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셰프 서유구의 식초 음식 이야기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8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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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저술 <임원경제지> "정조지" 중 주로 "미료지류"에서 갖가지 흥미로운 레시피를 분석, 연구하여 21세기 한국인들이 일상에까지 응용할 수 있게 만든 시리즈 여덟번째 권입니다. 식초는 요즘 체내 해독에 유익하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같은 입소문이 나서 많이들 섭취합니다. 책에서는 "희석해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삼시세끼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방법(p10)"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식초 자체가 아니라 "식초 음식"을 소개하되, "다른 식재료와 조화를 이루면서 식초 맛이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는 음식"들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우리가 식초 음식을 멀리하는 건 "(애초에) 식초 음식 가짓수가 적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식초 음식을 멀리해서 가짓수가 적어진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거죠. 실학자 서유구 선생이 당대의 식초 음식 조리법을 이처럼이나 많이 정리해 두었다는 건 조선 후기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많은 가짓수의 식초 음식을 즐겨 먹었다는 건데,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일제 강점의 영향이라든지, 급격한 현대화 와중 일시 망각했다든지[p9]) 전통이 단절되었던 바 있었고, 이렇게 옛 연구서를 통해 오늘에 복원하는 노력이 따로 필요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물론 우리가 즐겨 먹는 반찬에 식초가 끼는 경우는 상당히 많습니다만 책에서 강조하는 건 그런 음식에 식초의 효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식초는 이 책에서도 확인 가능하듯이 본디 용도가 매우 넓은 식재료이며 심지어 가격조차 싸다는 장점이 있다고 나옵니다. "미료지류"에서의 "미료"는 오늘날 우리가 "조미료"라고 할 때의 그 "미료"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잘 복원한 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식초는 조미료 그 훨씬 이상의 것입니다. 


p61에는 우리가 즐겨먹는 "육회"의 일종인 "육생방"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고기를 잘게 자른 건 회(膾)라고 하는데, 이 잘게 썬 걸 다시 모은 것은 회(會)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고기와 향신채를 참기름으로 잘 섞은 다음", 여기에 식초를 뿌려 먹는다고 합니다. 또 "익힌 고기도 생고기의 신선한 느낌을 갖게 하는 건 식초 덕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p7로 잠시 돌아가 보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냉장고가 상용화되기 이전 세대들은 온몸을 강타할 정도로 강렬한 신맛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냉장고가 상용화되기 전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래 전일까요. 냉장고를 넘어 김치 냉장고라는 것이 이제 가정마다 보급이 될 만큼인 지금도 대량으로 김장김치를 담가 먹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그런 강렬한 신맛은 주로 신김치의 그것을 말합니다. 여튼 p61의 육생방은 "일반적인 육회의 통념을 깨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배워야(=타 음식에 응용해야) 할 것은 식초의 활용법이라고도 합니다. 


"여러 유생들은 고기를 움켜 먹을 뿐 개장(芥醬)이 있는 줄 알지 못하였고 나 홀로 개장에 찍어 반 그릇을 먹었는데 맛이 매우 좋았을 뿐더러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하였다.(p70)" 이 대목은 문간공의 임원경제지에 나오는 게 아니라 비슷한 또래였던 학자 이옥의 글 <백운필>에서 저자가 인용한 것입니다. 학자가 저런 경험을 솔직하게, 감정을 넣어 가며 기록으로 남긴 것도 재미있지만 어떤 맛이었기에 저처럼이나 당시의 기분을 절실히 표현했나 싶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옥의 저 책은 이미 우리말로 완역이 되어 있고, 저자가 문간공의 글뿐 아니라 이런 책에서까지 다양하게 인용하며 또 주제에 맞게 정리한 걸 보면 그 성의와 노고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여튼 여기서의 "개장"은 겨자장의 다른 말이며 芥라는 글자도 그 뜻이 "겨자"입니다. 육개장과는 아무 관계 없습니다. 


식초는 그저 첨가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p77의 과시방 같은 음식 속에서 그렇습니다. "삼복과 초가을 사이의 늙은 채과를 사용해야 소금과 식초, 그리고 햇볕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되어 아삭거리는 맛이 만들어진다." 늙은채과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며, 햇볕과 식초가 가해진 후에야 "아삭거리던 식감이 (이제는) 아작거리고" 비로소 꽉 찬 맛이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표현이 기막힙니다. 그러니 이게 문간공의 저작 복원 정도가 아니라 저자가 완전히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죠. 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런 형용이 가능해지는지. "채과"가 뭔지도 몰랐는데 과일 자체로는 맛이 없어 주로 장아찌로 담가 먹는다고 각주에 나옵니다. 레시피가 일정 수 소개되고 나면 정조지의 해당 대목이 한문 원문과 함께 소개되기에 한문 공부하려는 분들에게도 좋겠습니다. 참고로 마늘 녹변을 해결하는 방법이 p102에 나오니 익히면 좋겠습니다. 또 p193에는 난황장아찌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임란 즈음에 고추가 들어와 이후 김치의 매운맛을 전담했다고만 알지만 그전에도 김치 매운 맛을 내는 재료는 따로 있었는데 산초, 천초 등이 그것이라고 합니다(p37). 책에서는 서호수, 허균 등의 저작에서 이미 이런 언급이 나온다고 하며 이런 산초류는 약재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p108에는 동아, 혹은 동과라고도 부르는 채소의 사진이 나옵니다. 사진만으로 봐서는 이것이 박의 일종인 채소인지 아니면 수석 비슷한 것인지도 잘 분간이 안 됩니다만 저자는 "에머랄드와 옥빛의 중간 즈음에 흰 가루분을 살짝 칠한 듯하다"거나 "늦가을처럼 청아하고 맑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표현을 듣고 나서 보니 그런 듯도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박은 긴 줄기를 타고 자랍니다만 "동아줄"과는 무관합니다. 여튼 이 동아로 만든 선(膳)이 이 동아선이겠는데, 이 레시피는 그 출전이 임원경제지가 아니라 음식디미방과 규합총서로부터 소개됩니다. 두 문헌에서 제공하는 방법이 각각 달라 더 흥미롭습니다. "디미방"이라고 할 때의 "디"는 한자 知(지)를 그 당시 음대로 읽은 것입니다. 


부각과 튀각은 중국식이라기보다 마른 음식을 튀긴다는 점에서 한국식이라고 합니다(p122). "170도 정도의 고온 기름에 넣어 부풀어오른다 싶을 때 바로 건져내는 게 포인트라고 하니 잘 알아 두어야겠다 싶었습니다. 튀각을 제삿상에도 올린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이인좌의 난 당시 추포된 신치운이 "갑진년 이후 게장을 먹은 바 없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지만, 책에서는 규합총서의 기록을 인용하며 "한식에서 게장이란, 정말 각별한 위상"이라 평합니다(p125). 그런가하면 "육류나 생선을 중탕할 때 식초를 넣으면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고 영양성분이 쉽게 용출되므로 맛과 풍미를 함께 갖춘다(p133)"고도 합니다. 


식초가 관여하는 음식의 종류가 이처럼 많은 줄 몰랐으며 가히 식초의 관점에서 다시 본 온갖 일품 요리의 향연이라 할 만합니다. 압도적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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