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1927
송해.이기남 지음 / 사람의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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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영화가 곧 나온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영화의 tie-in 컨텐츠인 셈인데, 어느 예인이 오랜 동안 이처럼 장수를 누리는 사실도 놀랍지만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점도 정말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황금 시대의 한 주역이었던 원로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백 세를 넘겨 장수한 적이 있죠.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송해 선생께서도 부디 오래 사시고 계속 활동해 주셨으면 하는 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의 바람이겠습니다. 


예전 연예인분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겠거니 하는 선입견이 있지만 송 선생께서는 해주 음악 전문학교(p14)를 나오셨다고 합니다. 고향은 해주이며 임꺽정으로도 유명한 구월산을 언급합니다(그런데 저 뒤 p247에는 재령이라고 되어 있네요). 지금은 북한 지배 지역이라 우리가 당연히 왕래 못 하지만 사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실향민 중에서도 이처럼 경기도 북부, 강원도 북부, 황해도 출신 분들은 고향을 못 찾는 아쉬움, 답답함이 더욱 클 것입니다. 송 선생의 연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제는 실향민 1세대들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송 선생은 고령이신데도 참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 기력이 좋으니 아직도 현역을 뛰시는 거죠. 인터뷰에서 한국전 당시 LST를 타고 피난 오던 당시의 회고를 하는데 아주 상세합니다. 이때가 1950년 12월이므로 교전 당사국들이 한반도에 거의 다 들어와 있을 때라 혼란상도 극심했고 1.4 후퇴 직전이니 그 결단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겠습니다. 이때만 해도 느닷없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과연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겠죠. 


p50에 재미있는 사항이 하나 나오는데 인터뷰어인 윤재호 영화감독이 종교에 대해 묻자 송 선생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상 종교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송 선생은 어떻게 보면 지금도 행사 MC를 뛰시는 셈인데 행사라는 게 성격상 여러 곳을 다녀야 하죠(물론 <전국노래자랑>은 그런 행사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지상파 방영 프로그램의 위상입니다만). 젊은 시절부터 송 선생은 희극 공연도 하고 많은 행사에 사회를 보셨는데 종교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안 되었겠죠. 


1970년대 후반 아직 TBC가 있었을 때 송 선생은 레코드판도 직접 올리면서 라디오 DJ를 했다고 합니다. <가로수를 누비며>라는 프로그램은 방송국 이름만 바뀌었다뿐 지금도 있죠 아마. p60을 보면 위키리, 이상용 씨 등이 언급되는데 원래 이분들이 전국노래자랑 MC를 먼저 했었으며 특히 가수 위키리(이한필)씨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진행했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은 이분을 먼저 떠올리기도 합니다. 송 선생에 대해서는 MC보다는 KBS 코미디언으로 더 잘 기억하고들 있죠. 이한필씨는 송 선생보다 9살 아래인데도 벌써 타계해서 팬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p65에는 양훈 양석천 명콤비, 김희갑, 배삼룡, 구봉서 등 쟁쟁한 원로 희극인들이 언급됩니다. 


윤재호 감독이 인터뷰어라서 더 두드러지는 점이기도 한데 송 선생 세대 희극인들은 영화를 참 많이 찍었습니다. 아마 당시 정부 차원에서 국산 컨텐츠 진흥책을 편 까닭도 있겠는데 여튼 1960년대에는 흑백 컬러 할 것 없이 코미디언들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참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신성일 김진규 최무룡 등의 정극배우들도 엄청난 다작을 했지만요.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희극인들도 그들이 메인이 되어 제작되는 영화가 (어떤 컨셉이든 간에) 거의 없는 걸 보면 크게 다른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p73 이하에는 두 번째 인터뷰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원로 희극인 방일수, 원일씨가 인터뷰이, 이기남 PD가 인터뷰어입니다. 방일수씨도 송 선생보다는 후배지만 KBS 등의 전통 코미디 프로그램에 같이 나오던 분이었다고 하죠. 원일 씨는 방일수 씨 등 원로 코미디언들이 "개그맨"이란 말을 불편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세대 갈등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아주 민감한 이슈입니다. p84를 보면 방일수씨가 1980년대 후반 코미디 프로그램을 회상하는데 이때쯤이면 송 선생, 방일수 씨 등이 지상파에 거의 못 나올 때입니다. 희극인의 세대교체, 프로그램 포맷의 극적인 변화 때문이었죠. 그런데도 방일수 씨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당시 프로그램에 대해 아주 상세히, 또 애정 어린 투로 회고합니다. 자신들을 다소 배척하는 기미까지 보였던 후배들이 만든 개그 프로그램에 대해 그 의의와 당시 반응을 정확히 회상하며 높이 평가해 줍니다. 저는 책 읽으면서 이 점이 놀라웠습니다. 


p86에는 흑백사진 하나가 나오는데 당대 최고의 MC, 희극인이었던 예명 "후라이보이" 곽규석씨, 이순주씨(이분에 대해서는 책 뒤 p289에 자세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송 선생이 함께 찍힌 쇼 프로그램 스틸입니다. 전성기 기준으로는 송 선생의 위상이 곽규석씨에 비해 한창 못했겠으나 곽규석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요즘 한국의 생활수준, 소득이 훨씬 높아졌으므로 커리어 토탈하여 수입을 비교하면 아마 송 선생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재능은 노력을 못 따라간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확인되죠.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p155 이하에는 송 선생의 따님 인터뷰가 나오는데 부친에 대해 "자기 관리가 치밀하고 굉장히 강한 분"이라는 평을 하십니다. 마당이 있고 수영장에 물을 채우던 아빠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보아 유복하게 자라신 듯합니다. 사실 송 선생의 동년배나 선배 다른 연예인들은 아무리 고소득을 올려도 사업 실패, 사기 피해, 불미스러운 범죄 연루(사기 가해, 간통) 등으로 무대에서 퇴출되거나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송 선생은 그런 점에서도 차별이 되죠. 엄격한 자기 관리는 사회인으로서 최상의 자질이자 덕목입니다. "강한 분"이란 평은 p235의 신재호 악단장의 평가에도 나옵니다. 


