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일기
정정화 지음 / 학민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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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정정화. 실로 낮선 이름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로 배운 독립운동이 거의 전부인 우리는 김구, 신채호,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좌진, 홍범도 등이 이름이 낮익은 독립운동가들이다.

그러나 역사교과서에서 일일히 이름을 기재하지 못한 목숨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정정화도 그 중 한 명이다. 더군다나 귀하디 귀한 여성 독립 운동가이다.

 

정정화는 1900년 충남의 어느 부유한 양반댁에서 태어나 10세때 동농 김가진의 3남 김의한과 결혼을 하여 여느 조선시대의 여염집 아낙처럼 평범한 시집살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한일 강제 병합이 되어 시아버지인 동농이 남편과 함께 상해로 망명을 하자, 정정화도 두 분을 따라 1920년 20세의 나이로 홀로 상해로 망명을 하였다. 양반댁 여성의 몸으로 결심을 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데, 덜컥 맘먹고 힘든 여정을 견딘것을 보면 상당히 강단이 있는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상해에 도착한 그는 상해 임시 정부의 살림살이를 보고 견딜 수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임정은 연통제 등으로 국내와 연락을 하며 군자금을 지원받기는 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일제의 감시가 심했던 터라, 기본적 의식주도 시원하게 해결되지않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정화는 이러한 상황을 보아내기가 가슴이 아파, 자진하여 국내로 잠입 군자금을 모아올 것을 결심하여 실행하기에 이른다. 조마조마한 국내 잠입과 군자금 모집을 성공하고 상해로 돌아오니, 그는 건장한 남정네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거뜬히 해낸 여장부가 되어 있었다. 이후로도 5차례나 더 국내로 잠입 혹은 정식 입국을 하여 군자금을 추가 모집하고 연락책을 맡는 등 임정의 아주 중요한 임무를 해내었다.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푹탄 투적 이후, 일제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은 임정이 1년여에 걸쳐 피나을 하여 마침내 중경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중경생활을 할 때도 빠른 일처리와 업무 센스, 깔끔한 마루리, 책임성 등으로 인하여 임정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독당 등에 책임있는 역할도 맡아 대외적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망명이후 해방하여 한국에 귀국하기까지, 겪고 느낀 모든 점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데도 그의 비상한 머리가 한 몫을 톡톡히 했슴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느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해방 후 조선에서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단지 개인적 사유로 한국전쟁당시 피란을 가지않고 서울에 남았다는 이유로 서울 수복 후, 부역죄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기도 하였고, 인민군에 의하여 같이 독립 운동을 하였던 남편 김의한이 납북되자 곤궁한 그의 처지는 더욱 팍팍해젔다. 그리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이보다도, 해방 후 다시 친일파들이 득세를 하고 독립 운동을 하였던 이들은 의도적으로 잡아 가두고 고문을 하고, 이를 지켜보는 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었다.

실로 영민하고 재치있었던 그가 친일 경찰에 체포되고 고문당하면서 받았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하여 동기를 상실하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려 과거의 그 총민함이 많이 옅어져 그의 아들 김자동은 너무나 안타까워 하였다. 왜냐면, 이 자서전이 더욱 더 많은 시실과 기억으로 충실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정정화는 그야말로 범인으로 조용히 살았다. 때로는 거꾸로 가는 듯한 조국의 현실에 가슴아파하고 때로는 살아내기 위하여 무시하면서.

 

그러던 중 아들 김자동의 간곡한 설득으로 88세의 나이에 자서전을 집필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책은 실로 정정화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구석 구석 우리가 잘 몰랐던 임시정부의 사정, 임정요인들의 개인적 사정/취향/성향, 당시 중국의 상황 등 아주 세밀하고 디테일한 사실들이 조목 조목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장강일기가 출판하지 않았다면 우리 독립운동사에 큰 손실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목숨바쳐 대한민국을 지키려 한 많은 투사들의 목숨값, 핏값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마땅히 부채 의식을 가지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같은 여성이기에 특히 그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내가 탈출하는 것 같았고 내가 독립 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녀가 아파할 때는 나의 마음도 너무나 쓰라렸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역사적 현실이 가슴 답답한 일로 가득차 있지만, 이런 책을 접한 이들부터 이 분들의 노고를 제대로 알고 전파하여 그들의 투쟁이 결코 헛된 일이 되지 않고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이라도 행동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살아있는 역사, 내가 곧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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