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1927
송해.이기남 지음 / 사람의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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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영화가 곧 나온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영화의 tie-in 컨텐츠인 셈인데, 어느 예인이 오랜 동안 이처럼 장수를 누리는 사실도 놀랍지만 "현역"으로 계속 활동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점도 정말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황금 시대의 한 주역이었던 원로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백 세를 넘겨 장수한 적이 있죠.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송해 선생께서도 부디 오래 사시고 계속 활동해 주셨으면 하는 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의 바람이겠습니다. 


예전 연예인분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겠거니 하는 선입견이 있지만 송 선생께서는 해주 음악 전문학교(p14)를 나오셨다고 합니다. 고향은 해주이며 임꺽정으로도 유명한 구월산을 언급합니다(그런데 저 뒤 p247에는 재령이라고 되어 있네요). 지금은 북한 지배 지역이라 우리가 당연히 왕래 못 하지만 사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실향민 중에서도 이처럼 경기도 북부, 강원도 북부, 황해도 출신 분들은 고향을 못 찾는 아쉬움, 답답함이 더욱 클 것입니다. 송 선생의 연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제는 실향민 1세대들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송 선생은 고령이신데도 참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 기력이 좋으니 아직도 현역을 뛰시는 거죠. 인터뷰에서 한국전 당시 LST를 타고 피난 오던 당시의 회고를 하는데 아주 상세합니다. 이때가 1950년 12월이므로 교전 당사국들이 한반도에 거의 다 들어와 있을 때라 혼란상도 극심했고 1.4 후퇴 직전이니 그 결단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겠습니다. 이때만 해도 느닷없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과연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겠죠. 


p50에 재미있는 사항이 하나 나오는데 인터뷰어인 윤재호 영화감독이 종교에 대해 묻자 송 선생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상 종교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송 선생은 어떻게 보면 지금도 행사 MC를 뛰시는 셈인데 행사라는 게 성격상 여러 곳을 다녀야 하죠(물론 <전국노래자랑>은 그런 행사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지상파 방영 프로그램의 위상입니다만). 젊은 시절부터 송 선생은 희극 공연도 하고 많은 행사에 사회를 보셨는데 종교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안 되었겠죠. 


1970년대 후반 아직 TBC가 있었을 때 송 선생은 레코드판도 직접 올리면서 라디오 DJ를 했다고 합니다. <가로수를 누비며>라는 프로그램은 방송국 이름만 바뀌었다뿐 지금도 있죠 아마. p60을 보면 위키리, 이상용 씨 등이 언급되는데 원래 이분들이 전국노래자랑 MC를 먼저 했었으며 특히 가수 위키리(이한필)씨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진행했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은 이분을 먼저 떠올리기도 합니다. 송 선생에 대해서는 MC보다는 KBS 코미디언으로 더 잘 기억하고들 있죠. 이한필씨는 송 선생보다 9살 아래인데도 벌써 타계해서 팬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p65에는 양훈 양석천 명콤비, 김희갑, 배삼룡, 구봉서 등 쟁쟁한 원로 희극인들이 언급됩니다. 


윤재호 감독이 인터뷰어라서 더 두드러지는 점이기도 한데 송 선생 세대 희극인들은 영화를 참 많이 찍었습니다. 아마 당시 정부 차원에서 국산 컨텐츠 진흥책을 편 까닭도 있겠는데 여튼 1960년대에는 흑백 컬러 할 것 없이 코미디언들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참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신성일 김진규 최무룡 등의 정극배우들도 엄청난 다작을 했지만요.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희극인들도 그들이 메인이 되어 제작되는 영화가 (어떤 컨셉이든 간에) 거의 없는 걸 보면 크게 다른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p73 이하에는 두 번째 인터뷰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원로 희극인 방일수, 원일씨가 인터뷰이, 이기남 PD가 인터뷰어입니다. 방일수씨도 송 선생보다는 후배지만 KBS 등의 전통 코미디 프로그램에 같이 나오던 분이었다고 하죠. 원일 씨는 방일수 씨 등 원로 코미디언들이 "개그맨"이란 말을 불편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세대 갈등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아주 민감한 이슈입니다. p84를 보면 방일수씨가 1980년대 후반 코미디 프로그램을 회상하는데 이때쯤이면 송 선생, 방일수 씨 등이 지상파에 거의 못 나올 때입니다. 희극인의 세대교체, 프로그램 포맷의 극적인 변화 때문이었죠. 그런데도 방일수 씨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당시 프로그램에 대해 아주 상세히, 또 애정 어린 투로 회고합니다. 자신들을 다소 배척하는 기미까지 보였던 후배들이 만든 개그 프로그램에 대해 그 의의와 당시 반응을 정확히 회상하며 높이 평가해 줍니다. 저는 책 읽으면서 이 점이 놀라웠습니다. 