사실 개그맨은 콩글리시이기도 하며 선배 세대들이 내세운 "코미디언"이 훨씬 공인을 널리 받은 어휘죠.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개그맨 1세대 중 하나인 김학래씨가 p112에서 합니다. 또 엄영수 씨는 이제 둘 다 코미디언 협회로 통일되었다고도 합니다. 엄영수 씨는 나이 든 세대가 성함을 "엄용수"로 기억할 텐데 최근에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안정적인 톤으로 속사포 개그를 하는, 그 분야에서는 최고였다고들 하죠. 이렇게 말재주가 좋으시니 (단신이면서도) 여성들한테 인기가 좋으셨나 봅니다. 심지어는 지금도. 


"코미디언 중에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대중을 사로잡거나 하는 분이 있는데 송해 선생님은 꾸준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정상에 섰고 노익장까지 과시하며 이제는 국민 영웅이 되었습니다(p120)." 확실히 유명 희극인 중에는 갑자기 특정 TV 쇼가 히트하고 나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들이 많았습니다. 심형래, 주병진, 서세원 등이 그런 천재형이었으며 반면 이경규, 김정식, 유재석 등은 무명기간이 길었죠. 강호동도 물론 천하장사로서 벌써 유명인이었으나 TV 데뷔 후 얼마 안 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다만 메인 MC로 자리잡는 데에는 약간 시간이 걸리긴 했죠. 


송 선생 시절에는 연예인 사이에 군기가 아주 세었으며 본인도 선배들한테 호되게 당하면서 커리어를 쌓으셨을 텐데도 이 책을 보면 후배들한테 다정하게 대해 준다고 합니다. 좋지 못한 전통은 어느 시점에서 끊어져야만 하고 누군가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프로야구 타이거즈 구단도 구타의 폐습을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이종범 선수가 끊었다고 하죠. 꼰대짓, 똥군기는 정말 어느 조직에서건 사라져야 합니다. 엄영수 씨는 송 선생을 두고 "오빠, 형"으로 대하기 편한 분이라고 평합니다. p234를 보면 신재동 악단장의 경우 송 선생을 "회장님"으로도 부를 상황(!)이지만 격의 없는 분이시라 그냥 "선생님"으로 호칭한다고 합니다. 


TBC가 아니라 KBS에서 1970년대 <여로>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이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송 선생은 회고합니다. 정극배우 장욱제 씨(p145)가 저 당시 지적장애인 역을 맡아 대중으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는데 그때로부터 십여 년 후에도 이 연기가 원형이 되어 희극인 심형래, 오재미, 이창훈 등이 모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창훈 씨도 원래 연극배우 줄신이었죠. 


국민희극인, 나아가 국민영웅으로까지 평가 받는 송 선생은 예인으로서의 성취뿐 아니라 사생활 면에서도 만인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영화도 빨리 보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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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이수경 지음 / 청년정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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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세상에 태어나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나를 진정으로 위해 주고 이해해 주는 배우자 감을 만났을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빠는 만나면 만날수록 진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좋아해 주는 게 고마웠다.(p59)" 처음에 저자는 아주 입담이 좋은 친구 A를 통해 이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선배들을 함께 모시고 나오면서 일종의 집단 소개팅 자리가 되었는데 이분이 원래는 A의 첫사랑이었으나 A에 대해서는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대학생 친구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선배들이어서 다른 친구들은 실망했지만 유독 그분이 저자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셨다니 이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을 겁니다. 확실히 사람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좀 가슴아픈 이야기지만 저자의 어머님께서는 "되도록이면 혼자 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당신의 불행했던 가정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평소에 독신주의자라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는데... "어른들을 공경하는 예의 바른 청년(p62)"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런 사윗감을 데려왔으니 얼마나 좋으셨겠습니까. "한없이 낮았던 자존감이 한껏 올라가는 느낌이었다(p63)." 


"아이를 낳았다고 (그냥)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p70)." "낳기만 했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p125)." 여기서 참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이한테 물질적인 보살핌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p69)."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보통 부모 자신이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했으면 그 아이한테는 일종의 보상심리에 의해 지나친 물질 공세를 펴기도 하는데 저자께서는 그 너머의 진실을 이때부터 이미 깨닫고 있었던 거죠. 아무리 부유하게 성장했어도 아이의 정서와 영혼에 탄탄한 기반이 되는 그 무엇이 없으면 반드시 커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탄탄한 직업을 가진 후에도 이런 문제는 어느 단계에서 툭 불거지더군요. 


아무래도 부부 사이 금슬이 좋다 보면 아이가 잘 생기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물론 예외도 있고 그런 분들께서는 오해 없으시길요). 둘째까지는 별다른 가족계획 없이도(p71) 적시에 잘 생겼는데, 셋째가 예상치 못한시점에 찾아온 겁니다. "내 영역이 아닌 건 빨리 인정해 버리자.(p103, p186)" 셋째가 생기는 동안 그간 가정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부군께서는 모르긴 해도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신 듯합니다. 저자님은 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자격증을 따려 했던 건데, 남편께서는 상의 없이 큰 돈을 쓴 아내분한테 크게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평소 육아나 어른 모시기에 모두 지극정성이었고 웬만하면 아내분께 양보를 하고 살아온 분이, 이런 큰 실망을 갖게 되자 무섭게 화를 낸 겁니다. "한 번 터지니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했다(p89)" 언제나 그렇죠. 여튼 두 분 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분들이라 싸움은 비록 크긴 했으나 봉합이 되었습니다. 


