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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ㅣ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인류 역사는 희망과 꿈에 부풀었던 구간도 있고, 뭔가 파국이 올 것만 같은 심상찮은 불안감이 모두를 지배하는 그런 시기도 있기 마련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오미크론 변이까지를 거친 지금, 이러다가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까 하고 두려움에 떠는 이도 있고, 어떤 전문가들은 생각보다 치명률이 약한 이 변이가 지배종으로 자리하면 결국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기도 합니다.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중요한 건 재앙을 염두에 두고 탄탄한 대비를 해야 더 나은 생존에의 길이 예비된다는 점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갖가지 재앙을 겪으면서도 결국 여기까지 살아 남았고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리는 중입니다.
서문에는 당시 국교 정상화를 준비하던 양국의 저우(周)와 헨리 키신저의 대화 내용이 나옵니다. 키신저가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애 대해 묻자 저우는 "아직 평가하기는 너무 이릅니다"고 답했다는 일화(p14)인데, 저자 니얼 퍼거슨은 이 대답을 심오하다고 평가합니다. 과연 심오한 답이긴 하나, 문제는 그 답을 한 사람이 누구냐는 거죠. 저우는 혹시 자국의 "혁명" 두 건에 대해서도 평가를 유보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렇다면 당성(黨性)이 투철하지 못했다고나 할 것인데... 왜냐하면 중국 대륙 공산화 완수와 이후의 문혁에 대해 평가가 확실하다면 150년 앞선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한 마디 못 할 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대해서는 미테랑이 덩샤오핑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덩이 "혹시 계급 혁명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생각납니다.
니얼 퍼거슨은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재앙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 일화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팬데믹은 그 의학적 특효약만 아직 개발이 안 되었다뿐 앞으로의 경제적 파급이나 사회적 전망에 대해서는 이미 기술적 분석이 어느 정도 나온 상태이므로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며 구태여 유보적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니얼 퍼거슨 같은 세계적 석학이라고 해도 한 이벤트가 빚을 역사적 디테일에 대해서는 쉽사리 예측을 내놓기 힘들다는 정도로 독자인 저는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19세기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대작 <전쟁과 평화>에서 모든 중요한 정치, 군사적 인물들은 그저 거대한 역사의 조류 속에서 하나의 졸(卒), 도구처럼 움직일 뿐이라며 자국 러시아에 심대한 피해를 안겼으나 끝내 패퇴한 나폴레옹을 예로 들었습니다. 소설인데도 마치 에세이처럼 작가 직접 개입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 톨스토이의 태도에 독자는 지루해서 어안이 벙벙해지지만 여튼 니얼 퍼거슨은 현재의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데에 이 예를 적용합니다. 말만 많은 정치인들이 사태 해결에 지금 무슨 도움을 주고 있냐는 거죠. 저자가 톨스토이의 원칙이라 명명한 이 명제는 저 뒤 p317 같은 곳에서도 또 나옵니다.
p77에는 이른바 "천년왕국주의자"들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지금 사태를 방치하면 천년왕국의 도래, 즉 현세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겁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온 말인데 그 뜻하는 바가 사실은 정반대죠. 1970년대에는 현대판 맬서스주의자들이 특히 빈곤국에 인구 통제를 요구했고 인디아에서는 당시 인디라 간디(자와할랄 네루의 딸)의 지시에 따라 국가 주도로 불임 시술이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사망자도 많이 발생했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은 구태여 진영의 좌우를 가르자면 우파 쪽일 텐데, 저자 니얼 퍼거슨이 우리 시대의 "천년왕국주의자"로 내세운 이들은 뜻밖에 툰베리 등 기후환경론자들입니다. 탄소 배출을 이대로 놔두면 파국에 이른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파멸을 경고하고 다닌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거죠.
