스적 예술가가 바그너 선생님이라고 믿었습니다.(p107)" 후반부로 갈수록 발언량(자유연상[p206]의)이 늘어나는 니체의 말입니다. 이제 바그너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믿었다는 건데...


"모든 질병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택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p115)" 맞는 말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해당이 안 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처럼도 보입니다. 정신분석학 명제의 가장 취약한 점은, 그 추상성 때문에 먼저 이 말을 꺼내드는 사람의 선제적, 일방적인 언표로 분석 대상에 어떤 부당한 낙인이 찍히고 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의 노예(p119) 역시 노예라서 불쌍하지만, 그래도 어떤 폭력이나 권력의지, 충동의 노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해 이 노예들은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그 멍에를 둘러멘 이들 아닐꺄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그 선율이 무척 아름다운 것처럼 도덕의 노예 역시 헤겔의 표현대로 인륜의 최고 형태인 국가 안에서 제 자리를 겸손되이 찾습니다. 어디 세상에 조악한 위선(p141)만 있겠습니까? 니체 선생님, 울지(p145) 마십시오. 많이 아프신 건 사실인 듯합니다. 


사실 빅바운스(p181)도 시기적으로 니체보다 뒤에 나온 가설인 만큼 그의 영겁회귀사상로부터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니체와 동일한 영감의 원천을 공유할지도 모흡니다. 베르그송이나 데리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동생과 함께 마지막으로 연구소를 찾은 니체는 자신의 아픈 상처를 함께 더듬다 burst into tears하고 마맙니다. 참 불쌍한 모습이네요. 그런데 이미 죽은 니체보다도, 혹 마음이 아프다면 아직 현실을 살아내어야 할 이 시대의 우리들이야말로 이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더듬고 진술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놀랍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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