이 책 곳곳에는 그 아버님을 향한 원망 어린 회상이 자주 나옵니다. 이런 환경에서 미처 겪지 않아도 되었을 그 많은 아픔과 괴로움이 아버님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찌 서운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세월도 많이 자났으며, 원망이 원망으로 남으면 결국 내 마음에만 깊은 상처가 생깁니다. "자녀를 기르며 자녀로 인해 울 수는 있어도 자녀가 부모 때문에 눈물 짓게 해서는 안 된다(p127. 서형숙 <엄마학교>에서 재인용)" 저자께서는 "나를 위해서 이제는 그냥 아버지를 용서하고 놓아 드리자"고 하시지만 사실 이는 자녀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성들만 질투가 나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를 보면 남자아이들도 샘을 내고 불편히 여기고 저녀석 망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웹툰 <질투와 부러움>의 대사를 인용(p133)하며 이 미묘한 감정, 즉 롤모델이 되어야 마땅한 잘난 지인에 대한 양가감정을 논합니다. 어떤 아이이든 다 이런, 다소는 까다롭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자는 현재 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어려서 그리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건, 저자께서 솔직히 털어놓으시는 것처럼 그저 물질적으로 부족했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 커서도 내내 남기 쉬운 피해의식, 낮은 자존감, 열등감 같은 게 더 큰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를 훌륭히 극복해 내시는 분들도 (많지는 않지만) 계시고, 이런 분들을 보고 우리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더 아프고 더 회복 가능성이 낮은 다른 병을 앓는 환우들(p160, p190)을 보며 자신이 처한 곤경 역시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이라는 겸허한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제 이 책 제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람은 결국 환경이 어떠하든 간에 마음의 평온을 찾고 주어진 자원으로 어떻게 미래를 대비할지 실속 있는 계획을 품고 그로부터 미래를 향한 희망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저자는 스스로 반성하기를 자존감을 낮게 가지고 스스로를 괜히 책망하며, 자신을 남들 하는 것보다 덜 사랑했기에 면역 체계가 탈이 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p184). 즉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았다"는 거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간혹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도 합니다만, 그들은 실제로 자신을 바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자신을 학대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마침 면역력이 그 방역에 관건이 되는 코로나 19(p170)가 우리를 위협하는 시국이며 이런 병이 찾아온 것도 세상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이치가 깃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의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말입니다(p184).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p200. 찬송가 가사)" 종교를 떠나 이 노래가 그토록 사랑받는 건, 평범한 듯보여도 그 안에 생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우리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깊은 진리를 잘 표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고 저자께서도 셋째를 가졌을 때 부부 사이가 그리 좋지도 않은 이 시점에 얘가 온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구절도 책에 나옵니다.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와, 부모님과, 혹은 자녀와 다투고 괴롭다면 이 책을 읽어 보고 "별은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p218)"라는 저자의 말씀을 곱새겨 봤으면 좋겠네요. 정말 마음이 숙연해지는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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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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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희망과 꿈에 부풀었던 구간도 있고, 뭔가 파국이 올 것만 같은 심상찮은 불안감이 모두를 지배하는 그런 시기도 있기 마련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오미크론 변이까지를 거친 지금, 이러다가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까 하고 두려움에 떠는 이도 있고, 어떤 전문가들은 생각보다 치명률이 약한 이 변이가 지배종으로 자리하면 결국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기도 합니다.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중요한 건 재앙을 염두에 두고 탄탄한 대비를 해야 더 나은 생존에의 길이 예비된다는 점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갖가지 재앙을 겪으면서도 결국 여기까지 살아 남았고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리는 중입니다. 


서문에는 당시 국교 정상화를 준비하던 양국의 저우(周)와 헨리 키신저의 대화 내용이 나옵니다. 키신저가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애 대해 묻자 저우는 "아직 평가하기는 너무 이릅니다"고 답했다는 일화(p14)인데, 저자 니얼 퍼거슨은 이 대답을 심오하다고 평가합니다. 과연 심오한 답이긴 하나, 문제는 그 답을 한 사람이 누구냐는 거죠. 저우는 혹시 자국의 "혁명" 두 건에 대해서도 평가를 유보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렇다면 당성(黨性)이 투철하지 못했다고나 할 것인데... 왜냐하면 중국 대륙 공산화 완수와 이후의 문혁에 대해 평가가 확실하다면 150년 앞선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한 마디 못 할 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대해서는 미테랑이 덩샤오핑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덩이 "혹시 계급 혁명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생각납니다. 


니얼 퍼거슨은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재앙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 일화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팬데믹은 그 의학적 특효약만 아직 개발이 안 되었다뿐 앞으로의 경제적 파급이나 사회적 전망에 대해서는 이미 기술적 분석이 어느 정도 나온 상태이므로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며 구태여 유보적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니얼 퍼거슨 같은 세계적 석학이라고 해도 한 이벤트가 빚을 역사적 디테일에 대해서는 쉽사리 예측을 내놓기 힘들다는 정도로 독자인 저는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19세기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대작 <전쟁과 평화>에서 모든 중요한 정치, 군사적 인물들은 그저 거대한 역사의 조류 속에서 하나의 졸(卒), 도구처럼 움직일 뿐이라며 자국 러시아에 심대한 피해를 안겼으나 끝내 패퇴한 나폴레옹을 예로 들었습니다. 소설인데도 마치 에세이처럼 작가 직접 개입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 톨스토이의 태도에 독자는 지루해서 어안이 벙벙해지지만 여튼 니얼 퍼거슨은 현재의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데에 이 예를 적용합니다. 말만 많은 정치인들이 사태 해결에 지금 무슨 도움을 주고 있냐는 거죠. 저자가 톨스토이의 원칙이라 명명한 이 명제는 저 뒤 p317 같은 곳에서도 또 나옵니다. 


