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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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 요즘 젊은 작가의 단편 7개를 모은 소설집. 7개중 2편이 퀴어(중국산 모조비아그라....& 자이툰파스타)관련이고 다른 2편이 옴니버스처럼 엮인(패리스힐튼을 찾습니다.&부산국제영화제) 작품이다. 따옴표가 없이 대화와 서술이 섞여 어지럽니다. 핫하다니 이해하려 노력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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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장수업 - 미움받을 용기 고가 후미타케
고가 후미타케 지음, 정연주 옮김, 안상헌 감수 / 경향BP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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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글쓰기에 필이 꽂혔다. 짧은 수필이든, 소설이든, 뭐든 쓰고싶다.

도서관에서 하는 수필쓰기 수업도 신청했는데 별게 없다. 답답한 마음에 쉽게 읽힐것 같은 이 책을 골랐다. 깊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으나 지금의 내 구미-첫 시작을 어떻게 할지-에는 딱 맞는 책인 것 같다. 예전에는 작문은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변하고 있다. 타고난 재주있는 사람이 쓰는 아름다운 글도 있을 것이고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쓰는 평범한 글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는 글을 잘 쓰는 방법? 무조건 매일 쓰라. 고 했는데 한번 실천해볼까 고민 중이다.

 

이 책은 글쓰기 방법론을 일일이 나열하는 건 노력과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 작가의 요약본을 찍어 올려본다. 두고 두고 보게되겠지 내가 한 요약보다 이게 더 나을것이다.

 

<도입부 요점>

<1강 요점>

<2강 요점>

<3강 요점>

<4강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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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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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젠더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다. 기존의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시선을 더해 각종 불법촬영 이슈와 미투 운동 등이 작년부터 활발해지면서 젠더 문제는 정피와 종교와 같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고 쉽게 대화의 주제로 끄집어 내서는 안될 하나의 유리 그릇 같은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런 분위기의 시작점에 이 책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2016년 말에 출간된 이 책은 2017년과 2018년 내내 한국 여성과 남성 사이에 핫 이슈였다. 정반대의 의미로. 여성들에게는 한국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깊은 공감의 의미로 그러했고 남성들에게는 그들도 현재 처한 현실에서 볼 때 또 하나의 피해자일진대 작품에서는 남성을 너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충이(?) 정도로 표현한 데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그러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여성들 사이에서 공감을 드러내며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고 이에 곧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것도 아주 긴 기간동안말이다. 현재도 알라딘 베스트셀러50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면에 남성들은-주로 젊은 남성들- 이 책을 읽는 여성들은 소위 꼴페미취급을 하며 여성의 책임은 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으로 간주해버리는 일이 생기곤 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김지영은 살아오고 있었다.

 

   김지영은 1982년에 21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 위로는 김은영이라는 이름의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억척스럽고 생활력강한 주부였다.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하였던 할머니와 살면서 어려서부터 남동생과 두 자매간의 차별이 생활화되면서 커왔다. 그 시절 많은 대한민국 여성이 그랬듯이 김지영이 또한 초등학교 시절 짝꿍에게서 폭력으로 미화된 좋아함을 받았고 똑똑한 여자아이들임에도 반장은 줄곧 남자아이들이 하는 학교분위기를 당연시하며 자랐다. 중고등시절은 성추행을 은근히 일삼는 남자 선생님에게서 수업을 참고 받아야 했으며 여자는 조신해야한다는 말을 이데올로기처럼 듣고 생활했다. 대학시절은 그마나 좀 나은 듯 하더니만, 뒤에서 여자들에 대한 질 낮은 음담패설을 나누는 멀쩡한 남자 동기와 선배를 목격하고는 정나미가 뚝 떨어지기도 했다. 어렵사리 취직한 직장에서는 결혼과 그리고 결정적으로 임신을 하면서 취직 후 몇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출산 후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 시댁에서 받는 생활 스트레스, 맘충으로 취급받는 사회적 스트레스에 짓눌려 김지영씨는 급기야 우울증에 정신병까지 갖게 되어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되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나의 과거 시절을 떠올리게 하여 공감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101~102쪽에 걸쳐 있는 회사 면접 부분이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면접관이 고객과 미팅시 약간의 신체 접촉이 있을 시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했다. 3명의 여성 면접자는 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김지영씨는 적당히 둘러대어 그 자리를 모면한다, 두 번째 면접자는 화를 내며 따지고 공개 사과를 요구한다, 마지막 면접자는 자신의 옷차림 등 잘못이 없었는지를 되돌아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가장 현실적인 김지영씨의 답변과 같지 않았을까 한다.