p86에는 흑백사진 하나가 나오는데 당대 최고의 MC, 희극인이었던 예명 "후라이보이" 곽규석씨, 이순주씨(이분에 대해서는 책 뒤 p289에 자세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송 선생이 함께 찍힌 쇼 프로그램 스틸입니다. 전성기 기준으로는 송 선생의 위상이 곽규석씨에 비해 한창 못했겠으나 곽규석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요즘 한국의 생활수준, 소득이 훨씬 높아졌으므로 커리어 토탈하여 수입을 비교하면 아마 송 선생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재능은 노력을 못 따라간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확인되죠.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p155 이하에는 송 선생의 따님 인터뷰가 나오는데 부친에 대해 "자기 관리가 치밀하고 굉장히 강한 분"이라는 평을 하십니다. 마당이 있고 수영장에 물을 채우던 아빠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보아 유복하게 자라신 듯합니다. 사실 송 선생의 동년배나 선배 다른 연예인들은 아무리 고소득을 올려도 사업 실패, 사기 피해, 불미스러운 범죄 연루(사기 가해, 간통) 등으로 무대에서 퇴출되거나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송 선생은 그런 점에서도 차별이 되죠. 엄격한 자기 관리는 사회인으로서 최상의 자질이자 덕목입니다. "강한 분"이란 평은 p235의 신재호 악단장의 평가에도 나옵니다. 


사실 개그맨은 콩글리시이기도 하며 선배 세대들이 내세운 "코미디언"이 훨씬 공인을 널리 받은 어휘죠.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개그맨 1세대 중 하나인 김학래씨가 p112에서 합니다. 또 엄영수 씨는 이제 둘 다 코미디언 협회로 통일되었다고도 합니다. 엄영수 씨는 나이 든 세대가 성함을 "엄용수"로 기억할 텐데 최근에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안정적인 톤으로 속사포 개그를 하는, 그 분야에서는 최고였다고들 하죠. 이렇게 말재주가 좋으시니 (단신이면서도) 여성들한테 인기가 좋으셨나 봅니다. 심지어는 지금도. 


"코미디언 중에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대중을 사로잡거나 하는 분이 있는데 송해 선생님은 꾸준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정상에 섰고 노익장까지 과시하며 이제는 국민 영웅이 되었습니다(p120)." 확실히 유명 희극인 중에는 갑자기 특정 TV 쇼가 히트하고 나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들이 많았습니다. 심형래, 주병진, 서세원 등이 그런 천재형이었으며 반면 이경규, 김정식, 유재석 등은 무명기간이 길었죠. 강호동도 물론 천하장사로서 벌써 유명인이었으나 TV 데뷔 후 얼마 안 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다만 메인 MC로 자리잡는 데에는 약간 시간이 걸리긴 했죠. 


송 선생 시절에는 연예인 사이에 군기가 아주 세었으며 본인도 선배들한테 호되게 당하면서 커리어를 쌓으셨을 텐데도 이 책을 보면 후배들한테 다정하게 대해 준다고 합니다. 좋지 못한 전통은 어느 시점에서 끊어져야만 하고 누군가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프로야구 타이거즈 구단도 구타의 폐습을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이종범 선수가 끊었다고 하죠. 꼰대짓, 똥군기는 정말 어느 조직에서건 사라져야 합니다. 엄영수 씨는 송 선생을 두고 "오빠, 형"으로 대하기 편한 분이라고 평합니다. p234를 보면 신재동 악단장의 경우 송 선생을 "회장님"으로도 부를 상황(!)이지만 격의 없는 분이시라 그냥 "선생님"으로 호칭한다고 합니다. 


TBC가 아니라 KBS에서 1970년대 <여로>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이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송 선생은 회고합니다. 정극배우 장욱제 씨(p145)가 저 당시 지적장애인 역을 맡아 대중으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는데 그때로부터 십여 년 후에도 이 연기가 원형이 되어 희극인 심형래, 오재미, 이창훈 등이 모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창훈 씨도 원래 연극배우 줄신이었죠. 


국민희극인, 나아가 국민영웅으로까지 평가 받는 송 선생은 예인으로서의 성취뿐 아니라 사생활 면에서도 만인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영화도 빨리 보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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