p77에는 이른바 "천년왕국주의자"들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지금 사태를 방치하면 천년왕국의 도래, 즉 현세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겁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온 말인데 그 뜻하는 바가 사실은 정반대죠. 1970년대에는 현대판 맬서스주의자들이 특히 빈곤국에 인구 통제를 요구했고 인디아에서는 당시 인디라 간디(자와할랄 네루의 딸)의 지시에 따라 국가 주도로 불임 시술이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사망자도 많이 발생했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은 구태여 진영의 좌우를 가르자면 우파 쪽일 텐데, 저자 니얼 퍼거슨이 우리 시대의 "천년왕국주의자"로 내세운 이들은 뜻밖에 툰베리 등 기후환경론자들입니다. 탄소 배출을 이대로 놔두면 파국에 이른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파멸을 경고하고 다닌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거죠. 


저자는 딱히 우리 시대의 재난만이 최악은 아니며, 티무르의 캠페인이라든가 과거 청조가 행한 소수 민족 학살 등 인명의 피해 기준이라면 과거에도 치명적인 재앙이 여럿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이는 시대마다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여력이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계량화하기도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역사를 인구구조 측면에 중점을 두고 파악한 "역사동역학"에 저자는 주목합니다. 원어는 cliodynamics(p98)인데 아홉 뮤즈 중 클레이오(클리오)가 역사 담당이므로 이런 신조어가 만들어졌죠.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 분화가 일어나고 이를 틈타 새로운 엘리트들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사회적 투쟁이 벌어지는데 마치 지금의 우리 나라 정치상, 즉 산업화를 이룬 기존의 지배층과 과거 민주화 투쟁 경력의 연장을 통해 입지를 더 넓히려 드는 운동권 리더들 사이의 다툼과도 비슷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중세 아랍의 역사가 이븐 할둔이 논한 "아시비야"를 들며 "집단적 행동 역량"라고 그 의미를 정리합니다. 이 부분은 피터 터친의 논의(p101)를 퍼거슨이 재인용한 건데 이 피터 터친이 바로 cliodynamics라는 신조어를 처음 만들어 낸 학자입니다. 피터 터친은 책 저 뒤 p567에서도 다시 인용됩니다. 


재난은 인위적으로도 발생하고 자연적 원인을 갖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1938년 중일 전쟁 당시 창사에서 발생한 도시 화재를 드는데 이것이 장개석 측에서 일으킨 일종의 청야 전술 부작용이었는지 아니면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창사는 대륙의 곡창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이 지역에서 일어난 여러 결정적 사건들이 많았죠. 또 책에서는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여러 산불 등의 예도 드는데 중요한 건 공동체 성원들이 이런 재앙에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의 모습입니다. 이 역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으니 말입니다. 


몇 년 전 타계한 김용운 교수도 종래의 학문과 인식의 틀이 복잡계를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적 있습니다. 4장에서 니얼 퍼거슨은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하는데 최근에 정립이 이뤄져 가는 이 학문의 발달 과정과 구조야말로 또하나의 복잡계라고 그는 평합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유행이나 가짜 뉴스가 전파되는 과정 같은 게 이 학문의 중점 연구 과제죠. 또 저자는 이 분석틀을 통해 질병의 전파 기제와 바람직한 방역 시나리오도 설명하려 듭니다. 


난치병 여럿이 20세기 들어 정복되었고 (어쨌든 간에) 그 발견 당시에는 기적적 혁신이었던 항생제 등을 통해 현대는 더 이상 질병 앞에 속수무책인 그런 인류가 아닙니다. 어느 시인은 "굴(oyster)을 처음 먹은 이야말로 진정한 용자"라고도 했는데 백신의 원리를 깨닫고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에 최초 접종하여 사회 전체가 질병의 면역을 얻게 초석을 놓은 제너 등의 선구자야말로 용기의 결정체라고 할 것입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결핵류에 걸리면 그저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다 죽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런 사회에서는 내 운명을 그저 운에 맡기고 살 수밖에 없었을 텝니다.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위협적 팬데믹을 일으킨 게 이번 코로나19인데 이 역시 머지않아 진정될 것입니다. 인류가 여태 그리 난관을 극복해 온 과정처럼. 


재앙 중에서도 최악은 인류의 탐욕이 빚어낸 전쟁들입니다. 인류를 주기적으로 찾아온 재앙 중 질이 나쁜 건 기근인데 저자는 20세기에 죽은 영국인의 수 중 기근 원인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전쟁, 그 다음이 스모그라고 합니다. 특히 1차 대전은 이른바 참호전의 재앙 때문에, 어느 교전 당사자도 전술적 전략적 이익을 얻지 못하면서 젊은 병사들만 계속 죽어나가는 참상을 초래했습니다. 책 6장에는 솜 전투의 끔찍했던 전개가 자세히 나옵니다. 


"제국의 붕괴는 제국주의자들에게나 비극일 뿐"이라는 명제에 저자는 반대하는데 사실 오스만 제국의 (형식적이나마 지속되었던) 권위가 1차 대전 패배로 완전히 붕괴하면서 오늘날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의 정치적 혼란이 빚어진 거죠. 영국의 외상 밸푸어 등은 괜히 남의 일에 끼어 어설프게 패권국으로 체면을 지키려다가 오늘날까지 욕을 먹고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껍데기만 남은 오스만 제국을 어떻게든 유지시켜 중동의 혼란을 막고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 들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프로이센이 유럽의 패권을 노리면서 계획이 다 틀어졌지만 말입니다. 


