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힘껏 산다 -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도 단단한 삶에 대하여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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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가꾸는 일은 하나의 생명을 아름답게 피워내는 목적뿐 아니라, 그를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연 속을 거니는 동안, 식물을 돌보는 동안 감각이 섬세하게 살아난다(p43)." 식물을 돌보는 마음은, 어쩌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하나의 본능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상에 식물이 먼저 나오고 다음에 동물이 그를 바탕으로 살게 되었기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떠나, 인간의 마음 한편에는 심미적 목적 외에는 별 쓸모도 없는 아름다운 꽃을 돌보는 것 같은, 뭔가 식물을 그 자체로 아끼고 사랑하는 심성이 분명히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 정재경 대표는 미디어 종사자이자 경영인이며 월간 <샘터>(한국에서 아주 오래된 잡지 중 하나죠. 고 김재순 국회의장이 창간한)에 글을 정기적으로 써 온 필자라고 나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가 수시로 확인하게 되는 점은, 식물을 가꾸는 일과 글 쓰기 작업이 매우 닮은 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p63 같은 곳을 보면 200종의 식물을 가꾸며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이 기쁨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는데, 수단이 특정 목적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려면 둘이 닮은 데가 그만큼 많아야 합니다. "다음 책을 쓰지 못할 것 같았던 나는 어느새 여섯번째 책을 쓰고 있다(p67)." 식물을 돌본다는 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글쓰기와 긴밀하게 연결된 듯합니다. 

"꽃은 어디서도 피울 수 있다(p118)." 이 말은 철쭉을 염두에 두고 쓰신 글의 제목인데, 수종에 따라 물론 차이가 크겠으나 어느 정도는 식물 전반에 통하는 말입니다. 물론 어떤 꽃은 대단히 까다로워 여간 정성이 기울여지지 않고서는, 또 특정 기후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도무지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사람이 갖은 정성을 다 쏟을 때 희한하게도 의외의 경우에 그 정성에 보답하듯, 내 마음을 비로소 알아주듯 그 술을 열어 보여 주는 게 또 꽃입니다. 저자는 이 글에서 어떤 시련을 이겨내고 주위 보란 듯 꽃을 피워낸 사례 여럿을 소개하며, "병이 들어도 이겨내며 더 예쁘게 피는 철쭉꽃(p123)"의 이치가 사람 사는 세상에도 비슷하게 통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식물에게 험한 말을 하면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양 시들시들 죽는다고도 합니다. 이미 죽은 식물은 집 안에 두면 좋지 않기에(p136. 사실 저는 이 사실도 신기합니다), 서둘러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놓으려 했는데, 뜻밖에 살아나 새로 돋는 싹을 보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들 인간의 생리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짚습니다. 세로토닌이 샘솟는 삶을 지향하는 트렌드가 요즘 부쩍 유행이듯, 사람도 태양 아래 신선한 활기를 맛보고 쪼여야 다시 원기를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식물이란 본래가 태양광선을 자양 삼아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존재입니다만, 이 이치가 동물, 나아가 사람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때아닌 봄 장마(?)를 맞아 우리들 모두가 기분이 우울한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킨답서스를 보고 저자는 (그게 무엇이든) 매일매일 꾸준히 이어가는 일의 가치를 되새깁니다. 물론 저자는 본업이 글쓰기인 만큼 글쓰는 일에 이 이치를 먼저 적용합니다. "쓰기는 자기를 객관화하는 도구이다(p166)." 매일매일 무엇을 쓰다 보면 그만큼 마음도 단단해지고 나의 영혼도 더 맑아지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이렇게 단단해진 마음으로부터 그를 드러내보이는 눈빛도 더 강해지는데, 사람 심지의 단단함이 눈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도 생각해 보면 신기합니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있 너무 가까이하면 좋지 않다는 자작나무(p174). 글쓰기도 비슷한 생리라서 계속 자라지 못하면 어느새 사라진다는 일종의 강박이, 글쓰는 분들에게는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마치 자녀를 돌보듯, 슬슬 아파 보이면 붇돋워주고 돌보는 게 습관화하면, 마치 버려진 싱고니움이 꽃을 피우듯, 우리네 삶도 포기 없이 정성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데서 어떤 보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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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조경란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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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벌써 47회를 맞은 이상문학상은 한국에서 가장 큰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계의 영예 중 하나입니다. 물론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같은 상들도 있고 역사도 더 오래되었지만,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의 이지적인 표정을 담은 초상이 새겨진 저 표지부터 해서 독서인들에게는 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1987년 이문열 작가가 <우리들의...>로 대상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상문학상은 물론 그전에도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2>, 최일남의 <흐르는 북> 등으로 거물 작가들의 명작을 캐치하여 한국문학사의 여정을 기념했었으나 저 수상작을 낸 후 대중에게 선명한 인상을 더 굳힌 듯합니다. 

