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해커스 산업안전산업기사 필기 필수이론 + 최신 기출문제 - CBT 모의고사ㅣ최신 출제기준 반영ㅣ산업안전산업기사 무료 동영상 강의
이성찬 지음 / 해커스자격증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도 각종 기사/산업기사 시험이 인력공단 주최로 시행될 예정입니다. 지금 이 교재는 산업안전 직렬 산업기사 시험 대비를 위한 교재입니다. 따라서 2년제 대학 해당 전공을 마친 이라면 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산업기사 시험 대비를 위한 책이므로 혹시 기사 시험 교재가 필요한 분들은 다른 책을 찾아 봐야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해커스 교재는 기사-산업기사 책이 한 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이처럼 기사 대비서와 산업기사 대비서가 별개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시중에 나오는 산업기사 수험서는 이렇게 두껍지는 않은데, 해커스 책들이 수험생들의 단권화 수고를 덜어 주려고 내용을 망라적으로 담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산업기사 책이다 보니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게 무척 중요하며, 이 교재는 필수이론과 2020~2023의 4년간 기출문제가 실렸습니다. 2021년부터는 완전히 CBT로 전환되었습니다. 

1차 필기에서는 모두 다섯 과목 시험을 치릅니다. 산업재해예방및안전보건교육, 인간공학및위험평가관리, 기계기구및설비안전관리, 전기및화학설비안전관리, 건설공사안전관리 등 다섯 과목이며 이 교재도 그에 따라 필수이론이 편집되었습니다. p16을 보면 5주 플랜, 3주 플랜 두 경우가 수험생들을 위해 제시됩니다. 아무래도 파트4, 즉 전기및화학설비안전관리 과목이 분량이 가장 많고 또 내용도 어려운 편입니다. 5주, 3주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기출문제의 반복 풀이입니다. 산업기사 시험이라서 그렇습니다. 

p95를 보면 매슬로우의 동기부여이론이 설명됩니다. 특히 산업안전직렬에서는 허즈버그의 동기-위생 이론이 자주 출제되는 편이죠. 위생요인이란, 동물적인 욕구가 반영된 것이며, 동기요인이란 인간 특유의 욕구, 즉 자아실현과 관련된 것을 뜻합니다. 교재에는 이 외에도 키스 데이비스 인간행동이론(유명한 고전이죠)에서 연유한 동기부여이론, 즉 지식과 기능을 곱해 능력이 나온다는 이른바 KSA 공식 같은 것이 일목요연하게 소개됩니다. p105를 보면 휴식시간의 산출 공식이 나오는데 분당 평균에너지 소비량에서 5를 빼고, 이에 60을 곱한 후(1시간이 60분이므로), 이것을 다시 (E-1.5)로 나눈 것입니다. 이 공식은 작업강도에 따라 몇 가지로 변형되기도 합니다. 

p142를 보면 OJT와 Off JT의 개념을 나눠 가르칩니다. 이 개념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나눠 외우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파트 투로 넘어가 p183을 보면 정량적 표시장치, 정성적 표시장치가 설명되는데 잘 정리된 표와 함께 그래픽이 제시되어 수험생 입장에서 이해가 편합니다. 필수이론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적중문제 세트가 이어지는데, 예를 들어 p222에서는 인체계측, 근골격계질환예방관리 내용을 설명한 후 모두 50개의 문제가 나옵니다. 문제 바로 밑에 답이 나오며 해설도 이런 교재치고는 비교적 자세한 편입니다. 이미 본문에서 이론을 충분히 자세히 설명했지만, 예를 들어 p231 49번 문항을 보면 답은 선지 ④인데, RULA, REBA, OWAS, NLE 등이 다시, 이 문제의 바른 풀이에 알맞게 재편집되어 이론설명됩니다. 이런 점이 좋았습니다. 