1980년대 중후반 에이즈라는 무서운 병이 유행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1985년 왕년의 명배우 록 허드슨이 이 병으로 죽으면서 유명해졌죠. 록 허드슨은 동성애자였는데 이 때문에 특정 성적 취향과 이 병의 전염이 연결되기도 했으나 병은 이성애자라고 피해가는 게 아니니 문란한 성관계 자체가 두루 문제가 됩니다. 에이즈는 현재 당뇨처럼 관리만 잘하면 죽지는 않게 되었고 매직 존손 같은 이는 병에 걸린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환갑 넘기고도 아직 잘 살고 있습니다. 사스, 에볼라 등 지구촌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여러 병에 대해 저자는 회고합니다. 


전체가 부분을 닮고, 부분은 전체를 닮아가며 무한히 반복되는 구조를 프랙털이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여러 대 재난 사고들에 숨은 패턴이 사실 서로 닮아 있다는 가설을 폅니다. 자계서에 자주 나오는 "1980년대 후반 챌린저 호 폭발 참사의 원인"이 이 책에도 또 등장하는데 리처드 파인만이 조사위원 중 하나로 참여하여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저자는 저 당시 파인만의 역할을 1930년대 흑백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주인공의 활약에 비유합니다. 이 주인공 역은 명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았으며 그는 이후 존 웨인, 리 마빈 등과 함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 출연하여 비슷한 연기를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이어 미국에서 1970년대 후반에 터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야기가 나옵니다. 


9장에서는 특히 코로나19에 대한 집중적인 회고가 나옵니다. 우한에서의 초기 전파 과정, 또 이것이 미국에 상륙하고 나서 노인 요양 시설 등에서 특히 어떻게 퍼졌는지 자세히 설명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취약지대의 감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참고가 많이 되는 부분입니다. 


대니얼 벨(p568)이라든가 헨리 키신저(책 서문의 주은래 졉견 일화에 이어 포스트 코로나 관련 코멘트로도 다시 등장합니다) 등은 중국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만 저자는 그들보다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고 저자의 종래 스탠스(다만 역자 홍기빈 박사는 저자를 보수주의자, 현실주의자[국제정치학 스펙트럼 중에서]로 평가합니다. p648)대로 트럼프에 대해서는 평가가 아주 혹독합니다. 저자는 "중국은 팬데믹 억제라는 관점에서 갈수록 무능해지는 미국 민주주의에 비해 우수하다(p585)"라고 하지만 이는 바로 앞 "전지적 감시 체제"라는 평가와 맥락을 잇는다면 반어적 표현에 가깝습니다. 또 대만 한국 등이 상대적으로 병을 잘 통제한다면서 "규모의 비경제"를 거론하기도 하나 어느 나라도 섬이 아니며 결국은 네트워크 속에서 제 기능을 한다는 결론입니다. 


저자의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추세적 쇠퇴는 불가피하다고 하며 특히 오바마의 2013년 "세계 경찰 역할 포기 선언"에 깊은 공감을 표시합니다. 책은 2021년에 발간되었지만 집필 시기는 대체로 2020년이었던 듯하며 이 때문인지 "비동맹 시대의 재림" 같은 흥미로운 챕터 중에서 AUKUS나 쿼드 결성 등 최근 사실이 반영 못 된 게 다소 아쉽긴 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예측력을 엿볼 수 있기에 다른 흥미가 생기기도 하죠. 방대한 분량 속에 다채로운 사례들이 제시되며 저자 특유의 명쾌한 진단과 비전도 곳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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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최고 밉상일 때 최상의 부모가 되는 법 - 자책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부모 감정 솔루션
킴 존 페인 지음, 조은경 옮김 / 불광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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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가 낳은 아이라고 해도 언제나 예쁘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기는커녕 때로는 마구 때려주고 싶을 만큼 미워질 수도 있겠죠. 정상적인 예로 들 수는 결코 없겠으나 최근 뉴스에 나온 대로,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친자식을 학대하여 처벌 받은 여러 한심한 부모들만 봐도, 그저 천륜이라는 장치 하나만으로 언제나 바른 육아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순간의 감정에만 치우친다면 저런 끔찍한 부모, 나아가 범죄자가 되는 길이 바로 지척에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인 교육 석학이라는 평가를 받는 킴 존 페인이라는 분이 쓴, 비교적 간명하게 고비의 양육 노하우가 요약된 책입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적인 육아 사례가 더 많이 고려되긴 했겠으나 최근 우리도 전통적인 육아 방식에서 점차 서구적인 분위기로 이행하다 보니 이런 책에서 더 공감 포인트들을 찾는 젊은 부모님들이 많을 듯도 합니다. 