저자는 딱히 우리 시대의 재난만이 최악은 아니며, 티무르의 캠페인이라든가 과거 청조가 행한 소수 민족 학살 등 인명의 피해 기준이라면 과거에도 치명적인 재앙이 여럿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이는 시대마다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여력이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계량화하기도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역사를 인구구조 측면에 중점을 두고 파악한 "역사동역학"에 저자는 주목합니다. 원어는 cliodynamics(p98)인데 아홉 뮤즈 중 클레이오(클리오)가 역사 담당이므로 이런 신조어가 만들어졌죠.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 분화가 일어나고 이를 틈타 새로운 엘리트들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사회적 투쟁이 벌어지는데 마치 지금의 우리 나라 정치상, 즉 산업화를 이룬 기존의 지배층과 과거 민주화 투쟁 경력의 연장을 통해 입지를 더 넓히려 드는 운동권 리더들 사이의 다툼과도 비슷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중세 아랍의 역사가 이븐 할둔이 논한 "아시비야"를 들며 "집단적 행동 역량"라고 그 의미를 정리합니다. 이 부분은 피터 터친의 논의(p101)를 퍼거슨이 재인용한 건데 이 피터 터친이 바로 cliodynamics라는 신조어를 처음 만들어 낸 학자입니다. 피터 터친은 책 저 뒤 p567에서도 다시 인용됩니다.
재난은 인위적으로도 발생하고 자연적 원인을 갖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1938년 중일 전쟁 당시 창사에서 발생한 도시 화재를 드는데 이것이 장개석 측에서 일으킨 일종의 청야 전술 부작용이었는지 아니면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창사는 대륙의 곡창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이 지역에서 일어난 여러 결정적 사건들이 많았죠. 또 책에서는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여러 산불 등의 예도 드는데 중요한 건 공동체 성원들이 이런 재앙에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의 모습입니다. 이 역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으니 말입니다.
몇 년 전 타계한 김용운 교수도 종래의 학문과 인식의 틀이 복잡계를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적 있습니다. 4장에서 니얼 퍼거슨은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하는데 최근에 정립이 이뤄져 가는 이 학문의 발달 과정과 구조야말로 또하나의 복잡계라고 그는 평합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유행이나 가짜 뉴스가 전파되는 과정 같은 게 이 학문의 중점 연구 과제죠. 또 저자는 이 분석틀을 통해 질병의 전파 기제와 바람직한 방역 시나리오도 설명하려 듭니다.

난치병 여럿이 20세기 들어 정복되었고 (어쨌든 간에) 그 발견 당시에는 기적적 혁신이었던 항생제 등을 통해 현대는 더 이상 질병 앞에 속수무책인 그런 인류가 아닙니다. 어느 시인은 "굴(oyster)을 처음 먹은 이야말로 진정한 용자"라고도 했는데 백신의 원리를 깨닫고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에 최초 접종하여 사회 전체가 질병의 면역을 얻게 초석을 놓은 제너 등의 선구자야말로 용기의 결정체라고 할 것입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결핵류에 걸리면 그저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다 죽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런 사회에서는 내 운명을 그저 운에 맡기고 살 수밖에 없었을 텝니다.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위협적 팬데믹을 일으킨 게 이번 코로나19인데 이 역시 머지않아 진정될 것입니다. 인류가 여태 그리 난관을 극복해 온 과정처럼.
재앙 중에서도 최악은 인류의 탐욕이 빚어낸 전쟁들입니다. 인류를 주기적으로 찾아온 재앙 중 질이 나쁜 건 기근인데 저자는 20세기에 죽은 영국인의 수 중 기근 원인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전쟁, 그 다음이 스모그라고 합니다. 특히 1차 대전은 이른바 참호전의 재앙 때문에, 어느 교전 당사자도 전술적 전략적 이익을 얻지 못하면서 젊은 병사들만 계속 죽어나가는 참상을 초래했습니다. 책 6장에는 솜 전투의 끔찍했던 전개가 자세히 나옵니다.