파트2에서 또 잘해둬야 하는 내용이, 결함수분석법(缺陷樹分析法. fault tree analysis)입니다. 줄여서 FTA라고도 하는데 고장, 재해 등의 발생요인을 FT 도표에 의해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 사상기호, 논리기호표가 나옵니다. p283을 보면 논리합, 논리곱이 설명되는데, 논리합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또는"으로 연결된 것이며 플러스 연산으로 처리합니다. 논리합은 그 반대로,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들이며 그 확률은 곱하기 연산으로 처리합니다. p332의 19번 문제를 보면, 기계설비 방호장치의 종류가 표를 통해 제시되는데, 격리형, 접근반응형, 접근거부형, 포집형의 네 가지가 역시 표를 통해 설명되며, 눈에 잘 들어오게, 또 실전 문제와 어떻게 연계되어 출제되는지가 잘 파악되는 편집이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p568을 보면 가스의 구분법이 설명되는데 이게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참고라고 박스가 쳐진 내용 중 최소발화에너지(단위는 밀리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이 나오는데, 아세톤, 벤젠, 암모니아, 에틸렌 등의 발화량은 기사 시험 같으면 필수로 암기가 되어야 하는 내용이겠습니다. p585를 보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D)의 작성항목에 대해 묻는데, 여기서도 16개 사항에 대해 깔끔하게 잘 짚어 놓았네요. p708에는 안전난간 설치요령이 그림과 함께 제시되는데 세부 부위와 항목이 비교적 친절하게 매칭되어서 제가 전에 봤던 타 교재에 비해 머리에 잘 들어왔습니다. 

책 맨앞에는 별책으로 잘라서 휴대할 수 있는 족집게 핵심요약노트가 딸려 있어 수험기간 마지막을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런 점도 만족입니다. 보통 산업기사 시험 교재에는 이렇게들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시 해커스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모든 과학 - 빅뱅에서 미래까지, 천문학에서 생명공학까지 한 권으로 끝내기
이준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의 과학 교육은 좀 딱딱한 형식을 유지하며, 지나치게 문제 풀이 위주라는 점이 지적됩니다. 본래 과학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며, 의문이 탐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될 때 학생의 과학적 사고가 자리잡고 향상됩니다. 그래서 과학책은 이런저런 의문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제기해야 하고, 타당한 해답을 수학적, 과학적 근거를 대며 제시해야 합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성인 독자 입장에서도 과학에 대한 흥미가 절로 생기며, 당장은 큰 현실적 이익이 생기지 않는 자연과학 분야에 왜 거액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은 바른 길로만 들어서면 누구 입장에서도 재미있습니다. 

서두에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가 있는데 이 책은 "빅 히스토리"를 공부할 수 있는 교재이기도 합니다. 책 전반은 우리 지구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췄는지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까마득한 조상이라 할 단세포생명체도, 지구가 만들어지고 나서 엄청난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등장했고, 그로부터 진핵세포를 지닌 다세포 생물이 나오기까지는 또 긴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들 생명체가 지극히 미미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 오래 전 인간들도 이와 다를 바 없었음을 자각한다면 새삼 겸손한 마음이 생깁니다. 

네 발로 기어다니는 귀여운(p121) 동물 키노돈트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면서 저자는 이 동물의 매우 중요한 특징 하나를 댑니다. 그것은 허파까지만 갈비뼈가 덮고 있으며, 배 아래부터는 갈비뼈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재까지 화석으로 발견된 동물들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오늘날 포유류의 갈비뼈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게 바로 저 키노돈트입니다. 저자는 이 특징이 중요한 이유로, 이렇게 갈비뼈가 자리잡혀야만 복식호흡이 가능하다는 점을 듭니다. 복식호흡이 왜 그렇게 중요해졌을까요? 페름기 대멸종 당시 산소가 부족해져, 숨을 깊이 들이쉬어야만 생존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핵전쟁 후 지구가 더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옥이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당대에 획득형질 유전이 대단히 어려울 뿐 어떻게어떻게 해서 운 좋은 돌연변이 개체가 나타나 또 그에 맞게 생존하고 번성할 것입니다. 단 그들이 우리 현생 인류와는 매우매우 다른 모습을 가질 뿐이겠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의 직접 조상 중 하나이긴 하나 아무래도 현생 인류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200만년 전에서야 호모 에렉투스, 직립 보행 원인이 나타나 우리들과 꽤 닮은 외관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안타깝지만 왜 200만년 전에서야 호모 에렉투스 같은 생명체가 등장한 걸까요? 그 외에도 오늘날까지 유전자를 남길 만한 생명체 후보들은 매우 많았는데 말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다소 놀라울 만큼 유전자 구성이 단순한 편이라고 합니다. 단일 조상에 의해 한순간에 후손이 퍼져서입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후 조건의 급속한 변화, 화산 폭발과 소행성 충돌 때문에 초래된 환경 급변에 그나마 가장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게 호모 에렉투스 그들이었기 때문이겠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만큼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러 우리가 이처럼 우아한 생활을 누리는 것입니다. 