저자 킴 존 페인은 남성입니다만 어려서 자신에게 자주 분노의 폭발상을 보였던 자신의 생모, 그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몇몇 모습을 책에서 회상합니다. 저는 처음에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저자가 여성이라고 짐작했더랬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어머니들이 이른바 감정 쓰레기통으로 자신의 딸을 이용하는 경우가 좀 더 많다고 들었으며, 이런 어렸을 때의 기억을 남자애들이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저자께서는 그런 생모의 행동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고 아직까지도 마음의 상처로 간직하는 듯합니다. 하긴 아들이라고 그 어머니의 극단적인, 혹은 사려 깊지 못한 언행에 대해 상처 받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좌절감이란, 매우 쉽게 분노로 바뀐다(p17)." 이 깨달음은 저자가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워 본 후에야 명확하게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당신이 얻지 못한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는 없다." 이 말에 대해 저자는 다소 독특한 해석을 내리는데, 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줄도 미처 몰랐던 "베풂과 돌봄의 능력" 즉 "아이가 몹시도 미운 짓을 하며 부모를 밀어낼 때 이를 참고 지속적으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을 자신에게서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씀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부모가 된 후에도 그 자녀에게 어렵지 않게 사랑을 베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 말은 왠지, 저자 자신이 부모에게 사랑을 넉넉히 못 받았기에 자신의 자녀에게도 마냥 베풀기가 힘들었다는 고백으로 들렸습니다. 사실이라면 저자는 훌륭한 교육학자이실망정 개인적으로는 좀 불행한 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시대별로 육아의 트렌드가 다르다고 분석합니다. 1960년대(책에는 이렇게 나오지만 문맥상 아마 1940년대의 오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에는 맹목적인 복종의 시대, 이후 과도기(1946~69)에는 벤저민 스포크의 유명한 책이 가르친 대로 육아의 방식이라는 게 특히 중산층 중심으로 여러 패턴이 만들어져 가던 시기, 1970년대에는 자유 육아, 1980년대에는 보상과 처벌, 1990년대에는 관리자(기업 경영자나 중간 간부 등과 비슷한 개념)의 시대, 2000년대 이후에는 칭찬해주기와 설명해주기가 대세라고 합니다. 어떨까요? 우리 한국도 대체로 현재는 미국과 비슷하게 아이와 잘 소통하기, 칭찬해 주며 기 살리기가 지배적인 분위기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때로는 거칠게 반응하며 부모의 의견과 주장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독립적인 인격체인 이상 경우에 따라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이때 정말 조심해야 할 건, 부모(책 p61에는 이혼 후 아홉 살 딸을 혼자 키우는 어머니의 사례가 나옵니다)가 이런 자녀의 반응에 대해 "방어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거세게 반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교란 상태, 불안정 상태를 부모가 해소해 주길 기대합니다. 


책에서는 어떤 비유를 드느냐면, 아이와 부모가 일시 대립할 때 그 아이가 부모를 소송(싸움)의 상대방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판사 비슷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부모가 느닷 무너지면서 방어적으로 나오면, 아이는 이제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는 거죠. 자녀의 반항에 직면하여 그저 나(=부모) 자신을 지키려고 급급하거나 대등한 입장에서 감정을 드러낼 게 아니라(=원고 피고 사이의 싸움으로 갈 게 아니라), 부모는 어디까지나 아이를 달래고 안정시켜야 할 판사의 위치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어른은 어른이고, 어른이라는 건 아이보다는 더 성숙한 감정의 기제를 가져야 하니 말입니다. 


"나는 일부러 반항하는 아이는 만나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그저 길을 잃었을 뿐이다." 정말 명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꼭 미성년 자녀에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나이 서른을 먹어도 사람은 유독 그 부모 앞에서는 아이가 됩니다. 그래서 다 큰 자식이 부모 앞에서 미친 반항도 하는 건데, 이걸 패륜으로만 볼 게 아니라 부모는 일단 더 성숙하고 더 우월한 입장에서 "아 내가 예전에 이렇게 행동을 했기에 얘가 그게 상처가 되고 서운해서 저러나 보다" 하고 일단은 진정을 시키고 이해를 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거칠고 막된 행동을 하다가도 결국은 풀이 죽습니다. 제3자는 얼마든지 그 자식을 단죄할 수 있지만, 부모가 자녀하고 어떻게 막된 싸움을 벌이겠습니까? 또 세상 천지에 그런 못된 자식은 없습니다. 짐승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 책 저자의 말씀, "아이는 부모를 적대하려고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게 아니라, 부모의 올바른 심판과 권위를 기다린다"는 점, 항상 명심해야겠습니다. 


특히 미국식 자녀 양육의 멋진 예로 꼽히는 게 p87에 나옵니다. 영어에서는 have와 earn의 뜻을 각별히 구분하는데, 전자가 구태여 과정을 따지지 않고 그저 손에 넣은 상태를 두루 가리킨다면, 후자는 본인의 노력과 재능을 통해 획득하는 걸 가리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노력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대체로 당신들의 성장 과정이 넉넉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자녀들이 뭘 조르면 일종의 보상 심리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사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내 자녀들에게는 그런 불편한 체험을 되풀이시키지 않겠다는 일종의 배려에 기인하는 거죠. 그러나 저자는 이런 훈육이 아이에게, 그저 칭얼거리고 조르기만 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일종의 "특권 의식"을 길러 줄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한테 "감정의 근육을 강화할(p89, p182)" 기회를 주라고 저자는 충고합니다. 그래서 미국 책을 보면 억만장자의 자녀들도 아빠 차를 닦게 하고 정원을 돌보게 해서 노력을 통해 용돈을 주는 방식이 그렇게나 자주 나오는 것입니다. 이걸 안 거치면 나이 오십을 넘기고도 뭘 달라고 보채며 징징거리고 세상을 향한 근거 없는 피해의식에 절어 사는 미숙아가 되는 것입니다. 