"제국의 붕괴는 제국주의자들에게나 비극일 뿐"이라는 명제에 저자는 반대하는데 사실 오스만 제국의 (형식적이나마 지속되었던) 권위가 1차 대전 패배로 완전히 붕괴하면서 오늘날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의 정치적 혼란이 빚어진 거죠. 영국의 외상 밸푸어 등은 괜히 남의 일에 끼어 어설프게 패권국으로 체면을 지키려다가 오늘날까지 욕을 먹고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껍데기만 남은 오스만 제국을 어떻게든 유지시켜 중동의 혼란을 막고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 들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프로이센이 유럽의 패권을 노리면서 계획이 다 틀어졌지만 말입니다.
1980년대 중후반 에이즈라는 무서운 병이 유행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1985년 왕년의 명배우 록 허드슨이 이 병으로 죽으면서 유명해졌죠. 록 허드슨은 동성애자였는데 이 때문에 특정 성적 취향과 이 병의 전염이 연결되기도 했으나 병은 이성애자라고 피해가는 게 아니니 문란한 성관계 자체가 두루 문제가 됩니다. 에이즈는 현재 당뇨처럼 관리만 잘하면 죽지는 않게 되었고 매직 존손 같은 이는 병에 걸린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환갑 넘기고도 아직 잘 살고 있습니다. 사스, 에볼라 등 지구촌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여러 병에 대해 저자는 회고합니다.
전체가 부분을 닮고, 부분은 전체를 닮아가며 무한히 반복되는 구조를 프랙털이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여러 대 재난 사고들에 숨은 패턴이 사실 서로 닮아 있다는 가설을 폅니다. 자계서에 자주 나오는 "1980년대 후반 챌린저 호 폭발 참사의 원인"이 이 책에도 또 등장하는데 리처드 파인만이 조사위원 중 하나로 참여하여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저자는 저 당시 파인만의 역할을 1930년대 흑백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주인공의 활약에 비유합니다. 이 주인공 역은 명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았으며 그는 이후 존 웨인, 리 마빈 등과 함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 출연하여 비슷한 연기를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이어 미국에서 1970년대 후반에 터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야기가 나옵니다.
9장에서는 특히 코로나19에 대한 집중적인 회고가 나옵니다. 우한에서의 초기 전파 과정, 또 이것이 미국에 상륙하고 나서 노인 요양 시설 등에서 특히 어떻게 퍼졌는지 자세히 설명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취약지대의 감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참고가 많이 되는 부분입니다.
대니얼 벨(p568)이라든가 헨리 키신저(책 서문의 주은래 졉견 일화에 이어 포스트 코로나 관련 코멘트로도 다시 등장합니다) 등은 중국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만 저자는 그들보다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고 저자의 종래 스탠스(다만 역자 홍기빈 박사는 저자를 보수주의자, 현실주의자[국제정치학 스펙트럼 중에서]로 평가합니다. p648)대로 트럼프에 대해서는 평가가 아주 혹독합니다. 저자는 "중국은 팬데믹 억제라는 관점에서 갈수록 무능해지는 미국 민주주의에 비해 우수하다(p585)"라고 하지만 이는 바로 앞 "전지적 감시 체제"라는 평가와 맥락을 잇는다면 반어적 표현에 가깝습니다. 또 대만 한국 등이 상대적으로 병을 잘 통제한다면서 "규모의 비경제"를 거론하기도 하나 어느 나라도 섬이 아니며 결국은 네트워크 속에서 제 기능을 한다는 결론입니다.
저자의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추세적 쇠퇴는 불가피하다고 하며 특히 오바마의 2013년 "세계 경찰 역할 포기 선언"에 깊은 공감을 표시합니다. 책은 2021년에 발간되었지만 집필 시기는 대체로 2020년이었던 듯하며 이 때문인지 "비동맹 시대의 재림" 같은 흥미로운 챕터 중에서 AUKUS나 쿼드 결성 등 최근 사실이 반영 못 된 게 다소 아쉽긴 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예측력을 엿볼 수 있기에 다른 흥미가 생기기도 하죠. 방대한 분량 속에 다채로운 사례들이 제시되며 저자 특유의 명쾌한 진단과 비전도 곳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