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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강신주의 감정 수업이라는 책에 '감사'의 감정편에서 이 거미여인의 키스가 소개되었다. (물론 아직 감정 수업을 읽지는 않았다. 다만 얘기로 전해들었을 뿐.) 분노와 화가 넘치고 감사가 실종한 요즈음 감사의 감정을 어찌 온 몸 구석 구석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거미여인에 도전하였다.
마누엘 푸익은 아르헨티나 작가이다. 기억에 아르헨티나 혹은 남미 작품을 접한 경우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있었다 하더라도 크게 감동받지 않았나보다. 거의 처음 접한 아르헨티나 작가, 작품인데 역시나 소설이 쉽지는 않다.
소설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1970년 초중반 아르헨티나 혁명의 시기가 그 배경일 듯 하다. 실제 작가인 마누엘 푸익도 이 시기에 반정부적 작품 등으로 인해 탄압을 받고 망명을 하였다. 거미 여인의 키스도 정작 고국 아르헨티나에서는 출간조차 되지 못했고 오히려 유럽 등 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소설은 교도소에 수감된 두 남자의 대화로 처음과 끝을 이룬다. 한 명은 몰리나라는 동성연애자로 미성년자 추행으로 수감되었다. 몰리나는 여성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마음이 여리고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반면 한 방에 수감된 발렌틴은 혁명으로 꾀하려다 수감된 정치사상범으로 몰리나에게 세상을 배우고 혁명을 해야한다고 늘 옳은 소리만 해대는 그러나 몰리나는 그 옳은 소리가 가슴을 울리지 못하고 삶은 그렇게 혁명으로만 이성으로만 되는 건 아니라며 반박하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감성적이고 다정한 몰리나는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 난 발렌틴에게 자기가 본 영화이야기, - 표범여인 이야기, 못생긴 하녀와 전쟁귀순자의 사랑이야기, 나치군인과 레지스탕스여인의 사라이야기, 자동차 경주광인 청년의 이야기, 좀비 섬의 신부 이야기, 어느 가난한 청년과 유명여가수의 사랑이야기 - 를 차례로 해주게 되고 이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사이 둘은 정말로 서로를 이해하고 되고 그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진심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 비린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지. 발렌틴을 좋아하게 된 몰리나는 애초에는 그를 감사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출소하게 된 몰리나는 그러나 발렌틴의 부탁을 들어주고야 마는데 이는 결국 소설의 비극적 결말을 어느 정도 암시해준다.
우리는 혁명이나 개혁, 진보를 말할 때 이성의 장치를 먼저 가동시킨다. 그래서 진보의 이야기는 향상 겉돌고 국미의 70%이상이 우뇌지향적인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진보의 성향이 '그래서 뭐! 그래 너 잘났다!'라고 귀결되고야 마는 경향이 있다. 진보는 늘 옳은 말만 하고 옳은 일만 행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런 것은 인간에게 묘한 거부감과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라 자칭하는 수구세력은 인간의 저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살살 건들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재주가 있다. 대개 이들은 이들사이에서 아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성 좋은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항상 옳은 사람은 자주 좋은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옳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있다. 왜? 혁명의 철학을 우선 널리 퍼뜨려야 하기에. 좋은 사람은 옳은 사람이 되려고 공부를 해야 한다. 왜? 좋은 것만 가지고는 모두 다 행복히질 순 없으니까.
좋은 사람 몰리나와 옳은 사람 발렌틴은 둘 만이 수감된 감옥에서 둘 만의 수많은 대화, 공감을 통하여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융합되었다. 비록 인간적 관점에서 결말은 안 좋더라도 이 둘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느 조심스레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