포유류는 특이하게도 그 어미가 오랜 동안 품 안에서 길러야 성체로 온전히 자라나는 동물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은 유독 성장과정이 길게 잡힌 후에야 어른 취급을 받게 되니 특이합니다. 만약 진화의 원리가 그저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만 채워진다면, 엄마 보호를 오래 받아야만 살아남는 동물들은 진즉에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현실은 오히려, 가장 피보호 기간이 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었으니 역설적입니다. p217에서는 차츰 기후가 온화해짐에 따라 사람들이 이동보다는 정주해서 사는 삶을 선택했으며, 비로소 (비교적) 따뜻한 곳에서 비바람도 피하고 안정적으로 모유 수유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짚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도, 굴 안에 둥지를 마련하는 등 뭔가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기간이겠습니다. 

초기 SF 작가들이 사실은 그리 구체적으로 예측한 바는 아니지만 우리 시대 들어 가장 두드러진 발전상은 바로 인터넷입니다. 처음(1990년대 중반)에 한국 정부에서는 이를 "정보 고속도로"로 파악하여 그 인프라 건설에 열심이었지만, 이제 인터넷은 그저 정보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 생존, 소통, 산업 발전 등 모든 면에 필수 파트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정치가 또 바뀌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 p289에 보면 2016년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정치 혁명 현상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당이 큰 세력을 얻기도 했는데, 이제 대의제민주주의라는 여러 나라 헌법의 필수 기초원리도 그 타당성이 종전처럼 유지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은 인간이 그 생존을 위해 발전시켜 온 지식과 지혜의 총화입니다. 과학의 발전사는 곧 인류가 오늘날의 번영과 자존을 키워 온 자랑스러운 자취이기도 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인 과학 역사, 또 빅 히스토리를 담은 인문서로도 읽혀서 보람 가득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주의 정치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2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23) 7월에 홍알정(=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제1권을 리뷰했었고 이번이 그 두번째 권입니다. 이 2권에서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현실태를 커버합니다. 자유주의는 영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의 가장 오랜 기초를 꽃피운 나라에서 발달한 정치 사조이며, 그 양태도 어느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작동합니다. 반면 전체주의는 비록 내세우는 지향이 좌와 우로 달라도 시민을 억압하는 행태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게 큰 차이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일찍부터 "민주주의는 최악의 시스템이지만 현존하는 체제 중 최선의 것이다"라고 한 적 있습니다. 좋아서 쓰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나쁜 억압적 기제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운용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자유민주주의를 그 원형대로 쓰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는데, 저자는 그 위기의 본질을 다섯 가지로 짚습니다. 첫째 대표성의 위기, 둘째 빈부 격차, 셋째 포퓰리즘으로 인한 주권자 개념의 타락, 넷째 관료의 부패, 다섯째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 간의 투쟁과 차별 등입니다. 

이 책은 크게 5부로 나뉘며 자유주의 정치 사상의 대부 다섯 명을 각각 다룹니다. 이 중에는 그 사상적 경향을 자유주의에 한정할 수 없는 훨씬 큰 스케이프를 가진 이도 있으나, 오늘날 자유주의의 재모색 과정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상가로서 꼽힌 이도 있습니다. 그 다섯은 홉스(대표성의 고찰), 로크(소유권), 루소(일반의지), 칸트(공공성), 헤겔(인정투쟁) 등입니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논한 홉스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원인을 3가지로 짚었습니다. 첫째 경쟁, 둘째 자신없음, 셋째 명예. 이처럼 자연상태라는 게 개체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가자 리바이어던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안전 보장을 위해 호출되고, 시민의 도구적 이성이 "폭력과 공포의 심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작동된다는 게 홉스적 시민계약설의 핵심입니다. 영국은 적어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 1628) 이래 왕의 권력인가, 아니면 의회의 주도권인가를 놓고 끝없는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p29에 나오는 아이자이어 벌린(이 사람은 E H 카의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죠)과 퀜턴 스키너의 해석 다툼(20세기)이 그 좋은 예입니다. 