일단 부모는 어떤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필요(p128)가 있습니다. 내가 내 자신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내 자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책에는 저자에게 어떤 어머나가 상담을 해 온 사례를 소개하며, 아이가 들을 수 있는데 욕을 했으며 이성을 잃고 행동한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는 고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내담자에게 되묻습니다. "아이에게 진정 어린 사랑의 표현을 한 적은 몇 번입니까?" "500번 넘어요." "그럼 창피한 모습을 보인 20번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네요. 스포츠 시합을 하는데 스코어가 500-20이면 크게 이긴 겁니다. 당신은 자랑스러운 부모입니다." 그 내담자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귀가했다고 합니다. 지나친 자기 강박은 학대만큼이나 육아에 해롭다는 점 다시 새겨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몸도 덩달아 아픕니다. 가짜 약을 먹고도 병이 호전된다는 플라세보 효과가 있는가 하면, 무해한 물질을 섭취하고도 지레 걱정이 앞서 병이 악화되는 "노세보 효과(p119)"도 있습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겨울 이야기>를 인용하며 왕이 자신의 아이들을 사생아로 의심하는데 나중에는 스스로 만든 망상의 노예가 되어 결국 아들이 죽고 맙니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점만 제외하면 마치 태봉의 궁예와도 닮았습니다. 자신을 가장 크게 해치는 건 외부의 요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옭아매는 각종 집착과 망념이니 적과 악마는 자신 속에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부모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여 연민 어린 시선으로 볼 것을 훈련(p107 이하의 내용)하라고 합니다. 요즘 자계서에 아주 자주 나오는 토픽입니다. 감정은 그게 곧 내 자신이 아니고 내가 돌봐 줄 수 있는 하나의 대상입니다. 감정이 어떤 길을 지나는지 시각화하여 지속적으로 살피고 돌보며 먼저 나 자신의 감정 균형(p133)을 맞춥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마음 안정이 찾아지면, 이 방법을 이제 나의 자녀에게도(p151 이하) 고스란히 실행하는 겁니다. 아이는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자신을 안정적으로 돌본다는 믿음이 생기면 이유 없는 반항을 부모에게 하지 않습니다. 한다고 해도 부모가 이처럼 안정적으로 대응하면 곧 잦아듭니다. 이렇게 해서 유대감이 회복되고, 점차 아이 자체보다 더 큰 가치를 향해서까지 그 육아가 진화(p205)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마냥 부모님께 안정적으로 사랑만 받고 큰 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사랑을 넉넉히 받은 바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자녀를 넉넉히 사랑할 수 있을까? 종종 자신의 자녀가 미워 죽겠다는 느낌이 드는 부모가 바로 이런 생각을 하며 한계에 부딪히고, 그럴 때마다 죄의식이 생겨 악순환의 고리를 못 끊을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부모님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듯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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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 투자하라 -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부의 대이동
가메이 고이치로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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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거의 언제나 귀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통용되는 교환 수단이었으며, 보석류처럼 몰래 숨겨두고 그 가치를 보관할 수 있는 저장 수단으로서도 선호되었습니다. 2008년 미국발 서프프라임 부실화 사태가 발단이 되어 세계 경제에 암운이 드리울 때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대신 금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지금 미국 경제가 코로나 영향 외에는 딱히 위험 요인이 없으나 달러가 시중에 많이 풀린 탓에 그 가치 하락이 우려되고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지금, 안전 자산으로서 금은 다시 주목 받습니다. 


구한말 한반도에서도 외국인들이 금광 채굴 이권을 노려 대거 몰려온 역사가 있고 한참 후 이를 배경으로 <노다지> 같은 소설이 창작되었으며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씨도 일제 강점기 때 광산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금을 캔다고 하면 허황된 꿈을 찾아 헤매는 황당한 풍경이 연상되기도 하고, 엄청 고된 노동 같은 게 함께 떠올려지는데 이 책 p68 같은 곳을 보면 "인텔리전트 광산"이라는 게 이제 주목받는다고 합니다. 가상은 당연히 아니고 실물 광산인데도 "채굴에서 출하까지"를 완전 자동화하는 시스템이며 이에는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되어 이게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이러면 원가가 크게 낮아지므로 수익이 높아지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이런 기술(5G 등)이 그대로 적용되려면 "노천" 광산이라야 하는 한계점이 있다고 책에서 언급하는데 이 역시 첫걸음이 이미 떼어졌으니 차차 지하 광산에도 두루 쓰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일단 5G와 금 채굴(무슨 비트코인 채굴도 아니고)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자체가 경이적입니다. 


석유는 예전부터 수십 년 후 고갈된다고, 빨리 그 안에 대체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에도 경제성을 고려한 매장량 추산이었으며, 그새 기술이 발달하여 종전 채산성이 없던 유전도 이제는 개발 유인이 생겼고, 심지어 셰일 오일마저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린 에너지 전환은 매장량이 고갈되어서가 아니라 친환경을 고려한 인위적 턴어라운드입니다. 그런데 금은 석유와 또 달라서 자연 금속 원소이기 때문에 기술이 발전한다고 무한정 캘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금이 그처럼 흔했으면 그게 금이 아니겠죠. 금은 분명 매장에 한계가 있고 이 때문에 책에서는 금 투자가 더 유망하다고 내다봅니다(p69). 희소성 있는 아이템에 더 투자 수요가 몰리는 건 너무도 당연하니 말입니다. 


주식 투자, 선물 투자 등이 다 그 나름 큰 위험을 안고는 있습니다만 금 투자가 얼마나 변동성이 큰 상품을 대상으로 하는지는 일반인들이 잘 모릅니다. p22에는 금 값이 가파르게 오르다가 느닷 기록적인 폭락으로 돌아서 많은 이들에게 큰 손해를 안겼던 2020년 3월의 상황이 설명됩니다. 이때 금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보통은 금과 경쟁 관계에 있는 주식 등 다른 자산이 먼저 폭락했습니다. 경기에 대한 비관적 전망 같은 게 주된 이유가 아니라 대형 펀드의 헷징 등 이런저런 움직임(의 알고리즘. p37)이 나비 효과를 일으킨 결과였죠. 책에 나오듯이 이때 주식뿐 아니라 채권 등 거의 모든 자산이 덩달아 폭락세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자산은 분위기가 변하면 다시 원 가격을 회복하는데 금은 좀처럼 잘 안 오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금은 그 자체로 아무 수익도 낳지 않고 그저 시세 차익만 기대할 뿐이니 때문이죠. 