대상수상작인 조경란의 <일러두기>는 서사만 따라가자면 힘없는 우리 서민들의 아무 특별할 것 없는 팍팍한 일상 속에 찌들고 시들어가는 영혼이, 지푸라기 같은 사소한 빌미에 또다시 실망스럽게 파닥거리다 주저앉는 서글픈 풍경을 담은 것 같으나, p78에서 손정수 평론가가 지적하듯 "일러두기"라는 제목에서 시사받는 파라텍스트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의미가 와 닿는 깔끔한 작품입니다.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다는 건 극중 미용이나 재서 또래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사정입니다. 혹 안다고 해도, 여고에서 여학생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행해졌다는 것까지는 또 모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여주인공 이름이 "미용"이라는 데서부터 뭔가 불안했고(?), 이분이 그 이름도 복잡한 맥아대방법으로 재서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서 더 불안해졌습니다. 맥아대건 뭐건, 이분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세상 천지에 쓰잘데없을 것 같던 맥아대방법을 교련 시간에 배워 수십 년만에 자신을 그리 마뜩지도 않아하는 이웃 아저씨의 (어처구니없이 벌어진) 사고로 다친 팔을 치료하는 데 쓴다... 무엇이건 그 쓸모가, 그것도 수십 년만에 비로소, 묵은 장롱발 밑에서 뭐가 나오듯 밝혀진다면 무릎을 치며 후련해하는 게 맞는데, 재서부터도 신세를 지고도 그리 반기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재서가 팔을 다치고, 그 다침의 경위와 의미를 희한하게 정리하는 모습도 당황스럽습니다. 이 모든 그들의 꼬인 반응은, 난외에서 국외자를 가이드하는 "일러두기"가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겠는데... 이해가 일단 된 후에도 뭔가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재서와 미용에게는 더 씁쓸하겠으나 이건 뭐 이미 그들도 다 익숙해진 현실입니다. 

올해판에는 다른 작가들의 다섯 우수작이 함께 실렸습니다. 여객기에 탑승하여 사고로 죽거나 다칠 확률은 길을 걷다가 벼락에 맞을 가능성보다 낮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왜 일반인들은 항공기여행이 여전히 위험하다고 믿는 걸까요? 2001년 9월 11일 터진 사건(p137)은 당시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사람은 어쩔수없이 터진 사고보다 이미 전조(p138)가 보였던 재난에 대해 더 큰 미련을 갖습니다. 여객기 사고는 워낙 유명한 게 많아 사람들은 이를 마치 하늘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계시하는 양 착각하지만 누군가가 들판을 걷다 당한 낙뢰사고는 보도도 안 되고 관심도 없습니다. 차르 봄바(p155)의 성공 이래 인류 평화를 지탱하는 요소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상호확증파괴(MUD. p159)뿐입니다. 팍스 아토미카의 이상한 평화도 평화는 평화이니 활주로 위에 선 우리는 고마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선의만 선의가 아니니 말입니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예전 노래 <Just the two of us>라는 게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제목 중 two 앞에 the가 붙기까지 했는데 그만큼 너와 나 둘뿐인 이 관계가 특별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박솔뫼의 이 단편에는 알렉스, 애리, 우진, 강주, 보훈 앵무새까지 참 많은 이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서양 속담에 Two is a company, three is a crowd라는 게 있습니다. 두 사람만의 관계는 그게 무엇이든 제3자의 개입과 교란 없이 무탈하게 이어지기가 어렵습니다. 한 길도 안 되는 사람 마음 안에 그만큼 전 우주보다 복잡한 파동과 이해관계가 요란하게 얽히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란, 그 무엇의 것이건 연구 대상이 맞습니다. 

