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 무디고 둔하며 영혼의 지각 능력은 조잡하고 불확실하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예견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면 우리 이별은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 P16
나는 그 원고를 읽으며 망설였다. 2년간 내 존재의 심연에서는 하나의 욕망, 한 알의 씨앗이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내부를 파먹으로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을 내 오장육부로 느낄 수 있었다. 씨앗은 자라면서 움직이기 시작해 밖으로 나오려고 내 몸 속 벽에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내게 그놈을 파괴할 용기는 없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 P18
목자: 내겐 황소가 있습니다. 또 암소도 있고 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목초지도 있으며 내 암소를 모두 거느릴 종우 또한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시여, 마음대로 비를 내리셔도 좋습니다. 붓다: 내겐 황소도 암소도, 목초지도 없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시여, 마음대로 비를 내리셔도 좋습니다. 목자: 나에겐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양치기 여자가 있습니다. 이 여자는 오래 전부터 내 아내였습니다. 그녀를 밤에 희롱하는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니 하늘이시여, 마음대로 비를 내리셔도 좋습니다. 붓다: 내겐 자유롭고 착한 영혼이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내 영혼을 길들였고 나와 희롱하는 것도 가르쳐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시여, 마음대로 비를 내리셔도 좋습니다. - P34
육체는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요. - P57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하나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다른 것보다 나아서 믿는 게 아니오.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하지만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지요. - P89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 뭐요, 조르바? 원래 까마귀는 점잖고 당당하게 걸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까마귀는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자기의 걷는 법을 모두 까먹어 버렸다는군요. 뒤죽작죽이 된 거지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 P108
땅의 모든 것이 어쩌면 어맇게도 멋지게 조화되는 것일까. 대지는 어쩌면 인간의 가슴을 이렇게 울렁거리게 하는 것일까. 인생을 모두 소모한 채 이 외로운 해안으로 유배된 늙은 카바레 가수는 지금 이 초라한 방을 경건한 욕망과 여자의 따사로운 정감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푸짐하게 차려놓은 상과 따뜻한 화덕, 곱게 단장한 모습과 오렌지 꽃물 향기...... 이처럼 사소한 육제적 기쁨이 어쩌면 이렇게도 급속하고 간단하게 정신적인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일까? - P186
과오란 고백을 통해서 반쯤은 용서된다고 하더군요. - P238
당신은 젊어요. 늙은이가 하는 소리 따위는 귓전으로 흘려버려요. 노인의 말을 다 믿는다면 무덤으로 직행하기밖에 더하겠소? 과부댁이 만일 당신 앞을 지나가거든 냉큼 붙잡아서 결혼하고 애를 낳아요. 망설일 것 없다니까! 까짓 말썽 따위를 젊은이들이야 겁낼 필요가 있나. - P261
"자기 자신의 내부에 행복의 뿌리를 두지 않은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현생과 내생이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P288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를 한 소쿠리나 샀지요. 나는 그것을 도랑에 숨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목구멍으로 넘어올 때까지 쑤셔 넣었어요. 배가 아프고 구역질이 났어요. 두목, 결국 나는 몽땅 토하고 말았지요. 그리고 그 후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을 정도였지요. 나는 마침내 구원을 받은 겁니다. 언제 어디서 버찌를 보아도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너랑 별 볼일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 P309
우리의 늙은 세이렌은 저 원대한 희망 - 결혼 - 이 마음속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모든 매력을 깡그리 잃어버린 것이다.(중략)그녀는 결혼을 갈망하는 가련한 여자의 모습만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었다. - P333
"못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내가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 신비를 몸으로 느끼느라 쓸 시간이 없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리에 빠져 있었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따위 굴릴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래서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맡겨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 P344
"조국 같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은 앞뒤 해야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면하기 힘들어요. 하느님이 돌보셔서,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다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이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싸우고 죽이고 사랑하면서 내가 펜과 잉크 속에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의자에 붙어 앉아 고독과 싸우며 풀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산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칼 한 자루로 풀어 버린 것이다. - P360
"일은 어중간하게 해 놓으면 끝장이에요. 말이나 선행도 마찬가지에요.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중간한 습관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확실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못 하나를 박을 때마다 승리하는 겁니다. 하느님은 악마 두목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 P364
그렇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고된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바치고, 하느님과 악마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그것이 젊음이라는 것이다! - P373
이제 나는 마음이 이 육체의 환희를 독점하여 그 나름의 형상을 만들며 생각을 키워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야수처럼 기뻐 날뛰게 내버려두었다. 그러고는 나는 이따금 무아지경에서 내 외부와 내부를 지켜보며 이 생명의 기적에 감탄했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의 발, 손, 배가 이처럼 세계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가? - P377
"인간이란 참 괴상한 물건이지요. 속에다 빵, 포도주, 물고기 당근 같은 걸 집어넣으면 그게 한숨이나 웃음이나 꿈같은 것이 되어 나오잖아요. 무슨 공장 같지 않아요? 우리 머릿속에는 발성 영화기 같은 거라도 들어 있나 봅니다." - P401
"새 길을 만들려면 새 계획이 필요해요. 나는 이미 지난 일은 어제로 끝냅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뿐입니다. 나는 매순간 자문합니다. ‘조르바, 너는 뭘 하고 있느냐?‘ "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너는 무엇을 하느냐?‘ ‘일하고 있네.‘ ‘열심히 하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하느냐?‘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자네와 그 여자 밖에 아무도 없는 거야.실컷 키스하게." - P430
‘알렉시스야, 내 너에게 비밀을 하나 알려 주겠다. 지금은 너무 어려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크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잘 들어둬라. 애야, 천국의 일곱 품계도 이 땅의 일곱 품계도 하느님을 품기엔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기에 충분하지. 구러니 알렉시스야, 조심해라. 내 너에게 충고하건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안 된다! - P440
마침내 나는 행복이 무언가를 깨달았네. 그 이유는 네게 ‘행복이란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다. 의무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보람은 그만큼 더 큰 법‘이란 옛말이 지금 이 순간 그대로 실감되어 오기 때문이네. -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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