주식은 회사에 호재가 있으면 배당 등 여러 기대되는 바가 있고 채권은 고정된 이자 수익이라도 있습니다. 이러니 금 투자는 정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타당 가격을 산출하기 어려울 뿐더러 센티먼트에 따라 과대 혹은 과소 평가를 받을 요소를 지니는 게 금 시장이다.(p37)" 보통 "센티"라고 하는 그 변덕스러운 대중의 심리에 좌우되는 건 어느 시장이라도 마찬가지이지만 금은 특히 그 정도가 심합니다. 잘하는 이들은 물론 그 변동성으로부터 큰 재미를 보지만 말입니다. 


금 시장의 특성을 알려면 지난 역사를 통해 특정 원인에 의해 어떤 패턴으로 가격이 움직였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p87 이하에서 2003년 이라크 전쟁 개전 당시의 금 시장을 분석합니다. 얼마 전에 그 타계 소식이 뉴스로 전해진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 이야기도 책에 나옵니다. 이 사람이 개전의 불가피성을 역설할 때 금 가격은 피크를 쳤고 이게 전쟁 발발 한 달 전이었습니다. 주식도 그렇지만 소재는 대개 선반영이 되므로 더 이상은 오르지 않았고 이후로는 오히려 내리죠(실제 전쟁이 터져도 말입니다). 이후에 미국이 이라크에서 큰 재미를 못 보리라는(비록 전쟁에서는 이겼다 해도) 전망이 우세해지자 금 가격은 다시 반등했으나 결국 저때 형성된 최고가를 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파월 국무 장관(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이 연설을 할 때 금값이 폭등했다고 그때 추격매수를 한 사람은 이후 큰 손해를 봤거나 최소 1년을 물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는 2020년까지 금 보유량을 1826t이나 늘려 보유했다는 말이 책에 나옵니다(p97). 왜 이런 선택을 하겠습니까? 러시아는 구 소련 시절 석유파동을 겪으며 유가가 폭등하자 큰 재미를 보았다가, 이후(1980년대) 아무도 예상 못하게 유가가 내리자 큰 손헤를 보고 결국 이를 극복 못하여 체제가 붕괴했습니다. 이제는 경제가 개방되어 외부 투자자들이 루블화를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데, 루블화에 대한 신뢰를 주고 급격한 평가절하 위기를 피하려면 금 보유량이 어느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아무리 불환 화폐라고 해도). 이걸 달러화, 또 미 국채 보유로 대신하려면 너무 미국 좋은 일만 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죠. 중국도 어느 정도는 미국 정부에 대한 레버리지로 삼으려고 전략적으로 미 국채를 다량 보유했으나 이게 막상 미국과 싸울 때 효과가 잘 나지 않자 금 보유로 대신하기 시작한 겁니다. 또 위안을 기축 통화 대열에 넣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거래는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한 이유도 있죠. 이런 점을 고려하면 확실히 금은 가격 상승 요인이 구조적으로 마련되어 가는 면이 있습니다. 큰손들이 저렇게 금을 좋아하니 말입니다. 


1990년대에는 금 매각이 각국 중앙은행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던 스탠스였는데 체제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후 강 달러 추세가 불을 보듯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마침 유로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였음에도 그랬습니다. 이런 추세가 너무 심해지자 각국이 협정을 맺어 금 시세를 안정시킬 것을 도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해지펀드가 시장 혼란상을 파고들어 큰 이익을 벌었으며, 십 년 가까이 내리막이던 금은 갑자기 급등했습니다. 아마 금 투자를 선호하는 이들은 바로 이 맛을 즐기는 것이겠지만 이것만 봐도 일반인들이 뛰어들기엔 참으로 리스크가 크다는 걸 알 수 있죠. 또 우리는 여기서 당시 각국의 중앙은행, 헷지펀드, 기관 등이 얼마나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벌여서 게임의 승자가 결정되었는지도 공부할 수 있네요. 


1971년 금의 태환을 중지한다는 닉슨의 발표는 당시 핵폭탄 투하와도 같았습니다. 닉슨으로서는 겉잡을 수 없는 지출을 막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했으나, 18세기 이래 책임 있는 정부에서는 법화를 들고 오는 내/외국인들에게 일정 비율로 금을 교환해 줄 것을 보장해 왔습니다. 그랬던 걸 하루아침에 중단해 버렸으니 세계 경제에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또 가뜩이나 인플레 때문에 고생하던 미국에서는 달러 가치가 더 떨어져 시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금은 이런 계기를 맞으면 반드시 가격이 올라갑니다. 


지금 증시 주변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몹시 소란합니다. 왜? 코로나 때문에 미국에서도 현금이 많이 풀렸기 때문에, 생산이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돈 가치만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또 앞에서 본 대로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 금을 사들이는 추세이기도 하죠. 여기에, 내년 초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심각합니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중국도 대만에 대해 위협적인 언동을 그치지 않습니다. 바이든이 몇 주 전 시진핑에게 "괜히 평화를 깨뜨릴 필요가 없으며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고 한 게 아마도 내년 초에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비하여 양면 전선을 형성하지 않으려는 제스처였는지도 모릅니다(러시아와의 싸움에 집중하려고 중국을 살살 달래는 것). 이럴 것 같으면, 이 책에서 예전 사례를 돌아보던 그 패턴대로, 금값이 내년 1월 경에 급등할지 모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충 이 정도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인 듯한데 과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금을 좀 사 둘까요? ㅎㅎ 위에 적은 것처럼 금은 추격 매수를 하면 큰 손해를 보거나 장기간 물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 점을 언제나 유념해서 투자를 해도 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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