   회사를 다닐 때 처세가 참 곤란할 때가 많았다. 공적인 일에 관하여 그건 내 일이 아니다고 확실히 말하면 여자가 기가 세다’ ‘독하다’ ‘인적 화합이 안되는 사람이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고, 사람좋은 척하려고 예예를 자주 하면 회색 지대의 일이 어느 새 내 일이 되어 있다. 물론, 사람좋고 일 잘한다는 평판까지 함께 말이다. 때에 따라 달라지는 평판에 사회 생활 초기에는 처세를 하기가 많이 곤란했다. 경험도 없고 약간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사회 생활의 연차가 쌓이면서는 느꼈다. 여자는 회사생활을 하면 두 가지 평가가 있다는 것을. 하나는 남자같이 생각하고 생활하면서 일 잘한다는 평가가 또 하나는 순진한 척 예예거리며 순종하여 사람좋고 사회생활 잘 한다는 평가가. 이 둘 사이에서 매순간 많은 갈등과 선택과 후회가 있었다. 한 때는 적당히 둘러대는 김지영씨와 같은 처세를 많이 해왔지만 끝내는 거리두기, 관심끊기, 스스로 외로워지기를 선택하였다. 그 편이 맘이 더 편했다.

   82년생 김지영씨의 삶은 많은 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공감을 이끌어 낼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이 소설보다는 다큐같다는 건 여자사람으로선 나만의 느낌일까?

   소설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때는 다양한 인물의 생활과 생각과 개연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전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에는 김지영씨의 생각만 존재한다. 가끔 언니 김은영이나 김지영씨의 엄마가 그들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김지영씨 혼자의 생각만이 담겨 있다.

   130쪽에 김지영씨와 남편 정대현씨가 혼인신고를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지영씨 생각보다 빨리 남편이 혼인신고서를 준비해오니 김지영씨가 왜이리 급하냐고 혼인신고 급히 한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지않냐고 하니 남편은 마음이 달라진다며 혼인신고를 서둘렀다. 여기에서 김지영씨는 남편에게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는 김지영씨에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정대현씨가 말한 마음은 남편행세를 하겠다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가부장적 남성이 간간이 있기는 해도 요즈음 많은 젊은 한국의 남성들은 경제적 상황으로 인하여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다. 여기서 정대현의 마음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의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우리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시절이 그랬던 만큼 가정보다는 회사에 더 충실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볼 때 아버지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젊은 남편 젊은 아버지 정대현씨도 시대에 따라 조금 달라졌기는 해도 가장, 책임감, 부양, 무게 등의 단어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소설이 좀 더 다양한 공감과 풍부한 작품적 해석을 위해 이 들의 얘기도 함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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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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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이니의 전작 '연을 쫒는 아이'를 보고난 후 바로 이 책을 읽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호세이니의 첫 번째 작품 '연을 쫓는 아이'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 즈음 아프간을 탈출한 가족, 더 좁게는 남자 주인공과 그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여 아프간의 역사와 생활, 이민후의 미국생활을 그린 작품이라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소련침공을 거치고 무자히딘의 시절을 지나 아프간의 재건까지 아프간에서 견대고 살아남은 두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그 주변의 이야기이다.

 

     두 여자가 있다. 한 명은 헤라트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난 1959년생 잘릴의 사생아 마리암이고 다른 한 명은 수도 카불에서 화목한 양친밑에서 1978년에 태어난 라일라이다. 두 여자의 나이차이는 19살. 그러나 운명은 이 두 여자 모두를 라시드라고 하는 폭력적이고 마초적이며 전형적인 가부장적 시각과 생활태도를 가진 한 남자의 부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원인은 전쟁, 연이은 국제전과 내전 그리고 당시 이슬람(지금도 그런 나라가 아주 많지만)원리주의 지독한 여섬폄하와 남성우월주의 그것들이다.