로크의 소유권 개념을 다루기 앞서 저자는 중세 교부 철학상의 원시 개념을 먼저 환기합니다. p57에서 말하는 교부철학자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를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가 등장하며, 마지막으로 스콜라 철학의 개창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옵니다. 저자는 이 셋의 사상을 토지공유제, 노동가치설, 손상의 한계, 충분의 한계로 요약하는데 현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재의의를 규명하려는 게 그 의의입니다. 이어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강력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칼 마르크스와 (약간 뜻밖에도) 토머스 페인을 설명합니다. 물론 <상식>을 저술하여 미국 독립 혁명에 불을 지른 그 사람이며 시기상 칼 마르크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타계한 그 인물입니다. 토지 소유권에 내재한 사회적 합의설을 거론했던 이유에서입니다. 

루소의 일반의지, 즉 volonté générale에 대해 이후 프랑스 대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던 시예예스 주교, 또 한참 후의 슘페터의 해석이 갈립니다. 시예예스는 국민의회에서 입법권을 행사하는 대의원들이 이 일반의지를 대표하는데 국민의 일반의지라는 게 분명히 선재한다고 여깁니다. 이때의 국민이란 주로 부르주아지(제3계급)이지만, 이후 레닌과 마오는 이를 노동자와 농민으로 바꿔 해석했습니다. 반면 20세기의 슘페터는 전문가의 식견과 능력이 중요하며 일반의지도 하나의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수시로 변용된다고 여깁니다. 저자는 여기서 일본의 문학가 아즈마 히로키(1971~)의 "일반의지 2.0"을 인용하며 루소의 개념이 21세기 현대에 들어 어떻게 재탄생, 재해석되어야 하는지 하나의 시안을 논합니다. 

칸트의 도덕감정 논의는 가장 소박하고 어찌보면 유치하기까지 한 단초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고도의 개념을 논의해 가는 그 치밀함에 위대함의 본질이 놓입니다. 계몽을 논하며 그는 "이성의 공적 사용(p195)"을 자세히 추급하는데, 시민은 정부의 공권력 행사에 복종도 해야 하지만(예:납세), 동시에 후견인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놓인 존재가 결코 아니므로 비판적으로 행동해야만 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국가 전체가 이런 자유사상에 기반해서 작동해야 성숙한 단계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인용하며 칸트적 계몽의 현대적 변용을 알기 쉽게 논합니다. 

헤겔은 국가를 인륜의 최고형태라고 규정했었습니다. 이때 인륜의 원어는 Sittlichkeit입니다. 헤겔은 젊었을 적 피가 끓는 개혁주의자였으나 그 역시도 어리석은 자코뱅파가 혁명의 대의를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본인이 목도한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기존의 자유주의에 대해, 인륜의 객관성을 바탕으로 비판합니다. 헤겔 사상의 2단계에서 저자는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을 집중 분석하며, 대체 왜 인간 사회에 분쟁이라는 게 발생하는지, 어째서 종교나 이념 등 추상적인 가치 때문에 이처럼 치열한 싸움이 빈발하는지를 규명합니다. 

