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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조경란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4년 4월
평점 :
올해 벌써 47회를 맞은 이상문학상은 한국에서 가장 큰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계의 영예 중 하나입니다. 물론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같은 상들도 있고 역사도 더 오래되었지만,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의 이지적인 표정을 담은 초상이 새겨진 저 표지부터 해서 독서인들에게는 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1987년 이문열 작가가 <우리들의...>로 대상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상문학상은 물론 그전에도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2>, 최일남의 <흐르는 북> 등으로 거물 작가들의 명작을 캐치하여 한국문학사의 여정을 기념했었으나 저 수상작을 낸 후 대중에게 선명한 인상을 더 굳힌 듯합니다.
대상수상작인 조경란의 <일러두기>는 서사만 따라가자면 힘없는 우리 서민들의 아무 특별할 것 없는 팍팍한 일상 속에 찌들고 시들어가는 영혼이, 지푸라기 같은 사소한 빌미에 또다시 실망스럽게 파닥거리다 주저앉는 서글픈 풍경을 담은 것 같으나, p78에서 손정수 평론가가 지적하듯 "일러두기"라는 제목에서 시사받는 파라텍스트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의미가 와 닿는 깔끔한 작품입니다.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다는 건 극중 미용이나 재서 또래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사정입니다. 혹 안다고 해도, 여고에서 여학생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행해졌다는 것까지는 또 모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여주인공 이름이 "미용"이라는 데서부터 뭔가 불안했고(?), 이분이 그 이름도 복잡한 맥아대방법으로 재서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서 더 불안해졌습니다. 맥아대건 뭐건, 이분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세상 천지에 쓰잘데없을 것 같던 맥아대방법을 교련 시간에 배워 수십 년만에 자신을 그리 마뜩지도 않아하는 이웃 아저씨의 (어처구니없이 벌어진) 사고로 다친 팔을 치료하는 데 쓴다... 무엇이건 그 쓸모가, 그것도 수십 년만에 비로소, 묵은 장롱발 밑에서 뭐가 나오듯 밝혀진다면 무릎을 치며 후련해하는 게 맞는데, 재서부터도 신세를 지고도 그리 반기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재서가 팔을 다치고, 그 다침의 경위와 의미를 희한하게 정리하는 모습도 당황스럽습니다. 이 모든 그들의 꼬인 반응은, 난외에서 국외자를 가이드하는 "일러두기"가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겠는데... 이해가 일단 된 후에도 뭔가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재서와 미용에게는 더 씁쓸하겠으나 이건 뭐 이미 그들도 다 익숙해진 현실입니다.
올해판에는 다른 작가들의 다섯 우수작이 함께 실렸습니다. 여객기에 탑승하여 사고로 죽거나 다칠 확률은 길을 걷다가 벼락에 맞을 가능성보다 낮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왜 일반인들은 항공기여행이 여전히 위험하다고 믿는 걸까요? 2001년 9월 11일 터진 사건(p137)은 당시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사람은 어쩔수없이 터진 사고보다 이미 전조(p138)가 보였던 재난에 대해 더 큰 미련을 갖습니다. 여객기 사고는 워낙 유명한 게 많아 사람들은 이를 마치 하늘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계시하는 양 착각하지만 누군가가 들판을 걷다 당한 낙뢰사고는 보도도 안 되고 관심도 없습니다. 차르 봄바(p155)의 성공 이래 인류 평화를 지탱하는 요소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상호확증파괴(MUD. p159)뿐입니다. 팍스 아토미카의 이상한 평화도 평화는 평화이니 활주로 위에 선 우리는 고마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선의만 선의가 아니니 말입니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예전 노래 <Just the two of us>라는 게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제목 중 two 앞에 the가 붙기까지 했는데 그만큼 너와 나 둘뿐인 이 관계가 특별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박솔뫼의 이 단편에는 알렉스, 애리, 우진, 강주, 보훈 앵무새까지 참 많은 이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서양 속담에 Two is a company, three is a crowd라는 게 있습니다. 두 사람만의 관계는 그게 무엇이든 제3자의 개입과 교란 없이 무탈하게 이어지기가 어렵습니다. 한 길도 안 되는 사람 마음 안에 그만큼 전 우주보다 복잡한 파동과 이해관계가 요란하게 얽히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란, 그 무엇의 것이건 연구 대상이 맞습니다.
"이렇게 어리고 예쁜데 왜 애인이 없을까(p235)."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관계를 잘 맺는 비결은 다른 데 있고 누구의 경우 몇으로 일반화도 못 합니다. 설령 가까운 사이라 해도 비번까지는 잘 공유하지 않으며, 나진이 멀쩡한 가슴을 떼어낸(p239) 것도 부모 잘못 만난 탓이 물론 아닙니다. 시험, 시험... 미형을 시험해 보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나진은 바로 눈치챕니다. 마지막에 "좋은 분"이라며 나진이 결론짓는 건 누구보다 아버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양념이 타지 않도록 고기를 잘 뒤집는 것(p271)도 기술이 필요하듯, 사람이 사람을 편하게 하는 건 확실히 어떤 기술, 꼬이지 않은 진심이 필요합니다. 인위적으로 생성된 관심은 재해석(p185)을 거칠 것도 없이 바로 비수로 화하여 나o위키 같은 공개처형장에 박제되기 일쑤이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