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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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이 1943~1944년 경, 즉 미소 냉전이 막 시작되려하고 2차 대전의 막바지에서 힘의 중심이 독일 및 일본에서 소련, 영국 미국 등으로 옮기려 할 무렵 쓰여진 소설이다. 이 때에는 소련이 (현 러시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이후 2대 권력자인 스탈린의 집권이 절정이 다달랐을 무렵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의 공산집권당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인민의 이이과 권리따위는 개나 줘버리고자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시절에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에 대한 문제점과 비이성을 꿰뚫고 동물농장을 집필했으니, 실로 대단한 혜안이라 하겠다.

 

     너무도 유명하지만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매너농장의 메이저 영감(돼지)의 감명깊은 연설이후로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주축이 되어 동물들의 우연찮은 반란이 성공하고 매너농장의 폭스씨는 쫓겨나고 이후 매너농장은 동물농장이 되어 동물의 동물에 의한 동물의 위한 농장으로 거듭나려는 시도를 동물들 다같이 하게 된다. 이의 주죽은 과묵한 나폴레옹과 달변가 스노볼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고 스노볼은 나폴레옹에 의하여 쫓겨나게 되었으며 이후 동물농장은 나폴레옹이 스퀄러라는 충직한 설득력의 달인과 함께 농장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로서 농장을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다른 동물들이 기억하는 동물농장의 초기 이념은 점차 퇴색하게 되고 급기야는 모두의 방관과 지나친 신뢰과 막연과 기대속에서 동물농장은 또다시 매너농장이 되고, 돼지 나폴레옹은 인간의 형상을 하게되고야 말며, 두 발은 나쁘고 네 발은 옳다는 초기 그들의 이념도 네 발도 좋지만 두 발은 더욱 좋다로 변질되고 만다. 다시 원점인 것이다.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힘을 존속, 유지시키려면 교육과 언론이다. 권력은(반란은) 우연히 찾아올 수도 있고 오랜 준비끝에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쥔 힘을 유지, 발전시키려면? 교육과 언론이다. 나폴레옹은 이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들이 낳은 새끼 개 9마리를 낳자마자 은밀히 데리고 가서 친위부대로 교육시킨다. 마치 마오쩌둥의 홍위병처럼. 은밀히 교육(세뇌)을 받은 이 9마리의 개들은 얼마 후 나폴레옹의 장기 독재에 얼마나 큰 힘을 실어주는가. 언론은 어떤가? 분명 반란 초기 동물들 다같이 헛간 벽에 일곱 계명을 쓰고 이를 꼭 지키자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평범한 동물들의 무지를 발판을 삼아 스퀄러를 이용하게 언론 왜곡을 시키는 것이다. 장시간 왜곡된 언론만을 보고 들은 보통 동물들은 곧 왜곡을 진실로 믿어버리고 쉬이 포기를 하게되는 것이다. 모든 나쁜 일은 이미 쫓겨나버린 스노볼이 했다는 나폴레옹 측의 말을 1. 의심을 했으나 반박하지 않다가 2. 의심도 없이 진짜라며 믿다가 3. 마침내 스노볼이 진짜 반역을 꿈 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스노볼을 막아준 나폴레옹에 감사하게 되는 순종의 악순환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권력을 쥐고 계속 유지하면서 개인의 영달은 꿈꾸는 권력쟁이들의 속성은 같다. 1944년의 동물농장이나 1960, 1970년대, 1980년대 그리고 지금 2014년의 대한민국이나 권력을 쥔 세력들의 행태는 너무도 뻔하게 닮아있다.

문제는 역사속에서 반복되는 이 사실을 알고도 또 당하는 나아지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다. 과거는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다고 치지만, 지금은 왜 더 나아지지 않고 또 당하는 것일까 동물농장의 보통 동물들처럼 편파적 교육과 왜곡된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결과가 아닐까한다. 미국도 못사는 계층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고 보수적인 공화당을 더 지지한다고 한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되지만. 이는 즉, 끊임없이 은근히 진행된 언론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도 이명박정부때 종합편성채널을 그렇게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승인을 내준것이나, KBS, MBC 사장 임명에 목숨을 거는 것을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가도고 남음이 잇다.

 

     그러면 다같이 동물농장의 클로버처럼, 복서처럼, 벤저민처럼 힘들게 노동만 하며 과실은 갖다바치며 살아야 하나. 나의 대답은 싫다!. 늘 당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보여지는 사실너머의 진실에 의문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주입되는 한쪽면 반대쪽도 보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비록 지끈거리는 두통이 동반되고 치미는 분노로 숨쉬기 어려워질지라도 말이다. 이런 내가 변하지 않게 내버려두지 말고 지켜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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