홍성민 교수님 특유의 쉽고 명쾌한 필치로, 어려운 정치사상의 이슈들이 설명되기에 책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쉬운 독학 새벽하늘 부동산 경매 첫걸음
새벽하늘(김태훈)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경매에 싸게 나온 양질의 부동산을 잘 노려 좋은 가격에 취득하려는, 전문가 아닌 일반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런데 경매에 나온 것 중에도 이러저런 예상치 못한 함정이 붙은 게 많고, 까딱 잘못하면 오히려 덤터기까지 쓸 수 있습니다. 내가 나중에 감당할 수도 없는 비용이 줄줄이 지출될 수 있다면 이는 낙찰가만 낮게 받았다고 해서 낮게 구입한 게 아닙니다. 경매는 입찰 과정에서의 세세한 기술뿐 아니라 부동산 취득과 운용의 전 과정을 두루 이해해야 하는데, 이 책은 컬러 도판이 많고(부동산 취득에는 각종 서식과 증빙이 필요하므로 독학용 책에는 이런 견양, 견본이 많이 실려야 합니다), 경수와 하늘이라는 두 가상 인물이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므로 쉽게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p45에서 하늘이 적절하게 말하는 것처럼, 경매 사건에 입찰하기 위해서는 "권리 분석"이라는 게 필요한데, 본래 이런 건 개인이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유료로" 발급받고 나서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구독료 50만원 정도를 1년에 받고 제공해 주는 사이트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은 이걸 10명 정도가 아이디 하나를 구매해서 돌려쓰는 게 경제적이라는 충고까지 해 줍니다. 이용약관이나 기타 법규에 위배될 소지는 혹시 없을지는 물론 개인이 개별적으로 체크해 봐야 하겠습니다(물론 이렇게 책에까지 실었다는 건 문제가 없음을 믿어도 된다는 뜻이겠습니다만). 심지어 하늘은, 해당 업체와 제휴가 되어 있는 멤버십 가입까지 권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원스톱 서비스입니다. 그만큼 경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사이트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가등기라는 건, 이런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이들이 정말 주의깊게 살펴야 할 권리사항입니다. 가등기는 책 p89에서 잘 설명하듯이, 쉽게 말해 "누군가와 매매계약이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등기 명의자는 조만간 명의자가 아니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인데, 잔금까지 다 치렀다고 해도 우리 나라는 명의가 넘어가야 소유권이 넘어가는 이른바 "성립요건주의"를 취하므로 매수자가 아직 (누구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 못 합니다. 그런데 계약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계약일 뿐이므로 그게 끝까지 쌍방이행으로 이어지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등기는 그저 가등기로만 해석되어야 하며, 다른 결과가 벌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게다가 가등기에는 소유권 이전을 반드시 전제로 삼는 게 아니라 담보목적 가등기라는 것도 있으므로 더욱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경매에 낙찰되었다고 해도 그 물건의 가액이 모두 내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p118에서 하늘이가 말하는 것처럼 우선은 집행비용이 먼저 제해집니다. 원칙적으로 이 비용은 채무자 부담이지만 돈이 없어 집이 넘어가는 판인데 그 비용이 납부되었을 리가 없고 그래서 낙찰가에서 이걸 먼저 제하는 것이니 사실상 채권자가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에서 경수가 한탄하는 내용이 있는데, 경수는 까딱했으면 보증금 중 상당액을 그냥 날릴 뻔했으나 천만다행으로 위기를 면합니다. "왜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학교에서는 안 가르치는 걸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정말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이런 것이기 때문이죠. 

사정이 이러니 채권자가 만약 낙찰이 되어도 선순위 물권자, 소액우선보증금 등을 다 떼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이러면 경매가 애초에 기각이 되어 버립니다. 이걸 책 p158에 나오듯이 "무잉여"라고 부릅니다. 책에 나오는 예라면 3차 최저매각가격 5억 6350만원 가지고서는 오히려 8850만원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때 무잉여가 안 되는 최저가격이 6.9억이라고 책에 나오는데 그 이유를 제가 좀 보충해 보자면 선순위 근저당액 6억 5천 2백에다가, 경매신청 채권자의 채권액 4천이 더해진 금액이라서이겠습니다. 

p204를 보면 여튼 대항력 있는 임차인은 있을 수 있으며(경매 절차 신고 여부에 무관하게), 따라서 그 점유자가 어떤 지위인지, 탐문을 통해서건, 금융기관이나 기타 이해관계자한테서건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고 하늘이는 경수에게 가르칩니다. 하늘이도 이야기하듯이 등기부상 권리 분석보다는 임차인에 대한 분석이 훨씬 어렵다는 게 현실입니다. 

가상인물 하늘이가 워낙 모르는 게 없이 가려운 곳을 쏙쏙 긁어주고, 경수도 우리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대변해서 필요한 걸 잘 물어 주기 때문에 독자가 대리만족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이런 책에서 그저 이름만으로 지적되던 걸, 이 책에서는 컬러 사진으로 각종 법적 서류나 건물들을 다 보여 주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가에쓰 히로시 지음, 염은주 옮김, 기타무라 다이이치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는 その犬の名を誰も知らなあい입니다. 신석기 이래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 인간과 종이 다른 생명체 중에 개처럼 친숙하고 정이 많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인간이 문명을 이처럼 가꾸고 번영하며 살아 온 데에는 개보다 더 큰 기여를 해 준 다른 동물들도 있겠습니다. 실험용 쥐, 모르모트라든가, 가축으로 고된 노동을 해 준 소, 단백질의 주된 공급원이었던 돼지와 닭... 하지만 개의 경우 그 희생의 상당수가 자발적(?)이기도 했고, 유독 많은 야외 활동에서 인간과 제법 교감까지 하며 난이도 높은 기여를 했기에 그들을 더 특별히 기억하게 되는 듯합니다. 

