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상 그 어떤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야구보다 위대하지는 못했다. 아니, 애당초 더 위대할 수 없다. 정치와는 달리, 야구에는 원칙과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80쪽

결론은 프로였다.
평범한 야구 팀 삼미의 가장 튼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126쪽

중산층. 이 파워풀한 단어는 그 후 세상을 바꿔나가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이 하나의 단어로 인해, 이제 확실히 도료의 3,4위가 새로운 평범의 기준이 된 것이다. 무진장 노력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들 사는 만큼 사는 거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라고 말하는 이상한 세상이 온 것이다.

128쪽

OB와 삼성, 혹은 MBC나 해태의 팬이었던 또래의 소년들에 비해 확실히 나는 염세적인 소년이었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고 있었다. OB의 팬이 아니라면, 삼성의 회원이 아니라면, 아니 프로야구가 없었다면 -- 그 소년들과 나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문제는 내가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이었던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16살의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다. 소속이 문제였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130쪽

적오도 패션과 외모에 관한 한, 나는 김치사발면 속의 동결건조김치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물을 붓고, 불려도 그것은 절대 진짜 김치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익고야 마는 사발면처럼, 당연히 가게도 문을 닫았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가지고도 인간이 이토록 기뼈할 수 있다는 사살에 내심 놀라며, 나는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약속장소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갔다.


168쪽

사람들이 모두 돼지발정제를 마신 것 같아....아니, 어쩌면 우리도 이미 마신 건지 몰라. 단지 아직 5분이 지나지 않았을 뿐이지.
.
.
.
아무래도 놈들이 원하는 건 돈과의 교미가 아닌가 싶어. 이미 마신 이상은...그 끝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어쩌면 우리가 대학을 간 것도 다 그걸 마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느끼지 못해도 좀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 여하튼 땀이 ...나고 숨소리가 거칠어질테니까. 내가 왜 이러지? 난 결백해...하며 똑같은 짓을 하게 될거라구. 분명해. 그래. 분명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걸 먹였어. 우리가 마셔온 물에, 우리가 먹어온 밥에, 우리가 읽는 책에, 우리가 받는 교육에, 우리가 보는 방송에, 우리가 열광하는 야구 경기에, 우리의 부모에게, 이웃에게, 나, 너, 우리, 대한민국에게...놈은 차곡차곡 그 약을 타온거야. 너도 명심해. 그 5분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몰라...

182쪽

"지금까지 버티신 게 기적입니다." 의사가 얘기했다.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 -- 거듭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 실은 그래서 기적이다.

199쪽

"신경 쓰지 마"
"뭘?"
"회사 잘린 거."
"널 처음 봤을 때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9회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같았어. 너 4년 내내 그렇ㄱ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투 스크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이제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크라이크를 선언헸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리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235쪽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요는 말이지. 어쩌다 프로가 되었나, 하는 것이야. 우리는 원래 프로가 아니었어. 그런데 갑자기 모두 프로가 된 거야. 요는 프로야구를 통해 우리가 분명 속았다는 거지.

지금 세상을 박해하는 것은 총과 칼이 아니야. 바로 프로지!

242~243쪽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홰? 이 세게는 언제나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야.

251쪽

착취는 아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행해진 게 아니었어. 실제의 착취는 당당한 모습으로, 프라이드를 키워주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오랸한 박수 소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휠씬 형이상학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거야.

253쪽

하루 3시간만 일하고, 굶어죽지 않고, 나머지 21시간은 내 것이다.--가 신문 배달 때와 하나 다름없는 놈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퇴직금을 까먹으며 그냥 놀기로 했다. 4년 내내 미친놈처럼 일을 했고, 그 퇴직금으로 밥을 먹지만, 하루 24시간이 내 것이다.

257쪽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의 가락처럼 끊기 쉬원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262쪽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시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틍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맡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264쪽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이상으로 크고, 필요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찌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279쪽

남의 일이라면 할만큼 했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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