"이렇게 어리고 예쁜데 왜 애인이 없을까(p235)."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관계를 잘 맺는 비결은 다른 데 있고 누구의 경우 몇으로 일반화도 못 합니다. 설령 가까운 사이라 해도 비번까지는 잘 공유하지 않으며, 나진이 멀쩡한 가슴을 떼어낸(p239) 것도 부모 잘못 만난 탓이 물론 아닙니다. 시험, 시험... 미형을 시험해 보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나진은 바로 눈치챕니다. 마지막에 "좋은 분"이라며 나진이 결론짓는 건 누구보다 아버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양념이 타지 않도록 고기를 잘 뒤집는 것(p271)도 기술이 필요하듯, 사람이 사람을 편하게 하는 건 확실히 어떤 기술, 꼬이지 않은 진심이 필요합니다. 인위적으로 생성된 관심은 재해석(p185)을 거칠 것도 없이 바로 비수로 화하여 나o위키 같은 공개처형장에 박제되기 일쑤이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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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 믿음과 우연 학아재 모노그라프 2
김명석 지음 / 학아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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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은 엄밀하게 객관성의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개 중2때 정도에 배우는 경우의 수, 확률(probability)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께서는 확률에 객관과 주관이 혼재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말한 저 확률에 대해서는, 저자가 영어로는 chance로 한정하고, 우리말로 "일어남직함(p13)"으로 번역합니다. 저 확률은 주로 물리적 사건을 다룹니다. "사건"이라는 말은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정식 용어로 사용합니다. 

특히, 주관이 많이 끼어들어가는 확률은 명제를 다루는 확률입니다. 저자는 책 처음부터, 물리사건을 다루는 확률과, 명제를 다루는 확률은, 서로 매우 다르다고 전제하고 이 책 논의를 시작합니다. 독자는 먼저 이 점부터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또, 명제를 다루는 확률은 "일어남직함"과 대비하여 "믿음직함"으로 이름짓습니다. 이 책은 주로 명제의 "믿음직함"에 대한 논의입니다. 

명제의 진릿값에 대해서는 고1, 혹은 중2 정도에 약간 배우기 시작합니다. 어떤 명제는 참 아니면 거짓의 값을 가집니다(아니라면, 그건 명제가 아니라고 고교에서는 가르침). x값에 무엇을 대입하느냐에 따라서 참 혹은 거짓이 되는 걸 조건명제(혹은 명제함수)라고 합니다. 명제함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x에 어떤 값을 대입하니 참 또는 거짓, 두 함숫값 후보(=치역의 원소들) 중 하나가 딱딱 나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게 중등교육 과정에서 배웠던 명제인데,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사실 칼로 두부 자르듯 획일적으로 가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1+1=2 같은 건 판별이 쉽습니다. 그러나 예컨대 칸트의 "네 의지의 격률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게 하라"라든가, 헤겔의 "국가는 인륜의 최고 형태" 같은 건, 참과 거짓을 가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참보다는 거짓에서 훨씬 멀겠으나, 1+1=2만큼이나 참이라고는 단언이 어렵습니다(그래서 비트겐슈타인도 생전에 결국 나가떨어졌던 것입니다). 심지어 수학적 진리인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도 의심하여, 아니라면?을 전제하고 전개, 구축하는 로바쳅스키 기하학, 리만 기하학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참과 거짓 사이에 여러 중간값이 있다고 가정합니다(현실적이죠). 거짓이 0이고 참이 1이라면, 그 사이에 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여러 실숫값이 있습니다. 이 모습부터가 벌써 기존 확률과 닮았고, 게다가 그에 부가되는 여러 정리(특히 p54, p55 등에 나오는 것들)까지 기존 확률론의 구조, 공리와 신기하게도 부합합니다. C04 같은 경우,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우는 집합론에서의 n(A∪B)=n(A)+n(B)-n(A∩B)하고 사실 완전히 똑같은 내용입니다. 또 책 중반부 이하에 나오는 조건부 확률(=베이지언 확률)도 우리가 고2때 배웠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여튼 그래서 이 체계도 포괄하여 probability라 부르는 건데, 다만 (앞서 말했듯) 저자께서는 두 확률은 성격이 매우 다르기도 하다고 간주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물리사건을 다루는 있음직함과, 명제를 다루는 믿음직함은 서로 교차하는 부분이 어디인가? 대표적인 게 양자역학 현상의 역설(과연 역설인지 아닌지 모릅니다만)로 알려진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것입니다. 저자께서는 이미 전작 <엔트로피>에서 이 이슈를 논했었는데,  물리 현상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확률분포의 구조"를 끌어들인 데서 혼란이 일어났었고, 아직도 평범한 두뇌로는 이 미묘한 아이러니가 쉽게 납득이 안 됩니다. 