한국도 1980년대 중반부터 남극에 과학기술 인력을 파견했었기에, 극한의 기후 여건에서도 나라의 이익을 위해 많은 고생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일본의 남극 기지 주재원들이 현지에서 함께했던 여러 개들에 대한 감동적인 사연을 담았는데, 저도 책을 읽고서 비로소 알았지만 일본은 1955년 파리 제1회 남극회의에 처음 참여할 때부터 남극과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당시 패전국으로서 대단히 국제 평판이 나빴고, 이런 회의나 국제 활동에 부지런히 참여함으로써 다시 국제 사회에 재편입도 이루고 장기 국익도 도모하자는 생각이었다고 나옵니다. 시기가 이처럼 오래전이라서 기지 이름도 쇼와, 당시 재위 중이었던 일본 임금의 연호를 그대로 딴 채입니다. 물론 이 군주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가라후토라고 하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대단히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야 익숙한 명칭이겠습니다. 알다시피 남극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극한의 기후입니다. 사람이 외쿠메네에서 가동하던 이동 수단은 각종 인프라가 깔려야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남극처럼 추운 곳에서는 스마트폰, 자동차 등의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길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더군다나 1950년대 중후반이라면 아직 (일본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 해도) 기술 수준이 일천할 때이니, 남극에 진출하려던 기술진은 개썰매를 대뜸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썰매를 이끌 동력은 당연히 개들이겠으며, 일본 기술진에게 가용 가능한 견종은 가라후토견(樺太犬)밖에 없었습니다. 

책 16, 17페이지에는 모두 19마리의 개들이 사진과 함께 그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 개들에게는 마리라는 조수사를 막 대기도 미안할 정도입니다. 이 개들이 아무리 가라후토견이라 해도, 사할린과 남극의 추위라는 건 아예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19마리 중 9마리가 죽었고, 7마리는 행방불명되었으며, 오직 세 마리만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사람도 시설 안에 오래 견디기 힘든 판에 개들까지 일일이 챙기기 어려워서 현지 기지에 안타깝게도 몇 마리가 남겨졌습니다. 비정하게 그럴 수 있냐 싶어도 당시는 일본이 패전국으로 형편이 녹록지 않았던 데다, 기지 관리 노하우가 매우 부실했다는 점 감안은 해야 하겠습니다. 

"가라후토견은 (본능적으로) 썰매를 끌고 싶어한다(p131)."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고된 노동을 시키는 인간이 미안하니까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개는 개일 뿐이라서 예측 불허의 행동을 합니다. 사람도 단체와 조직의 목표에 일일이 호응하지 않고 일탈을 일삼는데 동물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리키는 끝내 그 행방이 밝혀지지 못했고, 내성적인 벡은 앓다가 결국 숨이 끊어졌습니다. 개들도 다 개별 생명체라서 견종만 같다고 해서 성격이 같은 게 아니기에, 얌전하고 착했던 애가 유명을 달리하면 사람 입장에서 훨씬 마음이 아프기 마련입니다. 엄마 젖 먹고 자라는 포유류의 감정선은 아주 원초적인 면에서 다들 닮은 데가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일을 독자가 그저 지면으로 읽는데도 마음이 이처럼 슬퍼지는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대원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이런 극한지에 파견되는 대원들은 자기 분야 최고의 전문가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건하고, 마치 전쟁이 한창인 theater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적응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 야전사령관의 자질까지 갖춰야 한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어떤 매뉴얼이 마련되어서 그대로만 따른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서 최초로 극지에 파견되었는데 매뉴얼이 어디 있겠으며, 패전국에게 다른 나라들이 뭘 넉넉히 공유해 줄 리도 없습니다. 그런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마침내 살아남은 개들에게 얼마나 한편으로 미안했겠으며 또 그 건재한 모습에 반갑고 대견했겠습니까. 

사실 저는 일본이라는 사회가 한국에 비해 개인적 자유가 억압되는 면이 많다고 보며, 비합리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도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예를 들어 p303 같은 곳을 보면, 지원도 변변치 않으면서 진실을 알리는 소통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검열하려 드는 당국에 대한 분노가 표시됩니다. 극한 상황에서 분투하는 인간들의 생생한 감정이 드러나는 한 편의 서사시를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