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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이수경 지음 / 청년정신 / 2021년 11월
평점 :
아마도 세상에 태어나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나를 진정으로 위해 주고 이해해 주는 배우자 감을 만났을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빠는 만나면 만날수록 진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좋아해 주는 게 고마웠다.(p59)" 처음에 저자는 아주 입담이 좋은 친구 A를 통해 이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선배들을 함께 모시고 나오면서 일종의 집단 소개팅 자리가 되었는데 이분이 원래는 A의 첫사랑이었으나 A에 대해서는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대학생 친구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선배들이어서 다른 친구들은 실망했지만 유독 그분이 저자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셨다니 이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을 겁니다. 확실히 사람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좀 가슴아픈 이야기지만 저자의 어머님께서는 "되도록이면 혼자 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당신의 불행했던 가정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평소에 독신주의자라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는데... "어른들을 공경하는 예의 바른 청년(p62)"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런 사윗감을 데려왔으니 얼마나 좋으셨겠습니까. "한없이 낮았던 자존감이 한껏 올라가는 느낌이었다(p63)."
"아이를 낳았다고 (그냥)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p70)." "낳기만 했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p125)." 여기서 참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이한테 물질적인 보살핌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p69)."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보통 부모 자신이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했으면 그 아이한테는 일종의 보상심리에 의해 지나친 물질 공세를 펴기도 하는데 저자께서는 그 너머의 진실을 이때부터 이미 깨닫고 있었던 거죠. 아무리 부유하게 성장했어도 아이의 정서와 영혼에 탄탄한 기반이 되는 그 무엇이 없으면 반드시 커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탄탄한 직업을 가진 후에도 이런 문제는 어느 단계에서 툭 불거지더군요.
아무래도 부부 사이 금슬이 좋다 보면 아이가 잘 생기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물론 예외도 있고 그런 분들께서는 오해 없으시길요). 둘째까지는 별다른 가족계획 없이도(p71) 적시에 잘 생겼는데, 셋째가 예상치 못한시점에 찾아온 겁니다. "내 영역이 아닌 건 빨리 인정해 버리자.(p103, p186)" 셋째가 생기는 동안 그간 가정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부군께서는 모르긴 해도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신 듯합니다. 저자님은 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자격증을 따려 했던 건데, 남편께서는 상의 없이 큰 돈을 쓴 아내분한테 크게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평소 육아나 어른 모시기에 모두 지극정성이었고 웬만하면 아내분께 양보를 하고 살아온 분이, 이런 큰 실망을 갖게 되자 무섭게 화를 낸 겁니다. "한 번 터지니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했다(p89)" 언제나 그렇죠. 여튼 두 분 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분들이라 싸움은 비록 크긴 했으나 봉합이 되었습니다.
이 책 곳곳에는 그 아버님을 향한 원망 어린 회상이 자주 나옵니다. 이런 환경에서 미처 겪지 않아도 되었을 그 많은 아픔과 괴로움이 아버님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찌 서운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세월도 많이 자났으며, 원망이 원망으로 남으면 결국 내 마음에만 깊은 상처가 생깁니다. "자녀를 기르며 자녀로 인해 울 수는 있어도 자녀가 부모 때문에 눈물 짓게 해서는 안 된다(p127. 서형숙 <엄마학교>에서 재인용)" 저자께서는 "나를 위해서 이제는 그냥 아버지를 용서하고 놓아 드리자"고 하시지만 사실 이는 자녀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성들만 질투가 나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를 보면 남자아이들도 샘을 내고 불편히 여기고 저녀석 망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웹툰 <질투와 부러움>의 대사를 인용(p133)하며 이 미묘한 감정, 즉 롤모델이 되어야 마땅한 잘난 지인에 대한 양가감정을 논합니다. 어떤 아이이든 다 이런, 다소는 까다롭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자는 현재 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어려서 그리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건, 저자께서 솔직히 털어놓으시는 것처럼 그저 물질적으로 부족했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 커서도 내내 남기 쉬운 피해의식, 낮은 자존감, 열등감 같은 게 더 큰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를 훌륭히 극복해 내시는 분들도 (많지는 않지만) 계시고, 이런 분들을 보고 우리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더 아프고 더 회복 가능성이 낮은 다른 병을 앓는 환우들(p160, p190)을 보며 자신이 처한 곤경 역시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이라는 겸허한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제 이 책 제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람은 결국 환경이 어떠하든 간에 마음의 평온을 찾고 주어진 자원으로 어떻게 미래를 대비할지 실속 있는 계획을 품고 그로부터 미래를 향한 희망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저자는 스스로 반성하기를 자존감을 낮게 가지고 스스로를 괜히 책망하며, 자신을 남들 하는 것보다 덜 사랑했기에 면역 체계가 탈이 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p184). 즉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았다"는 거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간혹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도 합니다만, 그들은 실제로 자신을 바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자신을 학대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마침 면역력이 그 방역에 관건이 되는 코로나 19(p170)가 우리를 위협하는 시국이며 이런 병이 찾아온 것도 세상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이치가 깃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의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말입니다(p184).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p200. 찬송가 가사)" 종교를 떠나 이 노래가 그토록 사랑받는 건, 평범한 듯보여도 그 안에 생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우리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깊은 진리를 잘 표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고 저자께서도 셋째를 가졌을 때 부부 사이가 그리 좋지도 않은 이 시점에 얘가 온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구절도 책에 나옵니다.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와, 부모님과, 혹은 자녀와 다투고 괴롭다면 이 책을 읽어 보고 "별은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p218)"라는 저자의 말씀을 곱새겨 봤으면 좋겠네요. 정말 마음이 숙연해지는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