내가 저 빛을 보는 순간, 그 입자의 위치가 결정된다? 주관과 객관, 믿음과 실재가 복잡하게 얽혀 혼재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자께서는 믿음직함과 일어남직함이 서로 다르다고 말씀하시지만, 거꾸로 독자인 저는 둘이 너무도 닮았으며(사실 당연한 게, 혹 아니라면 왜 둘 다 "확률"이겠습니까?), 심지어 p196 이하에서 저자가 새롭게 설명하는 몬티 홀 프라블럼도 이 관점으로 보니 다른 뜻으로 다가왔습니다. 답이 너무도 뻔한데, 왜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제법 똑똑하다는 사람들조차)이 오답을 내었을까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주관과 객관을 혼동해서입니다. 정답은, 바꾸는 편이 맞다이지만, 왠지 마음이 그러고 싶지 않게 흐르는 게 이 희한한 문제에 들어 있는 요소입니다. 또 사회자가 "답을 안 상태에서 문을 하나 열고" 이제 인식 상황이 바뀌었으니 베이지언을 적용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p200)도 칼날같이 예리합니다. 물론 몬티 홀 문제는 이미 바른 풀이가 많이 나와 있는 상태이며 난제도 뭣도 아니지만, 저자의 이런 논의 속에서 다시 보니 또 새로운 것입니다. 

p307에서 저자는 기존 "대칭성"에다 새 이름 "한결의 원리"를 준다고 하시는데 왠지 저도 이 편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p313에서 마침내 저자가 단언하듯, 일어남직함과 믿음직함의 결정적 차이는 동역학을 따르고 않고의 여부입니다. 독자들이 깊이 음미하고 되새길 묵직한 명제(?)이며, 매우 난해한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 주신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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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단어
홍성미 외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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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을 보면 필자께서는 영화 <인턴>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미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인데도 권위의식 없고, 딸뻘보다 어린 CEO 밑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며 수행하는 인턴사원. 요즘은 사실 은퇴자들이 어디 가서 꼰대질하지 않고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도 꼬박꼬박 존대하며 자기 할 일 열심리 합니다. 물론 젊은 시절에도 후졌던 사람은 늙어서라고 뭐 멋진 모습이 나오겠습니까만. 사회가 선진화하다 보니 사람들도 그에 맞게 매너 좋아지고 세련되고 감정보다는 이성을 더 찾아가는 것입니다.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자신은 과연 남에게 요구하는 그 덕목을 본인에게 관철하는 중인지를 먼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p63)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검색 한번 해 보고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얄팍하고 단편적인 지식 몇 점을 갖고 잘난척하는 건 그야말로 우습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보다 근본적인 걸 꿰뚫을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건데... 문제는 정말로 지식도 지혜도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무식해서 아무 가망도 없는 사람이, 대책없이 자기중심적(p67)이기까지 해서 지식 없는 자신에게 지혜는 누가 자동으로 채워 준 것처럼 날뛴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지식을 쌓아 보려고 노력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은, 그 정신에 지혜도 대단히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면 제 입으로 지혜니 뭐니를 떠들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만 할 뿐입니다. 내가 부족하다 싶으면 조용히 인정(p155)하고, 불평할 시간에 자기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숫자의 미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아홉수(p47)라는 게 있을 리도 없고, 나이 계산을 무슨 기준으로 하는지도 정해진 게 아닌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그 구간으로 볼지도 모호합니다. 아홉수를 잘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운수대통하기라도 하나요? 예전에는 질병, 천재지변에 워낙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기에 사방팔방에서 죽음에의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렇겠습니까.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살다 죽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생의 구간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건 좋다는 생각입니다. 