     라시드의 폭압과 폭력, 숨막히는 독재속에서 두 여인은 스스로 연대를 깨우치게 되었고 그 연대의 마음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었어도 두 여인의 내면을 이슬람의 유일신 알라의 마음처럼 깊고 넓게 만들었다. 전쟁은 여자와 아이와 노인의 피와 땀과 눈물로 범벅된 방관자들의 권력투쟁터이다. 일부의 힘과 돈을 위해 항상 제일 약한 고리가 먼저 아파하고 끊어진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팩트이다. 명실상부 1974년 쿠데타부터 2001년 9.11테러때까지 이어진 아프간 안에서의 그리고 아프간 바깥에서의 기나 긴 전쟁은 이 두 여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일라와 그의 아이들-아지자와 잘마이-을 지키기 위해 마리암은 스스로를 희생하고 그녀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않은 라일라는 첫사랑 타리크와 함께 아프간으로 돌아가서 고국의 재건에 하나의 밀알이라도 되려하고  이 전쟁을 기억하고 마리암을 기억하려고 한다.

 

     이 책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얼마남지 않은 오렌지의 과즙을 쥐어짜내는 것 처럼 너무 힘이 들고 아프다. 그만큼 담고있는 내용이 많고 말하고 싶은 결정적 순간도 많다. 1974년부터의 아프간 전쟁, 수없이 언급되는 코란과 이슬람의 교리들, 당시 아프간 및 아프간 여인들의 삶, 그 속에서 눈부신 여자들의 연대. 매 챕터마다 이야기는 애절하고 표현은 보석같았다.  

 

     책의 3부즈음에 마리암을 허리띠로 매질하려는 라시드를 라일라가 몸으로 막아서는 장면이 두 여인사이에 연대가 싹터오르는 첫번째 장면일 것이다.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라일라를 마리암은 질투와 불안의 시선으로 줄곧 바라보다가 라일라의 이 동작으로 마리암은 그들 모두 피해자이며 손잡고 맞서야 할 상대는 바로 그들의 남편, 폭압의 대명사 라시드라고 깨닫게 되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왠지모를 울컥함과 약간의 짜릿함을 느꼈다. 서로가 각자 피해자라고만 생각을 해왔는데, 때리려는 라시드앞에서 매맞는 마리암, 그 모습을 두려움에 떨고 지켜보는 라일라, 그 순간에는 폭력의 희생자로서 공포의 대상자로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만 한다는 것을 몸으로 현실속에서 바로 깨달은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약자들이 현실을 깨닫고 각성하는 그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 비록 이 순간만 볼 때는 답없고 갑갑한 연대의식의 출발이긴 해도 역사가 앞으로 전진하는 순간은 거의 대부분 순간은 짜릿하지만 결말까지의 과정은 지루하고 힘들기 마련이다. 불과 2~30년 전만해도 이보다는 아니지만 숱한 억업의 역사를 안고있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이기에 더욱 더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일부분 사실일 수도 있겠으나 여성이 메인인 조직에서나 혹은 여성 구성원이 일부라도 상하관계로 있는 조직을 상대로 21세기인 현재까지도 공공연히 말들을 하고 있다. 물론 일부 사실일 수도 없다. 절대적으로 아닐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절대'적인 것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러면 이 역시 이 말을 이용하여 득을 보고 있는 어느 무리들의 프로파간다가 아닐까. 아프간 여성들의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마초처럼 굴지만 그 여성들 없이는 하루도 살수없었던 아피간 남성들처럼 말이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서로를 지켜주려는 삶을 살았다. 마리암의 방식으로 라일라의 방식으로. 그리고 그 방식은 폭력적이지 않았고 또한 누구를 죽이려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를 많은 이를 살리는 방식이었다. 짧지않는 세월을 주로 회피적 선택을 하며 살았던 이 두 사람은 마침내 그들 스스로의 성취적 선택을 하였다. 떠밀려 마지 못해 살아왔던 것과는 달리,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담대하고 아름다웠다.

 

     나 역시 회피적 선택을 하였던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오로지 나만의 생각과 결정으로 지금 현재에 있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보여주었던 것 처럼 나도 지금을 시작으로 성취적 선택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제발 이 결심이 일상속에서 안개처럼 사라지지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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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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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는 시간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타리크의 아버지가 가끔씩 옛 파슈토 곡을 연주하는 아코디언처럼. 시간은 타리크가 있고 없음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었다. - P146

라일라는 남자들이 태양을 대하는 것처럼 우정을 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똑바로 바라보지 않을 때, 그것이 광채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존재. 태양. - P180

동맥에서 콸콜 흘러나오는 피처럼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P344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 P532

라일라는 아지자가 기도에 집착하는 건 마리암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는 걸 안다. 당분간은 그러할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뿌리가 뽑힌 잡초처럼 시간은 기억의 정원에서 마리암을 데려갈 것이다. - P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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