처음에 좋았던 인연이 계속 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못 될 가능성도 큽니다. 아니 뜻대로 안 되기가 훨씬 흔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처음에야 못 견딜 만큼 아프고 괴롭겠지만, 겪다 보면 그런대로 참을 만합니다. 그래서 필자님도 p135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면역력이 생긴다 같은 말을 하시는 거겠습니다. p138에서 인용된 영문에서 if 조건절의 would는 소망, 희망을 뜻하는 용법이겠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사실 쓰레기 봉투라는 게 그렇게 튼튼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조금 욕심을 부리면 북 찢어집니다. 매번 겪으면서도 겪을 때마다 뭘 좀 배우지 못하고 매번 봉투를 찢습니다. 여기서 필자가 끌어내신 교훈은, 내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믿는 행동을 너무 고집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냥 남들 따라하는 행동은, 시도해 보고 결과가 안 좋으면 그냥 단념합니다. 그런데 내가 내 나름 애 써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인데 남들이 수용 안 한다? 이럴 때는 내 생각에 애착이 생겨서 계속 고집하는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내 나름의 정의감(p146)까지 붙으면 대책이 없어집니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남들한테도 정의이겠는지, 나한테 뭘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한테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남 욕하지 말고, 저런 행동을 나는 하지 말아야지 자성이 앞서야 하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나이가 젊은 분들도 난임으로 고생하시곤 합니다. 어려운 시도 끝에 임신에 드디어 성공하셨는데, p206을 보면 이상하게도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마음이 편안하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세상사(世上事)는 우리가 이해 못 할 신비한 일들이 많습니다. 태어날 때 여러 가지로 걱정했는데, 지금은 또래보다 키도 크고 건강해서 너무도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네요. 이런 일은 생판 남이 읽어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네 분의 필자가 아홉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로 본인들의 사는 이야기에서 잔잔한 교훈을 도출하는 책인데, 공감되거나 흐뭇해지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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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공부 수학문해력 하나로 끝난다 - 초등학교 4학년, 수포자가 되는 이유
김은정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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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도 잘 생각해 보면 대략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공부에 고비가 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과목보다 수학이 더 발목을 세게 잡았는데, 계산도 어려워지고 개념도 뭔가 더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원하는 전공을 이어나가려면, 수학을 못 해서는 선택의 폭이 크게 좁아지며, 취업 후에도 직장에서의 위상이 안정적이기 힘듭니다. 따라서 초 4 때 이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해 내느냐가 아이의 장래를 보다 밝게 진행하게 돕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과목을 암기로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과학도 일부 과목은 그저 암기 훈련으로 바뀐지 오래이며, 심지어 수학도 암기 과목(p32)이 되곤 합니다. 물론 저자께서도 수학에 전혀 암기가 필요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중3 때 배우는 근의 공식도, 고1 때 배우는 코사인 법칙도, 고2 때 배우는 삼각함수의 합성이나, 합을 곱으로 바꾸기도, 올림피아드 기하 할 때 배우는 메넬라오스 정리도 모두가 다 암기입니다. 그러나 수학은 기본적으로 창의럭과 상상력을 요하며, 저런 공식들은 문제를 풀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것이지, 영단어나 세계지리 자원 매장지 외우듯 외우는 사항은 아닙니다. 이유도 모르고 뭘 외우는 일만큼 생지옥살이도 없겠는데, 수학은 본디 문제를 풀고 환희를 느끼는 활동이어야 하므로 뭔가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p148 이하에는 자기 주도 학습의 본질과 효과에 대해 설명이 이어집니다. 

p94 이하에서 저자는 수학 교육 과정에서 무엇이 인재, 학생들의 정신에 배양되어야 하는지를 논합니다. 교육부에서 정한 "수학적 사고"에는 내용적 사고와 기능적 사고가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 보면 과연 이런 자질을 갖춰야 수학을 잘하게 되겠구나 싶은 항목들입니다. p98에서 저자가 강조하듯이, 수학은 남한테 이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혼자 힘으로,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그 핵심이 놓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빛나는 창의력이나 순발력뿐 아니라 인내심(p103)도 배울 수 있습니다. p97에서 저자는 장연희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아무 생각 없이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어내는 게 아니라, 생각, 제발 생각이라는 걸 하며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수학은 대단히 복합적인 정신 작용을 요합니다. 개념과 논리도 잘 활용해야 하지만, 직관도 중요합니다. 직관이 슬슬 무력화하는 것도 초4때부터입니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항상 같다는 원리를 두고 옛 사람들은 "바보가 건널 수 없는 다리"라고 불렀습니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을 것 같지만, 원에 접하는 어떤 선과 현이 이루는 각, 그리고 그 현의 원주각이 같다는 정리는, 그게 과연 옳다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또, 몬티 파이톤의 역설은, 일일이 경우의 수를 안 따지고도 "바꾸는 편이 유리하다"는 걸 (영화 <21>에서 주인공이 말하듯) 직관적으로 바로 알아챌 수는 없을까요? p88에서 저자는 개념, 직관 등을 두루 키워 궁극적으로는 수학적 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는 수학문해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습니다. p66 이하에서 저자는 "왜 수학 선생님이, 국어도 아니고 수학에서 독해력, 문해력을 강조할까?"라고 물은 후, 류승재 저자의 책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언어능력이 또래보다 2년 이상 뛰어난 아이들이, 수학 선행 능력, 심화 능력이 모두 뛰어나며, 1년 뛰어난 아이들도 선행 능력은 뛰어나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언어와 수학의 자질이 실은 매우 밀접하게 이어져 있으며, 저 문장을 잘 읽어 보면 역시 심화능력이 선행능력보다는 더 뛰어나고 중요한 자질임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선행능력과 심화능력도 구분하지 않는데, 그래서 아이가 이해를 하든 못 하든, 진도만 빠르게 빼면 일단 안심합니다. 이건 분명 큰 착각인데, 책 곳곳에서 저자께서는 일반인들의 이런 잘못된 통념을 비판합니다. 문제 인식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아이의 수학 실력이 개선될 리가 없습니다. 

"수학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몰입이다. 수학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 습관, 손가락으로 하는 것이다.(p139)" 저자가 인용한 이 문장들은 어느 사교육업체의 카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올바른 수학 교육의 핵심이 다 담겼다고 합니다. 수학을 잘하는 게, 타고나면서부터 머리가 좋은, 프리드리히 가우스나 앙리 푸앙카레나 폰노이만 같은 천재들에게만 가능하다면 우리들 대부분은 그냥 마음편하게 일생을 수포자로 살기로 하고 일찌감치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학은 길만 바르게 접어들면 누구나 잘할 수 있고, 수학의 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 세상도 더 개선되므로, 오히려 어린 학생들에게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수학 공부를 가르치는 게 의무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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